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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39화 (140/277)

139화

천계의 북부, 일명 얼음 땅은 초라하고 황량했다.

하얀 대리석과 황금, 푸른 물줄기와 구름 따위로 이루어져 웅장하고 풍요로운 분위기의 중앙 도시와 완벽히 반대되는 색채를 띠고 있었다.

절망적으로 척박해 검은 땅, 보랏빛이 스민 하늘, 하얀 입김이 뿜어지는 싸늘한 기온.

그리고 땅에 박힌 마정석들까지.

캉! 카앙!

하급 천사들은 허름한 옷차림으로 마정석을 캐냈다.

곳곳에 운석이 떨어진 듯, 혹은 거대한 빙하가 솟아있는 듯 보이는 마정석은 주변의 생명력을 갉아먹으며 에너지를 채웠다.

저 마정석이 북부가 얼음 땅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일리야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정면의 균열을 향해 저벅저벅 이동했다.

그때 관리자가 헐레벌떡 날아왔다.

“일리야 님.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직접 발걸음하셨습니까?”

“하급 천사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균열이 팽창해 마계에서 넘어오는 악마의 수가 늘어났거든요. 인력이 부족해 마정석의 채굴 속도가 더뎌 큰일입니다…….”

관리자는 열심히 설명하면서도 연신 동경의 눈으로 일리야의 외모를 훔쳐보았다.

정말이지 근사한 남자였다.

새까만 흑단 같은 머리칼, 은은한 빛이 감도는 듯한 녹색 눈동자,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강인한 육체까지.

아름답고 강인한 통치자 일리야는 제아무리 열정이라는 개념이 거세된 듯 딱딱하고 재미없는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심장이 뜨거워지게 했다.

관리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본디 차갑고 건조한 성미지만 이런 남성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여성체라는 사실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정작 일리야는 그런 것에는 일절 관심 없는 듯했지만.

그는 균열과 가까운 자리에 서서 황금빛 창을 소환했다.

“이곳에 임시 안전지대를 설치하겠다. 균열이 억제되는 동안 이 근처의 마정석 채굴량을 늘리도록.”

마정석은 천계를 독립적인 차원으로 존재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들은 신계에서 독립되어 자신들만의 천국을 이룩한 현재의 상태에 몹시 만족하고 있었고 영원히 유지하고 싶어 했다.

“예!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일리야가 황금빛 창을 지면에 박아넣고 힘을 불어넣자 빛줄기가 천공을 뚫고 높이 치솟았다.

너무나도 간단한 성공에 관리자는 혀를 내둘렀다.

이와 같은 결과를 내려면 족히 스물은 넘는 상급 천사가 며칠간 마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이래서 태생으로 신분이 나누어지는 거였다.

관리자가 물었다.

“바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자원을 훔쳐 가려 숨어든 악마들이 있을 테니 그것까지 전부 처리한 후에 떠날 생각이다.”

“그동안 머무실 곳을 마련해두겠습니다.”

일리야는 고개 저었다.

“필요 없다.”

고작 그런 일에 하루 이상 쓸 시간도, 생각도 없었다.

불필요한 낭비였으니까.

“이 빌어먹을 천계 같으니!”

“…?”

갑작스레 들려온 외침에 일리야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방금의 무도한 소리를 지껄인 자에게 가닿았다.

“갑자기 아오지탄광이라니. 아이고 내 신세야.”

계층 피라미드에서 상위일수록 외모도 훨씬 수려해졌다.

한데 어떻게 보아도 최소 최상급 천사로 보이는 여자가 허름한 차림으로 곡괭이를 내팽개치고 있었다.

“저 하급 천사는 여기 소속인가?”

관리자는 차가운 눈으로 하급 천사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하급 천사인데, 계속 기행을 저지르고 있어 예의 주시 중이었습니다. 신속히 처리하겠습니다.”

폐기하겠다는 뜻이었다.

일리야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행?”

“실은 얼마 전 악마들이 튀어나왔을 때 저 하급 천사가 다른 하급 천사들을 통솔해 마정석을 채굴하던 걸 멈추고 도망쳤습니다.”

“하급 천사가 통솔했다고?”

관리자는 일리야의 눈치를 살피며 당시 상황을 좀 더 설명했다.

저런 무도한 자를 살려둔 자신의 판단을 변호하기 위함이었다.

“예. 체계를 흩트리는 짓을 벌이기는 했으나 천사들을 보호하느라 본인 날개를 잃었지요. 그 점을 참작하여 저 마정석을 다 캘 때까지 쉬지 않는 정도의 간단한 처벌만 내렸습니다.”

심지어 다른 천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인간계보다 훨씬 엄격한 규율과 계급으로 이루어진 천계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일리야는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는 미약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런 보고는 듣지 못했는데.”

