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141화 (142/277)

141화

[성좌들이 이곳에서의 죽음은 현실의 죽음이 아니냐고 의문을 품습니다.]

“던전에서는 그렇지만 여기는 꿈속이에요. 저를 제외한 모든 게 다 허상이라는 뜻이죠.”

꿈에서 절벽에 떨어지거나 총을 맞으면 화들짝 깨어나지 않던가.

이 꿈도 그랬다.

꿈의 주인이 강한 충격을 받으면 깨어나도록 설정이 부여되어 있었다.

띠링!

[성좌 ‘물음표살인마’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그럼 일리야가 깨어날 때까지 뻐기기만 하면 꿈에서 나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다.

상황이 단순하지 않아서 문제지.

나는 푸르릉거리며 자꾸 애교를 피워대는 페가수스들을 쓰다듬어주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의 유희>에서 이 에피소드는 게임 후반부에 배치돼 있어요. 중요한 복선이 드러나는 파트거든요.”

중요한 복선이라는 말에 후원창이 잠시 시끄러웠다.

어떤 성좌는 [아! 알았다! 진정한 남편이 누군지 나오는구나!?]라는 개소리를 했고.

어떤 성좌는 [스포 ㄴ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또 어떤 성좌는 [천계 에피니까 일리야에 대한 복선일 텐데, 아직 나오지 않은 게 뭐가 있었더라?]라며 진실에 접근하려 했다.

대체로는 당장 무슨 복선인지 알고 싶어서 정답을 요구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누군가가 정답에 가까이 도달했다.

띠링!

[성좌 ‘명탐정’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일리야가 천계를 없애려고 하는 이유는 쌍둥이 형제의 죽음 때문. 이 에피소드에서 쌍둥이 형제가 죽게 되는 과정을 보여줄 것으로 추정.]

“맞아요. 이 에피소드에서 일리야가 왜 인간계를 마계로 만들려고 하는지, 그 이유가 나와요.”

여기까지는 너무 빤하게 추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띠링!

[성좌 ‘음모론자’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어? 잠깐만… 나 복선 뭔지 알 거 같은데… 혹시 쌍둥이 형제가 클라이드인가?]

띠링!

[성좌 ‘막드매니아’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갑자기 출생의 비밀?]

띠링!

[성좌 ‘음모론자’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다들 던전에서 델브가 그렸던 클라이드 천사 그림 기억함? 은빛 장발에 특이한 흰색 옷 입은 거]

나는 침묵으로 성좌들의 추측을 지켜보았다.

솔직히 조금 놀랐고, 약간 감동했다.

‘그걸 알아봤구나.’

클라이드는 반인반마지만 성스럽게 느껴지는 외모를 지녔다.

또한 성유물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를 뮤즈로 삼은 창작물에서는 반드시 천사가 포함되었다.

그게 다 복선이었다.

이 꿈에서 일리야와 클라이드가 천계의 유일무이한 쌍둥이 형제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성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띠링!

[성좌 ‘클서방’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전생의 쌍둥이가 현생에서 사제지간이 된 거구나]

띠링!

[성좌 ‘썩은 취향’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형제가 동시에 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미쳤다… 저 여기에 눕겠습니다 ㅇ-<-<]

[‘클라이드’ 루트를 지지하는 성좌들이 전생의 클라이드와 만나는 것을 기대합니다.]

나는 썩은 웃음을 지었다.

“목장에 있는 한 클라이드는커녕 아무도 못 볼 것 같은데요.”

에휴, 모르겠다. 일단 퀘스트부터 하자.

언제나 그랬지만 결국 눈앞에 닥친 죽음의 위기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 * *

릴리트는 황당했다.

아무리 탐욕과 쾌락 그 자체인 악마라고 해도 한 영역의 왕에게는 예의를 지키는 법이었다.

한데 일리야는 무례하고 뻔뻔스럽게 자신의 힘을 대놓고 훔쳐 썼다.

그뿐일까? 심지어 저를 본인이 설계한 잠의 감옥에 끌고 와 가둬놓기까지 했다.

마계에서 왕에게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은 영역 전쟁 선포였다.

릴리트는 기가 막힌 듯한 시선으로 일리야를 쳐다보았다.

“네가 천계에서도 대단히 미친놈이었다는 사실은 익히 들었지만, 정말 단단히 미친놈이구나?”

시전자의 허락 없이는 꿈도 꿀 수 없는 잠의 감옥.

이곳은 그야말로 무저갱이었다.

릴리트는 난생처음으로 잠의 감옥에 갇혀보는 기이한 상황에 봉착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짓거리를 벌인 일리야는 무결하고 단정한 태도로 의자 하나를 소환해 책을 펼쳤다.

요란하게 돌아있는 악마보다 차분하게 돌아있는 타락천사가 더 골치 아프다더니.

릴리트는 이마를 짚으며 비틀비틀 허공에 드러누웠다.

“내 아들의 신부를 데리러 왔다가 이게 무슨 수모인지 모르겠어.”

그녀는 반마 쪽의 인격이 깨어난 클라이드라면 틀림없이 곧장 마계로 갈 거로 생각했다.

하나 아들은 인간계에 남길 원했다.

테레제라는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테레제를 마계로 데려가는 것이다.

그러면 아들도 집으로 돌아올 테고, 후계자 문제도 해결된다.

테레제가 인간인 게 조금 걸리지만 직접 만나보니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 됐지.

릴리트는 골치 아픈 걸 싫어하는 단순한 성격이었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랬기에 당장 테레제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 거였는데, 일리야인지 아블로인지가 다 망쳐버렸다.

