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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05화 (106/277)

105화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인지 우리에게 점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를 눈친 챈 라울이 큰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는지.

내게 “여긴 아비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가보거라.”라고 말한 뒤 패러데이에게 손짓했다.

“자네는 저기서 나와 잠깐 대화하지.”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대화(물리)]

패러데이는 사색이 되어있었다.

나는 어쩐지 그가 가엾어져서 자리를 뜨기 전에 속삭였다.

“뭐든 그냥 사실대로 말하세요. 어차피 그쪽도 상부에서 시켜서 제게 접근한 거잖아요?”

“…!”

패러데이는 내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지 미련 넘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죄송하지만 수염 자국 난 아저씨가 애달프게 쳐다 봤자 부담스럽기만 하거든요?’

미련 없이 클럽 룸을 벗어난 나는 원래 계획했던 대로 예술과 교양 사교 클럽으로 가보았다.

때마침 극이 끝나고 다음 회차가 시작되기 전, 휴식 시간인 모양인지 주위가 한산했다.

혹시나 해서 안내표를 확인하니 단막극은 하루에 세 번만 한다고 쓰여 있었다.

“이래서야 미모사의 음악회보다 수익률이 낮겠는데?”

훗. 여긴 가뿐하게 제치겠어.

그때 극장에서 나오는 중인 남학생이 보였다.

“저기, 잠깐.”

“네, 넵! 부르셨습니까, 선배님!”

“리비는 어디에 있지?”

“저쪽에 계실 겁니다!”

이상할 정도로 군기가 바짝 든 남학생이 알려준 방향으로 가보니 문이 반쯤 열린 방이 보였다.

“여기인가?”

나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리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달리 실내는 사람 하나 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여긴 대기실이 아니라 분장실처럼 보이는데.”

잘 못 들어왔나?

어쩌면 옆방이 대기실일지도 모르니 장소를 이동하기 위해 대충 닫은 탓에 틈이 벌어진 문으로 다가섰을 때였다.

짝!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가 뺨을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의아하게 문고리를 잡은 순간.

“네까짓 게 어딜 감히 아버지께 인사를 드려?”

세실리아의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분장실까지 선명하게 흘러들어왔다.

[성좌들이 밖의 상황을 궁금해합니다.]

[성좌들이 BJ가 밖을 구경해보길 바라고 있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나는 당혹스러움에 문고리를 놓고 아주 조심스럽게 벽에 몸을 기댔다.

혹시라도 복도에서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혹시 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 착각하지 마. 넌 그냥 아버지가 배설한 쓰레기일 뿐이니까.”

“…….”

“목숨 귀한 줄 알면 쥐 죽은 듯이 살아, 데미안 웨스트.”

젠장. 카펜터 공작에게 시나리오에는 없는 혼외자식이 한 사람쯤 더 있기를 바랐는데.

그러나 세상도 무심하시지. 세실리아에게 뺨을 맞은 사람은 예상대로 데미안이었다.

띠링!

[성좌 ‘막드매니아’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ㄴㅇㄱ]

띠링!

[성좌 ‘로판중독영애’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어쩐지 귀족을 증오하더라니, 이런 출생의 비밀이 있었군요.]

성좌들은 마냥 흥미로워하고 있었지만, 나는 초조하게 식은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이는 데미안의 호감도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뛰어난 암살자다.

그런 만큼 현재 내가 이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수도 있었다.

‘제발 아니길 바라지만.’

만일 그랬을 때, 데미안의 호감도가 붉은 하트 2개 미만이면 아주아주 곤란해졌다.

즉시 검은 하트 3개로 호감도가 수직 낙하하거든.

세실리아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남은 것은 데미안의 침묵, 그리고 미칠 듯이 뛰는 내 심장 박동 소리뿐이었다.

‘만약 들킨 거라면 어떡하지? 지금의 내가 마법으로 데미안을 이길 수 있을까?’

손바닥까지 땀에 젖어 들었을 때.

“혹시 클예부에 가볼 사람 있어? 주변에서 다들 가보라던데. 뭔가 엄청난가 봐.”

“거길 왜 가냐? 차라리 데미사 음악회를 가지.”

예술과 교양 사교 클럽 회원들로 추정되는 이들의 목소리가 분장실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엇? 데미안 선배님! 학생회에 아직 안 가셨어요?”

누군가의 물음에 침묵을 고수하던 데미안이 입을 열었다.

“…응. 놓고 간 게 있어서. 이제 마지막 연극이지? 다들 수고해.”

“네, 선배님!”

그렇게 데미안이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예술과 교양 회원들과 마주치기 전에 재빨리 분장실과 연결된 극장으로 도망쳤다.

다행히도 극장 안은 아무도 없었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이딴 이벤트가 생겨나서는!”

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자 성좌들이 왜 그러냐고 묻는 알림을 띄웠다.

나는 울적하게 방금 상황이 데미안의 호감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했다.

