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들의 습격 장소가 바뀌었어.’
원래라면 리비는 유랑극단의 배우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이 마을의 극단에 들어가게 되고, 첫 연극이 시작될 때 대기자들의 습격을 받는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결혼식이 무장하지 않은 주민들이 가장 많이 모인 장소라 타겟이 된 듯했다.
클라이드는 우리를 향해 달려온 대기자가 휘두른 창을 피하고는 단숨에 품을 파고들어 복부를 가격했다.
퍽!
“커억-!”
대기자는 종잇장처럼 바닥에 나뒹굴었다.
“테레제. 이리로 와.”
나는 클라이드가 내민 손을 냉큼 잡았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도 여기서 그보다 강자는 없었다.
클라이드는 내 손을 잡고 반대쪽 손에는 빼앗은 창을 들어 대기자들을 때려눕히며 입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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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마법 너프 시켰는데 더 강해 보이는 이유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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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큭! 아주 마음에 드는군. 버러지들을 다 쓸어버려라!]
대기자들은 무장해 있었고 이곳에 있는 대부분은 전투에 전혀 도움 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모두가 클라이드에게 의지하는 형국이 이뤄지고 있을 때였다.
대기자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병정들이 온다! 후퇴해!”
그들의 말대로 장난감 병정들이 우르르 들이닥치고 있었다.
클라이드는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 틈에 나를 안아 들어 빠른 속도로 밖을 향해 달렸다.
이러니까 꼭 결혼식에서 도망치는 신부가 된 것 같았다.
“아가씨! 이리로 오세요!”
성당을 벗어나자 영주성 시녀들이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게 보였다.
나와 클라이드는 잠깐 눈을 마주쳤다.
악마는 영주성에 있다.
이건 뜻하지 않은 기회였다.
“가자.”
내 말에 클라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녀들이 살짝 열어놓은 문틈으로 쏙 들어갔다.
클라이드는 안전이 확보되자 나를 내려주었다.
“두 분 다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아요.”
“아아, 다행이에요. 바깥이 혼란스러우니 안정될 동안 여기서 지내세요. 영주님께서도 허락하실 겁니다.”
시녀가 부리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권한이었다.
그러나 나와 클라이드는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시녀는 우리가 쓸 방을 안내해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건지……. 좋아하는 일만 하면 되는데 말이에요. 그마저도 하기 싫다면 살아있을 가치가 있나요?”
나는 조용히 미소만 지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시녀는 대답을 바라고 말한 게 아니었는지 자신의 불편한 속마음을 토로했다.
“대기자들은 좋아하는 일조차 노동으로 여기며 게으름을 피우지요. 그러고는 남의 팔찌를 빼앗는 극악한 짓으로 생을 연장한답니다.”
그녀의 표정은 벌레를 본 듯 일그러져있었다.
대기자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시녀는 2층의 손님방 문을 열어주고는 우리를 돌아보았다.
“두 분께서는 이 방을 쓰시면 됩니다. 어머, 그러고 보니 여전히 결혼식 예복 차림이시네요. 입고 오셨던 옷을 돌려드릴게요.”
시녀가 옷을 가지러 자리를 비우고, 우리만 방에 남게 되었다.
나는 가볍게 한숨지은 뒤 지금까지 부케를 무기처럼 꽉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장대 위에 놓았다.
그러다 어느새 엷은 연둣빛을 띠는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결혼식 도중에 갑자기 대기자들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네. 그래도 내 꿈이 무사히 완료됐나 봐.”
클라이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항상 생각하지만 넌 운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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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계약자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인데 부정적인 요소가 있네요?]
대답은 클라이드가 대신했다.
“던전은 현실을 빌려온 ‘임시 차원’이라 보통 사람 사는 데서 벌어질 법한 일들이 계약자의 의지를 벗어나 일어나곤 하지. 이곳은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의 대립이 빈번한 모양이군.”
“그래도 대기자들이 영주성까지는 쳐들어오진 못할 것 같은데?”
