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역키잡 가나요?! 역키잡 가나요?! 역키잡 가나요?! 역키잡 가나요?! 역키잡 가나요?! 역키잡 가나요?!]
어우, 시끄러워.
성좌가 폭주하는 와중, 시종이 내게 다시금 물었다.
“주인님, 보육원으로 가시겠습니까?”
그리고 선택지가 떴다.
[보육원으로 가시겠습니까?]
▹간다.
▹가지 않는다.
※‘가지 않는다’를 선택 시 1년 후로 시간을 건너뜁니다. [플레이어]는 노화하지 않지만 신중하게 선택하십시오. 선택지에 따라 스토리의 흐름이 달라집니다.
띠링!
[성좌 ‘물음표살인마’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 이번 던전은 선택지가 뜨네요? 근데 1년씩 시간 지나면 현실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데육시 던전의 특징을 꼽자면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느냐에 따라 스토리 흐름이 달라진다.
던전 안과 바깥세상의 시간 흐름이 다르다.
“여기서 12년이 흘러도 밖은 고작 1시간쯤 지났을걸요.”
또한 내 육신 역시 바깥세상의 것이기에 이곳에서는 늙지 않는다.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헉 혼자 어른으로 성장하는 인간과 뱀파이어처럼 늙지 않는 귀부인? 맛도리]
“보육원으로 갈 거니까 마차를 준비해, 알렌.”
알렌이라 불린 시종이 공손하게 고개 숙였다.
“알겠습니다.”
이번 던전에서 내 손발이 되어줄 알렌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아가 없는 무생물이었다.
꿈의 카드를 전달하는 외다리 병정처럼 오직 진행을 위한 안드로이드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나는 드레스 룸으로 가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드레스는 전부 목까지 꽉 막힌 정숙한 형태였으며 색은 짙고 어두웠다.
무엇도 화사한 것이 없었다.
[성좌들이 칙칙한 드레스 룸 상태에 의문을 드러냅니다.]
“저는 남편이 죽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부인이라는 설정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상복 같은 드레스뿐이죠.”
나는 대충 가장 앞에 있던 드레스를 골랐다.
그리고 후회했다.
“단추가 왜 이렇게 많아?”
어떻게든 낑낑거리며 소매는 잠갔는데, 문제는 등이었다.
“알렌? 혹시 밖에 있어? 들어와서 단추 좀 잠가줄래?”
그러자 문이 열리고 등 뒤로 알렌이 다가왔다.
등허리 아래쪽에 따스한 손이 닿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가 단추를 잠그기 쉽게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앞으로 쓸어내린 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알렌은 생명체가 아니기에 손이 따뜻할 수 없다.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주었을 때도 그의 손은 온기 없이 약간 서늘했었는데.
고개를 번쩍 들자 정면의 전신 거울을 통해 내 뒤에 선 오즈월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잠깐-”
내가 고개를 돌린 순간, 마침 비쥬를 하려던 오즈월드와 입술이 맞닿을뻔했다.
흠칫!
오즈월드는 고개를 멈춘 채로 내리깔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려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오랜만입니다, 테레제 양.”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내 뺨에 입 맞췄다.
부드러운 입술과 뺨을 긁는 날렵한 콧날의 감촉에 등허리로 오싹한 소름이 쭉 끼쳐 올랐다.
나는 당혹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
“그야 테레제 양을 보러 왔으니까요?”
오즈월드는 웬일로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아래쪽에서부터 단추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설마 이 짓거리를 하려고 일부러 장갑을 벗은 거야?
“하지 마. 알렌이 할 일이니까.”
“그런가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이 멈춰 있어 알렌은 이곳으로 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네가 꺼지고 알렌이 오면 되잖아.’
어처구니가 없어 뒤를 돌아보려 했으나 오즈월드가 내 허리를 붙들어 정면을 보게 했다.
“갑자기 움직이면 단추가 뜯깁니다. 얌전히 있으세요.”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리려고 하는데.
거울에 비친 오즈월드는 사뭇 집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 드레스 단추를 잠그는 일은 처음 해보는데 재미있네요. 어쩌면 당신의 시중이라 그런 걸까요?”
‘내가 어떻게 알아, 미친놈아.’
나는 불만스럽게 거울 속 오즈월드를 쳐다보며 그가 헛짓거리는 하지 않을지 감시했다.
단추는 정말이지 더럽게 많았다.
심지어 오즈월드의 단추 채우는 속도는 경멸스러울 정도로 느려터졌고.
“저기, 단추 채우기에 딱히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까 그만둬.”
그러자 오즈월드는 짐짓 속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미운 말보단 응원이 받고 싶은데요.”
어쩌라고.
나는 그냥 단추 고문을 당한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후 용건이나 물었다.
“그런데 진짜로 왜 온 거야?”
그러자 오즈월드가 잠깐 고개 들어 거울을 통해 시선을 마주쳤다.
