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98화 (99/277)
  • 98화

    내가 갑자기 몸을 들썩이니 일리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문제가 있나?”

    문제가 있기는 하죠. 갑자기 제 순위가 너무 올라가 있는데요?

    나는 얼버무리듯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띠링!

    [성좌 ‘성적충’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캬 복귀하자마자 랭킹 치솟는 거 봐라 ㅋㅋ]

    띠링!

    [성좌 ‘캠페인 광고 유입’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저는 광고 보고 왔어요~ 오즈월드 스트림에서 송출하는 프로필 영상에서 뚝딱뚝딱 춤추는 모습이 귀엽더라구요~ ㅎㅎ]

    “…….”

    나는 자괴감에 휩싸여 얼른 방송 설정창과 후원창을 꺼버렸다.

    오즈월드 스트림 프로필 영상 촬영은 내가 소화한 수많은 일정 중 단연코 최악의 흑역사였다.

    내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자 일리야가 읽던 책을 덮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중이 안 되는 모양이니 여기까지 하지.”

    이런.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허둥지둥 그가 문으로 가지 못하게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아니에요, 교수님! 지금부터 제대로 집중할게요. 가지 마세요!”

    일리야의 시선이 차단기처럼 가로막고 있는 내 팔에 닿았다가 이내 눈을 마주쳐왔다.

    “자리에 머물길 권유하는 방식이 독특하군.”

    그 말에 머쓱하게 팔을 오므렸다.

    “마음이 급해서 그만….”

    나는 우물쭈물 눈치를 살폈다.

    “혹시 화나신 건 아니죠…?”

    일리야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 화가 나지?”

    다른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면 추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일리야는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껏 시간을 내주셨는데 제가 집중을 못 해서 실례를 저질렀으니까요…?”

    “난 네 지능이 받쳐주지 못해 일어난 안타까운 문제에 화가 나지 않는다.”

    “…….”

    띠링!

    [성좌 ‘팩트도 폭력이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관대함이 꽤 지독하네…]

    내가 느끼기에도 차라리 화가 나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약간 불퉁해진 얼굴로 말했다.

    “제가 집중을 못 해서 실망하셨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나?”

    “네에.”

    그러자 일리야가 서고에 들어오기 직전처럼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표정한 얼굴만 보면 날 꾸중하는 것 같은데, 손길은 녹아내릴 듯이 다정했다.

    “네게 실망한 적 없으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아끼는 제자라고 말했잖아.”

    “교수님….”

    띠링!

    [성좌 ‘팩트도 폭력이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실망도 수준이 맞아야 하는 법이니까…]

    성좌의 후원 코멘트에 감동이 와장창 깨졌다.

    ‘으음. 일리 있는 말이야.’

    뭐, 설령 그렇더라도 일리야가 제자라고 직접 칭하는 건 붉은 하트 2개 이상일 때였다.

    그러니까 나를 아끼는 제자라고 말한 일리야의 진심을 왜곡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을 거두며 말했다.

    “내일 시험 잘 보도록.”

    “네!”

    * * *

    일요일의 발할라는 고요했다.

    물론 이는 학생들로 북적이는 평일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고요함이었다.

    마법 학교를 겸한 윌로우 공작저는 일반적인 귀족의 저택보다 월등히 많은 사용인을 써야 했으니까.

    게다가 기숙사에 머무는 평민 학생들의 수도 제법 될 테고.

    ‘하지만 오늘 교복을 입고 등교한 사람은 내가 유일하겠지.’

    슥슥슥.

    나는 마지막 문제의 답을 작성한 뒤 앞에서 눈썹을 꿈틀대며 두 눈을 의심하는 중인 교수를 향해 말했다.

    “끝났습니다, 교수님. 이만 나가봐도 될까요?”

    교수는 시험지를 가져가 답안을 확인해보더니 다시금 묘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띠링!

    [성좌 ‘음모론자’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개망나니 공녀가 지능을 숨김]

    “…정확한 결과는 내일 발표될 겁니다.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던전에 끌려 들어가는 바람에 한참 늦어진 중간고사 시험이 마침내 끝났다.

    강의실을 나온 후 곧장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똑똑.

    “이사장님, 테레제 스콰이어입니다.”

    바로 이사장실이었다.

    안에서 사용인이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는데, 나를 직접 맞이하러 나온 이사장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사장실은 정오의 햇살이 은은하게 파고든 우아한 공간이었으나, 나는 미처 내부를 살펴볼 새도 없이 와락 끌어안겨 졌다.

    “오, 테레제. 이렇게 자네를 다시 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구나.”

    “아, 네에….”

    이사장은 내게 원치 않는 감격의 재회를 시도했다.

    ‘이거 좀 놔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지금 바라는 건 자상한 할아버지가 아니라 이사장실의 실제 구현 정도를 확인하는 거였다.

    이사장실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으니 기회가 있을 때 실컷 봐두고 싶었다.

    “자자, 이리로 오게.”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이사장은 다정한 태도로 나를 소파로 데려가 앉혀주었다.

    테이블 위는 예쁘게 차려진 다과와 달콤한 꿀이 가득 담긴 크리스털 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긋한 홍차가 놓여 있었다.

    “자, 들게.”

    “감사합니다.”

    나는 찻잔 표면의 따스한 온도를 느끼며 조용히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공간은 주인의 성격을 대변한다.

