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100화 (101/277)

100화

17. 축제

월요일 오전. 중간고사 시험 결과가 나왔다.

중간고사 총점: A

“해냈다!!”

심지어 학년 등수는 36위.

엄청난 쾌거였다.

나는 발할라 사용인이 전달해준 성적표를 받은 후부터 계속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등교할 준비를 마쳤다.

“우리 천재 아가씨, 잘 다녀오세요!”

“거참. 천재까지는 아니라니까 그러네. 후후.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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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이네]

오늘 등굣길은 유난히 북적였다.

“이 시간에 등교하는 학생 수가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나는 이른 시간에 등교해서 책을 읽거나 레이니와 함께 아침을 먹는 편이었다.

한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많은 학생이 일찍 등교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등교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생환이 사실인지, 사지는 멀쩡한지 확인하려는 이유겠지.

“흥. 이제 이 정도 시선은 아무렇지도 않아.”

판테온에서의 팬미팅 경험 덕분에 학생들의 시선 정도는 시시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때였다.

“사, 사사사, 살아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갑자기 내 앞에 불쑥 나타난 남자가 꽃다발을 건네며 축하했다.

“…고맙긴 한데, 누구?”

어리둥절하게 꽃다발을 힐끗 보며 상대의 정체를 묻는데, 그를 기점으로 갑자기 학생들이 내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테레제 선배님! 존경합니다!”

“전부터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손 한 번만 잡아주세요!”

“팬이에요!”

……다들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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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할라가 뒤집히고 판테온이 놀라는 테레제의 영향력]

나를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악수 요청에 정신이 혼미해지려 할 때였다.

두두두두두!

뭔가가 개떼처럼 달려드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우글우글 다가오는 중인 클예부의 모습이 보였다.

“테레제 니이이임―!”

그들은 인파를 뚫는 일에 특화된 기술을 지니고 있어, 학생들을 모세의 기적처럼 가르고 다가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끅!”

얘들아, 힘 좀 풀어줄래?

영애들은 감정이 북받친 건지 나를 중심으로 겹겹이 부둥켜안고서 엉엉 울었다.

“흑흑, 정말로 살아계셔!”

“앞으로는 절대 죽지 마세요! 허어어어엉!”

“알겠으니까 좀 놔줄래?”

“으아아아앙! 다행이에요, 정말!”

그래. 실컷 울어라. 내 교복에다 콧물은 묻히지 말고.

클예부는 통곡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소곳하게 손수건으로 눈가를 콕콕 찍었다.

“테레제 님이 없는 클예부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어요.”

“우리는 하나예요!”

정말로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

“선배!”

간신히 클예부를 떨치고 나자 온갖 포션을 바리바리 챙겨 온 레이니가 내게 강제로 떠안겼다.

그러고는 펑펑 울면서 나를 다그쳤다.

“앞으로는 손끝 하나 다치지 말라고요!”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박력에 밀려 그러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눈물의 재회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미모사가 날 직접 찾아온 것이다.

“어, 미모사. 안녕? 오랜만이다.”

미모사는 내가 살아있는 모습을 확인하더니 약간 눈가가 빨개졌다.

“뭐야, 너! 누가 네 멋대로 죽으랬어?!”

“살아있는데?”

“시끄러워, 이 바보야!”

바보에게 바보라는 말을 듣다니.

내 성적표를 보여주며 놀리고 싶었지만, 턱에 호두까지 만들며 울먹거리고 있는 미모사에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대신 꼭 안아주었다.

“그래, 그래. 나도 이렇게 다시 널 보니까 반가워, 미모사. 너의 카랑카랑한 시비가 그립더라.”

“뭐, 뭣? …갑자기 왜 끌어안아?! 당장 놓지 못해?!”

“좋으면서 그러네.”

“놔! 놓으라고! 이 무식하게 힘만 센 게 진짜!”

이런 걸 보면 미운 정도 참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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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어느새 이만큼이나 친구도 생기고… 다 컸네]

미모사와 애증으로 이루어진 감격의 재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던전 한 번 다녀왔다고 요란은.”

주어가 없는 비아냥이었다.

하나 겨냥한 상대가 나라는 게 너무 불 보듯 뻔한 시비여서 못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품에서 버둥거리는 미모사를 놓아주며 고개를 삐딱하게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윌로우 녀석들이 똘똘 뭉쳐 낄낄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중에는 델브 던전을 들어가기 전, 클라이드가 도서관에 가뒀던 앤서니를 비롯한 다른 놈들도 있었다.

그들은 명백히 내게 적의를 드러냈다.

