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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34화 (135/277)
  • 134화

    그냥 두어도 수려한 외모를 화려하게 꾸며놓으니 새삼 놀라울 정도로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몹시 언짢아졌다.

    잘생긴 건 둘째치고, 공작가의 후계자가 하고 다니기에는 너무 천박하고 교양 없는 모습이었다.

    클라이드가 제정신이라면 저럴 리가 없는데.

    아니, 애초에 손자 녀석이 저런 취향이었나 싶어,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사장은 엄한 표정으로 꾸짖었다.

    “본데없이 그게 무슨 꼴이더냐?”

    악마는 킥킥 웃으며 조부의 곁으로 다가갔다.

    “좋은 아침이에요, 할아버지.”

    그때 이사장의 주변으로 새하얀 벼락이 내리쳤다.

    꽈과광!!

    악마의 접근을 막는 보호막처럼 벼락이 생성되자마자 이사장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네놈은 클라이드가 아니구나.”

    악마가 안타깝다는 듯 고개 저었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시는구나, 우리 할아버지. 저예요, 클라이드.”

    이사장은 격노했다.

    “닥쳐라, 이 더러운 악마야! 당장 내 손자의 몸에서 썩 꺼져!”

    “오랜만에 보는 손자를 반갑게 맞아주지 않으시고 섭섭하게 왜 그러세요? 기분 더럽게.”

    악마의 두 눈동자가 불길한 붉은 색으로 물든 순간, 이사장이 부리나케 벼락을 쏟아냈다.

    그것은 윌로우 가문의 비전 마법인 ‘천벌’이었다.

    상대가 사특한 존재일수록 강력해지는 벼락은 악마를 향해 하강하는 용처럼 내리꽂혔다.

    하나 악마는 가공할 속도로 이사장의 코앞까지 쏘아진 화살처럼 다가와 너스레를 떨었다.

    “하마터면 다칠 뻔했잖아요.”

    톡.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찢어질 듯이 눈을 부릅뜬 이사장의 이마를 짚었다.

    “무리하지 말고 주무세요. 영원히.”

    “안…!”

    털썩!

    이사장은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잠의 감옥에 갇혀 쓰러졌다.

    저벅저벅.

    그때 맞은편에서 고든이 다가왔다.

    고든은 바닥에 쓰러져있는 이사장을 한 번, 요란한 모습을 한 조카를 한 번 쳐다보더니 정중한 태도로 고개 숙였다.

    “아버지는 제가 방으로 모셔다 놓겠습니다.”

    악마를 알아보고 복종하는 모습이었다.

    “응, 수고해.”

    악마는 키득키득 웃었다.

    정말이지 제 조부는 멍청하고 불쌍했다.

    제 둘째 아들이 악마와 손을 잡은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는 상쾌한 기분으로 등교했다.

    “그 여자, 항상 일찍 오는 것 같던데.”

    4층에서 로비까지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온 악마는 기숙사로 가볼까 고민하다가 관두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기도 했고, 어쩐지 조바심을 내는 듯한 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선택한 일은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며 주변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새로 생긴 테레제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웃기게 생긴 석상도 보고. 도서관이나 체력훈련장도 한번 돌고 오니 어느새 로비가 학생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안녕하세요?”

    “시험공부 하나도 안 했는데, 난 죽었다.”

    “오늘 점심은 어디에서 먹을까?”

    위기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밝고 천진한 모습들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악마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시선을 내리니 다람쥐처럼 생긴 여자애가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이름이 레이니였던가?’

    “안녕?”

    그가 빙긋 웃으며 인사하자 레이니의 표정이 더욱 기괴해졌다.

    “네에…. 어, 그런데 오늘따라….”

    “오늘따라?”

    “되게 멋져 보이시네요…?”

    “고마워.”

    “…고맙다고요?”

    악마는 피식 웃고는 레이니를 내버려 둔 채 걸음을 옮겼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들이 이동하여 고갯짓들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다들 감탄하거나 경악하거나 혹은 둘 다 하는 등 여러 가지 반응을 내보였다.

    “…….”

    “…….”

    그러다 악마는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쳤다.

    짙은 군청색 머리카락과 금빛 눈동자. 재수 없는 동그란 안경. 데미안이었다.

    남자는 관심 없었고, 그게 데미안이라면 더더욱 관심 없었기에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다.

    “심경에 변화가 좀 있었나 봐?”

    그런데 데미안이 건방지게 말을 걸었다.

    “조금?”

    악마는 눈꼬리를 휘며 히죽 웃었다.

    데미안은 대번에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클라이드는 썩은 웃음은 잘 지어도 이런 식의 묘한 눈웃음을 짓는 일이 없었던 지라, 어쩐지 다른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느 쪽이든지 간에 역겨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래, 잘 해봐.”

    데미안은 산뜻하게 미소 지은 뒤 클라이드를 지나치다가 갑자기 뭔가를 떠올렸다.

    ‘테레제는 저런 꼴을 싫어할 텐데.’

    “…?”

    ‘테레제가 나한테 이런 걸 말해준 적이 있었나?’

    그가 멈칫해있는 사이, 악마는 데미안을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귓가에 다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기운에 이끌리는 것은 타고난 본능이었다.

    “이 건방진 년들이.”

    촤라락!