“이상한 천사 하나가 단독으로 저지른 짓이라 윗선까지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일리야는 관리자를 내버려 둔 채 곡괭이를 팽개친 뒤 구석에서 쪼그려 쉬는 중인 하급 천사를 계속해서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지?”

관리자가 뺨을 붉히며 대답했다.

“저는 조앤이라고 합니다.”

“그쪽 말고 저쪽.”

조앤은 자신이 아닌 하급 천사의 이름을 물었다는 말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며 딱딱하게 대답했다.

“…테레제입니다.”

테레제. 일리야는 머릿속으로 그 이름을 발음해보았다.

“테레제는 채굴 업무에서 제외한다. 즉시 본부로 보내도록.”

그 말에 조앤은 몹시 부당함을 느꼈다.

“본부라니요?”

“명령에 불복하나?”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일리야는 조앤의 이름도 기억해두었다.

이곳 관리자도 교체할 생각이었다.

그는 악마 잔당을 처리하기 전 다시금 테레제를 확인했다.

그새 본인 몫의 마정석도 다 채굴하지 않은 주제에 웬 나이 든 천사에게 다가가 곡괭이를 뺏더니 대신 일해주고 있었다.

상대 천사는 자신처럼 테레제의 행동에 불쾌해했다.

“왜 내 구역의 일을 멋대로 대신하는 거지?”

그러자 테레제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신해드리는 게 아니고 그냥 제 일을 땡땡이치는 건데요?”

“궤변이군.”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저는 이 체제에 반항하고 싶은 거고, 할머니는 그냥 모른 척 쉬시면 되잖아요.”

“규칙을 지켜라.”

“싫어요.”

둘은 의미 없는 실랑이를 벌였다.

일리야는 관리자에게 어떤 행동도 허락하지 않고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다시 테레제 쪽을 확인했다.

그녀는 여전히 제멋대로 굴고 있었고, 상대 하급 천사는 딱딱하게 대응하다가도 묘하게 걱정하는 말을 섞기 시작했다.

“하아… 이러다 관리자가 보면 너만 곤란해져.”

“상관없어요. 이미 제 인생은 망했는데요, 뭐.”

“내 평생 너처럼 비관적인 천사는 처음 본다.”

일리야는 혀로 입천장을 훑었다.

그녀의 예측불허함이 신경을 건드렸다.

다른 하급 천사들처럼 얌전히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 불쾌감을 자아낼 정도였다.

질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할 뿐이었다.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한다.

그는 강한 통제 욕구를 느꼈다.

* * *

나는 멀뚱한 눈으로 중앙 본부를 쳐다보았다.

그때 날개가 없는 날 직접 중앙 본부 앞까지 데려온 수행 천사 델리오스가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아, 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근무지가 얼음 땅에서 중앙 본부로 바뀌었다.

얼음 땅 관리자 조앤이 날 매섭게 노려보며 그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어째서냐고 물으니 대답해주지 않았다.

검댕이 묻어 넝마 같았던 내 옷차림은 중앙 본부로 발령 나며 희고 깨끗한 것으로 바뀌었다.

다만 형태는 여전히 민소매에 치마가 짧은 원피스라 누가 봐도 하급 천사라는 신분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중앙 본부에 소속되며 목에 가느다란 금줄이 생겼는데, 진짜 금인지 깨물어보니 치아 모양대로 움푹 패었다.

띠링!

[성좌 ‘미운 22살 테레제’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그걸 또 굳이 진짜 금인지 확인하네…]

나는 델리오스가 안내한 부서로 들어갔다.

“여기는 원래 하급 천사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알아요. 우리 팀에서 넣은 설정이니까요.

“다만 당신이 다른 하급 천사들을 돌본 이력과 날개를 잃어 악마의 공격에 대비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이곳으로 발령 낸 겁니다.”

델리오스의 오만한 말투에서 그러니 이 믿을 수 없는 영광을 가슴 깊이 새겨넣고 복종하라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원래라면 폐기하고 치웠을 불량품이었으니.

“이렇게 인력난이 심한 때가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예에.”

델리오스가 산더미처럼 쌓인 책과 서류의 산 앞에 섰다.

“당신은 오늘부터 서포터로 일하게 될 겁니다.”

서포터. 별로 좋게 들리지 않는 직함이었다.

“여기 있는 책과 서류를 전부 정리하십시오.”

“…….”

나보고 정리를 하라고?

띠링!

[성좌 ‘마음으로 낳은 테레제’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우리 애가 다 잘하는데 정리만 좀 못해요…]

델리오스가 눈을 부라렸다.

“문제 있습니까?”

“…혹시 문제가 있다면 저는 어떻게 되나요?”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야겠죠.”

아오지탄광보다는 차라리 정리가 낫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딴 건 필요 없습니다. 잘하세요, 잘.”

델리오스인지 델리만쥬인지, 가다가 코나 깨져라.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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