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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31화 (132/277)
  • 131화

    나는 민망한 마음에 황급히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저기서 파티를 진행하나 봐요.”

    내가 가리킨 곳에는 휴식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술이 놓여 있었다.

    마침 사람들이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던 참인지 신관들도 하나둘씩 나타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파티장에 합류해 사용인에게서 와인잔을 건네받았다.

    이내 모두가 주목하는 한 신관이 잔을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귀빈 여러분. 저는 대신관 콘스탄틴이라고 합니다.”

    나는 콘스탄틴을 유의 깊게 주시했다.

    그의 정체가 성신교의 대신관임과 동시에 세상의 종말론을 강력하게 믿는 테러 집단인 스티그마타의 수장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름도 무사히 우리 곁에 안착했습니다. 이를 축복하고자 마련한 조촐한 자리에 많이들 걸음 해주셔서 무척 기쁠 따름입니다.”

    콘스탄틴은 귀족들을 몰살하려는 끔찍한 계획을 세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매끄럽고 친절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마주치니 날 향해 깊은 미소를 그려냈다.

    내 존재를 의식하는 태도였다.

    ‘혹시라도 스티그마타의 계획에 내가 변수가 될까 봐 경계하는가 보네.’

    콘스탄틴은 가증스러운 신실함을 앞세우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제국의 위기를 함께 이겨내기 위해 신전을 방문해주신 귀빈 여러분께 성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성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일리야는 약간 성가셔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가문의 일을 처리하고 올 테니 잠시 이곳에 있도록.”

    “네.”

    아마 번스타인 공작부인의 약에 쓰일 마법 식물에 대한 협의 때문에 신관들과 대화를 나누러 가는 것 같았다.

    나는 품질이 뛰어난 포도로 만든 와인을 홀짝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거참, 되게 힐끔거리네.’

    귀족들은 무심한 척하면서도 자꾸만 나를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하나 안면을 튼 귀족이라고 해도 선뜻 내게 다가오진 못했다.

    발할라에서는 테레제가 예전 같은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어느 정도 알려졌으나, 사교계에는 여전히 개망나니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용기를 내서 내게 다가오려는 귀족도 있었으나 살벌하게 쳐다보자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쓸데없는 사교 활동은 사양이야.’

    괜히 활개 치고 다니다가 엉뚱한 귀족이랑 엮이면 개복치 같은 황제의 호감도가 수직 낙하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 안면이 있는 귀부인이 내게 다가와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스콰이어 공녀.”

    생트리오 호텔 경매장에서 인사를 나눈 인연이 있는 샤티 부인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샤티 부인.”

    샤티 부인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 뜻깊은 자리에서 다시 만나니 좋네요. 한데 숙녀가 홀로 파티장에 있다니. 파트너는 어디에 있죠?”

    나는 신관들과 이야기 중인 일리야를 가리켰다.

    “교수님께서 처리하실 일이 있다고 하셔서요.”

    “아, 번스타인 교수의 제자라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어요. 사이가 돈독한 모양이군요.”

    샤티 부인은 어쩐지 그 사실을 썩 탐탁지 않게 여기는 표정을 짓더니 내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요즘 공녀가 학업에 무척이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지요?”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띠링!

    [성좌 ‘로판중독영애’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는 공녀가 사교계에 모습을 비추지 않는 점을 두고 하는 말이군요. 왜 사교계에 나타나지 않는지 대답하면 되겠어요.]

    ‘그런 거였군.’

    [중급 예법]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말이었는데 성좌가 도움을 주었다.

    “위험에 맞서려면 힘이 필요하니까요.”

    보통은 위험이 악마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내게 진짜 위험한 건 남자 주인공들이었다.

    내 말투에서 뭔가를 느낀 건지 샤티 부인이 웃었다.

    “여전히 직설적이고 솔직하군요. 다만 예전과 달리 그 솔직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네요.”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나한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위험은 혼자서 맞설 수 없는 법입니다. 결국 공녀는 여러 권력자의 협력을 얻거나 굴종시켜 뜻에 따르게 해야겠지요.”

    ‘굴종이라니…?’

    샤티 부인은 이상한 말을 이었다.

    “권력자를 다룰 수 있는 권력은 무력에서만 나오지 않아요. 공녀는 고귀함만 지닌 위치일 뿐, 실질적인 권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 말씀은…?”

    “내가 본 여인 중 공녀만큼 황후궁에 어울리는 이가 없습니다.”

    샤티 부인이 대체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악담을 퍼붓고 있었다.

    “당치 않습니다. 저는 황후가 되기 위한 그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는걸요.”

    “그런 허울뿐인 교육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공녀.”

    누구보다 예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샤티 부인은 자신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내 평생 황제 폐하께서 자신의 기분을 거스른 하인을 살려주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 공녀가 그걸 해냈지요.”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바위를 굴리라는 명을 받은 궁인이 살아있는 건가요?”

    “그래요. 멀쩡하게 살아서 궁인으로 일하고 있지요.”

    나는 크게 안도했다.

    “다행이네요.”

    “전부 공녀의 현명함…”

    샤티 부인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어딘가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용건이 끝난 일리야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머지않은 날에 다시 보도록 하지요, 공녀.”

