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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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유희>는 유일한 이성리비를 둘러싼 미치광이들의 광증을 겨루는 스토리라고 해도 무방했다.

    우리 팀은 게임을 흥행시키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아 스토리에 msg를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광인들에게 시달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넌 당장 전공을 바꿔야 해!”

    펠릭스 교수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 강의를 들어넌 내 학생이어야 했어!”

    안 사요안 사.”

    네 재능을 알아봤을 때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붙잡아야 했는데!”

    펠릭스는 후회 교수가 되어 몹시 성가실 정도로 집착했다.

    내가 일리야 교수에게 잘 말해볼게테레제넌 국가급 인재야!”

    그딴 걸 누가 정했죠?

    나는 혹시라도 펠릭스 교수가 일리야 교수에게 헛소리라도 할까 봐 엄중히 경고했다.

    제 교수님은 일리야 교수님 단 한 분뿐이세요그분을 귀찮게 하시면 교수님이 잔느레… 우웁!”

    알았어알았다고그것만큼은 제발 비밀로 해주라.”

    그렇게 펠릭스 교수를 퇴치하고여느 때처럼 샌드위치를 포장하러 식당으로 갔다.

    비켜평민 주제에.”

    너 스콰이어 장학재단에 들어갔다며힘없고 가난하면 눈치라도 있어야지발할라에서 스콰이어의 후원을 받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본인이 데미안 웨스트만큼 뛰어나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지!”

    그런데 웬 음식물쓰레기 같은 놈들이 레이니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럭비 선수처럼 한 녀석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

    비켜하등한 것들 주제에.”

    으억!”

    패악을 부리던 녀석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요즘 워낙 잘 먹고 잘 자서 그런지 몸에 잉여 에너지가 가득했다.

    힘이 남아돈다는 뜻이었다.

    뭐야어떤 새끼.”

    바닥에 엎어진 녀석은 버럭 화를 내다가 날 보더니분노 조절 장애가 치유된 듯 얌전해졌다.

    테레제 선배님.”

    스콰이어 가문의 장학생을 괴롭히는 걸 보니 스콰이어인 나는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네?”

    녀석들은 감히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내 눈에 띄면 마수의 밥으로 던져줄 거야너희도 요즘 내 소문 들어서 알지?”

    최근 내게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이름하여 마수 사냥꾼’.

    인간이라면 다 찢어발기려 드는 광폭한 마수들이 나를 피해 죽어라 도망치던 광경을 본 이들이 퍼뜨린 소문 때문에 생겨난 별명이었다.

    딸꾹죄송합니다!”

    녀석들은 사색이 되어 즉시 사죄한 뒤 도망치듯 떠났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날 불러아니면 때려눕히든가위자료는 장학금으로 지급할 테니까.”

    선배님은 재단 이미지를 신경 쓰시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네요…….”

    이게 우리 재단 셀링 포인트니까오늘은 뭐 먹을래?”

    나와 레이니는 시간이 맞을 때면 같이 점심을 먹는 친구가 됐다.

    레이니는 조금 어색해했지만재단의 후원 덕분인지 전보다 훨씬 여유가 느껴졌다.

    연구는 잘 돼가?”

    연금술은 결국 재료를 구하는 게 문제라비용이 해결되니 이제 막히는 부분은 없어요.”

    레이니는 연금술 특기생이다.

    연금술은 필연적으로 많은 재료비가 들기 때문에 후원이 넉넉하지 않으면 재능을 꽃피우기 어려운 학문이었다.

    선배님이 설마 저를 후원해주실 줄 몰랐어요.”

    네가 연금술에 재능이 있어서 후원하는 거야우리 재단은 아무나 안 뽑으니까.”

    레이니는 빨개진 얼굴로 저는 데미안 선배님만큼 재능 있진 않은데요.”라며 괜히 투덜거렸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후원해주시는 만큼 빨리 성과를 보이고 싶어요.”

    레이니가 자투리 시간만 생기면 연금술에 몽땅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남은 시간에는 마법 공부에 매진했다.

    얼른 지능을 높이고 싶기도 했고개인적으로 연구 중인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을 쓸 때마다 마력 회로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게 너무 귀찮고 비효율적이라 아예 단축키처럼 설정할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나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마법서를 읽다가 딴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나저나 최근에 간접적으로 시비 거는 녀석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네.’

    차마 무서워서 대놓고 공격하진 못했지만 날 쳐다보는 시선이 달라진 건 느낄 수 있었다.

    견제시기질투경계 등.

    전부 테레제가 타인에게 보내던 감정들이었다.

    예전의 테레제는 윌로우에 위협적이긴커녕 스스로 웃음거리를 자처했으니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지만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다시 말해서내가 윌로우 가문에 꽤 위협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요즘 학생회에서 나를 임무에 꼭 참여시켜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마수를 정화하는 건 좋지만내 앞날도 준비해야 한다고.’

    이제 3월의 막바지였다.

    4월이 되면 낙원의 문들이 활성화될 테고운이 좋으면 곧장 엔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싱숭생숭해지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데미안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생각도 안 했어.”

    남자 주인공은 붉은 하트 2개째부터 간혹 먼저 주인공을 찾아오기도 했다.

    데미안은 이런 한적한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나를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가 피식 웃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거짓말혼자 생각할 때 짓는 표정 있는 거 알아?”

    표정?”

    데미안은 눈꼬리를 슬쩍 내리며 졸린 듯 맹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표정으로 멍하게 있잖아.”

    그럴 리가 없었다.

    테레제는 기본적으로 도도하고 차가운 외모다.

    만일 내가 무표정하게 있었다면 냉기가 풀풀 날리는 새침한 표정이었을 거라고.

    난 그런 표정 안 지어.”

    그러자 데미안이 중얼거렸다.

    흐음본인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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