릴리트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설득을 시도했다.

“우리 같은 종족은 몰라도 인간은 3일만 물을 마시지 않아도 죽는단다. 알고나 있니? 그 전에 테레제가 꿈에서 깰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야?”

테레제는 육신까지 꿈으로 보내졌다지만, 그곳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허상이었다.

릴리트가 안타까워하며 말을 이었다.

“멍청한 짓 하지 말고 꿈에서 깨. 테레제도 데려오고.”

그래야 마계로 데려갈 수 있으니까.

일리야는 릴리트의 간교한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자신이 본체로 현신하지 않는 이상 몽마의 왕을 상대로 테레제를 지켜낼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테레제를 지키려 본체를 강림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순간 인간계는 끝장나니까.

또한 인과율로 인해 자신도 큰 피해를 입었다.

릴리트도 본모습으로 인간계에 나타난 것 같지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이 터무니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일리야가 손쉽게 힘을 훔쳐 쓸 수 있었던 거였다.

릴리트는 그러지 말고 제 말을 들어보라는 듯이 휙 날아가 그의 어깨를 쥐었다.

“네가 여태껏 인간계에 지옥의 문을 열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어. 클라이드 때문이지?”

일리야는 간단한 동작으로 릴리트의 손을 쳐냈다.

“어머. 나한테 너무 매정한 거 아니니? 내가 아니었다면 네 쌍둥이 동생의 영혼은 다시 소생되지 못했을 텐데.”

“그게 나와 클라이드를 위해서였다는 것처럼 지껄이는군.”

릴리트가 얄궂게 웃었다.

“어쨌든 내 덕에 천사는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냈잖아? 내가 그 영혼을 품지 않았다면 차원의 틈에서 소멸해버렸을 거야.”

“차라리 소멸하는 쪽이 나았을지도 모르지. 악마의 가족 놀이에 고귀한 영혼이 이용당하는 것보다는.”

릴리트는 인간의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존재의 격이 너무나 차이 났기 때문에 임신하더라도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하나 편법으로 그걸 가능케 했다.

클라이드의 영혼을 잉태한 것이다.

“하지만 나도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을 가져보고 싶었는걸.”

일리야는 깊은 혐오를 느꼈다.

“역겹군.”

종종 이런 식으로 인간의 삶, 유대, 사랑 따위를 동경하는 천사나 악마들이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완전에 가까운 존재들이 한없이 불완전에 가까운 존재를 동경한단 말인가?

불량품이나 할 생각이었다.

천사는 홀로 완전한 존재이기에 성도 가문도 없었다.

인간은 수명이 짧고 개개인의 무력이 약하기 때문에 집단을 이루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

악마도 집단을 이루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건 허구한 날 영역 싸움하느라 거대한 무력이 필요해서 그런 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나약함을 동경할 이유가 없었다.

하나 릴리트는 그런 이유로 인간이 사랑스러웠다.

“인간은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종족은 이해할 수 없는 짓을 벌이고는 하잖아. 난 그게 꽤 낭만적으로 느껴져.”

천사와 악마에게 시간은 인간만큼 가치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성을 지닌 내 아들이 사랑스러워. 정작 본인은 반인 쪽과 반마 쪽이 다르다고 느끼는 모양이지만.”

“…천사였을 때도 비슷했다.”

“그래서 너도 그가 소중했구나?”

너무나 소중했기에, 감히 그를 희생시킨 천계를 없애려는 거였다.

하나 망설이는 이유는 다시금 태어난 클라이드 때문이었다.

일리야는 반인반마인 클라이드가 최종적으로 반인을 선택할지 반마를 선택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지옥의 문을 열지 말지 결정할 생각이었으니까.

“…….”

결정을 보류하고 있는 이유가 정말 클라이드 때문인가?

일리야는 기이한 갈증을 느꼈다.

릴리트는 지루함을 못 견디겠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내가 졌어. 마계로 돌아갈 테니까 풀어줘.”

“다시는 테레제에게 접근하지 않겠다고 서약서를 써라. 그러면 풀어주지.”

“집요하기는. 그렇게 할게. 다만 테레제가 먼저 내게 접근하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럴 일은 없다.”

“웃긴다, 당신. 무슨 자격으로 그 애를 통제하려는 거야?”

그 말에 일리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테레제를 통제하려 한다고?’

이건 통제 같은 게 아니라 교수로서 할 당연한 조치였다.

릴리트는 지긋지긋해하는 얼굴로 일리야가 무표정하게 내민 서약서에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리 길지 않은 대치가 마침내 끝나자 릴리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계로 떠나버렸다.

그러자 가둘 대상이 사라진 잠의 감옥이 허물어졌다.

검게 칠해져 있던 세상이 녹아내리며 눈부신 창공이 드러났다.

테레제를 보내놓은 천계 시절의 꿈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는 오랜만에 보는 천계의 모습임에도 사사로운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일리야는 새까맣게 물들어버린 한 쌍의 날개를 펼쳐 테레제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아니, 이동하려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일리야 씨. 저는 오즈월드라고 합니다.”

웬 새빨간 슈트를 입은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이름을 오즈월드라 밝힌 남자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실례지만 방송에 협조해주셔야겠습니다.”

“무슨-”

말이 끝맺어지기도 전.

오즈월드가 순간 이동하듯 일리야의 코앞까지 다가와 이마를 짚었다.

“좋은 꿈 꾸세요.”

일리야의 의식이 꿈속으로 잠겨 들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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