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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03화 (104/277)

103화

* * *

5월 17일.

마법협회 소속 마법사, 패러데이는 협회의 황당한 지령을 받고 외근을 나와 있었다.

「테레제 스콰이어 공녀에게 접근해 던전의 비밀을 밝혀내시오.」

그리하여 패러데이는 발할라 축제에 참석한 상태였다.

“축제 날에 접근해서 대체 그런 비밀을 어떻게 캐라는 거야? 하여간 데스크 업무하는 것들 머리에서 나오는 발상이란. 현장 상황을 하나도 모르지.”

그는 협회의 썩어빠진 시스템에 욕설을 퍼부으며 북적이는 인파를 뚫고 안내판에 다가섰다.

“클예부 위치가… 여기군.”

이사장 손자의 예비 신부가 되고 싶은 영애들의 황당한 사교 클럽에 대해서는 그도 익히 들은 바 있었다.

보나 마나 정신머리 없는 영애들이 우르르 모여 피아노나 뚱땅뚱땅 치고 디저트 맛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게 전부겠지.

그 나이대의 영애들이 모여 하는 일은 하나 같이 비창의적이고 재미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곳에 저 같은 시커먼 아저씨가 어떻게 끼라는 말인가?

“으으. 어제 마신 술이 올라오는 것 같군.”

패러데이는 부정적인 기운이 한가득 담긴 한숨을 푹푹 쉬며 클예부 클럽 룸으로 향했다.

멈칫.

“……여기가 맞나?”

그는 클럽 룸으로 들어가려고 길게 늘어선 줄을 힐끗거리며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여기가 정말 클예부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 ♩♬ ♩♬!

클럽 룸에서는 파티에서 으레 들을 수 있는 곡이 아닌, 몹시 이상하고 독특한 선율로 이루어진 곡이 들려왔다.

규칙적인 음률은 비밀스러운 곳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자 검은 로브로 몸을 감싼 여성이 다가왔다.

커다란 후드와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검은 나비 가면 때문에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발할라 학생이겠지…?’

“어서 오십시오, 플레이어님.”

“…예? 플레이어요?”

패러데이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으며 눈을 멍하게 끔뻑였다.

그사이 여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발할라 오락실’의 게임 마스터, ‘검은 나비’입니다.”

패러데이는 이상하리만큼 압도되는 기분이 들어 공연히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 예에. 바, 반갑습니다….”

검은 나비가 옆을 가리켰다.

“게임에 참가하길 원하신다면 티켓박스로 가셔서 게임 머니를 구매하십시오.”

패러데이는 홀린 듯 티켓박스로 이동했다.

티켓박스에는 검은 나비처럼 후드가 달린 검은 로브를 입고 얼굴에는 뿔이 달린 도깨비 가면을 쓴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게임 머니를 구매하러 왔습니다.”

도깨비가 테이블에 놓인 가격표를 짚으며 말했다.

“이 카드는 게임에 참가하고 싶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게임 머니, ‘코인’입니다. 1장은 1만 겔랑, 10장은 9만 겔랑입니다.”

코인은 실제 돈이 아니라 매우 아름다운 나비가 그려진 카드였다.

패러데이는 왜 이런 번거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때 귀부인이 다가와 감탄을 터뜨렸다.

“어머, 귀여워라. 이 나비 카드 파는 건가요? 1장만 줘보세요.”

“1만 겔랑입니다.”

“네, 여기.”

그제야 패러데이는 이 카드 자체가 기념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로도 게임에 흥미가 없는 귀족들이 카드가 예쁘다는 이유로 하나씩 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게임 머니를 만들었다니.

화가를 섭외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좀 아까운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게임 머니는 놀라울 만큼 상당히 저렴했다.

물론 발할라에서 폭리를 취하려는 행위를 엄격히 제한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음악회 티켓이 30만 겔랑인 것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없었다.

게다가 10장을 사면 1만 겔랑을 이득 볼 수도 있었고.

‘이래서야 여기는 1위 클럽이 되긴 글렀군.’

명예의 전당에 오른 사교 클럽은 수도의 사교계에도 소문이 날 정도로 명성이 높아졌기에 그도 익히 알고 있었다.

“10장으로 하겠습니다.”

그는 게임 머니를 구매한 후 대기 줄로 가서 입장을 기다렸다.

그때 앞줄에서 일행들끼리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50장은 살 걸 그랬어.”

“그러게. 게임 머니만 넉넉했어도 이렇게 밖에서 대기할 필요 없었는데.”

“…….”

‘10장은 너무 적었나?’

패러데이는 갑자기 후회되었다.

‘헛. 아니지. 난 여기에 게임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스콰이어 공녀를 만나러 온 거라고.’

대기 줄은 금방 줄어들어 그도 클럽 룸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내부는 대단히 넓었고, 곳곳에 게임을 할 수 있는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적절한 휴식 공간이 존재했으며 차와 다과를 팔기도 했다.

‘사람들이 클럽 룸에서 체류하는 시간을 늘리려는 방법이군.’

여기서 재미만 붙이면 굳이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계속 돈을 쓰게 될 테니 상당히 머리가 좋은 방법이었다.

‘클럽 회원 중에 상인이 있나?’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게임 마스터의 수가 상당히 많았는데, 전부 발할라 학생인 듯했다.

“연주도 게임 마스터가 직접 하는 거였다니. 허어.”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고 파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 게임 마스터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자잘한 일은 사용인에게 맡기는 다른 클럽 행사와는 달랐다.