“누가 보면 나라를 구한 줄 알겠네.”

“지금까지 한 번도 던전에 가지 않았던 걸 문제 삼아야 하지 않아?”

“진짜 고생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박수는 엉뚱한 사람이 받고 있으니. 쯧.”

다른 가문의 방계 귀족이었다면 사실 이런 시비는 어림도 없었다.

하나 저들이 윌로우이기에 신분을 막론하고 내게 덤비는 것이다.

미모사는 윌로우 가문만 믿고 설치는 녀석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쟤들 왜 저래? 죽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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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 탈출 서비스받고 싶어서 그러는 듯]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원래 호가호위라고, 별것도 아닌 것들이 더 나대는 법이지.”

“호호가위가 뭔데? 잘 잘려?”

“……그런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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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가위 실화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윌로우 놈들이 순간 발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어, 저기!”

윌로우 놈들이 입구를 가리키며 반색했다.

나와 미모사도 반사적으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아하.”

나는 그제야 윌로우 놈들이 나대는 이유를 깨달았다.

멀리서부터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두 신입생 때문이었다.

한 명은 길고 풍성한 하늘색 머리카락을 포니테일 스타일로 높게 묶어 올린 금색 눈의 미인이었다.

“세실리아 카펜터 공녀!”

5대 공작가 중 한 곳인 카펜터 가문의 직계 혈족이다.

세실리아 옆으로는 긴 생머리 은발을 청초하게 늘어뜨린 미인이 다소곳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사장의 손녀이자 클라이드에게는 사촌누이인 이자벨 브론테 후작 영애였다.

테레제와 미모사가 4학년으로 까마득한 선배 악역이라면, 저들은 리비와 같은 신입생인 악역이었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세실리아가 우리를 향해 건방진 표정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자벨은 말없이 묵례만 할 뿐,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저것들이?”

미모사는 눈에 불을 켰지만, 나는 심드렁했다.

두 사람이 우리를 무시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 두 사람은 손꼽히는 엘리트 마법사였으며, 일찍부터 마수를 상대하고 던전을 공략하고 다녔거든.

지금까지 학교에서 감감무소식이었던 것도 던전 공략 일정이 빽빽했던 탓이었다.

나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안녕, 세실리아.”

그러자 세실리아가 이상한 걸 목격한 것처럼 미간을 좁혔다.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아. 던전에서 무사히 살아왔으니 당연한가요?”

세실리아는 내가 길길이 날뛰기를 바라고 말한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타격감이 없었다.

나는 세실리아를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

“응. 기분 최고야.”

세실리아는 내 미소가 물벼락이라도 되는 것처럼 흠칫하더니 미간을 구겼다.

“…흥. 가자, 이자벨.”

이자벨은 검푸른 눈동자로 날 묘하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실리아를 뒤따라 사라졌다.

윌로우 놈들은 내가 비참하게 밀리는 그림을 바랐다가 실망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았다.

콱씨. 눈깔 안 까냐? 어?

내가 흰자를 번들거리자 놈들은 깨갱하며 자리를 떠났다.

옆을 보니 미모사도 살벌한 표정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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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메이트]

미모사는 갑자기 날 향해 눈을 뾰족하게 떴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알아?”

“모르겠는데?”

“아악! 짜증 나! 네가 윌로우라면 껌뻑 죽으니까 저까짓 후작 영애 따위가 나도 무시하잖아!”

“할아버지가 이사장이니까 그렇겠지. 그리고… 아니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뭐겠니. 너랑 내가 멸악 활동의 의무를 저버린 데다 성적도 형편없는 마법사니까 그렇지.

‘쟤들은 지독한 엘리트주의라고.’

나는 진실을 말하는 대신 손목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엇, 강의 늦겠다. 나 먼저 갈게!”

“뭔데? 왜 말 안 해줘! 그리고 너 손목에 시계도 없잖아!”

“어어, 나중에 보자.”

뒤에서 길길이 날뛰는 미모사에게 대충 손을 흔들며 계단을 오르던 중.

“!”

층계참에서 데미안과 맞닥뜨렸다.

데미안은 나와 마주칠 줄 몰랐는지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테레제.”

한데 어딘가 평소와 달랐다.

“너 어디 아파?”

“…왜 그렇게 생각해?”

“평소랑 달라 보여서.”

그는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가 내게 선을 긋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 데미안이 말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그러고는 내가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휙 스쳐 지나갔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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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차가워진 것 같은데?]

시스템은 여전히 복구 중이어서 호감도를 확인해볼 수도 없었다.

‘기분 탓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강의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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