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19. 오류
띠링!
[던전 퀘스트: 데미안 육성 시뮬레이션 완료]
▸보상: 10,000,000코인 획득, 발할라로 복귀
기억을 찾은 데미안은 내가 알려준 공략법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악마를 처치했다.
“돌아가자.”
나와 보낸 시간을 전혀 모르는 데미안의 미소는 산뜻했다.
다소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나와는 달리.
“테레제?”
그가 나를 이름으로 부른다.
나는 아득해졌던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어, 저기 던전 문이 열린다!”
던전을 나오자 소란스럽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아하게 주변을 둘러보니 결계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쏟아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돌아왔다! 두 사람이 한 시간 만에 돌아왔어!”
“꺄아아아! 테레제 니이임!”
“데미안! 데미안! 데미안!”
중요한 경기에서 우승을 거머쥔 스포츠팀을 향한 열광처럼 뜨겁고 열렬한 반응이었다.
‘그러고 보니 축제 중이었지.’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가 했더니.
던전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다가와 축제가 5년 전쯤에나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
그때 결계가 거두어지며 인파를 뚫고 이사장이 등장했다.
“우리 학교의 자랑스러운 영웅들이 무사히 귀환했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주변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몹시 도취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마는 우리를 이기지 못하오!”
축제 중에 갑자기 악마가 등장한 끔찍한 상황이었다.
하나 불안이 완전히 퍼지기도 전, 말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던전이 클리어되었다.
그것도 고작 두 사람으로.
이사장은 던전이 나타났다는 흉흉함보다도 엄청나게 빨리 클리어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어떻게든 이를 호재로 만들었다.
“우리의 자랑 테레제! 우리의 영웅 데미안!”
나는 순식간에 발할라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이사장은 매우 흡족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자네들이 이번 축제의 주인공이니 마음껏 즐기시게. 학생회 일은 다른 이들이 맡아줄걸세. 던전 보고서도 내일 작성하도록 하고.”
쉬라는데 사양할 필요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흥분이 식지 않는지 내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우르르 따라왔다.
“부담스러워…….”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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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날 좋아하지? 난 한 게 아무것도 없는걸]
그거 내 속마음 아니라고요. 왜 멋대로 곡해하세요?
“테레제.”
어디로 도망쳐야 사람들을 떨어뜨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데미안이 말을 걸었다.
내가 눈만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자 그가 드물게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나중에 물어볼래?”
이건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데미안도 약간 성가셔하는 눈으로 우리를 둘러싸며 여전히 환호 중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럼 나랑 같이……,”
그의 말은 갑자기 끼어든 누군가로 인해 이어지지 못했다.
“너 또 무슨 짓을 벌였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워?”
어?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제복 차림의 클라이드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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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서방 왔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당황해서 엉뚱한 질문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본인 집이자 재학생인 그에게 여기는 어쩐 일이냐고 묻다니.
클라이드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 집에 어쩐 일로 왔냐고 묻는 건가?”
“그게 아니라… 요즘 통 안 보였잖아.”
“됐고, 손이나 잡아.”
클라이드가 내게 손을 뻗었을 때 데미안이 거리를 훅 좁히며 바투 붙어섰다.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테레제랑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러니까 빠지라는 말이었다.
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나는 괜히 어깨를 움츠렸다.
‘아니. 왜 내가 눈치 보는 거지? 둘 다 따라갈 필요 없잖아.’
그 순간.
띠링!
[시스템 복구 완료(100%)]
갑자기 시스템이 복구되었다는 알림과 함께 두 사람의 호감도가 떴다.
[클라이드 호감도: ♥♥♥♡♡]
[데미안 호감도: ♥♥♥♡♡]
‘……어? 하트가 세 개라고? 그것도 두 사람 전부? 어째서?!’
내가 얼빠진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을 때 성좌들은 난리가 났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클라이드’ 루트를 지지하는 성좌들이 환호합니다.]
[‘데미안’ 루트를 지지하는 성좌들이 환호합니다.]
“꺄아아악! 클라이드 님!”
“데미아아안! 여기 좀 봐줘!”
“사랑해요, 테레제 선배!”
우리 주변으로 모인 인파의 분위기는 점차 팬클럽의 그것으로 변질되어갔다.
클라이드는 혀를 차더니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동.”
우리 세 사람은 동시에 한적한 산책로로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나는 하트 3개의 충격도 잊고 클라이드에게 물었다.
“뭐야, 너. 이동 마법은 언제 배운 거야?”
클라이드가 이동 마법을 습득하는 시기는 여름방학이 지나서였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다닌 여파인가? 실전 경험이 많이 쌓여서?’
“지금 그게 문제야?”
내 궁금증에 클라이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여전히 루비 반지가 끼워진 왼손을 잡아챘다.
“이거 뭔데.”
그가 묻기 전까지 반지를 끼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고 있었다.
