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클예부는 클라이드의 미모를 항상 새롭고 짜릿하게 받아들였다.
한데 근래 들어 클라이드를 자주 마주치지 못했으니, 오래간만에 본 파괴력 넘치는 미모에 정신이 혼미해질 만도 했다.
내 미적지근한 반응에 영애들은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아이참! 이렇게 넘어가실 일이 아니에요. 테레제 님이 직접 확인해보세요! 진짜 큰일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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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예부의 큰일: 클라이드가 너무 섹시함]
나는 떨떠름하게 제안을 마다했다.
“오늘따라 클라이드가 섹시해 보인다는 걸 굳이 확인할 필요가…”
“콜록.”
그때 음침한 눈으로 날 주시하는 루미오를 발견했다.
“…있지. 확인해야지, 아무렴.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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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전환]
“그래서 클라이드는 어디에 있어?”
“1층 도서관 방향으로 가시는 것 같았어요. 얼른 가보세요.”
나는 당연히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갈 줄 알았기에 걸음을 떼려다가 멈칫했다.
“너희는 같이 안 가려고?”
그러자 영애들은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지금 클라이드 님은 너무 폭력적이에요……. 얼굴에 얻어맞은 심장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어요.”
아. 폭력적이라는 게 얼굴이 폭력적이라는 뜻이었구나.
“저도 아직은 그 모습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요. 혹시라도 그분의 앞에서 기절하는 추태라도 보이면 어떡해요?”
“무서워! 너무 잘생겨서 무서워!”
나는 너희들이 더 무섭단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날 쳐다보며 펜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루미오의 눈치가 보여, 얼른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1층 도서관이라니. 이용자가 많은 곳이라 거기는 가지 않는데 어쩐 일이지?’
1층 도서관에 도착해보니 오늘따라 학생이 많이 보였다.
한데 책을 보거나 공부를 위해 온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뭔가를 찾는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문득 나를 발견하더니 썩은 시체를 본 하이에나처럼 우르르 몰려왔다.
“선배님. 혹시 클예부는 추가 가입을 안 받으시나요?”
“저, 저도 가입하고 싶어요!”
“제발 열어주세요! 학생회장님을 추앙하게 해주세요!”
“거기에 가입하면 클라이드 님을 사적으로도 볼 수 있는 거예요?!”
나는 흠칫 뒤로 물러났다.
‘뭐지, 이 광기 어린 눈들은? 설마 다들 클라이드를 쫓아 온 애들인가?’
점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은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서 경고했다.
“도서관에서는 정숙.”
“!”
학생들은 침묵 마법이 걸리자 당황해하며 입이나 목을 감싸 쥐었다.
“다들 진정됐어?”
내 물음에 학생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방금까지는 광기에 휩싸인 듯했던 표정들이 차분하게 누그러진 게 느껴졌다.
나는 마법을 풀어준 다음 설명했다.
“클예부 가입 기간은 끝났어. 회원 수가 부족한 클럽은 추가 가입을 받지만 클예부는 그렇지 않아.”
“아아…….”
학생들은 몹시 아쉬워하며 도서관을 나갔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네.”
이 기묘한 파란을 만들어낸 당사자는 어디로 가버린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책이나 읽고 갈까? 클라이드는 전공 강의 때 볼 테니까.’
그렇게 항상 사용하는 개인 열람실로 들어선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어디 있었어? 계속 찾았잖아.”
소름 끼치도록 끈적해서 낯설게 들리는 음성.
분명 익히 아는 목소리인데도 미처 클라이드라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다.
순식간에 어지러울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며 다리에 힘이 풀린 탓이었다.
“보고 싶었어.”
함부로 쓰러질 수도 없게 단단히 옭아맨 품은 벗어날 수 없는 감옥 같았다.
그의 팔은 거대한 뱀처럼 허리를 조여들었고 보드랍게 비벼지는 뺨은 오싹한 감각을 퍼뜨렸다.
중독될 것 같은 달콤함이었다.
“……뭐야, 너!”
나는 죽을힘을 다해 품을 벗어났다.
그래봤자 두 발짝쯤 떨어진 벽에 등을 대고 선 게 고작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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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본 새 양아치가 되어있네…]
성좌도 놀랄 만큼 클라이드의 꼴은 가관이었다.
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내 행동이 어이가 없다는 듯 낮은 소리로 웃었다.
“나를 사랑한다더니 너무 매몰차잖아, 테레제. 상처받게.”
상처받았다는 말을 지껄이는 사람치고는 독 안에 든 쥐를 구워 먹을지 삶아 먹을지 즐겁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반면에 내 속은 초조함으로 까맣게 타들어 갔다.
저건 클라이드지만 내가 아는 클라이드가 아니었다.
‘인물정보.’
▼
[클라이드 윌로우]
나이: 22세
키: 188㎝
생일: 1월 31일
좋아하는 것: 사랑
싫어하는 것: 인간, 클라이드 윌로우
호감도: ♥♥♥♥♡
▲
[‘클라이드’ 루트를 지지하는 성좌들이 경악합니다.]
