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띠링!
[성좌 ‘방송 천재 테레제’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나라도 세상이 테레제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할 듯;]
“됐어, 이제 이상한 이야기는 그만해.”
“이상한 이야기라니요! 이런 일들 때문에 사교계에서 아가씨를 초대하려고 다들 혈안이에요. 이제 사교 시즌이 시작됐잖아요.”
사교 시즌은 보통 4월의 끝자락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 5월.
여기저기서 파티 초대가 들어올 때는 맞지만, 그간의 사건들 때문인지 유독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엘로이즈는 시무룩하게 말했다.
“가주님께서 모조리 거절하셨지만요.”
“잘됐네.”
“잘됐다니요?! 아가씨께서는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사교계를 휩쓸고 다니셔야 하는데, 이게 뭐예요!”
엘로이즈는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테이블에 잔뜩 쌓인 책과 마력 연산표 등을 저주스럽게 노려보았다.
일리야는 우리 가문에 머무르며 내가 <속성 마법> 시험에서 틀린 부분을 직접 지도해 주고 있었다.
“그 교수님은 여기가 학교인 줄 아시는 건가요? 어째서 아가씨께 이상한 숙제를 내시냔 말이에요!”
그 순간 노크가 들려왔다.
“아가씨, 일리야 번스타인 교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흐이익!”
엘로이즈는 소스라치게 기겁하며 한껏 낮춘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제 말이 들리진 않았겠죠?”
“글쎄? 나야 모르지.”
“으앙, 아가씨이이이.”
띠링!
[성좌 ‘스콰이어 절대 지켜’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엘로이즈 볼수록 정가네 ㅋㅋ]
엘로이즈의 평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친밀도가 높아질수록 충성도와 능력치 역시 비례하게 올라가는 가신 캐릭터니까.’
엘로이즈가 울상으로 매달렸으나 나는 어깨를 토닥여준 뒤 책을 챙겨 방 밖으로 나왔다.
학교에서 늘 정갈하게 갖춰 입은 모습이었던 일리야는 느슨한 복장에 머리카락도 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감정 한 톨 느끼기 어렵던 무뚝뚝한 인상이 한결 사람다워 보였다.
“가지.”
가벼운 인사조차 없이 목적부터 행하는 지독한 목표지향적 성격 탓에 도로 기계 인간처럼 보이긴 했지만.
“네.”
우리는 햇살이 부드럽게 침범해 둥근 아치형 그림자가 바닥에 그려진 회랑을 따라 서고로 향했다.
어느새 주변은 봄의 절정을 알리는 장미꽃이 만개해 있었고 미지근한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모든 게 적당히 좋은, 절묘한 날이었다.
나는 살랑이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다가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일리야가 나를 비스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아하게 시선을 맞추자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방해하는 건가?”
“네?”
“파티.”
아. 엘로이즈의 말을 들으셨군.
‘그렇게 큰 소리로 불평했으니 못 듣는 게 더 어려웠겠지만.’
하여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 저었다.
“전혀요. 객관적으로도 제가 지금 파티할 상황은 아니잖아요.”
라울은 내 사망 취소 처리, 던전 보고서 처리, 사교계에 퍼지는 잡다한 소문 관리, 윌로우 가문과의 등교 문제 등으로 한시도 집에 있지 못했다.
“아비가 알아서 다 처리할 테니 너는 얌전히 집에 붙어있거라.”
이렇게 신신당부도 했는걸.
‘처음에는 일리야가 가문에 머무는 걸 마뜩잖아하더니, 일이 바빠지니까 위기 상황에 도움 될 남자가 있는 걸 반기기까지 했고.’
특히 내 공부를 전담해서 봐주겠다는 말을 가장 기꺼워했던 것 같다.
아직 가족들은 내 중간고사 성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라울은 내가 이번에 퇴학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원작에서는 어마어마한 기부금을 투척해 간신히 퇴학을 막는 시나리오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아무튼.
“저는 파티보다 이렇게 교수님이랑 공부하는 게 더 좋아요.”
이제는 일리야를 비롯해 남자주인공들이 빙의 초기처럼 마냥 무섭거나 꺼림칙하지 않았다.
달칵.
어느덧 서고에 도착하여 문고리를 쥐었을 때 갑자기 머리 위에 툭, 하고 커다란 손이 내려앉았다.
‘응?’
손은 내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찰나의 순간에 거두어졌다.
“교수님?”
일리야는 본인 행동에 대해 어떠한 부연 설명도 없이 내가 놓은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들어가지.”
“네에….”
나는 어리둥절하게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서고로 들어갔다.
일리야는 왜 내가 치른 <속성 마법> 시험 점수가 B-인지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기본기가 부족하다.”
당연히 그렇겠죠, 교수님.
기본기가 부족하니까 점수를 제대로 못 받았겠죠.
지구는 둥글고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너무 당연한 말씀이시잖아요.
