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유희>는 유일한 이성, 리비를 둘러싼 미치광이들의 광증을 겨루는 스토리라고 해도 무방했다.
우리 팀은 게임을 흥행시키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아 스토리에 msg를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광인들에게 시달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넌 당장 전공을 바꿔야 해!”
펠릭스 교수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 강의를 들어! 넌 내 학생이어야 했어!”
“안 사요. 안 사.”
“네 재능을 알아봤을 때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붙잡아야 했는데…!”
펠릭스는 후회 교수가 되어 몹시 성가실 정도로 집착했다.
“내가 일리야 교수에게 잘 말해볼게. 응? 테레제, 넌 국가급 인재야!”
그딴 걸 누가 정했죠?
나는 혹시라도 펠릭스 교수가 일리야 교수에게 헛소리라도 할까 봐 엄중히 경고했다.
“제 교수님은 일리야 교수님 단 한 분뿐이세요. 그분을 귀찮게 하시면 교수님이 잔느레… 우웁!”
“알았어. 알았다고! 그것만큼은 제발 비밀로 해주라.”
그렇게 펠릭스 교수를 퇴치하고, 여느 때처럼 샌드위치를 포장하러 식당으로 갔다.
“비켜! 평민 주제에.”
“야. 너 스콰이어 장학재단에 들어갔다며? 힘없고 가난하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발할라에서 스콰이어의 후원을 받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본인이 데미안 웨스트만큼 뛰어나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지. 풉!”
그런데 웬 음식물쓰레기 같은 놈들이 레이니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럭비 선수처럼 한 녀석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퍽!
“비켜. 하등한 것들 주제에.”
“으억!”
패악을 부리던 녀석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요즘 워낙 잘 먹고 잘 자서 그런지 몸에 잉여 에너지가 가득했다.
힘이 남아돈다는 뜻이었다.
“뭐야! 어떤 새끼…! 앗.”
바닥에 엎어진 녀석은 버럭 화를 내다가 날 보더니, 분노 조절 장애가 치유된 듯 얌전해졌다.
“테, 테레제 선배님.”
“스콰이어 가문의 장학생을 괴롭히는 걸 보니 스콰이어인 나는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네?”
녀석들은 감히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내 눈에 띄면 마수의 밥으로 던져줄 거야. 너희도 요즘 내 소문 들어서 알지?”
최근 내게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이름하여 ‘마수 사냥꾼’.
인간이라면 다 찢어발기려 드는 광폭한 마수들이 나를 피해 죽어라 도망치던 광경을 본 이들이 퍼뜨린 소문 때문에 생겨난 별명이었다.
“딸꾹! 죄, 죄송합니다!”
녀석들은 사색이 되어 즉시 사죄한 뒤 도망치듯 떠났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날 불러. 아니면 때려눕히든가. 위자료는 장학금으로 지급할 테니까.”
“선배님은 재단 이미지를 신경 쓰시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네요…….”
“이게 우리 재단 셀링 포인트니까. 오늘은 뭐 먹을래?”
나와 레이니는 시간이 맞을 때면 같이 점심을 먹는 친구가 됐다.
레이니는 조금 어색해했지만, 재단의 후원 덕분인지 전보다 훨씬 여유가 느껴졌다.
“연구는 잘 돼가?”
“네. 연금술은 결국 재료를 구하는 게 문제라, 비용이 해결되니 이제 막히는 부분은 없어요.”
레이니는 연금술 특기생이다.
연금술은 필연적으로 많은 재료비가 들기 때문에 후원이 넉넉하지 않으면 재능을 꽃피우기 어려운 학문이었다.
“선배님이 설마 저를 후원해주실 줄 몰랐어요.”
“네가 연금술에 재능이 있어서 후원하는 거야. 우리 재단은 아무나 안 뽑으니까.”
레이니는 빨개진 얼굴로 “저는 데미안 선배님만큼 재능 있진 않은데요.”라며 괜히 투덜거렸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후원해주시는 만큼 빨리 성과를 보이고 싶어요.”
레이니가 자투리 시간만 생기면 연금술에 몽땅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남은 시간에는 마법 공부에 매진했다.
얼른 지능을 높이고 싶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연구 중인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을 쓸 때마다 마력 회로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게 너무 귀찮고 비효율적이라 아예 단축키처럼 설정할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나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마법서를 읽다가 딴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나저나 최근에 간접적으로 시비 거는 녀석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네.’
차마 무서워서 대놓고 공격하진 못했지만 날 쳐다보는 시선이 달라진 건 느낄 수 있었다.
견제, 시기, 질투, 경계 등.
전부 테레제가 타인에게 보내던 감정들이었다.
‘예전의 테레제는 윌로우에 위협적이긴커녕 스스로 웃음거리를 자처했으니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윌로우 가문에 꽤 위협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요즘 학생회에서 나를 임무에 꼭 참여시켜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마수를 정화하는 건 좋지만, 내 앞날도 준비해야 한다고.’
이제 3월의 막바지였다.
4월이 되면 낙원의 문들이 활성화될 테고, 운이 좋으면 곧장 엔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싱숭생숭해지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데미안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생각도 안 했어.”
남자 주인공은 붉은 하트 2개째부터 간혹 먼저 주인공을 찾아오기도 했다.
데미안은 이런 한적한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나를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가 피식 웃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거짓말. 너, 혼자 생각할 때 짓는 표정 있는 거 알아?”
“표정?”
데미안은 눈꼬리를 슬쩍 내리며 졸린 듯 맹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표정으로 멍하게 있잖아.”
그럴 리가 없었다.
테레제는 기본적으로 도도하고 차가운 외모다.
만일 내가 무표정하게 있었다면 냉기가 풀풀 날리는 새침한 표정이었을 거라고.
“난 그런 표정 안 지어.”
그러자 데미안이 중얼거렸다.
“흐음. 본인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