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성좌 ‘클서방’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클라이드 입에서 아내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델브는 처음 듣는 사실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내라니…?”
그때 시녀가 말했다.
“영주님께서 이틀 전 결혼을 허락하신 부부입니다.”
“아, 그 서류.”
델브는 내 왼손 약지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이제야 발견한 건지 탄식을 내뱉었다.
당장 약지를 잘라버리고 싶은 사람처럼 눈동자가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을 때, 클라이드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질투심 많은 남편이라도 된 양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델브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이 시간까지 남의 아내를 데리고 있는 건 도의에 어긋나지 않나?”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다친 곳이 배가 아니라 머리였나?
띠링!
[성좌 ‘어차피 남주는 클라이드’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하악 고자극]
그러고 보니 클라이드를 지지하는 성좌들이 또 부쩍 늘어난 것 같았다.
델브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감정이 매우 상한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는 기분을 표출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내가 너무 들떴나 봐. 나도 슬슬 그림을 마저 그리러 가야겠다. 테레제 너도 이만 가보도록 해.”
클라이드의 정체를 꿰뚫어 보지는 못해도 본능적으로 섣불리 상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느낀 것이리라.
나는 클라이드에게 계속 안긴 채로 인사도 없이 드레스 룸을 나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클라이드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복부를 짚었다.
“윽, 젠장…….”
어쩐지 다친 사람이 지나치게 멀쩡하게 움직이더라니.
무리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급히 그를 부축했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클라이드는 기가 막힌단 표정으로 나를 휙 노려보았다.
“곧 6시인데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내가 직접 찾으러 갈 수밖에. 한데 넌 남의 속도 모르고 꽤 즐거웠나 보군.”
그의 차가운 시선이 내 차림에 붙박였다.
“우리가 진짜로 결혼했다면 이건 이혼 사유야.”
나참. 어떻게든 트집 잡으려고 별 이유를 다 가져오네.
“나한테 검은색이 잘 어울린다고 입으라는데 어쩔 수 없잖아.”
클라이드가 코웃음 쳤다.
“잘 어울리기는 무슨. 까마귀 같아.”
우리는 방에 돌아와서도 티격태격했다.
“그 드레스 당장 갈아입어. 보기만 해도 짜증 나니까.”
어차피 이 차림으로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잠옷으로 갈아입을 예정이었지만, 어이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잠옷을 들고 방 안에 파티션이 쳐진 공간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대체 왜 저래?”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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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러겠니? 외간 남자가 준 드레스 입고 있는 데다 심지어 델브가 너한테 마음 있는 것 같으니까 눈 돌아간 거지.]
성좌들은 분명 클라이드의 호감도를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저들 입맛대로 말도 안 되는 해석을 내놓는 게 어이가 없었다.
‘하여간 뭐든 로맨스로 엮는구나. 아, 이건 로맨스 방송이니까 당연한 반응인 건가?’
나는 드레스를 벗고 얇고 간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동안 클라이드는 쉴 새 없이 퍼붓던 잔소리와 힐난을 멈췄다.
그새 잠들었나 의아할 정도였다.
옷을 갈아입고 파티션에서 나오니 클라이드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허. 이 싸가지 없는 놈이 침대 한가운데에 누워있잖아?’
나더러 접근하지 말라는 비언어적인 의사를 표출하고 있는 건가?
나는 침대에 어물쩍 다가가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새로운 꿈 카드를 받아버렸으니 그와 한 침대를 써야 하는데, 방금까지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소파로 가서 혼자 자야 할 것 같았다.
‘하루쯤은 혼자 자도 괜찮겠지…?’
내가 시무룩하게 발길을 돌리자 등 뒤로 클라이드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가? 이리 와서 누워.”
뭐… 그럼 사양하지 않고 옆에 누워야지.
나는 냉큼 침대로 가서 클라이드와 내가 누울 자리 사이에 베개를 놓고 이불 안을 파고들었다.
다행히도 침대가 매우 커서 가장자리에 누우니 클라이드와 한 침대를 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흐아암, 졸려 죽는 줄 알았네.”
아무래도 밤을 새웠으니 침대에 눕자마자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나는 베개 너머로 말했다.
“잘 자, 클라이드.”
그리고 곧장 곯아떨어졌다.
* * *
밤샘은 확실히 힘들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꿈도 꾸지 않고 푹 잠들었었다.
그렇게 개운하게 눈을 뜨니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투명한 햇살에 비친 천사 같은 얼굴이 코앞에서 보였다.
‘와아…….’
나는 멍한 눈으로 수려한 외모에 감탄하다가 정신이 번뜩 들었다.
‘뭐, 뭐야? 내가 왜 얘랑 붙어있어?’
