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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29화 (130/277)
  • 129화

    정체를 들켜버린 스파이의 심정이 이런 걸까?

    띠링!

    [성좌 ‘예비 사위 일리야’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성좌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주목합니다.]

    내가 얼어붙어 문고리를 쥔 채 가만히 있자 일리야가 말했다.

    “경망스러운 차림새로군.”

    지금 내 차림은 해변 배경의 바캉스룩인 만큼 노출이 파격적이었다.

    상의는 탱크톱이라 어깨가 매끈히 드러나 있었고 치마는 길고 풍성했으나 허벅지까지 옆이 시원하게 트여 있었으니까.

    새삼 내 차림이 어떤지 자각하게 되니 몹시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다들 무슨 생각으로 이딴 이스터에그를 넣었던 걸까?’

    결과적으로 이 이스터에그를 아무 문제의식 없이 수용해 구현한 내가 가장 문제였다.

    누가 학교에서 갑자기 해변을 다녀오냐고요.

    “아, 이게, 그러니까요.”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머리카락으로라도 휑하니 드러난 상반신을 가려보고자 마구 쓸어내렸다.

    툭.

    그러자 머리에 꽂혀있던 싱그럽기 짝이 없는 러브 하와이 꽃이 바닥에 떨어졌다.

    “…….”

    나 정말 가지가지 하네.

    일리야는 문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내가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백사장에서 도서관으로 쭈뼛쭈뼛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파격적인 바캉스룩에서 다시 교복으로 옷차림이 돌아왔다.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게임에서는 낙원의 문이 들킨다는 설정이 없었다. 아니, 들킬 수가 없었다.

    낙원의 문은 차원의 열쇠를 가진 사람만 열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일리야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일리야는 뜬금없이 내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네가 흥미로워할 만한 책을 준다고 했는데, 그냥 가버렸길래 전해주러 찾아왔다.”

    나는 얼결에 책을 건네받으며 또 질문했다.

    “제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네 기운은 독특해서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기가 쉽지. 그 흔적을 따라오니 여기였다.”

    “제 기운이요?”

    띠링!

    [성좌 ‘미운 22살 테레제’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물음표살인마 on]

    “강의가 시작되겠군. 슬슬 가봐야 하지 않나?”

    나는 머뭇거리며 뒤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에 대해서 안 물어보세요?”

    “궁금하지 않은데 물어봐야 하나?”

    방금 평범한 인간인 내가 다른 차원에 다녀온 걸 봤으면서 정체가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다고? 그게 말이 돼?

    띠링!

    [성좌 ‘일리야 교수님은 이상해’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게 진짜 광기지]

    일리야는 궁금하지 않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본인 용건을 꺼냈다.

    “지난번 새로운 술식을 만들어낸 보답을 하겠다고 했었지.”

    “…네에. 그랬었죠.”

    세실리아를 오리처럼 꽥꽥거리게 만들고 리비의 나무 옷을 드레스로 바꾸는 마법 술식을 만든 보답을 하겠다고 말했었다.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마침 날 도와줄 일이 있다.”

    일리야가 초대장을 내밀었다.

    “이번 주말에 내 파트너로 파티에 참석해주겠나?”

    * * *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나는 본가로 와서 일리야의 파트너로 참석하게 될 대신전의 자선 파티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격식 있는 파티에는 으레 드레스코드를 지정하기 마련.

    따라서 대신전의 자선 파티에도 드레스코드가 있었다.

    “드레스코드가 ‘마법 식물’이라면 남자는 부토니에를, 여자는 머리 장식에 마법 꽃을 사용하라는 뜻이겠지.”

    로잔은 내가 보낸 마법 전서구를 통해 연락받고는 주말까지 장식에 사용하기 좋은 꽃들을 선별해두었다.

    물론 파티용 드레스도 또 새로 구매해두었고.

    ‘이러다 드레스 룸이 미어터지겠어.’

    대체 다들 왜 옷을 사주지 못해 안달인 거야?

    로잔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번스타인 교수는 꽤 무뚝뚝한 사람인 것 같은데, 네게 꽤 관심이 깊은 모양이야.”

    나는 “글쎄요…?”하고 얼버무렸다.

    이렇게 된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좀 그랬으니까.

    그때 엘로이즈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웬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아가씨, 번스타인 교수님께서 선물을 보내셨어요.”

    “어머나. 그는 여성에게 단 한 번도 선물을 보낸 적 없다던데.”

    두 사람의 뜨거운 시선이 내게 쏠렸다.

    “어서 열어보렴.”

    “네에….”

