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119화 (120/277)
  • 119화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당장 실시.]

    띠링!

    [성좌 ‘데릴사위 데미안’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가보자고]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다가 당혹스럽게 소리쳤다.

    “아니이이?!”

    얘가 미쳤나 봐!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데미안은 내게 상체를 더 깊이 숙였다.

    그 바람에 뒤로 몸을 빼느라 소파에 누운 자세가 되어버렸다.

    ‘뭐야, 진짜 하려는 거야?’

    나는 황급히 두 손을 활짝 펼쳐 그의 얼굴을 막듯이 우리 사이에 방어막을 만들어냈다.

    데미안이 손바닥 사이로 날 응시했다.

    “왜요? 의료행위라면서요.”

    “그렇긴 한데….”

    내 대답에 데미안이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키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렇게 기겁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부인.”

    이번에는 손바닥 사이로 그의 도톰하게 부푼 입술만 쏙 걸려들었다.

    “그렇긴 하지…?”

    왜 맞는 말만 하지? 할 말 없게.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있을 때, 데미안이 내 손을 감싸더니 아래로 내려 물잔을 쥐게 했다.

    “제가 먹여드리지 않더라도 약은 드셔야 해요. 바닷바람이 차가워서 병세가 악화될 지도 모르니까요.”

    그러고는 언제 묘한 기류를 피웠냐는 듯 산뜻하게 떨어졌다.

    “으응.”

    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데미안이 뚫어지게 지켜보는 가운데 약을 꿀꺽 삼켰다.

    기분이 뒤숭숭해 쓴맛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 * *

    크게 앓은 이후, 데미안은 좀처럼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감기들겠어요, 부인.”

    데미안은 챙겨온 두툼한 외투를 내 몸에 둘러 주었다.

    이미 외투를 두 겹이나 껴입은 상태였기에 때아닌 더위를 느껴야 했다.

    “데미안. 나 더운데.”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이 녀석아.

    “수프가 식었네요. 다시 데워오라고 할 테니 드시지 마세요.”

    “괜찮아. 나 식은 것도 좋아해.”

    “감기 걸려요.”

    또 하나 생겨난 변화는, 데미안의 심각한 과보호였다.

    특히 내가 조금이라도 차가운 음식을 먹는 꼴을 못 봤다.

    덕분에 계속 뜨거운 커피만 마시게 된 나로서는 곤욕스러운 상황이었다.

    ‘커피는 무조건 아이스라고.’

    “데미안, 난 차가운 커피만 마셔.”

    “차가운 커피라는 건 세상에 없어요, 부인.”

    데미안은 다정했고, 단호했다.

    “…알겠어. 따뜻한 걸로 줘.”

    날 걱정해서 이러는 거니 불평도 하지 못했다.

    여기까진 이해했다.

    그런데 계단은 왜 혼자서 못 오르내리게 하는 건데?

    “사지 멀쩡한 사람을 대체 왜 안아서 옮기는 거야? 내려줘.”

    데미안은 고개 저었다.

    “위험해요. 여기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치니까 저를 꽉 잡으세요. 절대 안 다치게 할게요.”

    “지금 이렇게 멀쩡한데 왜 쓰러지냐고.”

    내가 몇 번이나 반복해 타박하자 데미안은 몹시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날 내려주었다.

    “부인… 제발 천천히 내려가세요.”

    그는 내가 밟고 있는 게 계단이 아니라 절벽에 연결한 밧줄이라도 된 듯이 지나치게 불안해했다.

    “내가 막 걸음마 뗀 애도 아니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뒤를 돌아보자 데미안이 경을 쳤다.

    “앞을 보세요, 부인!”

    “…….”

    나는 전방주시에 소홀한 운전자가 된 기분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군수군.

    그가 날 안아 들고 다닐 때도 시선이 엄청났는데, 지금은 훨씬 더 따가운 눈총들이 느껴졌다.

    “그냥 네가 옮겨줘…….”

    내가 항복을 선언하자 그제야 데미안이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네, 부인.”

    띠링!

    [성좌 ‘로맨스극혐’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염병이다 진짜ㅠ]

    띠링!

    [성좌 ‘데미안 그만 잘생겨’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착한 염병 인정합니다]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이냐고.

    그래도 데미안이 살뜰히 챙겨주는 덕분에 굉장히 편한 여행을 즐기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이 문제만큼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다.

    “또 거기서 자려고?”

    데미안은 내가 다 나은 뒤부터 침대가 아니라 2인용 소파에서 잤다.

    눕지 못하는 길이라 비스듬히 기대는 게 고작인데 굳이 거기서 쪼그려있는 것이다.

    ‘덩치가 커서 2인용 소파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내가 아플 땐 옆에서 같이 잤잖아. 새삼스럽게 왜 그래?”

    그러자 데미안의 안색이 나빠졌다.

    “그건 죄송해요…….”

    “아니, 추궁이 아니라.”

    미치겠네, 진짜. 나 이런 거 못 견딘다고!

    “침대로 와서 자.”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이것도 벌써 며칠째 이어지는 실랑이였다.

    안 되겠다. 이 사태를 해결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내가 나가서 잘까?”

    그러자 데미안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어딜 나가려고요?”

    “복도에라도 눕지 뭐. 네가 덩치에도 안 맞는 소파에서 쪼그려 자는 걸 보는 것보단 그게 낫겠어.”

    “……알았어요. 정말 제가 침대로 가도 괜찮겠어요?”

    “응.”

    데미안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머뭇거리며 침대로 들어왔다.

    “가까이 와. 그러다 굴러떨어지겠어. 아, 혹시 내가 끔찍하게 싫어서 그러는 거야?”

