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 * *
“당장 스타디움을 포위해 오즈월드를 끌어내야 합니다!”
체호프는 7인의 채널 관리국 위원장 중 하나인 ‘엡실론’을 찾아와 몹시 분개하며 성토했다.
“방송 중단 처분이 내려진 테레제가 팬미팅이라니요?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입니까?!”
테레제의 팬미팅 현장은 판테온 광장의 가장 큰 전광판에서 송출되었다.
오즈월드가 송출권을 사서 틀어버린 것이다.
이는 제아무리 잘나가는 채널 관리자라 해도 선뜻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래서는 휴방으로 인해 채널 순위가 떨어지고 있던 BJ악역영애 채널이 외려 전화위복하게 될지도 몰랐다.
실제로 현재 BJ악역영애 채널 버즈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엡실론은 긴 물줄기로 이루어진 머리칼을 휘날리며 건물 최상층의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판테온의 가장 큰 전광판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엡실론의 커다란 눈동자가 조금은 겁먹은, 또 약간의 호기심을 품은 표정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여인을 유심하게 훑었다.
“엡실론 위원장님!”
체호프의 보챔에 엡실론이 시선을 돌렸다.
“이는 저희의 판결에 위배 되지 않습니다. BJ악역영애 채널이 아닌 ‘오즈월드 스트림’ 공식 채널을 통해 송출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체호프가 날뛰는 이유는 이해했다.
“도의적으로 아니기는 하죠.”
도의적. 참 감정적이고 제멋대로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위원장님. 언제까지 오즈월드가 제멋대로 구는 걸 두고 보실 겁니까? 그는 매번! 매 순간! 판테온의 규칙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네에, 뭐, 좀 그런 감이 있죠.”
체호프는 엡실론의 느긋한 말투에 혈압이 올라 기절할 것 같았다.
그는 엡실론을 향해 호소했다.
“간신히 만들어낸 새로운 흐름입니다. 오즈월드의 약점인 로맨스를 판테온의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간 얼마나 고군분투해왔습니까?”
전쟁, 배신, 멸망, 복수.
오즈월드가 판테온에 바이러스처럼 뿌린 어둡고 절망적인 방송들은 중독성이 너무 강했다.
실제로 판테온의 범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을 정도.
어떻게든 오즈월드가 끼어들 수 없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가 더는 분탕질 칠 수 없게.
“하지만 저 사람을 보세요, 체호프.”
엡실론은 오즈월드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 테레제의 모습을 인상 깊게 바라보았다.
저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즈월드의 정체를 모른다고 해도 피식자인 이상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텐데.’
한데도 테레제는 모든 순간을 자기 자신으로 오롯이 존재했다.
그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느껴졌다.
그 모습은 꽤 사랑스러웠다.
“테레제, 그녀가 어째서 이토록 사랑받고 있는지 알 거 같네요.”
오즈월드의 BJ 중 멀쩡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또 자신의 BJ를 어디까지 망가뜨릴까?
“엡실론 위원장님!”
“오즈월드가 그녀를 노출 시키는 건 막을 수 없습니다, 체호프.”
체호프는 더는 말이 안 통할 거로 생각했는지 잔뜩 굳은 얼굴로 위원장실에서 나가버렸다.
[“BJ악역영애는 죽지 않는다. 이상입니다.”]
엡실론은 언제나 완벽한 확신으로 가득 찬 표정의 오즈월드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당신의 생각대로 될까요?”
이미 한 차례 죽음을 선택한 BJ를 폐기하지 않은 오만함이 어떻게 스스로의 목을 조르게 될지 궁금했다.
* * *
나는 녹초가 된 몸으로 비행선에 쓰러져 누웠다.
함성과 전율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그런 내가 가엾지도 않은지 피도 눈물도 없는 스타일리스트가 다가와 몸을 일으켰다.
“이럴 시간 없어요. 다음 옷으로 갈아입어야죠!”
“…으에?”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자, 어서 이리로 오세요. 이번 일정은 사인회니까 좀 더 차분하고 상큼한 옷이 좋겠네요.”
나는 해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오즈월드를 쳐다보았다.
그가 빙긋 웃었다.
“테레제 양이 제멋대로 사망하는 바람에 생겨난 손실을 메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
뭐라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았기에 얌전히 스타일리스트를 따라갔다.
그리고 후회했다.
일정을 따질 거였으면 그때 진작 따졌어야 했다고.
팬미팅 이후로 사흘이 흘렀다.
나는 잠잘 시간도 없이 사인회, 화보 촬영, 광고 촬영, 서면 인터뷰 등의 일정을 소화하기 바빴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세요!”
“이번 컷은 발할라 교복입니다!”
“자, 테레제 님? 활짝 웃어주세요. 더 활짝!”
정말이지 너무 피곤했다.
연예인들이 왜 한잠도 못 자고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죽을 거 같다고 하는지 얼핏 이해되었다.
“으으… 죽을 거 같아….”
소파에 뻗어있는 내게 베니토가 다가와 말했다.