“당신이 보고 싶어서요.”
제발 개소리 좀 그만했으면.
점점 표정이 썩어가는 나와 달리 오즈월드는 간만의 휴가를 즐기는 사람처럼 즐겁게 말했다.
“역시 와보길 잘했군요. 이렇게 재밌을 줄 알았다면 더 일찍 찾아왔을 텐데 아쉽네요.”
대체 뭐가 재밌다는 걸까?
제정신이 아닌 말만 쏙쏙 내뱉는 상대와의 스몰 토킹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던 나는 그냥 침묵하기로 했다.
그래. 그냥 말이 섞기 싫었다.
오즈월드는 날 심심이쯤으로 생각한 건지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줄줄 내뱉었다.
“실은 최근 바빴습니다. 그래도 급한 건 전부 처리해두었으니 전보다는 자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것참 대단히 불행한 소식이었다.
‘누가 너 보고 싶다고 했냐고. 말만 들으면 우리 사이가 장거리 연애 중인 애틋한 연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으. 연인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웠다…….
그는 내 목덜미까지 단추를 전부 채운 후 손을 떼었다.
‘휴. 드디어 단추 고문이 끝났네.’
오즈월드가 고갤 들어 다시금 거울 속 나와 눈을 마주쳤다.
“오늘 테레제 양을 찾아온 건 축하할 일이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무슨 축하?”
“채널 순위 50위가 된 것 말입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됐어?”
순위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도통 확인하질 않았더니 그새 그만큼이나 오른 줄 몰랐다.
“그래서 축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안 줘도 되는…”
오즈월드의 선물이라면 왠지 정상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 거절하려는 찰나.
슥.
그가 내 왼손 약지에 손톱만 한 루비가 다이아몬드와 함께 세팅된 반지를 끼웠다.
링 부분까지 전부 다이아몬드로 둘러놓은 호화로운 반지는 착용하는 순간 손가락이 묵직해질 정도였다.
“이걸 나한테 왜 줘?”
오즈월드는 내 손가락에 끼운 반지를 만족스럽게 만지작거렸다.
하필 내 등 뒤에서 그러고 있으니 그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자세가 되어버렸다.
“이 던전 속의 당신은 과부잖습니까? 결혼반지가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역시나 잘 어울리네요. 오즈월드 부인.”
…라고 말하며 그가 반지 위에 키스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 지었다.
“당신이 내 사망한 남편이라도 되겠다는 뜻이야?
오즈월드는 매끄럽게 대답했다.
“안될 것도 없겠죠, 부인.”
“망자는 산 사람 앞에 나타날 수 없는데. 예의도 아니고.”
콘셉트에 충실할 거면 사망 콘셉트도 지켜줬으면 하는데.
“그 부분은 당신이 남편을 너무 그리워해서 나타난 거라고 해두죠.”
누구 마음대로 나한테 그딴 설정을 집어넣어?
“잠깐만. 근데 오즈월드가 이름이 아니라 성이었어?”
“글쎄요.”
반응을 보면 성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름이라고 생각하기도 석연찮았다.
이름이든 별명이든 뭐가 중요하겠는가?
가장 중요한 건 오즈월드가 싫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갑자기 오즈월드의 시스템 창이 떴다.
“흐음.”
그는 내용을 확인하더니 마뜩잖은 한숨을 흘렸다.
아무래도 일이 생긴 듯해 기뻤다.
오즈월드는 시스템 창을 끄고 거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나를 응시하며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럼 이번 에피소드도 행운을 빕니다, 테레제 양.”
그는 내 뺨에 입 맞추고 떠났다.
나는 또 뺨을 벅벅 닦다가 반지에 피부를 긁혀 신경질이 버럭 났다.
미친놈. 갑자기 반지는 왜 줘?
당장 루비 반지를 빼서 창밖에다 던져버리려고 했다.
“끄으으윽! 이게 왜 안 빠져?!”
[성좌들이 갑자기 생겨난 반지에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으윽, 뭐야? 접착제를 발랐나? 오즈월드! 이거 왜 이래?!”
마법을 써도 반지는 내 왼손 약지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띠링!
[성좌 ‘마이너 장인’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설마 오즈월드가 준 결혼반지? 나 기절할게]
“헉… 헉….”
나는 볼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용을 쓰다가 반지 빼는 일을 포기했다.
설마 이 반지를 영원히 끼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개자식. 사람 엿 먹이는 방법도 가지가지네.’
똑똑.
“주인님. 알렌입니다.”
그때 알렌이 드레스 룸으로 찾아왔다.
“분부하신 대로 마차를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으응.”
나는 베일로 얼굴을 감췄다.
무생물인 알렌은 위화감을 못 느끼지만 다른 던전 구성원 중에는 나를 인간 피를 빨아먹어 젊음을 유지하는 괴물로 여기는 이도 있었으니.
이내 마차는 데미안이 있을 보육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