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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07화 (108/277)
  • 107화

    웅성웅성!

    “뭐야…? 이것도 연기의 일부분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누가 장난친 모양인데?”

    “마법이라고? 그러면 풀어내면 되잖아? 듣자 하니 카펜터 공녀는 학년 차석이라면서.”

    “그러게? 왜 저러고 있지?”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 얼어 붙어있던 관객들도 거세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리비는 당황한 눈으로 세실리아와 객석을 번갈아 보다가 맨 앞자리에 앉은 테레제를 발견했다.

    테레제는 심술 가득한 얼굴로 낄낄 웃고 있었다.

    ‘설마 언니가 한 건가?’

    “꽥! 꽤액! 꽥!”

    세실리아는 우왕좌왕하며 꽥꽥거렸고.

    이를 지켜보던 카펜터 공작은 때아닌 망신살에 매우 화가 나, 얼굴이 시뻘게진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웃음도 터져 나왔다.

    세실리아는 관객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대에서 도망쳤다.

    순식간에 주인공이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대로 연극이 끝나려나? 세실리아 양이 다음 극을 위해 돌아올 것 같지는 않은데.’

    리비는 세실리아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내심 고소했다.

    그때였다.

    “어?”

    갑자기 수십억의 조그마한 빛이 주변에 퐁퐁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리비의 몸을 감쌌다.

    사람들은 있는 줄도 몰랐던 나무 역할의 리비를 발견하고는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탄성을 내질렀다.

    “오, 세상에.”

    불쌍할 정도로 성의 없는 나무 옷을 뒤집어쓰고 있던 리비의 옷차림이 아름다운 드레스로 바뀌며 숨겨진 외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리비는 제 옷이 세실리아가 입고 있던 드레스와 거의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니?’

    혹시나 해서 객석을 쳐다보니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저를 향해 고갯짓하는 테레제가 보였다.

    리비는 웃음을 터뜨렸다.

    태어나서 본 모든 마법 중 가장 멋진 마법이 제게 걸렸다.

    바로 용기였다.

    “…이 숲은 너무나도 어둡고 무서워. 나는 친구가 필요하네.”

    리비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자 관객은 아까와 달리 사뭇 집중하는 눈으로 무대를 감상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테레제는 리비가 화려한 데뷔를 시작한 때부터 쿨쿨 잠들어버렸다.

    * * *

    띠링!

    [퀘스트: 세실리아 응징 완료]

    ▸보상: 3,000,000코인 획득, 유지스 호감도 상승

    “후후후~ 학폭 가해자는 지옥에나 가 버려라~”

    나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학생회실로 향했다.

    퀘스트도 무사히 완료했고 리비는 활기를 되찾았으며, 발할라 오락실은 사람이 터져나가고 있었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달칵.

    학생회실은 조용했다.

    평상시라면 문을 열자마자 심술부리며 시비를 걸어올 클라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몹시 허전했다.

    나는 괜히 볼을 긁적였다.

    “…오늘도 없네.”

    [‘클라이드’ 루트를 지지하는 성좌들이 매우 실망합니다.]

    ‘그래도 축제 때는 좀 쉬게 하지.’

    이사장도 참 너무했다.

    “어디, 오늘 나랑 같이 다닐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볼까?”

    나는 학생회실 게시판에 붙은 표를 확인했다.

    축제 중 학생회가 하는 역할은 행사를 진행 중인 사교 클럽을 돌아다니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간단히 말해서 순찰이다.

    달칵.

    내가 표를 확인하는 사이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데미안이었다.

    마침 내 순찰 파트너의 이름도 확인한 찰나였다.

    나와 데미안. 둘이서 순찰조였다.

    “안녕, 테레제.”

    데미안은 늘 짓는 친절하고 쾌활한 미소로 내게 문밖을 가리켰다.

    “이만 나갈까? 교대해야 하니까.”

    “아, 으응. 그래.”

    우리는 대화 없이 사람이 북적이는 정원을 돌아다녔다.

    “…….”

    “…….”

    주변의 소음이 다 튕겨 나가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우리 사이에는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그냥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어제 들킨 거야, 아닌 거야? 알 수가 없네.’

    하지만 호감도는 보이지 않고, 데미안의 태도만 보면 날 싫어하는 것 같으니 불안하고 초조했다.

    이런 나와는 달리 데미안은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지나가다 마주치는 친구들과 유쾌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난 다소 뻘쭘하게 서서 싱그럽게 웃는 데미안을 쳐다볼 뿐이었다.

    “자자, 지나갈게요!”

    “비켜주세요! 다칩니다!”

    그때 갑자기 등 뒤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 의아하게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데, 데미안이 돌연 나를 끌어당겼다.

    그는 웃고는 있지만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짐을 옮기던 후배들에게 경고했다.

    “앞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야지.”

    “어엇… 죄송합니다.”

    후배들은 기가 팍 죽은 표정으로 서둘러 지나갔다.

    데미안은 그들이 우리를 지나치자 내 허리를 놓아주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인사했다.

    “고마워.”

    “별거 아니었어.”

    데미안은 대수롭지 않게 넘긴 후 걸음을 옮겼다.