“아가씨, 다음은 악성 후원 근절 캠페인 영상 촬영이다.”
내가 기진맥진 몸을 일으키니 키케가 기력 회복 주스라며 시커먼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이거 마셔.”
나는 주스 냄새를 맡고는 코를 틀어막았다.
‘이거 독극물 아냐? 이대로 내 죽음을 확실시하려는 독살 시도인 건가?’
일단 주스는 옆으로 치우고 키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오즈월드는 갑자기 안 보이네?”
“비행선에서 회사 임원들과 회의 중이다.”
“회사도 있어?”
키케가 창밖의 어느 거대한 빌딩을 가리켰다.
“저기가 주인님 회사. 오즈월드 스트림이다.”
“엄청난 건물이네…….”
나는 또 궁금한 걸 물었다.
“듣자 하니 내 방송에 문제가 있어서 재판까지 벌어졌다면서? 그런데 이런 걸 해도 괜찮은 거야?”
베니토는 조용히 귀를 틀어막았다.
키케는 이제 내 질문 세례가 익숙해졌다는 듯이 대답했다.
“응. 성좌들이 원하니까.”
내가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키케가 설명을 덧붙였다.
“쉽게 말하자면 아가씨는 내한 스타 같은 존재다. 인기 BJ가 갑자기 등장했으니 다들 아가씨가 판테온에서는 어떻게 생활할지 궁금해하지.”
‘내한 스타라…….’
그렇게 설명을 들으니 무슨 느낌인지 확 이해되었다.
“판테온의 랭킹 싸움은 굉장히 치열해서 한 시간만 방송을 멈춰도 타격이 크다.”
한데 내 방송은 벌써 사흘째 멈춘 상태였다.
“순위가 많이 떨어졌어?”
혹시나 해서 묻자 키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85위까지 떨어졌다.”
어라. 생각보다 순위가 별로 떨어지지 않았잖아?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어느새 귀에서 손을 뗀 베니토가 말했다.
“주인님이 송출한 팬미팅 영상의 파급력이 컸다. 이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구나…….”
최근 소화 중인 일정들이 성좌들에게서 나라는 존재가 잊히지 않도록 하는 거겠지.
성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다는 건 진짜 죽음을 뜻하니까.
내가 던전에서 죽음을 선택한 탓에 일이 복잡해진 거였다.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과는 하는 게 좋겠지.’
“괜히 나 때문에 미안해.”
그러자 쌍둥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게 만들었잖아. 민폐를 끼쳤으니까 사과하는 게 옳은 것 같아서.”
“우리는 아가씨를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키케의 말에 감동해 마음이 찡해졌을 때 베니토가 덧붙였다.
“나도 동의한다. 질문만 빼고.”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물었다.
“아참, 다음 일정이 캠페인 촬영이라고 했지?”
“…….”
“…….”
키케와 베니토는 말없이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너무 똑같은 얼굴로 이렇게 쳐다보니까 압박감이 장난 아니네.’
“왜 그렇게 봐?”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왜 계속 그렇게 쳐다보냐구.’
시선이 몹시 부담스러웠기에 뭐라도 딴청 부릴 게 필요했다.
그러던 중 시꺼먼 독극물 같은 주스가 눈에 들어왔다.
윽. 결국 저걸 마시는 수밖에 없나?
‘어쨌든 날 위해 준비해준 거기도 하니까, 무시하면 좀 그렇겠지.’
나는 코를 틀어막고 키케가 가져다준 빌어먹을 기력 회복 주스를 꿀꺽꿀꺽 숨도 안 쉬고 다 마셨다.
주스 맛은 짐작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우욱.”
새파래진 안색으로 헛구역질하자 키케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반짝이는 녹색 껍질로 감싸인 사탕을 건넸다.
“고마워…….”
새콤달콤한 라임 맛 사탕이었다.
그렇게 악성 후원 근절 캠페인 영상 촬영까지 끝났을 때는 지상을 뒤덮을 듯한 압도적인 크기의 만월이 떠올랐을 무렵이었다.
나는 기진맥진하며 비행선에 올랐다.
“하아. 드디어 오늘치 일정이 다 끝났다.”
쌍둥이도 피곤했는지 잠자러 객실로 들어갔다.
곧 비행선이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몹시 피곤한 상태였으나 내 몸은 저절로 일으켜졌다.
아무리 피곤해도 창밖 풍경을 보는 일을 놓칠 수는 없지.
이는 내 몇 안 되는 힐링 시간이었다.
판테온은 그야말로 불야성이었다.
달빛이 무색하도록 온갖 빛으로 가득한 야경은 살면서 보아온 모든 광경 중 손꼽히게 아름다웠다.
“성좌들이 사는 곳이라 그런가.”
하늘이 아닌 지상에 별자리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듯했다.
그때 비행선의 서재에서 업무를 보던 오즈월드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뜻밖에도 빨간 슈트가 아닌 몸에 달라붙는 검은 상의와 푸른색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뭐야, 그 옷차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