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3/277)

 

스콰이어 공작가에선 이유 없이 식사 자리에 빠지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테레제는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같이 식사하지 않았다.

테레제는 늘 누군가를 화나게 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으므로 라울은 차라리 그녀가 혼자 멋대로 식사하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개망나니 설정 덕에 나는 그간 마음 편히 단독으로 행동할 수 있었지만오늘까지도 그럴 수는 없었다.

오늘은 개강일이었으니까.

아침 식사는 다소 고요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다름이 아니라 라울의 기분이 썩 좋지 않은 탓이었다.

라울의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대부분 테레제 때문이었고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기숙사에 들어간다는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느냐?”

나는 기숙사를리비는 통학을 택했다.

그러니 저건 내게 묻는 말이었다.

두 학기만 채우면 졸업이라그동안 학교생활에 전념하려고요.”

라울은 철없는 소릴 들은 표정으로 몹시 언짢아했다.

네가 남들과 같은 걸 쓰고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그곳에서는 지금과 같은 품위 있는 생활을 누릴 수 없다.”

곱게 자란 테레제야 절대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남의 집에서 오랫동안 눈칫밥 먹으며 더부살이해본 경험이 있는 내게는 기숙사만큼 천국인 곳도 없었다.

잘 적응하도록 노력하려고요.”

라울은 듣기 싫다는 듯 손을 바깥으로 내저었다.

쓸데없는 아집은 버리고 당장 기숙사에서 짐 빼.”

그럴 수는 없었다.

난 스콰이어 공작저를 나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아버지.”

내가 라울에게 반기를 들기 전주세페가 포크를 탁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그냥 나가라고 해요.”

주세페너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우리가 꼴 보기 싫어서 차라리 고생하겠다잖아요그냥 나가라고 하라고요붙잡지 말고!”

타다닷!

주세페는 빽 소리치더니 다이닝 룸을 나가버렸다.

고맙다주세페덕분에 분위기가 더 개판이 되어버렸구나.’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 로잔이 나서서 경직된 분위기를 풀었다.

주세페는 크게 혼나야겠구나그리고 여보당신도 그래요테레제가 학업에 정진하고 싶다는데 응원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부인.”

비록 전 마법사가 아니지만발할라에서의 학업 성취도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건 알아요.”

라울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마지못한 기색으로 화제를 돌렸다.

백지수표를 주었더니 고작 65만 겔랑을 썼더구나대체 뭘 샀기에 그런 푼돈을 쓴 게냐?”

나는 최대한 대수롭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골동품 열쇠를 샀어요분석되지 않는 마법이 걸려있어서 인기가 없었어요덕분에 괜찮은 금액으로 낙찰받았으니 다행이죠.”

내 대답에 라울은 황당하다는 듯 혀를 찼다.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다행이라 여겼다고?”

확실히 테레제의 드레스 룸만 봐도 절약이라든가 합리적 소비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돈을 덜 썼으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식사를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라울은 이것만큼은 양보하지 않겠단 투로 말했다.

방학 때는 집에 돌아오거라.”

나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이어 로잔과도 인사를 나누고서야 나와 리비는 현관으로 향할 수 있었다.

리비는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큰 용기를 낸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언니같이 학교에 가도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는데.”

……헤헤.”

현관에는 미란다가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아가씨.”

마차에 오르기 전가방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 미란다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요아가씨?”

꼴 보기 싫으니 내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해둬.”

미란다는 서류를 훑더니 놀란 듯 두 눈이 커졌다.

무리한 횡령으로 이미 뒷조사에 들어간 가신들의 이름도 쓰여 있었던 탓이었다.

해충이 분명하군요.”

미란다는 나를 떠보듯 해충이라는 말을 썼지만나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내 반응을 본 미란다는 더 오묘해진 표정을 짓더니 고개 숙였다.

아가씨의 심기를 건드린 자들이니 면밀하게 살펴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이만 학교에 갈까?”

뒷말은 리비를 향한 거였다.

리비는 멍한 얼굴로 있다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에!”

우리를 태운 마차는 빠른 속도로 스콰이어 공작저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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