그는 내게 새롭게 내준 과제물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이런 발상이 나왔는지 의아하군. 전공 서적만 똑바로 해석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직역하자면 멍청하다는 뜻이었다.
일리야는 내게 두 가지 말을 번갈아 했다.
“이걸 왜 모르지?”
혹은.
“이걸 왜 못하지?”
나는 한껏 풀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아까 뭔가 몽글몽글하고 따스한 분위기 아니었어? 전부 내 착각이었나?’
띠링!
[성좌 ‘예비 사위 일리야’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일리야 그냥 여기서 평생 살았으면 좋겠어… 데릴사위 좋잖아]
이상하다. 분명 악성 후원 근절 캠페인 영상을 찍었던 것 같은데 왜 저딴 내용의 후원이 들어오지?
일리야의 갈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속성 마법의 핵심은 5원소를 전부 다루는 것이다. 한데 무려 두 원소나 시작조차 하지 못했군. 이래서는 기말시험에서도 비슷한 점수가 나올 거다.”
“네에….”
성적이 많이 올랐다는 칭찬을 들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실은 내심 일리야가 칭찬해주길 기다렸던 모양이다.
이렇게 기운이 빠지는 걸 보면.
‘진짜 죽어라 공부했다고.’
정상 등교는 이틀 후, 월요일부터 시작이지만 나는 내일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남은 시험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 큰 이변이 없다면 다른 시험들도 무난하게 좋은 점수를 받아서 퇴학을 면할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에휴. 다 내 목숨 부지하려고 한 공부인데 칭찬은 무슨. 바보같이.’
나는 정신 차리고 개인 교습에 집중하기 위해 뺨을 챱챱 때렸다.
그러자 일리야가 내 손목을 잡아챘다.
“뭘 하는 거지?”
“네? 아, 정신 좀 차리려고요.”
커다란 손이 내 얼굴을 테니스공 쥐듯 가볍게 감쌌다.
“그런다고 머리가 좋아지지 않는다. 이런 쓸데없는 행동은 하지 말도록.”
“느에.”
내가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하자 일리야가 손을 거두었다.
“조급해하지 마라. 너의 절망적으로 형편없는 학업 성취도는 꾸준히 나아지고 있으니까.”
띠링!
[성좌 ‘개복치’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거 칭찬이에요? 욕이에요?]
그 중간쯤 될 것 같네요…….
띠링!
[성좌 ‘물음표살인마’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문득 궁금한 게 있는데. 어쨌든 BJ가 해온 일들은 인간계를 마계화 시키려는 일리야와 대척되는 행보 아닌가요? 그렇다면 자신의 목표 달성에 거슬리는 테레제를 죽이려 들지 않을까요?]
‘오. 벌써 이런 의문을 느끼는 성좌가 나타나네?’
나는 바로 곁에 일리야가 있다는 사실도 잊고 감탄할 뻔했다.
성좌가 게임 시나리오 진행 중 플레이어가 느꼈으면 했던 의문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띠링!
[성좌 ‘설정 광인’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일리야는 뒤틀린 천계를 본인 기준으로 직접 심판하려 드는 정신 나간 외골수입니다. 보통 이런 캐릭터는 능력치가 천상계이기 때문에 소인배처럼 자잘한 문제까지 컨트롤하려 들지 않습니다. 무심함을 넘어서 외려 관대하게 보이는 성격도 압도적인 힘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와. 아직 일리야와 깊게 얽힌 에피소드도 없었는데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파악하다니?
일리야가 작정하고 본체로 현신해서 지옥의 문을 열어버리면 인간계는 속절없이 무너져버릴 것이다.
인간계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일리야의 복수와 정의 구현을 포기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만 이게 다 리비로 플레이했을 때나 통하는 이야기라는 게 문제인데.’
나는 일리야를 힐끔 보았다.
<신의 유희>는 역하렘 게임이다.
그러니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전부 ‘사랑’으로 귀결되는 세계관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까닭에 인간계 멸망을 막을 방법은 사랑밖에 없었다.
‘게임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현실이 되니 정신 나간 해결 방식이잖아.’
대체 내가 무슨 수로 미친 로봇 같은 이 남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겠냐고요.
앞으로의 시나리오 진행이 깜깜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일리야의 호감도는 이상할 정도로 잘 쌓이긴 했는데 말이지.’
이제 시스템이 다 고쳐졌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호감도를 확인해보았다.
[시스템 오류로 인한 복구 작업 중(50%)-일부 시스템이 정상 작동됩니다.]
으음. 아직도 복구 중이었다.
‘일부 시스템은 정상 작동된다고? 그렇다면…… 방송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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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설정]
채널명: BJ악역영애
채널 등급: 플래티넘
채널 순위: 66위
후원금: 24,414,000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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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말로 작동되네……엑?!’
채널 순위가 벌써 66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