“하아. 시스템은 대체 언제 복구되는 거야…….”

터덜터덜.

기력이 쇠한 걸음으로 극장 입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

리비는 나와 마주치게 될 줄 몰랐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갑자기 리비가 나타나 놀랐다.

“왜 분장실이나 대기실로 안 가고 여기로 왔어?”

“아. 그게요.”

리비는 당황한 표정으로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황급히 말했다.

“여, 연습하려고요.”

“연습?”

“네!”

……나무를 연습한다고?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리비가 물었다.

“마지막 연극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좀 남았는데 일찍 왔네요.”

“응. 너 보러 왔지.”

내 말에 리비의 묘하게 경직되어있던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헤헤. 참! 저 발할라 오락실에 가보고 싶어요.”

“연습은?”

“이제 안 해도 돼요.”

나는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지만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리비를 살펴보았다.

‘오늘따라 뭔가 좀 이상한데.’

혼자서 아무도 없는 극장에 들어온 것도 그렇고.

“혹시 무슨 일 있어?”

“네? 아뇨?”

굳이 내게 말하고 싶은 고민이 아닐 수도 있으니 적당히 넘어가는 게 좋을 듯했다.

“클예부로 가자. 부모님이랑 주세페도 거기에 있어.”

“좋아요!”

나는 리비와 함께 복도로 나와 클예부로 향하다가 문득 뒤를 힐끗 보았다.

아마도 데미안이 있었을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

입맛이 썼다.

* * *

리비는 발할라 오락실에서 실컷 게임을 하고 기분 좋게 분장실로 돌아갔다.

‘카드 뒤집기 게임이 어려웠어.’

자신은 테레제나 주세페처럼 멋지게 랭킹에 들 수 없었다.

심지어 고작 [4×4]였는데도.

테레제는 이렇게 위로했다.

“사람들이 순위 경쟁에 미쳐서 그래. 너도 코인 100장쯤 쓰면 10위 안에 들 수 있을 거야.”

실제로 테레제와 주세페를 제외한 사람들은 랭킹에 들기 위해 엄청나게 코인을 썼다고 했다.

승부욕이 없는 리비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기에 다른 게임들도 골고루 즐겼다.

“재밌었다. 헤헤.”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즐거웠으니 그걸로 된 것이다.

리비는 새삼스레 자신이 무척 안전한 데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야.’

위험천만했던 유랑 극단 생활 중에도 곧잘 자신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지금은 꿈에 그린 듯한 가족들까지 되찾았다.

처음에는 조금 삐걱거리는 듯했던 언니와도 다들 화목해졌고.

리비는 분장실로 들어가기 직전, 멈칫했으나 불끈 기합을 넣었다.

“…잘 해내 보자.”

달칵.

분장실 안은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분주했다.

이미 준비를 끝마친 이들은 저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카드 게임을 하거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들은 분장실을 들어온 사람이 리비임을 확인한 순간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그러는 행동이 다소 뻣뻣하고 어색했다.

리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분장 소품을 가지러 이동했다.

연극이 시작되기 15분 전.

리비는 누덕누덕 기운 나무 옷과 손에 쥐고 있어야 할 나뭇가지를 챙기려 했다.

한데 나뭇가지가 도통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여기다 뒀는데 어디로 갔지?’

리비가 혼자서 나뭇가지를 찾느라 고군분투할 동안 학생들은 저들끼리 깔깔 웃으며 떠들어댔다.

“저희 또 같이 광장 카페에 가요! 지난번에 간 곳 너무 맛있었어요.”

예술과 교양 회원들은 서로 사이가 좋았다.

그들은 굳이 클럽 활동이 아니더라도 사적으로 만나서 맛있는 케이크 가게를 가보거나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리비도 분명 그러한 때가 있었다.

세실리아와 이자벨이 학교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때 신입생이면서도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세실리아가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이제 저도 돌아왔으니 다음번에는 카펜터 공작저로 오시죠. 훨씬 좋은 걸 대접할 테니.”

그러자 다들 기대감에 들뜬 탄성을 내질렀다.

공작저에 초대되는 건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펜터 공작가라니!

“하하! 대단한 후배님을 둔 덕분에 귀중한 경험을 하겠는걸?”

세실리아는 암암리에 황후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도 해서 다들 친해지고 싶어 안달이었다.

한때 잠깐 테레제가 황제의 연인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자 다들 뜬소문이라 여겼다.

“이번에는 부학생회장님도 함께 하면 좋을 텐데요.”

데미안을 흠모하는 한 영애의 중얼거림에 세실리아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별수 없죠. 그 선배는 바쁘니까요. 저희끼리 재미있게 놀아요.”

클럽 회원 중에는 잠깐 리비를 힐끗거리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실리아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그때 리비는 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힌 나뭇가지를 간신히 발견했다.

“휴우, 다행이다.”

비록 나무라는 작은 역할이지만, 무대에 오르는 배역인 이상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만큼 연극이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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