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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91화 (92/277)
  • 91화

    내 물음에 오즈월드가 고개 숙여 자신의 차림새가 어떤지 확인하듯 눈으로 훑고는 입을 열었다.

    “새로운 의상에 대해 회의하느라 여러 가지로 갈아입다 보니.”

    저렇게 말하니까 엔터 기획사 사장 같았다.

    “신기하네. 그런 걸 신경 쓰는 줄 몰랐어.”

    새빨간 슈트가 취향인 줄 알았다.

    “보여지는 게 전부인 일이니까요. 이 옷은 이상합니까?”

    맨날 빨간 슈트만 입고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옷을 입고 있는데 당연히 이상하지.

    “아니, 이상하진 않아.”

    오즈월드는 미니바에서 위스키를 꺼내다 피식 웃었다.

    “제가 편해진 모양입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예전에는 그래도 거짓말에 꽤 성의를 들이는 것 같더니, 이젠 표정과 말이 따로 노는군요.”

    티가 났군.

    요즘 오즈월드를 자주 보니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안 어울린다는 뜻은 아니었어….”

    나는 어물쩍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이야, 야경 참 좋다.

    오즈월드는 관상부터 이기적으로 생겨 먹은 놈답게 본인 술만 한 잔 따라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왜 여기로 오는 건데? 도로 일이나 하러 들어가라고. 훠이.’

    그가 내게 물었다.

    “판테온에서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방송도 켜져 있지 않은데 웬 인터뷰인가 싶었지만, 대답 못 할 것도 없었다.

    “꽤 흥미롭고 재밌어. 성좌들은 도대체 어떤 데서 사는 걸까 궁금했거든. 특히 야경이 최고야.”

    오즈월드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창밖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새삼스럽게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름다웠군요. 야경이.”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바깥 풍경만 바라봤다.

    그러다 나는 문득 눈짓으로 오즈월드를 힐끔거렸다.

    ‘요란스러운 무지개색 머리카락을 싹 넘기니까 색달라 보이네.’

    오늘의 오즈월드는 말쑥한 포마드 헤어였다.

    게다가 짙은 색 옷을 입어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성숙해 보였다.

    야경을 감상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오즈월드가 불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힐끔거리던 걸 들킨 것이다.

    “왜 자꾸 힐끔거리는 겁니까?”

    “……그게, 궁금한 게 있는데.”

    아까부터 힐끔거린 이유였다.

    오즈월드의 미끈한 눈썹이 슬쩍 들어 올려졌다.

    “또 저를 인터뷰하는 겁니까?”

    어쩔 수 없잖아. 이번엔 정말로 궁금한 게 있다고.

    “내가 쟝의 심연을 다녀온 적 있거든.”

    슬쩍 운을 떼자 오즈월드가 피식 웃었다.

    안 들어봐도 내 질문을 알겠다는 태도였다.

    “제게도 심연이 있는지 궁금합니까?”

    “응.”

    “그런 게 왜 궁금하죠?”

    “그야 당신이 궁금하니까?”

    내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심연이 궁금했겠어? 왜 뻔한 걸 묻고 그래?

    하지만 내 대답이 오즈월드에게는 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테레제 양이 제게 궁금한 게 있는지 몰랐네요. 늘 상황을 회피하려고 쓸데없이 질문하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그의 생각보다 나는 오즈월드란 존재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당신은 나에 대해서 뭐든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당신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잖아. 아, 커다란 회사 빌딩이 있고, 전설적인 채널 관리자라는 점 정도는 알고 있어.”

    오즈월드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 판테온의 시민인데 당연히 심연이 있습니다. 굳이 들여다보지 않을 뿐.”

    “어째서 들여다보지 않아? 보아하니 심연은 자신의 과거를 바라는 형태로 바꿀 수 있는 것 같던데.”

    보통은 과거를 바꾸고 싶어 하잖은가.

    오즈월드는 외려 내게 물었다.

    “만일 당신에게 심연이 있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내게 심연이라…….’

    나는 대번에 미간을 좁혔다.

    그딴 과거는 최선을 다해 꾸민다고 해도 이미 등장인물부터 다 틀려먹은 세상인걸.

    “그냥 둘 것 같아.”

    내 대답에 오즈월드는 자신도 그렇다는 듯 미소 지었다.

    ‘……뭐야. 왜 저렇게 웃어? 나랑 공감대라도 형성한 사람처럼.’

    오즈월드는 남을 불행하게 만들면 만들었지, 본인에게 불행한 과거가 있을 타입이 아니었다.

    어느새 성에 도착한 건지 간접 조명만 켜져 있던 실내가 확 밝아지며 비행선이 착륙하기 시작했다.

    “도착했군요.”

    나는 키케와 베니토가 자러 들어간 객실 쪽을 보며 물었다.

    “깨워야 할까?”

    “알아서 나올 겁니다.”

    오즈월드는 미소 지은 얼굴로 무심하게 말한 후 나와 함께 입구로 나갔다.

    쏟아지는 졸음에 연달아 하품하며 눈을 문지르던 찰나.

    팔랑―

    쟝의 심연에서 보았던 검은 나비가 다시 나타났다.

    ‘잘못 봤던 게 아니었나?’