‘그나저나 스콰이어 공녀는 어디에 있지?’

패러데이는 파티와는 연이 없는 타입이었기에 테레제의 생김새를 몰랐다.

아는 거라고는 고약한 성질머리에 어울리지 않는 대단한 미인이라는 것뿐.

그러나 게임 마스터들은 전부 커다란 가면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어 누가 미인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때 그에게 다른 게임 마스터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플레이어님. 처음 오셨습니까?”

“아, 예.”

“여기 이름을 작성해주십시오.”

“예에.”

순식간에 패러데이의 명찰이 만들어졌다.

“이제 원하시는 게임을 선택해 플레이하시면 됩니다. 선택이 어려우시면 난이도에 따라 추천해드리겠습니다.”

패러데이는 낯선 상황에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다가 어쩐지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걸 느꼈다.

‘굉장히 친절하군.’

혹시라도 이 클럽 룸의 규칙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경직되어 있었는데, 게임 마스터들은 그의 곤란을 금방 눈치채고 다가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게임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낯선 것을 대할 때의 날카로운 긴장감 대신 기분 좋은 설렘이 느껴졌다.

패러데이는 영애들을 무시하던 태도 대신 정중한 자세로 물었다.

“우선 쉬운 게임을 먼저 해보고 싶습니다만. 추천해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리로 오시죠.”

패러데이는 부스를 지나치던 중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게임이 1코인만 사용하는 게 아니었어.’

게임은 종류에 따라 2코인, 3코인을 한 번에 지불해야 하기도 했다.

그가 안내받은 게임은 1코인짜리 ‘하노이 탑’이었다.

테이블에는 게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따로 작성되어 있었다.

“호오. 작은 원반 위에 큰 원반을 놓을 수 없다?”

“그렇습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세 원반을 다른 기둥으로 옮기시면 됩니다.”

패러데이는 코인을 하나 내고 원반을 다른 기둥으로 옮겼다.

“우와아!”

“저 아저씨 엄청 빨라!”

성인을 겨냥한 게임이 아닌지, 모여있는 사람은 전부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는 머쓱하게 원반을 마저 옮긴 뒤 게임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대단하시군요. 이토록 빠른 속도로 원반을 옮기신 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크흠.”

솔직히 그가 하기에는 시시한 게임이었지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패러데이는 더 어려운 게임에 도전할 용기가 생겨 물었다.

“여기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뭡니까?”

그러자 게임 마스터가 뒤편을 가리켰다.

척 보아도 가장 많은 플레이어와 구경꾼이 몰려있는 장소였다.

“카드 뒤집기 게임입니다.”

패러데이는 호기심이 동하는 것을 느끼며 그곳으로 가보았다.

테레제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협회의 지령은 머릿속에서 까마득하게 지워진 상태였다.

매끈한 벽에는 검은 벨벳으로 감싸놓은 단 세 개의 커다란 판만이 존재했다.

판 위에 놓인 새하얀 카드들은 중력을 무시한 채 오와 열을 맞춰 붙어 있었는데, 흡착 마법을 사용한 듯했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했다.

정해진 시간 동안 한 쌍의 같은 그림 카드 위치를 기억한 후 빠르게 뒤집어 나가면 끝이었다.

게임은 세 단계가 있었다.

[4×4]

[8×8]

[12×12]

왼쪽 판에서 오른쪽 판으로 갈수록 카드 수가 늘었으며, 게임비는 3코인이었다.

설명문 이외에도 이곳에는 커다란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훈수 두시는 분은 침묵 마법으로 제재하겠습니다. 심할 경우 퇴장될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하긴. 훈수 두기 좋은 게임이군.”

특별한 지적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 암기 게임이었기에 너도나도 위치를 알려줄 위험이 있었다.

여기서 그런 행위를 철저히 지양하는 이유도 존재했다.

바로 랭킹 제도 때문이었다.

패러데이는 [12×12 랭킹] 판을 확인했다.

[1위 레이니 로즈]

[2위 펠릭스 록하트]

.

.

.

단순히 게임을 깨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누가 가장 빨리 카드를 전부 뒤집느냐도 관건이었다.

본인 기록이 깨지는 순간 더 압도적인 기록을 내기 위해 코인을 잔뜩 구매한 이들이 여럿 보였다.

‘흠. 단순 암기는 쉽지.’

그는 자신만만하게 [12×12]부터 도전하려 했으나 게임 마스터에게 가로막혔다.

“[12×12]은 앞선 두 단계를 전부 클리어하신 분들께만 기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플레이 시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생긴 규칙이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패러데이는 합리적인 규칙이라고 생각하며 납득했다.

그는 [4×4]부터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20위라고요?”

나름 만족스러운 속도로 카드를 뒤집었다고 생각했는데 [4×4] 내에서의 랭킹이 고작 20위로 그치고 말았다.

“한 번 더 하겠습니다!”

그때 뒤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 뒤에 사람 기다리는 거 안 보여요?”

검은 머리카락과 연둣빛 눈동자가 싱그러운 소년이었다.

척 봐도 심상치 않은 외모에 화려한 옷차림이었다.

패러데이는 머쓱하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소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숨을 픽 내쉬더니 게임을 시작했다.

“끝.”

“…?!”

게임 마스터가 말했다.

“1위를 축하드립니다.”

소년은 건방진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시시하네.”

그러고는 곧바로 옆의 [8×8]으로 이동했다.

패러데이는 서둘러 랭킹 판에 기록된 소년의 이름을 확인했다.

[1위 주세페 스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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