    여객선에 오르기 전, 내게 당신이 끔찍하게 싫다고 말했던 일을 언급하자 데미안이 말없이 내 쪽으로 가까이 왔다.

    데미안 키우기 힘들다, 진짜.

    그래도 불쌍하게 소파에 쪼그려있는 꼴을 안 봐도 돼서 마음이 놓였다.

    이제 똑바로 누워 자려는데, 데미안이 나직하게 말을 걸어왔다.

    “손잡고 자도 될까요, 부인?”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잡는다.

    ▹잡지 않는다.

    ※‘잡는다’를 선택 시 루상트 왕국 도착 직후로 시간을 건너뜁니다.

    “애도 아니고.”

    내가 먼저 손을 확 잡자 데미안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날 싫어하는 반응은 아니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데미안}

    나이: 21세

    장래 희망: 테레제와 결혼

    상태: 심한 설렘으로 인한 긴장

    기억 봉인 해제 진행도: ★★★☆☆

    ‘어? 왜 갑자기 스토리가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지?’

    이미 망할 대로 망한 줄 알았더니, 갑자기 데미안의 장래 희망이 결혼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기억 봉인 해제 진행도만 채우면 던전을 클리어하고 무사히 나갈 수 있으리라.

    “…….”

    나는 수줍어하는 데미안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제 곧 루상트 왕국에 도착한 상황으로 장면이 바뀌겠지.

    그 전에 데미안을 와락 끌어안았다.

    “…부인?”

    기억을 되찾는 순간, ‘던전 주민 데미안’의 기억은 사라진다.

    지금 내 품에 안겨 있는 데미안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이 세상이 더는 게임이 아니었기에 설정이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미안해.”

    데미안이 의아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장면이 바뀌었다.

    하인들이 짐을 빼내는 중인 선착장이었다.

    “움직이면 단추를 못 잠그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부인.”

    아이를 어르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자 데미안이 내 외투를 꼼꼼하게 잠그는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다 됐어요.”라며 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주며 행복하게 웃었다.

    완벽하게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 * *

    두 사람은 왕국에서 지낼 동안 머물 타운하우스로 이동하는 중이다.

    데미안은 제 어깨에 기대어 잠든 테레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마에 키스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함락당했다.

    저항할 의지도, 여지도 없이 완벽하게.

    그는 테레제의 손가락에 여전히 자리한 반지를 살살 만져보았다.

    이제 이 반지는 당신에게 필요 없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당신의 곁에 있고 싶으니까.’

    당신의 죽은 전남편 같은 건 잊으라고, 내가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이제 암흑 조직 생활은 청산하고 귀족의 지위를 얻어 당신을 떳떳하게 맞이하겠다고.

    그렇게 프러포즈할 생각이었다.

    ‘여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내전 중인 왕국은 좀 시끄러울 수도 있지만, 그건 제 선에서 왕위를 두고 경쟁 중인 한 왕자를 처리하면 끝날 일이었다.

    세 번이나 꿈을 꾼 뒤로 데미안의 마법 능력과 암살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상태였다.

    데미안은 혹여 테레제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낀 뒤 눈꺼풀을 감았다.

    어서 타운하우스에 도착해 같은 침대에서 한가롭고 편안한 낮잠을 자는 일상이 시작되길 바라며.

    ……그런데 여기는 어디지?

    데미안은 다시금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나타난 낯선 장소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의아하게 고개를 숙였다가 웬 교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교복이었다.

    ‘아. 발할라 교복이군.’

    또 그 전생 같은 꿈이 시작되었다.

    ‘이걸로 벌써 네 번째인가?’

    이 꿈을 꾸고 나면 항상 기분이 더러웠다.

    꿈 내용이 전부 엿 같아서 그럴지도 몰랐다.

    “테레제 스콰이어가 죽었다는군.”

    이번에는 부인이 죽었다는 비보를 전달받는 꿈이었다.

    꿈속의 자신은 평온하게 대꾸했다.

    “그렇군요.”

    부인은 던전에서 죽었다.

    자신이 마음 인형을 뿌려 만들어낸 결과였다.

    객관적으로 훌륭한 결과였다.

    스티그마타의 목적은 제국을 이루는 주축을 몰살하여 신세계를 구축하는 거였으니까.

    데미안은 악마 던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자 가슴이 선득해졌다.

    던전은 가상 세계였다.

    그래서 클리어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든 것이 허구인 세계.

    참 말도 안 되는 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데미안은 불안함을 느꼈다.

    어쩌면 이곳이 던전인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뭐지?

    나와 꿈속의 데미안 웨스트가 같은 사람이라면, 그러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혼란에 잠겨있는 사이 ‘데미안 웨스트’는 이성으로 똘똘 뭉친 듯한 표정으로 새로운 던전을 열었다.

    장소는 황립 공원.

    테레제의 장례가 진행되는 장소였다.

    고위 귀족이 많이 모이는 장소일 테니 적절한 행동이었다.

    다만 장례가 시작되었을 때 열었어야 했다.

    스티그마타에서 나온 감시자가 데미안을 꾸짖었다.

    “설마 테레제를 동정하나? 아니면 이제 와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건가? 정신 차려, 데미안. 그 여자도 썩어빠진 귀족일 뿐이야.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악의 축이라고.”

    데미안도 동의하는 바였다.

    ‘한데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한 정답을 찾을 새도 없이 테레제의 생환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기숙사로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결국 로드 콘스탄틴의 명을 어기고 찾아갔다.

    그리고 보았다.

    “우리 이제 친한 친구 맞지?”

    테레제가 웬 은빛 머리칼의 남자를 끌어안고서 웃고 있는 모습을.

    BJ악역영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