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 * *
띠링!
[던전 퀘스트: 보육원으로 가기 완료]
▸보상: 3,000,000코인 획득
나는 베일과 검은 드레스로 전신을 꽁꽁 감춘 모습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데미안은 어디에 있지?”
원장은 미처 인사를 올릴 틈도 없이 나를 데미안의 방으로 안내했다.
데미안은 창백한 얼굴로 잠들어있었다.
“…….”
막상 아픈 데미안을 보자 마음이 한없이 약해졌다.
어쩌다가 팔이 부러진 걸까? 열감기로 끝났어야 할 일이 왜 이렇게 커져 버린 건지.
“의사가 말하길 큰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영영 팔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합니다.”
원장은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다만 보육원 재정상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연락드렸습니다.”
“데미안의 병원비는 내가 전액 지불할 테니 당장 옮기게.”
“알겠습니다.”
데미안을 실어 나를 큰 마차를 수배하기 위해 원장이 나가자, 나와 데미안만이 방에 남았다.
그때 데미안이 흐릿하게 눈을 떴다.
그는 날 보더니 미간을 구겼다.
“까마귀 부인……?”
* * *
띠링!
[던전 퀘스트: 보육원으로 가기 완료]
▸보상: 3,000,000코인 획득
나는 베일과 검은 드레스로 전신을 꽁꽁 감춘 모습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데미안은 어디에 있지?”
원장은 미처 인사를 올릴 틈도 없이 나를 데미안의 방으로 안내했다.
데미안은 창백한 얼굴로 잠들어있었다.
“…….”
막상 아픈 데미안을 보자 마음이 한없이 약해졌다.
어쩌다가 팔이 부러진 걸까? 열감기로 끝났어야 할 일이 왜 이렇게 커져 버린 건지.
“의사가 말하길 큰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영영 팔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합니다.”
원장은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다만 보육원 재정상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연락드렸습니다.”
“데미안의 병원비는 내가 전액 지불할 테니 당장 옮기게.”
“알겠습니다.”
데미안을 실어 나를 큰 마차를 수배하기 위해 원장이 나가자, 나와 데미안만이 방에 남았다.
그때 데미안이 흐릿하게 눈을 떴다.
그는 날 보더니 미간을 구겼다.
“까마귀 부인……?”
반에서 가장 키가 큰 남학생이라던 데미안은 여전히 어린 소년이었다.
솜털 보송한 얼굴은 지쳐있었고 커다란 눈망울에는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데미안은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힘없는 손길로 나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저를 데려가 주세요. 착하게 굴게요. 절대로 나쁜 짓 안 할게요, 부인. 제발 가지 마세요. 혼자 있기 싫어요…….”
한없이 나약한 애원이었다.
관심을, 애정을 구걸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는 데미안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땀에 젖은 이마를 쓸어주고 베일에 가려진 입술로 키스했다.
어떻게든 그를 안심시키고 재우려는 노력을 쏟으니 데미안은 점차 가늘게 흐느끼다 잠들었다.
띠링!
[1단계 기억 봉인 해제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데미안}
나이: 15세
장래 희망: 흥신소 탐정
상태: ‘기억의 꿈’을 꾸는 중
기억 봉인 해제 진행도: ★☆☆☆☆
때마침 원장이 돌아왔다.
“데미안을 병원으로 데려갈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나는 대답하려다 목이 메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입술을 적셔 짠맛이 났다.
데미안의 눈물에 마음이 미어져서 나도 모르게 같이 울고 있었단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 설움을 안다.
특히 아플 때 가장 비참해지는 이 기분을, 나는 너무 잘 알았다.
문득 후회되었다.
성좌들이 아무리 요청해도 그냥 돈만 보내고 데미안을 보러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직접 마주한 데미안은 마음을 한없이 약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정신 차려. 일부러 동정심을 자극해서 플레이어를 방심시키려는 거잖아. 다 알면서도 당할 셈이야?’
나는 피 맛이 느껴질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렌을 대신 보내지. 알렌? 데미안을 1인실로 보내고 가장 실력 좋은 의사를 붙여.”
“알겠습니다, 주인님.”
* * *
데미안은 고아다.
한데 꿈속의 제게는 부모님이 존재했다.
아버지는 카펜터 공작이라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식당을 운영하는 평민 여자였다.
카펜터 공작은 아름다운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녀가 병들어 본래의 미모를 잃기 전까지만.
어머니는 버림받은 사랑에 절망했고 빠르게 야위어 갔다.
데미안은 자상하던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카펜터 공작가로 갔다.
“어머니가 아파요. 살려주세요.”
돌아온 것은 매질이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카펜터 공작가의 사람들은 자신을 벌레 보듯 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코빼기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데미안은 절망했다.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아예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뛰어난 마법사였고, 자신의 재능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니까.
“네 어머니를 돌봐주겠다. 또한, 너의 복수도 도와주마. 대신 네 재능을 나에게 넘겨야 한다. ‘스티그마타’의 일원이 되겠느냐?”
스티그마타는 악마의 침공을 받는 중임에도 서로의 이득에 눈이 먼 썩어빠진 인간계를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급진적인 집단이었다.
데미안은 기꺼이 그들과 손을 잡았다.
* * *
데미안은 천천히 꿈에서 깨어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여기는 어디지?’
주변을 살펴보니 곧 병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한동안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무척이나 이상한 꿈이었다.