    상자 안에 든 것은 귀걸이였다.

    “세상에, 예뻐라. 그가 직접 골랐을 것 같지 않게 사랑스럽구나.”

    띠링!

    [성좌 ‘팩트도 폭력이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로잔 은근 입담이 매워…]

    이내 머리 손질에 일가견이 있는 페니가 찾아와 “확실하게 해내겠습니다.”라며 이상한 각오를 다진 후 내 머리를 마법 꽃으로 장식했다.

    엘로이즈는 지긋지긋한 교복 대신 화려하게 치장 중인 내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신전에서는 왜 이맘때에 갑자기 자선 파티를 여는 걸까요? 여름을 알리는 파티라는데 명분이 이상해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발할라를 견제하는 파티거든.”

    “견제라니요?”

    발할라 축제는 대규모 자선 파티인데다 굉장히 인기 있는 행사였다.

    “신전도 체면이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까. 그런데 네 말마따나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하니, 괜히 이른 여름 축제라고 하는 거야.”

    “아하. 꽤 속 보이는 짓이네요.”

    “그렇지.”

    나는 드레스를 갈아입고 일리야가 선물한 귀걸이를 착용하고 목에는 사랑의 로사리오를 걸쳤다.

    그러자 영락없이 파티에 갈 차림이 완성되었다.

    내가 외출 준비를 끝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때맞춰 가족들이 우르르 방으로 몰려왔다.

    라울은 내 목걸이를 힐끗 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잘 어울리는구나.”

    주세페는 뚱한 표정이었다.

    “어디 선보러 가? 왜 이렇게 정신 사납게 꾸몄어?”

    곁에 선 리비가 타박했다.

    “솔직하게 예쁘다고 하면 될 걸 왜 그래?”

    “예쁘기는 무슨. 쟤가 착각할까 봐 나라도 솔직하게 말해주는 거야. 그거 말고 좀 더 차분한 걸로 입어. 누가 신전에 그렇게 가냐?”

    띠링!

    [성좌 ‘스콰이어 절대 지켜’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으이구 주쪽아]

    똑똑.

    쓸데없는 말싸움이 오가고 있을 때 도노반 집사가 들어왔다.

    “아가씨, 번스타인 교수님이 도착해 마차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려가시지요.”

    “알았어.”

    나는 도노반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가족들이 졸졸 뒤따라오는 것을 느끼고 미간을 좁혔다.

    ‘굳이 왜 따라오는 거야?’

    로비를 나가자 현관 앞에 마차를 세워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리야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화려한 연회복을 입고 가슴에는 부토니에를 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일리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뒤를 보았다.

    그는 졸졸 따라 나온 가족들을 발견하고는 먼저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콰이어 공작 각하. 스콰이어 공작부인.”

    라울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흐음. 교수가 지나치게 몸이 좋은 거 아닌가?”

    “…?”

    일리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 왜 얼굴 뜨거워지냐?

    나만 부끄러웠던 게 아닌지 로잔이 은근슬쩍 라울을 꼬집었다.

    “여보. 그게 무슨 실례예요?”

    얼른 마차에 올라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내 뚱한 얼굴로 있던 주세페가 쪼르르 달려왔다.

    “야.”

    “누나라고 하라니까?”

    주세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어지간하면 이런 말 안 하는데, 남자 잘못 만나면 팔자 꼬여. 신중하게 생각해라.”

    누가 보면 네가 오빤 줄 알겠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주세페의 뺨을 찹쌀떡처럼 쭉 늘렸다.

    “야! 무흔 딧시야!”

    “어디서 이상한 거 듣고 와서 어른 흉내나 내고 말이야.”

    “앙 놔?!”

    “너 내가 덜컥 결혼이라도 할까 봐 그래?”

    이 질문에는 주세페가 입을 다물었다.

    리비는 키득키득 웃더니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세페를 안아주며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와요, 언니!”

    “응. 다녀올게.”

    잠깐의 소란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일리야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 오를 수 있었다.

    쿵쿵.

    그가 벽면을 두드리자 따각따각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마차가 출발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화목하군.”

    “아하하….”

    “진짜 가족도 아닐 텐데.”

    “하하…?”

    일리야는 폭탄 발언을 던져놓고 느긋하게 책을 펼쳤다.

    띠링!

    [성좌 ‘개복치’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뭐야 나 무서워…]

    나는 표정이 뻣뻣하게 굳은 채 물었다.

    “교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의 뜻이다.”

    일리야가 책에서 시선을 떨어뜨려 나를 직시했다.

    “너는 테레제 스콰이어가 아니니까.”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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