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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37화 (138/277)
  • 137화

    * * *

    팔락- 팔락-

    나는 일리야 교수가 갑자기 마차 문을 닫고는 돌아오지 않을 동안 그에게서 받은 서류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펠릭스 교수의 온실 내부 평면도와 보유한 마법 식물의 종류, 위치 같은 게 상세히 작성되어 있었다.

    위험한 식물은 따로 표시해 놓은 듯했다.

    ‘고스트 마수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교수의 온실이라면 온갖 이상한 식물이 존재하겠구나.’

    여러모로 조건이 별로였지만 일리야의 도움을 받는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탁.

    온실 평면도를 자세히 확인하고 있을 때 일리야가 마차에 올라탔다.

    나도 모르게 밖에 뭐가 있었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휙 들어보았으나 뭔가 일렁이는 열기만 감지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뭘 한 거지?’

    마차가 출발하자 일리야가 입을 열었다.

    “혹시 오늘 클라이드를 만난 적 있나?”

    나는 개인 열람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네, 만나기는 했죠.”

    “그랬군.”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저, 교수님? 그건 왜 물어보신 거예요?”

    일리야는 잠깐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하더니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클라이드의 상태를 보고 뭔가 느낀 건 없나?”

    “양아치 같다?”

    “…….”

    “교수님 지금 웃으신 거예요?”

    “아니.”

    아닌 게 아닌데. 분명 웃었는데.

    일리야가 내 손에 들린 서류를 힐끗 보며 물었다.

    “서류 내용은 확인했나?”

    “아, 네. 아직 위험한 마법 식물에 대해서는 숙지하지 못했지만요.”

    “도착하기 전까지 외워둬라.”

    “알겠습니다.”

    자아, 어디 쓸만한 게 있나 볼까?

    나는 서류를 들여다보며 몇 가지 식물은 따로 종이를 모아두었다.

    그러자 일리야가 물었다.

    “그건 왜 따로 빼두는 거지? 특별히 위험한 식물로 보이지 않는데.”

    나는 잿밥에 관심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좀 더 자세히 확인하고 싶어서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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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상 쇼핑 카탈로그인 거지]

    괜찮은 마법 식물을 20종 정도 추렸을 때 문득 날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일리야가 턱을 괸 자세로 날 보고 있었다.

    ‘…왜 쳐다보는 거지?’

    설마 내가 임무에 다소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가?

    나는 지레 찔려 서류를 뒤적뒤적 훑었다.

    그때 일리야가 불쑥 물었다.

    “어제는 잘 잤나?”

    “네?!”

    갑자기 어제 일을 들먹이는 말에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빽 소리 지르듯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어제요? 잘 잤죠……. 교수님은 잘 주무셨어요?”

    “그다지.”

    어쩐지 왜 그다지 못 주무셨냐고 묻기가 망설여졌다.

    내가 눈꺼풀을 느릿하게 깜빡거리며 애꿎은 서류만 만지작거리고 있자, 일리야가 서류를 옆으로 치워버렸다.

    순식간에 두 손이 휑하게 비어 무방비해진 기분이 들었다.

    하는 수없이 ‘그다지’에 관해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음… 왜 잘 못 주무셨어요?”

    “널 제자가 아닌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고민하느라.”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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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자기, 내 사랑, 베이비]

    어렴풋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돌직구로 들으니 난감했다.

    ‘호감도가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사실 실감이 안 나.’

    게임에서 일리야의 붉은 하트를 3개 채우게 되면 마법 능력치가 상승하고 함께 던전을 공략할 수 있게 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그가 자주 출몰하는 장소로 가면 인간계의 축제나 물놀이, 밤의 정원 산책 등을 같이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추가로 발생한다.

    좀 더 연인이나 할 법한 일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어…… 그러면 지금도 그런 상황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

    나는 “그렇군요.”라고 중얼거리며 어쩔 줄 모르고 창밖을 보다가 시선을 내려 꼼질대는 손가락을 보다가 서류를 힐끔거리는 등, 부산스럽게 굴었다.

    그러자 일리야가 물었다.

    “너는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군.”

    “네? 아니요? 전혀 모르는데요?”

    “지금부터 거짓말을 하면 과제를 주겠다.”

    “…….”

    너무 잔인한 형벌에 심장이 싸늘해졌다.

    “그래서 네 생각은 뭐지?”

    차라리 과제를 받는 게 더 나을까? 아니지, 시험 기간에 무슨 과제를 받아? 미쳤어?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에잇, 모르겠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교수님이 저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연애 감정으로요!”

    “…….”

    “…….”

    긴 침묵 끝에 일리야가 입을 열었다.

    “일리 있군.”

    그는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듯이 흰 장갑을 낀 손으로 턱 끝을 쓸었다.

    신중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일단 내리지.”

    어느새 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일리야는 먼저 마차에서 내려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땅으로 내려온 뒤 놓으려 했다. 하나 일리야가 그대로 내 손을 잡고 걸었다.

    파트너로서 에스코트를 받는 게 아닌 이상 굳이 손잡고 걸을 이유가 없는데도.

    “온실의 입구는 총 두 개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건 너무 눈에 띄니 후문으로 가지.”