깜짝 놀라 허겁지겁 상체를 일으켜보니 담벼락처럼 세워두었던 베개가 뒤에서 나뒹굴고 있는 게 보였다.
잠결에 몸부림치다가 베개를 치우고 여기까지 굴러온 모양이었다.
‘으음. 한 침대에서 자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빠르게 상황을 납득하고 차분해졌다.
클라이드에게 들러붙어 잠든 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설마 잠결에 클라이드의 상처를 건드리진 않았겠지?’
곤히 잠든 클라이드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나는 우선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열이 살짝 있네.’
게다가 땀도 조금 흘린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물수건 같은 걸 가져와서 닦아주는 게 좋을 듯했다.
‘상처는 어떻지?’
혹시 문제가 있진 않을지 확인해보려고 이불을 끌어 내리려는 순간.
탁!
손이 붙잡혔다.
자는 줄 알았던 클라이드가 눈꺼풀을 느릿하게 들어 올리며 날 쳐다보았다.
“…뭐 하는 짓이야?”
“상처를 확인하려고 그랬지.”
그러자 클라이드는 나직하게 한숨짓더니 몸을 감추듯 이불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
아침부터 더럽게 까칠하네.
똑똑.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다가 불시에 들려온 노크 소리에 내가 기겁하듯 몸을 움츠리자 클라이드가 손을 붙잡았다.
“저까짓 소리에 놀랄 거 없어. 악령이라고 해도 내가 있으니까.”
그 말은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나는 움츠린 어깨를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도 클라이드가 오자마자 노크 소리가 멎었으니 그의 말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들어와라.”
방을 찾아온 사람은 역시나 영주성 시녀였다.
“실례합니다. 테레제 아가씨, 영주님께서 아가씨께 긴히 부탁드릴 게 있으니 여유가 되실 때 집무실로 와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내 손을 겹쳐 쥔 클라이드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시녀에게 말했다.
“알겠어. 일단 식사부터 하고 찾아가지.”
“네. 아, 그리고 옆 방에 아가씨께서 입으실 옷들을 두었으니 마음에 드시는 것으로 골라 입으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식사를 가져오겠습니다.”
시녀가 공손하게 인사한 뒤 방에서 나갔다.
클라이드가 막 잠에서 깬 터라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시녀는 널 꼬박꼬박 아가씨라고 부르는군.”
“그게 왜?”
“넌 결혼했으니 아가씨가 아니라 부인이라고 불러야지.”
“어라. 그러고 보니 그렇네?”
분명 영주의 허락을 받고 결혼식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그러니 내 꿈이 다른 것으로 바뀐 거였고.
나는 어제보다 진해진 녹색 팔찌를 들어 보였다.
“이거 봐. 난 착실하게 던전의 규칙을 따르고 있잖아. 너랑 난 부부가 맞아.”
그러자 클라이드가 피식 웃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왜 웃어?”
“이 던전이 너한테는 참 행복한 곳인 것 같아서. 학교에서 내가 아니면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외치던 것도 생각나고.”
“그건!”
“그건?”
던전의 일도, 학교에서의 일도 부정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나는 적당히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 행복하다, 행복해. 팔찌도 내가 행복하다고 알려주네.”
돌팔이 던전 같으니.
내 꿈을 멋대로 이상한 걸로 바꾸더니 내 기분도 멋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게 제대로 작동했다면 난 이미 대기자 마을에 끌려갔을 텐데!
클라이드는 어딘가 신기해하는 눈빛으로 손을 뻗어 녹색 빛을 띠는 내 팔찌를 쓸어 만졌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도 배부른 포식자처럼 느껴져 기분이 묘해졌다.
똑똑.
그때 다시 노크가 들려왔다.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들어와.”
나는 시녀에게 들어오라고 말하며 팔찌를 감추듯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 * *
“이 정도면 활동하기 좋겠지?”
나는 품이 넉넉한 상의와 활동성 좋아 보이는 바지, 튼튼한 신발을 착용한 후 가죽 가방도 챙겼다.
내가 이렇게 챙겨입은 이유가 있었다. 새로운 퀘스트 때문이었다.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을 완성하려면 특별한 재료를 쓴 푸른색 물감이 꼭 있어야 해. 다만 그게 대기자들의 마을에 자라는 식물이라 선뜻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아.”
[던전 퀘스트: 번개 뿌리 수레국화 구해오기]
▸보상: 작품전 초대
▸실패: 사망
이는 델브 던전 에피소드의 절정부에 받게 되는 퀘스트였다.
내가 방을 나오자 어느새 병정 옷으로 갈아입은 클라이드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혼자서 어딜 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