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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09화 (110/277)

109화

* * *

“다들 서둘러. 곧 귀부인께서 도착하실 시간이니까.”

“네, 선생님.”

데미안을 비롯한 소년들은 합창하듯 대답하며 칙칙한 쥐색 옷을 반듯하게 펴 입고 머리를 빗었다.

데미안은 귀부인이든 누구든 귀족이 여길 찾아와 거드름을 피우는 게 짜증스러웠다.

그때마다 청소네 뭐네, 성가셨기 때문이다.

“데미안.”

원장이 데미안에게 창고를 가리켰다.

“너는 저기로 가 있거라.”

“네, 원장님.”

데미안은 순순히 창고에 들어갔다.

이곳은 청소하지 않는 곳이라 좀 더럽다는 걸 빼면 혼자 있을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바깥에서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깝네요. 데미안만큼 외모가 번듯한 애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럼 뭘 해? 쟤는 벌써 세 번이나 파양되어 온 애야. 소름 끼쳐.”

귀족들은 그의 사랑스러운 외모에 혹해 입양했다가 언제나 ‘소름 끼치는 아이’라며 파양해버렸다.

이해되지 않았다.

어른들은 생글생글 잘 웃는 아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웃고 싶지 않은데도 열심히 웃었을 뿐인데.

“너는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니?”

처음은 계단을 우스꽝스럽게 굴러떨어져 다친 양아버지를 보며 웃었다는 이유로 파양되었다.

이후로도 뭐, 비슷한 이유였고.

그렇게 세 번의 파양 끝에 이상한 아이가 있는 보육원이라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하며 데미안은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어있었다.

주위에서는 데미안을 괴물 취급했다.

“너는 슬픔이 뭔지 몰라?”

알고 있다.

다만 자신이 보기에는 썩 슬프지 않은 상황이었을 뿐이다.

술에 취해 저를 괴롭히려던 양아버지가 계단을 굴렀는데 왜 슬퍼해야 하지?

그건 기쁜 일이었다. 계획에 성공했으니까.

두 번째로 입양된 집에는 저보다 다섯 살 많은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먹을 거에 장난치며 자신을 괴롭히기에, 몇 번 사소한 죽음의 위기를 겪게끔 유도하기만 했다.

마지막에는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행적을 의심받고 파양되었다.

“증거도 없이 날 파양한 사람들이 나쁜 건데.”

그들은 데미안이 불행을 불러온다고 여겼다.

직접 불행하게 만들어주었으니 틀린 표현은 아니었지만.

하여튼, 귀족은 성가시다.

오늘 방문하기로 한 귀부인은 원장이 가장 좋아하는 귀족이었다.

왜냐면 가장 많은 돈을 후원하거든.

심지어 아이들에게 친절하며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도 관심이 많아, 타의 귀감이 되는 귀족이라고 떠드는 것을 들은 적 있었다.

데미안은 그게 뭔지 알았다.

‘위선자.’

오늘 방문할 귀부인은 위선자였다.

“그냥 돈이나 보낼 것이지. 왜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거야?”

데미안은 정말이지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교 성적도 신경 써야 했고, 남몰래 마법도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법은 매혹적이고 강력한 힘이지만 제국에서는 사특한 힘이라며 제국 마법사로 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이의 사용을 엄격히 금했다.

그러나 데미안은 나라의 개로 일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귀찮고 시시할 게 뻔하니까.

아무튼.

그래서 독학으로 마법을 깨우치는 중인데 번번이 귀족이 방문할 때마다 청소하느라 시간을 빼앗기고 있으니 조금 화가 났다.

그 귀부인이 다시는 이 보육원에 오지 못하게 만들면 어떨까?

‘그러면 나도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을 텐데.’

“으음~”

데미안은 나무상자 위에 앉아 발을 구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웃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 * *

덜컹덜컹!

마차가 이동하는 도로 상태가 점점 나빠져 덜컹거림이 심해질 무렵.

나는 성좌들에게 던전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줬다.

이 던전의 목표는 간단명료했다.

22살까지 무사히 성장한 데미안과 진실한 사랑의 키스를 나눠 봉인된 기억을 돌려놓을 것.

이 지점에서 ‘로맨스패스’ 성좌가 미쳐 날뛰었음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띠링!

[성좌 ‘로맨스극혐’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진실한 사랑의 키스라는 판정은 어떻게 내려지는데?]

“이 던전에서만 사용되는 상태창이 따로 있어요. 곧 보게 될 거예요.”

그때, 마차가 보육원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고 알렌의 에스코트를 받아 지면을 밟자마자 원장이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부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부터 자신이 에스코트를 맡겠다는 듯 내게 손을 내밀었다.

눈동자에서 기름이 줄줄 흐르는 걸 보니 내가 과부라는 점, 그리고 엄청난 재산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의식해 끼를 부리는 모양인데.

띠링!

[성좌 ‘인내심 강한 성좌’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우욱…]

띠링!