    “…알겠습니다.”

    나는 이 손은 언제 놓을 거냐고 묻지도 못하고 어물쩍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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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니까 꼭 부부 퇴마사 같다]

    온실은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내부는 마법 식물들이 경쟁적으로 뿜어내는 향기가 진동하고 있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조심해라. 건드리면 곧장 잠에 빠지는 식물도 있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등을 확인했다.

    고래 고스트들이 등장해서 날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나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림자 쪽을 확인했다.

    ‘스콰이어 나비는 내가 위험한 순간에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켜주는 것 같았어.’

    혹시 위기 상황이 닥치면 또 나비가 나타날까?

    ‘그나저나 인간형 고스트 마수가 대체 뭘까? 여전히 짐작도 안 가.’

    마차에서 그걸 물었어야 했는데 일리야가 엉뚱한 말을 꺼내는 바람에 완전히 휘말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언제든 상대를 정화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파사삭.

    일리야는 갑자기 튀어나온 검붉은 독침을 잡아채며 말했다.

    “이 앞에 있는 마법 식물들은 마기에 오염되었군.”

    “마기라니…….”

    고스트 마수에 닿은 마법 식물은 새까맣게 말라 죽지, 이렇게 오염되지 않는다.

    ‘뭔가 이상한데?’

    나는 머릿속으로 온실 평면도를 떠올렸다.

    이 앞에 존재하는 마법 식물들은 환각을 보여주거나 독을 품은 위험한 종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것들이 전부 마기에 오염되었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졌다.

    ‘살상용 트랩이 빼곡하게 깔린 거나 다름없으니까.’

    “정화 마법을 사용할까요?”

    일리야는 보호하듯 내 앞으로 팔을 뻗으며 고개 저었다.

    “소용없을 거다.”

    “네?”

    그때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처럼 낮고 그윽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검은 가시 왕관을 쓴 오싹한 외모의 악마, 릴리트였다.

    나는 속으로 버럭 소리쳤다.

    ‘이건 고스트 마수가 아니라 그냥 악마잖아요!’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인간형 마수 같은 건 없는데!

    릴리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 역시 경계하는 눈으로 릴리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으나 클라이드와 비슷한 구석은 전혀 없었다.

    “신기해. 인간에게서 왜 이렇게 친숙하고 좋은 냄새가 날까? 이래서 그 애가 널 좋아하나 봐.”

    릴리트가 날 유혹하려는 듯이 요사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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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견례 완.]

    악마가 호감을 표시하는 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영혼을 수집하거나 먹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 죽는다고.

    “조상님이 흑마법사라서 그런가 봐요…….”

    “흑마법사? 뭐, 그쪽은 확실히 마계와 가깝기는 한데… 응? 너 내가 누군지 아는 거니?”

    “장난은 그만 쳐라.”

    일리야는 경고와 함께 릴리트를 공격했다.

    콰아앙!

    펠릭스 교수가 반드시 내부를 멀쩡한 상태로 유지해달라고 신신당부했던 것 같은데 한차례의 공방으로 선반 하나가 와르르 무너졌다.

    릴리트는 기분이 상했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숙녀에게 매너가 없잖아, 당신. 그리고 이 애는 인간이라 내가 힘 조절 못하면 죽을 텐데, 함부로 날뛰어도 괜찮겠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군.”

    일리야는 기계적으로 대꾸하더니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나마 내게 보호 마법을 걸어주기는 했지만, 본체로 싸우는 게 아닌 이상 릴리트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일 듯했다.

    두 대악마 사이에 낀 하찮은 인간에 불과한 나는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다.

    그 순간 릴리트가 박쥐 날개로 허공을 휙 날아올랐다.

    “아가들아, 나를 도와주지 않으련?”

    쿠구구구구구구구―――

    매우 불길한 소리와 함께 발밑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어라……. 나 이거 뭔지 알 것 같은데.’

    좋지 않은 예감에 고개를 숙이자 흙바닥이 쩍하고 아가리를 벌리는 게 보였다.

    “…미친!”

    지옥으로 떨어지는 구덩이였다.

    구덩이에 삼켜지기 전에 서둘러 마법을 사용해 위로 뛰어올랐으나 오염된 식물들이 뻗어온 줄기에 발목을 붙들렸다.

    “으악!”

    ‘떨어진다!’

    나는 아래로 끌려가는 동안 속으로 빌었다.

    제발 나비든 뭐든 나타나서 나 좀 살려줘! 이대로 지옥에 끌려가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때 귓가로 일리야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잠시만 꿈꾸고 있거라.”

    네? 잠깐만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깨고 나면 괜찮아져 있을 거다.”

    “교수님…!”

    파아앗!

    그를 저지하기도 전, 던전과 닮은 검은빛이 나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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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테레제는 역마살이 있나? 한 곳에 붙어있지를 못하네… 불쌍해(입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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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에서 손 떼보세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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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박웃음)]

    아득히 먼 곳으로 이동되는 느낌이 들었을 때, 멀리서 릴리트의 짜증 난 목소리가 들렸다.

    “남의 힘을 훔쳐 쓰다니. 손버릇이 고약하잖아?”

    그 목소리를 끝으로 나는 어디론가 보내졌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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