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1/277)

라울은 그날 만찬회를 열었다.

이 기쁜 순간을 어찌 축복하지 않고 지나가겠는가공작가의 모든 이에게 술과 음식을 모자람 없이 나눠주어라!”

그 덕에 집사 도노반과 시녀장 미란다를 포함한 가신들이 인력과 식자재를 수급하느라 죽어났지만.

그럼에도 다들 행복이 넘쳐흐르는 얼굴이었다.

드디어 저들이 모시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공녀가 등장했으므로.

나는 직계 혈족이 앉은 상석의 위치에서 조금 물러나 있었다.

테이블의 양쪽 끝은 공작과 공작부인의 자리였고 자식들은 적절히 배치해 앉는 것이 정석이지만오늘만큼은 달랐다.

공작 부부가 리비와 떨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그들은 가운데에 다정한 모습으로 오순도순 모여 앉아 있었다.

주세페도 말간 뺨이 상기되어 리비의 곁을 차지했다.

단란하고 따스한 가족이었다.

물론 나는 빼고.

윌리엄스 자작은 그림처럼 화기애애한 가족들에게서 떨어져 조용히 식사 중인 날 발견하더니 다시 기세등등해진 모양이었다.

그는 또 내 곁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테레제 양동생이 돌아와서 무척 기쁘시겠군요?”

이번에는 스콰이어 공녀가 아니라 테레제 양이었다.

스콰이어 공녀는 테레제가 아니라 리비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윌리엄스 자작이 자꾸만 나를 자극하려는 이유는 쉬이 짐작되었다.

눈엣가시 같은 테레제를 자극해 이 좋은 날성질머리대로 패악을 부리게 만들면 라울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테레제를 끌어내려 리비를 유일한 공녀로 만들고 싶겠지.

사랑하는 조카를 위한 마음은 아니었다.

오늘 처음 본 조카를 사랑하고 자시고가 있을까?

리비를 후계자로 밀어붙여 가장 가까운 인척으로서 득을 보려는 속셈이지.’

자작은 플레이에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버려야 할 패였다.

테레제의 입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적이었고.

나는 윌리엄스 자작의 말에 쉽게 동의해주었다.

그렇네요.”

그는 자신이 뭐라고 물었었는지 되짚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아니그러니까 제 말은 동생이 돌아와-”

.”

…….”

윌리엄스 자작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당황한 건지 계속 어버버거렸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그런데 자작님꼭 제가 리비의 생환을 못마땅해하길 바라시는 것 같네요?”

예에?”

혹시 자작님께서는 리비가 못마땅하신 건가요그래서 제 동의를 얻으려고 하셨군요.”

드륵.

나는 반쯤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저런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제가 도와드릴게요어디지금 난리 쳐 볼까요?”

아닙니다오해이십니다공녀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자작은 내가 난동을 부리며 본인이 시킨 짓이라고 말할까 봐 두려운지 땀을 뻘뻘 흘리며 만류했다.

나는 그럼 왜 말을 걸었냐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크흐흠날씨가 풀렸는지 오늘따라 무척 덥네요저는 발코니에 다녀오겠습니다.”

윌리엄스 자작은 또 스리슬쩍 도망치려 들었다.

나는 샴페인을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얼굴이 많이 빨개지신 걸 보니까 못해도 1시간은 밖에서 더위를 식히셔야겠어요.”

아까 잠깐이었지만 외투까지 꼭꼭 챙겨입고 밖에 서 있었을 때도 전신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지금은 추위가 훨씬 매서워진 저녁이었고 다들 실내이니 외투를 벗은 차림이었다.

이대로 나가면 얼어 죽을 것이다.

페니.”

나는 근처에 있던 하녀를 불렀다.

윌리엄스 자작님이 너무 더워서 발코니에 가신다고 하니 안내해드리렴너무 오래 계시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1시간 뒤에 말씀드리고.”

페니라는 이름의 젊은 하녀는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나와 윌리엄스 자작을 번갈아 보았다.

윌리엄스 자작이 말을 바꾸려 입을 열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정확히 1시간이야그전까지는 감히 자작님의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돼너무 더워하셔서 외투는 필요 없겠어내 말 이해했지?”

……알겠습니다.”

나는 페니에게서 윌리엄스 자작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싱긋 웃었다.

그럼 혼자 발코니에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

…….”

윌리엄스 자작은 사색이 되어 페니의 안내에 따라 질질 끌려가듯 발코니로 향했다.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사이다 모범 맛집]

나는 술잔으로 입술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뭘 이 정도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