[성좌 ‘마음으로 낳은 테레제’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눈을 왜 저따위로 뜨지? 실명되고 싶은 건가?]

‘원장이 밉상 캐릭터이긴 하지.’

현재 원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고한 후 다른 선한 인물을 앉힐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스토리 흐름이 달라진다.

이 버터 원장과 달리 착한 원장의 운영 능력은 형편없었기에 보육원이 망해 아이들이 전부 거지굴로 보내지게 되거든.

그 경우 자연스럽게 데미안은 암흑가에 진입해 착실한 암흑가 큰손이 되어가는 암울한 루트를 밟게 된다.

던전 클리어 난이도가 몹시 어려워진다는 뜻이었다.

물론, 음습하고 어두운 스토리를 보고 싶은 플레이어라면 그쪽을 선택해도 나쁘진 않겠지만.

‘현실에서 그딴 짓을 왜 하겠어.’

나는 에스코트는 거절하고 원장을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마차에서 내릴 때는 창문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아이들이 보였는데, 지금은 온 통로가 텅 비어있었다.

일부러 아이들이 돌아다니지 않게 조치한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잘 보이려고 한 거겠지만, 마음이 불편하네…….’

던전 속 인물은 전부 허구다.

실존 인물은 오직 던전 밖 현실에서 끌려들어 온 이들 뿐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좋진 않았다.

‘데미안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당연한 일일까?

지금쯤 원장의 명령을 받아 창고에 몸을 숨기고 있을 테니까.

달칵.

“들어오십시오, 부인.”

응접실에는 원장이 미리 준비해놓은 각종 서류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보육원에 얼마를 후원할지 정하는 대신, 타지의 보육원으로 보내질 보육원생 명단을 확인했다.

“보육원생 데미안은 성적이 훌륭한데 왜 시골 보육원으로 보내는 거지?”

원장의 미소가 뻣뻣해졌다.

“아, 예에.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요. 파양 이력도 있고 하니, 이 도시에서 계속 지내기가 힘들 겁니다.”

데미안이 성가시고 골치 아프니 시골에 처박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심사숙고하는 척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내가 데미안을 개인적으로 후원하겠네.”

“아… 개인 후원 말씀이십니까?”

“그래. 생활에 편의도 봐주고 본인이 원하는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해.”

띠링!

[데미안 정보 업데이트 완료!]

{데미안}

나이: 10세

장래 희망: 암흑조직원

상태: 심술부리는 중

기억 봉인 해제 진행도: ☆☆☆☆☆

‘진실한 사랑의 키스’ 판정받으려면 데미안의 기억 봉인 해제 진행도 별 5개 달성과 장래 희망이 결혼이 되어야 했다.

내가 데미안의 개인 후원을 결정하자 원장이 난감해했다.

그는 데미안이 불길하게 느껴져 얼른 시골로 치워버리고 싶을 거다.

이때는 데미안을 데리고 있는 쪽이 이득이 되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면 금방 태도를 뒤집는다.

“난 이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네. 그러기 위해서는 보육원에서도 충분한 재정을 마련해야겠지.”

나는 준비한 수표를 내밀었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후원할 생각이야.”

원장의 표정이 더없이 환해졌다.

“고귀하신 뜻에 감명했습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부인.”

다만 조건이 있었다.

“내가 후원자라는 사실을 데미안이 몰랐으면 하는데. 이름도, 사는 곳도 전부.”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유를 말씀하시겠습니까?]

▹“내게 개인적으로 후원받는 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데미안에게 쓸데없는 호기심을 보일 자들이 있기 때문이야.”

▹침묵한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이유를 말하게 되면 원장이 데미안에 대한 정보를 다른 귀족들에게 팔아넘기지.’

그렇게 되면 데미안이 어둠의 길로 접어드는 루트가 활성화된다.

매섭게 내려앉은 침묵에 지레 겁먹은 원장이 창백해진 얼굴로 황급히 고개 숙였다.

“주제넘은 질문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만 가보겠네.”

용건이 끝나고, 나와 알렌은 건물을 나왔다.

그때 갑자기 늪을 밟은 것처럼 두 발이 아래로 푹 꺼져 들었다.

스스스슷!

거기에 더해 흙이 뱀처럼 다리를 기어올랐다.

‘시작됐네.’

나는 한숨 쉬듯 입을 열었다.

“장난은 그만.”

그러자 바닥은 도로 멀쩡해졌고 다리를 타고 올라오던 흙도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띠링!

[성좌 ‘금쪽같은 내 새끼 데미안’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데쪽아(이마 짚)]

성좌들도 이 악랄한 장난이 데미안의 짓임을 눈치챘다.

방금의 이상한 현상에도 알렌은 착실히 본인이 할 일을 했다.

그가 마차 문을 열고 내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바로 출발할까요?”

[마차에 타시겠습니까?]

▹탄다.

▹데미안이 나오길 기다린다.

나는 데미안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마차를 탔다.

“출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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