    한데 저번에도 설핏 느낀 거지만, 나비의 생김새가 묘하게 익숙했다.

    ‘내가 저걸 어디서 봤더라?’

    라고 고민에 잠긴 순간.

    콰아아아앙!

    갑자기 튀어나온 거대한 낫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비행선의 몸통을 절반으로 갈랐다.

    “…키케! 베니토!”

    나는 당장 비행선 쪽으로 몸을 틀었으나 오즈월드에게 팔을 붙들렸다.

    “뭐 하는…!”

    짓이냐고 따지기 전,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쿠콰콰콰쾅――――!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사방에 비산했고 머리 위로 거대한 구름이 뭉쳐 거친 폭풍우를 쏟아냈다.

    “미친…!”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안티들이군요.”

    오즈월드는 지팡이를 맞은편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우리를 공격하던 구름이 낚시찌처럼 새빨간 두건을 쓰고 달려드는 안티들을 향해 던져졌다.

    딱!

    이어 오즈월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구름에서 새하얀 벼락이 내리쳤고 지축이 흔들렸다.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이었다.

    나는 왜 오즈월드가 날 피라미처럼 보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빌어먹을, 총공격해!”

    “테레제를 죽여라!”

    우후죽순 수를 불리며 등장하는 안티들을 본 오즈월드가 짜증스럽게 혀를 차더니 다소 엉뚱한 위치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스으으―――――――― 핑!

    지팡이에 깃든 빛이 거의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쏘아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났다.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갑자기 허공이 육각의 형태로 쩍쩍 금이 가며 부서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게 뭐야?!”

    “시공간을 부순 겁니다.”

    속살을 드러낸 시공간은 강력한 장력을 발생시켜 성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오즈월드는 무자비한 손길로 부서진 시공간의 바로 옆쪽에 빛을 한 발 더 쏘았다.

    스으으―――――――― 핑!

    블록처럼 와르르 무너진 시공간의 장력은 더욱 거세졌다.

    “도망쳐!”

    안티들은 혼비백산했다.

    문제는 그들만 위험에 처한 게 아니라는 거였다.

    나도 장력에 이끌려 빨려 들어갈 뻔했으나 오즈월드가 내 허리를 감싸 안은 덕에 위기를 모면했다.

    “허리가 꺾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저를 붙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말씀 한 번 대단히도 친절하셔라.

    그렇지 않아도 장력이 너무 거셌기에 고목 나무의 매미처럼 낑낑거리며 오즈월드를 꽉 끌어안았다.

    안티의 절반은 시공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갔고 절반은 도망쳤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시공간의 틈이 저절로 아물었다.

    나는 장력이 사라지자마자 오즈월드에게서 후다닥 떨어졌다.

    ‘발할라로 돌아가고 싶다.’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안티를 상대하기에는 난 작고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그러고 보니 검은 나비가 사라졌네. 검은 나비를 발견하고 나면 꼭 안티가 등장하는 것 같단 말이지.’

    마치 나에게 위험을 알려주려는 듯 말이다.

    그때 쌍둥이들이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주인님. 잔당을 처리하고 올까?”

    “얘들아!”

    오즈월드가 입을 열기도 전, 나는 쌍둥이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단잠으로 통통하게 부은 눈두덩이를 빼면 별다른 점은 없었다.

    “어디 다친 덴 없지? 병원 안 가봐도 돼?”

    쌍둥이는 내가 왜 걱정하는지 전혀 짚이는 바가 없다는 표정으로 오즈월드에게 물었다.

    “…? 아가씨가 왜 이러는 거지?”

    오즈월드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글쎄요.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위험했던 상황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추적은 괜찮습니다. 너무 많은 성좌를 없애면 제재가 들어올 테니까요.”

    아니, 이게 무슨 개떡 같은 말이야?

    “비행선이 반으로 쪼개졌잖아!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그래. 너희는 위대한 판테온 시민이고 난 하찮은 인간이다.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해진 나는 “그래도 멀쩡하면 됐어.”라고 툴툴거렸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었다.

    “아까 그 시공간의 틈에 빨려 들어가면 어떻게 돼?”

    “천 년 전의 판테온에 떨어질 수도, 미래의 다른 차원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곳에 내가 빨려 들어갈 뻔했단 말이야?’

    생각보다 더 아찔한 상황이었잖아?

    “이만 들어가죠.”

    오즈월드의 태연한 말에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자도 괜찮은 거야? 안티들이 더 습격하지 않을까?”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테레제 양은 위험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자 쌍둥이들이 말했다.

    “우리가 아가씨와 같이 있겠다.”

    오즈월드가 뜻밖이라는 듯 눈썹을 휙 들어 올렸다.

    “키케, 베니토 당신들이요?”

    “응. 아가씨는 시끄러운 것만 빼면 나쁘지 않으니까.”

    내가 언제 시끄럽게 했다고 그래.

    오즈월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별일이로군요. 키케와 베니토가 누군가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나와 쌍둥이는 오즈월드의 침실로, 오즈월드는 다른 방으로 길이 갈렸다.

    오즈월드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오즈월드랑 어떻게 알게 된 사이야?”

    베니토가 귀를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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