“던전 속 역할 상 필요했던 거야.”
클라이드가 데미안을 쳐다보며 물었다.
“누구랑 결혼이라도 했어?”
“어? 아니.”
이번에는 데미안이 물었다.
“그럼 결혼반지는 왜 끼고 있는데?”
“…남편은 없었어. 그냥 내 역할이 남편이 죽은 귀부인이었거든.”
클라이드는 마뜩잖은 눈으로 반지를 보더니 내 손에서 빼냈다.
“그럼 이 반지는 이제 필요 없겠네.”
“응. 근데 그건 왜…”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클라이드가 반지를 빼내 휙 집어던졌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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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띠링!
[성좌 ‘어차피 남주는 클라이드’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돼.]
물론 던전을 나오면 버릴 생각이긴 했는데, 좀 황당했다.
클라이드는 이번엔 데미안을 쳐다보았다.
“넌 무슨 용건이길래 테레제를 찾는 거지?”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우리는 같이 던전을 다녀온 직후거든.”
“하. 던전 보고서 작성 전에 따로 대화하는 건 지양해야 하지 않나?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리고 사실 나도 던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모르고 있어서.”
“그게 무슨 소리야?”
팽팽한 신경전이 오가자 후원창이 다시금 난리가 났다.
띠링!
[성좌 ‘막드매니아’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팝콘 가져와!!]
‘클예부로 돌아가고 싶다.’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데미안이 날 쳐다보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우리 왜 키스하고 있었어?”
키스란 말에 클라이드가 날 휙 돌아보았다.
“키스?”
두 사람의 맹렬한 시선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키스를 언급하면 어떡해? 상도덕이 아니잖아.
몹시 당혹스럽긴 했지만, 키스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키스해야 네 기억이 돌아오는 저주가 걸려 있었어. 너 던전 주민이었거든.”
잠자는 공주에게 한 키스처럼, 의료행위 같은 거였다.
그래. 의료행위.
나는 갑자기 나타난 클라이드로 인해 잠시 괜찮아졌던 기분이 확 가라앉는 걸 느꼈다.
데미안이 물었다.
“그럼 날 보고 운 건?”
“……그건 던전 보고서로 확인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울음기가 스민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져서 나왔다.
“미안하지만 나 좀 가볼게. 클럽도 확인해야 하고….”
젠장.
나는 얼른 두 사람이 흐르는 눈물을 보지 못하게 몸을 돌렸다.
“…피곤해서.”
그 말을 끝으로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하아.”
클예부 클럽룸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그때 갑자기 눈물이 나서.”
그래도 두 사람을 피해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니 예민하게 치솟았던 감정이 한풀 꺾여나가 담담해졌다.
언제고 감정에 휘둘릴 수는 없었다.
데미안은 알지도 못하는 일이고, 다 내가 감당해야지.
나 혼자서 기억해야지.
멍하니 한 걸음씩 옮기는데, 클럽룸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뭐지?”
그때 날 발견한 클예부 회원이 소리쳤다.
“어, 테레제 니임!”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클예부 회원들이 내게 달려와 울먹거리며 호소했다.
“모르겠어요! 갑자기 사람들이 마구 몰려와서 당장 문 열라고 하더니 미친 듯이 돈을 쓰고 있어요!”
“그리고 테레제 님의 카드는 없냐고 자꾸 물어봐요. 여긴 클라이드 님의 예비 신부 클럽이라고 해도 자꾸 회장님만 찾더라구요.”
“…….”
아무래도 내가 던전을 깨고 나온 게 영향을 준 것 같은데.
“다들 정신 차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알겠어?”
“이러다 노가 부러지겠어요…….”
“안 부러져. 우린 무조건 1등 해야 돼!”
그래야 내 남은 퀘스트 하나가 무사히 완료된다고!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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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되게 슬픈 분위기 아니었어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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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치료]
그때 클라이드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테레제!”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날 붙잡더니 표정을 살폈다.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어, 마침 잘 왔네.”
내 반응에 클라이드가 멈칫했다.
“뭐?”
“빨리 너도 도와.”
나는 이 와중에도 클라이드의 얼굴을 보며 꺄아, 꺄아 탄성을 내지르는 클예부 회원들에게 말했다.
“클라이드한테 게임 마스터 복장 가져다줘!”
“네에~!”
클라이드는 황당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뭔 소릴 하는 거야? 너 괜찮냐고.”
“지금 괜찮아 보여? 여기 몰린 사람들을 좀 봐! 빨리 갈아입고 일해. 여기 네 클럽이잖아.”
“아니, 계속 무슨 헛소리를…!”
영애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게임 마스터 로브와 가면을 가져와 클라이드에게 착착 입혔다.
“꺄아아! 이런 날이 오다니 꿈만 같아요!”
나는 클라이드를 붙잡고 비장하게 클럽룸을 가리키며 말했다.
“돈 벌러 가자.”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