    이걸로 이제 분위기가 좀 풀리는 건가 싶었는데 개뿔.

    그는 또다시 말 한마디 걸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겼다.

    ‘하아. 눈치만 보는 것도 지치네.’

    나는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게 불만이 있으면 차라리 직접 말해줬으면 했다.

    나는 답답함을 못 참고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실수한 거 있어?”

    데미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산뜻하게 대꾸했다.

    “음? 아니. 그건 왜?”

    “네가 날 자꾸 피하길래.”

    내 확신에 찬 어조에 데미안은 섣불리 부정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잠시간 망설인 그는 미소 띤 가면을 천천히 거두었다.

    “그건-”

    콰드드드득!

    데미안의 말은 무언가가 뒤틀리고 부서지는 듯한 소음에 틀어막혔다.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녹색 덩굴이 마구잡이로 자라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으아악! 마법 식물이 폭주한다!”

    “피해!”

    나와 데미안은 서둘러 사고가 발생한 곳으로 달려갔다.

    덩굴은 야외 공연 중이던 미모사를 휘감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꺄악! 살려줘어어어어!”

    “미모사!”

    마법 식물로 꾸며진 야외 공연장에서 연주하던 중 난데없는 폭주에 휘말리고 만 것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스티그마타의 짓이야.’

    이 덩굴은 마력을 일정량 이상 빨아들이면 식인 식물로 진화해버린다.

    막 솟아난 봉오리가 쩌억 입을 벌렸다.

    나는 다급하게 미모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리 와라!”

    그러자 덩굴은 진로를 바꿔 내 쪽으로 이동해 왔다.

    데미안은 곧장 덩굴을 썰어 미모사를 구출해주었다.

    “이, 이거 내가 한 거 아니야….”

    미모사는 벌벌 떨며 완전히 겁먹은 얼굴로 다급하게 말했다.

    “알아. 네가 그랬을 리가 없잖아. 일단 뒤로 물러나. 다른 사람들도 구해야 하니까.”

    내 말을 들은 미모사는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쪽으로 물러서서 덩굴에 끌려가는 다른 학생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타올라 사라져라!”

    나는 마법을 퍼부어 학생들을 구해냈지만, 문제가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덩굴을 아무리 자르고 태워도 끝없이 자라나니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축제 중이라 비마법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합류해, 사람들을 구하고 있는 학생들로는 전세를 뒤집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일리야라도 근처에 있었다면 금방 해결됐을 텐데!’

    그때 데미안이 나를 끌어당겼다.

    “이리로 와, 테레제. 위험하니까.”

    “무슨 소리야? 사람들을 구해야지.”

    내 말에 데미안이 미간을 구겼다.

    “그런 건 곧 교수님들이 처리하실 테니까 넌 그냥…!”

    그때 근처에서 꽤애액 괴성이 들려왔다.

    “나, 난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남학생 하나가 식인 식물에 붙들려 끌려가고 있었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쟤 악마 계약자잖아!’

    큰일이다. 악마 계약자는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 던전을 생성한다고!

    “멈춰!”

    하나 내 마법보다 남학생의 절규가 먼저였다.

    “악마여! 나의 소원을 들어다오!”

    띠링!

    [악마 던전이 생성됩니다.]

    쿠구구구구궁!

    새까만 던전의 문이 식인 식물을 반으로 가르며 우뚝 솟아났다.

    짐승이 아가리를 벌리듯 문이 벌컥 열리고.

    “젠장.”

    데미안이 나직한 욕설과 함께 주변에 결계를 치더니 나를 안고 던전 문으로 달렸다.

    띠링!

    [성좌 ‘청춘은 바로 지금’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패기 보소]

    “어어?! 야, 뭐 하는 거야!”

    “쓸데없는 것까지 같이 들어가면 곤란하니까.”

    성가시기만 할 공략 대원은 필요 없다는 태도였다.

    ‘…아니, 근데 왜 날 데려가냐고!’

    꿀렁-!

    또 불쾌한 감각과 함께 악마의 영역이 나를 감쌌다.

    “흡…!”

    그리고 거기서 기억이 끊겼다.

    18. 데미안 육성 시뮬레이션

    “주인님.”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주인님, 일어나십시오. 오늘 후원할 학생을 고르러 보육원에 가시기로 한 날입니다.”

    “으음.”

    나는 부드러운 이불 속에 파묻혀있다가 부스스 일어났다.

    그러자 시종이 나를 극진하게 부축하여 침대에 기대어 앉게 했다.

    눈을 뜬 곳은 몹시도 호화로운 방이었다.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카펫, 화려한 장식품, 그림을 좋아하는지 벽을 가득 채운 유화들, 잘 차려입은 시종.

    완벽한 상류층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방의 주인이 되어있었다.

    띠링!

    [던전 퀘스트: 데미안 육성 시뮬레이션]

    ▸보상: +10,000,000코인, 발할라로 복귀

    ▸실패: 사망

    데미안 육성 시뮬레이션. 줄여서 데육시.

    현재 데미안은 기억이 봉인된 상태의 10세 아동이 되어 보육원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데미안을 원래 나이인 22살이 되도록 육성하여 기억의 봉인을 해제시킬 것.

    그렇지 못하면 실패. 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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