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89/277)

 

스콰이어 공작가 주변은 부유한 귀족들의 타운하우스로 즐비한 주거지역이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발할라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아침에 본 놀라운 광경을 두고 저마다 쑥덕거렸다.

수군수군수군수군.

말소리가 들리진 않았으나 그들의 눈길이 내게 쏠려있었기에 대충 무슨 대화들을 나누고 있을지 짐작되었다.

황제의 하사품과 테레제의 황후 책봉 가능성에 대한 거겠지 뭐.

어휴머리야.’

오늘은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

도서관버려진 별관아니면

테레제 님!”

미처 목적지를 정하기도 전 클예부 회원들이 심각한 얼굴로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황제 폐하께서 테레제 님께 청혼하셨다는 게 사실인가요?”

벌써 소문이 청혼까지 간 모양이군.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단호하게 부정했다.

전혀 아니야오늘 가문으로 온 하사품은 침식된 땅을 정화할 방법을 찾아낸 공로에 대한 포상을 내려주신 것뿐이라고.”

영애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아아역시 그런 거였군요그럼 혹시 학교를 그만두고 황실에 들어가신다는 소문은

그것도 절대 아니야.”

그때 영애들 사이에 조용히 파묻혀있던 루미오가 그늘이 드리운 얼굴로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지금까지 꽃을 선물한 여인은 없다고 들었어요콜록.”

그녀는 늘 들고 있는 작은 수첩과 펜을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꽉 쥐며 부들거렸다.

테레제 님은 너무 아름답고 매혹적이라… 황제 폐하께서도 알아보신 거예요틀림없이!”

안광은 기괴하게 번들거리고 다크써클이 전보다 훨씬 진해진 얼굴.

뭔가에 완전히 매몰되어 이성이 반쯤 나간 광인의 표정이었다.

위험하다.

루미오가 악력으로 펜을 부러뜨리는 순간 악마가 소환된다고!

나는 다급하게 버럭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설령 그렇다고 해도 내겐 클라이드뿐이야!”

어차피 낙원으로 튀면 결혼이고 뭐고 이 세계관과 영영 이별이다.

그러니 더욱 거리낌 없이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공수표를 남발했다.

난 클라이드가 아니면 누구와도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단 말이지.”

끼아악!”

이 타이밍에 절대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렸다.

나는 말 그대로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언제부터 있었어?”

클라이드는 삐딱한 시선으로 날 쳐다보며 비아냥거렸다.

글쎄네 형편없는 청혼부터 듣기는 했는데.”

처음부터 다 들었다는 말을 재수 없게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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