‘역시…….’
이는 악마 클라이드의 인물정보였다.
심지어 호감도는 검은 하트 4개. 살의 단계이기까지 했고.
이래서 테레제로는 <신의 유희>를 진행할 수 없다는 거였다.
악마를 인간 클라이드로 되돌리려면 백마법이 필요한데, 내게는 그런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떡하기는 뭘 어떡해? 도망쳐야지.’
괜히 병법서에 줄행랑이 있는 게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선 빠르게 피해서 화를 면하는 게 상책이라고.
하지만 도망치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일이었다.
악마가 문 앞에 떡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제안했다.
“강의실로 가봐야 하는데 좀 비켜줄래?”
“왜 날 피하는 거야?”
“왜겠어? 갑자기 날 끌어안으니까 그렇지.”
“이상하네.”
악마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내게 다가왔다.
“너는 날 좋아하잖아. 아니, 사랑하잖아.”
바로 앞까지 다가온 악마가 싸늘한 눈빛으로 날 책망했다.
“나는 널 만나기만을 기다렸는데 왜 날 거부해? 속상하게.”
“…!”
그 순간 눈앞이 빙글 돌았다.
끈적하게 달콤한 기운이 내 안에 치사량까지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은 섬뜩한 감각에 어지러웠다.
그는 아래로 힘없이 미끄러지려는 나를 붙들어 품에 깊숙이 끌어안고는 정수리에 턱을 얹으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하.”
악마는 이제야 살 것 같다는 듯이 애간장을 녹이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이렇게 안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목소리에서 사랑이 느껴졌다.
가만히 듣는 것만으로도 귓가가 간지럽고 심장이 뜨끈해졌다.
“너한테서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좋은 냄새가 나.”
날 헤치지 않을 거라고, 정말로 날 사랑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싶게 만들었다.
악마는 연인이 장난을 치듯 송곳니를 세워 목덜미를 깨물려는 시늉을 하며 키득거렸다.
띠링!
[성좌 ‘클서방’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클서방 정신 차려! 아니, 차리지 마! 정신 차려! 아니, 차리지 마!]
흠칫!
성좌의 후원에 몽롱하게 풀어져 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뭐야. 떨어져!”
나는 어느새 애틋한 동작으로 클라이드의 품에 파고들어 등을 세게 끌어안고 있었다.
‘빌어먹을 악마의 페로몬 같으니.’
“놓으라니까?”
내가 버둥거리며 밀어내자 악마는 미간을 찡그렸다.
“날 사랑하지 않아?”
“이제 사랑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리고 넌 내 타입도 아냐.”
“거짓말. 그러면 그 사교 클럽은 뭔데?”
“실수지.”
“실수?”
악마는 내 말을 따라 읊조리더니 자존심이 확 상한 듯한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뭐, 좋아. 그건 진짜 내가 아니었으니까. 지금의 나는 널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테레제.”
또다시 달콤한 페로몬이 쏟아지며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비…키라고…!”
나는 억지로 정신을 차려보려 했으나 버둥거리는 몸짓에서 점점 힘이 빠졌다.
그냥 이대로 굴복해서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졌다.
악마의 페로몬은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말고 할 게 아니었다.
그건 바이러스를 정신력으로 이겨낸다는 말과 똑같았다.
직접 경험하게 된 페로몬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이대로 몽마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마주 안아주고 싶고 뺨에 키스해주고 싶었다.
악마는 키득키득 웃더니 날 책상 위에 앉히고는 키스할 듯이 몸을 밀착했다.
하나 입술을 맞붙이지 않고 날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손끝으로 내 이마에서부터 콧날까지 깃털로 간지럽히듯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이어 입술을 만지더니 뺨을 감싸 쥐었다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듯한 동작이었다.
“역시 직접 보는 게 더 예쁘네.”
악마는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내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그의 예쁜 벽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날 사랑해?”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졸음이 찾아오는 것처럼 머리가 둔해졌다.
“……응.”
“그럴 줄 알았어.”
악마가 고개를 숙여 내게 키스하려 하는 순간.
화라라라락-!
오즈월드의 과거로 잘못 이동되었던 날처럼 그림자 속에서 검은 나비가 뿜어져 나오더니 나를 감쌌다.
순식간에 시야가 새까맣게 덮였다.
“무슨-!”
날 붙들려는 손짓이 느껴졌으나 눈을 가린 검은 장막이 걷혔을 때는 이미 장소가 달라져 있었다.
나는 어딘가에 털썩 떨어져 내렸다.
‘여기는 어디지?’
이동된 장소가 어쩐지 익숙하게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 날 받쳐 안는 손길에 파드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학교에서 꽤나 대담한 짓을 벌이는군.”
검은 나비가 이동시킨 장소는 하필 일리야의 무릎 위였다.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