    남들처럼 흰 셔츠가 아닌 짙은 네이비색 셔츠로 맞춰 입은 녀석들이 저들보다 한참 작은 영애들에게 서류 뭉치를 집어던졌다.

    ‘은나비 브로치…. 클예부네.’

    클예부 회원들은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상대에게 따졌다.

    “이게 무슨 짓인가요? 신사답지 못하게 행동하다니. 그러고도 가문에 부끄럽지 않으세요?”

    “안 닥쳐? 이것들이 이사장님 때문에 오냐오냐해줬더니, 이딴 서류를 제출해?”

    악마의 시선은 다시 네이비색 셔츠 집단으로 옮겨졌다.

    자세히 보니 윌로우 가문의 방계 귀족들이었다.

    워낙 존재감 없는 얼굴들이라 한참 고민해서 떠오른 정보였다.

    그때 클예부 회원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영애가 앞으로 나섰다.

    “클라이드 님도 전부 지키는 교칙을 무슨 자격으로 그리 당당하게 어기시나요?”

    “맞아요! 그렇게 당신들끼리만 다른 교복을 맞춰 입고 다니면.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겠어요?”

    “얘들 뭐라는 거야?”

    윌로우 가문의 방계들은 낄낄거리며 영애들을 비웃었다.

    “이건 발할라의 전통이야. 윌로우 가문에 소속된 혈족들을 구별 짓고 마땅한 대우를 받게 하려는 고귀한 전통이라고.”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짜증 나게 하고 있어.”

    “계속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너희가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뭐, 테레제라도 불러오게?”

    “감히 저희 회장님을 그따위로 부르다니. 정말 죽고 싶은 건가요?”

    악마는 느릿한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며 시시한 이유로 싸우는 모습을 대놓고 구경했다.

    머지않아 클예부 회원 중 한 명이 클라이드를 발견하더니 입술을 벙긋거렸다.

    “크…! 으응?”

    해괴한 반응에 모두의 시선이 쪼르르 이동해 악마에게 꽂혔다.

    악마는 손을 내저었다.

    “계속해, 계속.”

    “…??”

    “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라니까?”

    윌로우 방계 귀족들은 진짜 포식자의 휘황찬란한 등장에 잠시 넋을 놓았다가 곧 정신 차렸다.

    그들은 숨 막히게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모습을 강박적으로 유지하던 클라이드의 변화에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형님! 오늘은 던전에 안 가신 모양입니다.”

    악마는 웃긴 말을 들었다는 듯이 되물었다.

    “형님이라고?”

    그건 잘못된 호칭이었다.

    윌로우 방계 귀족들은 클라이드를 선배님 혹은 학생회장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아니면 소공자님이라고 부르든가.

    “예, 형님. 왜 그러시는지요?”

    하나 이것들은 직계 혈족처럼 저를 형님이라 불렀다.

    “이게 다 부족한 반쪽 때문이지.”

    “그게 무슨 말씀-”

    콰득!

    악마는 형님이라 부른 녀석의 머리통을 벽에 찧었다.

    쿵!

    순식간에 한 놈이 눈을 까뒤집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미치셨습니까, 형님?! 지금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이사장님께서 아시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그러니까, 누가 네 형님이라는 거지?”

    퍽! 빠악!

    악마는 인간 따위가 제게 기어오르는 행동을 한 게 무척 속상하고 불쾌했다.

    그래서 저를 짜증 나게 한 녀석들의 머리통을 으깨준 뒤 물었다.

    “또 귀찮게 할 사람 있어?”

    나머지 멀쩡한 방계 혈족들이 사색이 된 채 벽면으로 비켜났다.

    조금 전 방계 혈족이 집어 던진 종이에 피부를 긁힌 영애의 뺨에 스며 나온 피를 본 악마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괜찮아?”

    “으에…?”

    “조심해야지.”

    악마는 그 말만 남기고 떠났다.

    클예부 영애들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동시에 빽 소리쳤다.

    “……테레제 니이이이임!”

    그들은 어서 테레제에게 이 중대한 사태를 알리기 위해 반대편으로 달려 나갔다.

    * * *

    “테레제 님! 테레제 니이이임! 큰일 났어요!”

    나는 부스스하게 뜬 눈으로 하품하다가 개떼처럼 달려오는 클예부를 발견하고 흠칫했다.

    얘들이 아침부터 또 왜 이래?

    “왜들 그래?”

    가뜩이나 전날 일리야에게 온종일 정신 공격당하며 심란해진 탓에 잠도 잘 못 자고 등교하던 참이었다.

    “클라이드 님이 이상해지셨어요!”

    이 애들은 지치지도 않나.

    또 뭘 본 건지 영애들은 클라이드를 들먹이며 혈기 왕성하게 호들갑을 떨었다.

    “어? 너 뺨에 상처 있어.”

    내가 손수건을 꺼내며 상처부터 치료하라고 말하자 영애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직 클라이드 님을 못 보셨어요?”

    “으응, 나 막 등교했는데. 대체 어떻길래 그래?”

    영애들은 당황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횡설수설했다.

    “그게… 엄청 섹시해지셨어요!”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뭐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완전 나쁜 남자가 되셨어요! 엄청 많이요!”

    “원래 성격이 더럽잖아?”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나쁜 남자가 되셨다니까요? 누구 하나 가뿐히 죽일 것 같은데 또 이상할 정도로 달콤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았겠네.”

    또 클예부의 염병이 시작됐구나.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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