    그랬기에 이사장실은 숨이 막힐 정도로 완벽한 오와 열을 갖추고 있었다.

    가구는 전부 대칭을 이루었고 업무 책상은 정중앙에 자리했다.

    그의 강박적이고 완고한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실내였다.

    하나 노엘 윌로우라는 사람만 놓고 보면 그저 여유롭고 너그러워 보일 뿐, 강박적이고 엄격한 본래 성격을 알기가 어려웠다.

    ‘정반대로는 펠릭스 교수가 있지. 그의 연구실은 엉망진창이니까.’

    음…… 어쩌면 내 방도.

    문득 방을 치워주는 사용인의 존재에 감사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달그락.

    그때, 찻잔이 접시에 부딪히는 희미한 소리가 들려 퍼뜩 시선을 돌렸다.

    이사장이 어느새 주변에 정신 팔린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제 시험은 전부 끝났다고 들었네. 이번 자네의 예상 학점이 A라고? 솔직히 놀랍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4학년이니까요?”

    띠링!

    [성좌 ‘프로훈수러’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고3도 테레제보단 학년 핑계 덜 댈 듯]

    내 대답이 황당했는지 이사장은 그답지 않게 잠깐 말이 없다가 허허 웃음을 흘렸다.

    “내 질문이 어리석었군. 4학년이 되면 학점 관리에 소홀했던 학생들도 졸업을 위해 열심히 하곤 하지. 이해했네.”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사장은 그냥 이 주제로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적당히 수긍한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화제를 돌렸다.

    “던전 보고서를 제출했다지? 혹시 제출 전에 클라이드의 보고서를 읽어보았나?”

    “네.”

    “그래. 그런 것 같더군. 자네의 보고서에도 두 사람이 던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이 빠져있는 걸 보면 말이지.”

    던전은 악마 계약자가 어떤 걸 바라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가상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경향성을 띠기 마련이었기에 던전 보고서의 중요도는 매우 높았다.

    던전 공략대의 보고서 내용에 차이가 있을 경우, 개인 영리를 위한 짓이었음이 밝혀지면 거의 사형을 받을 정도였다.

    물론 윌로우 가문이라면 사형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상당히 곤란해졌을 게 분명했다.

    “왜 그랬는지 물어도 되겠나?”

    이사장은 대단히 의아해하고 있었다.

    나는 원수 가문인 윌로우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혹은 클라이드와 결혼시켜달라고 협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냥 말을 맞춰주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다.

    “클라이드가 위험해지잖아요. 그게 싫어서요.”

    던전에서 내가 대신 죽는 걸 선택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클라이드는 나를 위해 희생했다.

    그건 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클라이드는 단순한 공작가 후계자가 아니라네. 성유물의 주인이며 그간 제국에 쌓은 공이 적지 않지. 그리 위험해질 일은 없을 텐데도?”

    “결국, 그건 가정이잖아요? 클라이드가 절대로 죽지 않는 신이 아닌 이상, 별로 내키지 않아요.”

    나의 올곧은 눈빛을 응시하던 이사장은 돌연 힘이 빠진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군. 아주 간단한 이유였어.”

    이사장은 경계를 늦추진 않으면서도 아까보단 조금 누그러진 태도로 내게 물었다.

    “혹시 원하는 게 있나? 클라이드의 할아비로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데.”

    “아, 정말요?”

    “뭐든 말해보게.”

    “그러면 저 이사장실을 좀 구경해도 될까요?”

    띠링!

    [성좌 ‘물질만능주의’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이사장실을 구경하고 싶다고?”

    “네.”

    내가 엉덩이를 슬쩍 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사장은 진심으로 당황한 듯 보였다.

    “그……렇게 하게.”

    “감사합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이사장실을 구석구석 쏘다녔다.

    “와…… 오…….”

    이 숨 막히는 칼각. 완벽한 정리.

    심지어 먼지 한 톨도 없었다.

    게다가 개인 수집품인지 희귀한 마법서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구경을 마쳤다.

    “잘 구경했습니다, 이사장님.”

    이사장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이걸로 되겠나?”

    “네.”

    “…알았네. 자네도 이만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군.”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이제 슬슬 기숙사로 돌아가서 쉬고 싶어졌거든.

    별일 없이 이사장실을 나와 기숙사로 돌아가니 짐을 정리 중이던 엘로이즈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 이사장님 면담도 있으시다더니 일찍 오셨네요!”

    “응, 시험이 빨리 끝났거든.”

    “시험은 잘 보셨어요?”

    나는 훗, 하고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퇴학당하지 않을 정도로는 봤어.”

    “퇴학당하지 않을 정도라면…?”

    엘로이즈는 내 성적이 최소 A-는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소리 질렀다.

    “꺄악! 정말이세요? 어떡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더니 성적이 엄청나게 올랐잖아요?! 가주님께 알려야겠어요.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성적표 나오면 그때 알려드려도 늦지 않아.”

    “그래도요! 이럴 게 아니라 식당에다 오늘 저녁은 특별하게 차리라고 전달해야겠어요. 샴페인도 따고요!”

    엘로이즈는 방방 뛰다가 재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띠링!

    [성좌 ‘팩트도 폭력이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누가 보면 수석이라도 한 줄 알겠어]

    수석이라고 하니 문득 클라이드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클라이드는 지금 기숙사에 있으려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