그냥 개꿈이라고 무시하기엔 기이할 정도로 선명해서, 마치 자신이 과거에 겪은 일 같았다.
그래서인지 꿈에서 깨어난 지금도 가슴 속에 끈적한 분노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고여있었다.
귀족을 증오하고 자신의 나약함을 증오하는 음습함에 좀먹혀 들고 있는데.
“깨어나셨습니까?”
까마귀 부인의 시종이 병실로 들어왔다.
데미안은 능숙하게 가엾은 아이 표정을 지었다.
“네. 혹시 제가 병원에 얼마나 있었죠?”
“오늘로 사흘째입니다.”
“그렇군요…. 귀부인은 어디 계세요?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여기에 안 계십니다.”
혹시나 했는데, 그 여자는 이곳에 없었다.
데미안은 잠시 우울한 표정을 짓다가 시종에게 물었다.
“당신이 알렌이죠?”
“그렇습니다.”
자신의 후원자로 서명한 남자였다. 그만큼 그 귀부인의 최측근이라는 뜻이겠지.
데미안이 공손하게 말했다.
“혹시 저를 일으켜주실 수 있을까요? 앉으려니 힘이 들어서요.”
“알겠습니다.”
알렌은 정중하게 자신을 부축해주었다.
그 순간 데미안은 알렌에게 추적 마법과 함께 정신 마법을 걸었다.
“부인의 이름이 뭐죠?”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그런데 알렌은 자신의 질문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처럼 딴소리했다.
“당신의 주인 이름이 뭐냐고 물었어요.”
알렌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져 기이한 불쾌감이 치밀었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을 흉내 내는 것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나?
데미안은 섬찟한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잘못되었다.
자신도, 이 세계도 전부.
그는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내가 왜 이러지…….”
‘여기가 현실이 아닌 거 같다니.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
알렌이 입을 열었다.
“필요한 게 없으시면 나가보겠습니다.”
데미안은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자신의 부러진 팔을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로도 안 되는 건가.”
까마귀 부인을 불러내기 위해 팔까지 부러뜨렸는데.
‘성가시네.’
그래도 아예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여자는 자신을 동정했다.
베일로 감춰져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았으나, 눈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 데미안은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베일을 잡아 뜯어버릴 뻔했다.
그 여자의 눈이 궁금해서.
단지 그딴 이유로 실수할 뻔한 것이다.
‘내가 왜 그런 충동을 느꼈을까?’
까마귀 부인은 마법사가 확실했다.
그래서 제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람은 맞지만, 인간 자체에 대한 흥미는 없었다.
한데 그 순간만큼은 그냥 순수하게 까마귀 부인의 얼굴이 궁금했다.
눈물을 흘리는 눈동자의 색깔도.
한 번 피어오른 호기심은 도통 꺼질 줄 몰랐다.
지끈거리는 통증처럼 계속 내면에 지저분하게 머물러 불쾌감을 자아냈다.
‘정체를 꽁꽁 감추고 있으니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잖아.’
이 갑갑한 기분이 해소되려면 방법은 하나였다.
까마귀 부인을 직접 만나는 것.
그것 말곤 없었다.
데미안은 이불을 걷어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쩐지 생각한 것보다 팔의 상태가 괜찮았다.
고작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것 정도로 이만큼이나 빨리 호전될 수가 있나, 의아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까마귀 부인을 찾는 일이었다.
데미안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 여자 말곤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찾아야 할까? 역시 뒷세계에서 정보를 사야 하나?’
하지만 자신은 힘없고 돈도 없는 평범한 고아였다.
자신이 힘을 가질 방법은 하나.
마법의 힘으로 암흑세계 일원이 되는 거였다.
달칵.
결심하고 문을 열었을 때, 그는 깜짝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침 병실로 들어오려던 까마귀 부인과 정면으로 마주친 것이다.
“……안녕하세요, 귀부인.”
설마 자신을 보러 올 줄이야.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깜짝 놀라서인지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다.
귀부인은 여전히 베일로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안녕, 데미안.”
그는 처음으로 귀부인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부드럽고 차분한 음성이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보다 여리게 들리기도 했다.
계속 듣고 싶은 고운 목소리에 잠깐 넋을 놓았을 때.
“집으로 가자.”
까마귀 부인이 이상한 말을 했다.
“집이라니요?”
“내 집. 그리고 앞으로 네가 지낼 곳이지.”
데미안은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저를 입양하셨나요?”
하나 속에서는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 여자도 제 겉모습을 보고 구미가 당겨 장난감을 사듯이 입양을 결정해 멋대로 가족이 된 다음.
귀찮아지면 파양하는 다른 귀족과 다를 게 없었다.
깊은 실망감에 끈적한 분노가 차오르던 찰나, 까마귀 부인이 말했다.
“나는 네 선생님이지, 부모가 아니야.”
“……선생님이요?”
“그래. 네가 그토록 원하던 것을 가르쳐 줄 선생님.”
데미안은 그게 마법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아차렸다.
뭘까, 이 상황은?
어째서 제 입맛에 꼭 맞춘 것처럼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거지?
까마귀 부인은 자신이 바라는 걸 꿰뚫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모든 걸 간파당한 기분이었다.
그때 부인이 손을 내밀었다.
“가자.”
데미안은 홀린 듯 까마귀 부인을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