    샤티 부인은 일리야가 인사를 나눠야 하는 거리까지 도달하기 전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다시 보자는 건 아마 여름 무도회를 염두에 둔 말이겠지. 무도회에 참석하면 황제와 만나게 될 텐데……. 내키지 않아.’

    당장 다음 달부터 8월 31일까지 두 달간의 발할라 여름 방학 동안 여름 무도회가 진행된다.

    스콰이어 가문의 장녀인 내가 황실에서 주관하는 중요한 파티에 쏙 빠지면. 안 좋은 소문이 나도는 것은 물론, 황제의 배드엔딩 요소를 제거할 수도 없었다.

    ‘8월에 낙원을 발견한다면 상관없겠지만.’

    하나 솔직히 낙원 쪽도 이상한 세상으로 연결되는 오류가 또 발생하지는 않을지 걱정이었다.

    ‘게임에 존재하는 사망 루트도 쳐내기 버거운데 새로운 사망 루트까지 추가되다니. 젠장.’

    내 기구한 신세에 한탄하고 있을 때 일리야가 다가와 물었다.

    “샤티 부인과 친분이 있었나?”

    그러면서 슈트를 터뜨릴 듯 딱딱한 근육으로 부푼 팔을 내밀었다.

    파트너를 동반하는 파티에서 커플로 참석한 이들이 팔짱을 끼지 않는 건 결별 선언과 다름없었다.

    비록 우리는 연인이 아니었지만 친근한 사이로 파트너 동반 파티에 참석한 것이기에 그에 맞은 행동을 하는 게 예의였다.

    나는 어색한 동작으로 주변의 다른 부부들처럼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대답했다.

    “친밀한 사이까지는 아니지만, 예전에 경매장에서 뵌 적 있어요.”

    “그랬군.”

    일리야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본인 팔을 쥔 내 손을 확인하듯 시선을 내렸다.

    “…불편하세요?”

    내가 손을 빼려고 하자 일리야가 반대편 손으로 내 손을 겹쳐 쥐며 빼지 못하게 고정했다.

    “아니.”

    의도치 않게 서로 더없이 다정하게 붙어 선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우리를 지켜보던 귀족들이 재빠르게 부채 따위로 입술을 가리며 저들끼리 속닥거렸다.

    [‘일리야’ 루트를 지지하는 성좌들이 흥분합니다.]

    ‘이러다가 사교계에 우리가 곧 결혼할 사이라는 소문이 돌게 생겼네.’

    이걸 어떡하나 고민하는 사이 우리 쪽으로 신관이 다가왔다.

    “성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성신의 뜻을 받드는 대신관 콘스탄틴이 테레제 스콰이어 공녀께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무슨 꿍꿍이인지 콘스탄틴이 직접 나를 찾아왔다.

    “대신관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는 스콰이어 가문의 테레제입니다.”

    콘스탄틴은 인자한 미소를 지은 표정으로 떠보듯 내가 오늘 대신전으로 보낸 기부금 이야기를 꺼냈다.

    “공녀께서 자선 파티에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 아닙니까? 한데 참석하시자마자 엄청난 기부금을 내실 줄 몰랐습니다. 세상을 위한 공녀님의 결단에 깊이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자선 파티인 만큼 여기에 참석한 모두가 기부금을 냈다.

    그러니 굳이 대신관이 기부금을 언급하며 직접 인사할 필요는 없었음에도 이리하는 이유가 있었다.

    말 그대로 ‘엄청난’ 기부금을 냈기 때문이다.

    ‘황제의 하사품 중 절반을 기부했거든.’

    띠링!

    [성좌 ‘물질만능주의’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기부라니… 으흐흑]

    ‘기부금을 아쉬워할 필요 없답니다, 성좌님.’

    대신전이 주최하는 자선 파티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면 발생하는 이벤트가 있거든요.

    콘스탄틴이 내게 물었다.

    “공녀께서도 마법 식물을 재배할 권한이 필요하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규모 마법 농원을 소유할 생각이에요. 수도 내에도 온실을 차리고 싶고요.”

    그러기 위해서 대신전의 1년 치 예산과 맞먹는 금액을 퍼부어준 것이다.

    콘스탄틴은 예상 밖이라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공녀께서 이런 일에 관심을 보이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좋습니다. 교황 성하께서도 공녀님의 뜻에 최대한 협조하라 하셨으니까요.”

    띠링!

    [퀘스트: 마법 농원에서 희귀 작물 10종 이상 키우기]

    ▸보상: +5,000,000코인, 황실 납품 권한 획득

    ▸실패: 침식 지역 증가

    그때 타이쿤 게임 같은 퀘스트가 등장했다.

    보상에 껴있는 황실 납품 권한은 전혀 달갑지 않은데.

    ‘왜 갑자기 황제 루트로 이어질 만한 일이 연달아 생기는 거야?’

    나는 영 마뜩잖은 기분으로 콘스탄틴의 안내에 따라 서류를 작성한 뒤, 증명서 같은 건 발할라 기숙사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콘스탄틴은 자리를 떠나기 전 빙긋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군요.”

    나는 빈말로라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답하지 않고 예의만 갖춰 그를 떠나보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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