딱! 딱! 딱! 딱!
그때 바깥에서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닫힌 문을 열자 외다리 병정이 보였다.
“실례하겠습니다. 클라이드 경? 영주성 외부 경비대원으로서 대기자 수색에 참여해주셔야겠습니다. 제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주십시오.”
내키지 않는지 클라이드는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던전에서 부여한 역할이었기에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다녀올 테니 넌 성에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어.”
“그건 내 전문이지.”
나는 막 돌아온 시녀에게서 제복을 건네받고 방을 나가던 클라이드에게 말했다.
“조심해.”
클라이드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너도.”
저 까칠한 녀석이 이 정도라도 반응해준 게 묘하게 기뻤다.
그를 떠나보내고 나는 웨딩드레스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이후 시녀는 알아서 내게 성을 구경시켜주고 식사와 거품 목욕까지 융숭하게 대접했다.
대기자들을 잡느라 고생할 클라이드에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새 5시가 넘은 시간.
시녀는 나를 방으로 데려다주며 깜빡한 게 있다는 투로 말했다.
“참,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뭐죠?”
시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6시 이후에는 방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그때까지도 클라이드는 돌아오지 않았다.
* * *
이 던전은 한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어딜 가든 시계가 있다는 거다.
악령이 활동하는 시간인 6시를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전전긍긍하는 사이 절망으로 가득 찬 악령이 활동하는 시간, 6시가 되었다.
노크 소리가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똑. 똑. 똑. 똑.
또렷하고 정확하게 끊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
이는 영주성에 묵으면 겪는 이벤트였다.
이때 선택지는 이렇게 뜬다.
[1. 문을 열어본다.]
[2. 무시한다.]
1번은 함정. 바로 악령에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러니 무시하는 게 정답이지만…….
똑. 똑. 똑. 똑.
귀를 틀어막아도 보고 이불도 뒤집어써 보았지만, 노크 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리비야.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딴 시나리오를 넣다니.
과거의 나는 싸이코패스가 틀림없었다.
그렇게 6시간이 흘렀다.
똑. 똑. 똑.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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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덕 없는 악령 새끼가 왜 야밤에 자꾸 노크질이야? 뒈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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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제가 이 방송에 빙의해서 저 새끼 죽이고 천국 가겠습니다.]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나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의적인 노크 소리에 미칠 것만 같았다.
‘제발 그만해!’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때 갑자기 문밖에서 소름 끼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비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식은땀으로 젖은 얼굴을 들어 올렸다.
현재 시각 새벽 1시. 아직 악령이 물러갈 시간도 아니었다.
“야. 안에 있어?”
이건 클라이드의 목소리였다.
“…클라이드? 클라이드, 너야?”
“어. 나야.”
나는 당장 문 앞까지 뛰쳐나갔다.
그러자 내 발소리를 들은 클라이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문은 열지 말고. 악령이 들어가니까.”
나는 안도감에 주르르 미끄러지듯 문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아,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실은 아주 조금 나긴 했다.
“…클라이드, 너 혼자 괜찮겠어?”
어차피 이 문을 열어도 내가 악령을 어쩌지 못할 것을 안다.
알면서도 걱정되어 괜스레 문 너머의 클라이드의 온기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처럼 손을 가져다 댔다.
무의미한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그런데도 이러고 있으니 어쩐지 클라이드와 밀착하고 있는 느낌이라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클라이드는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악령에 노출된 이상 날이 밝기 전까지 어디를 들어가든 소용없어. 5시까지 버티는 수밖에.”
이 퉁명함이 이토록 반갑게 느껴질 날이 오리라고는 정말 예상치 못했는데.
“악령이 무섭지는 않아?”
끔찍하게 느껴지던 악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홀로 감당할 클라이드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분명 모습이 보이지 않을 텐데도 클라이드는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훤히 아는 사람처럼 말을 덧붙였다.
“던전의 규칙 때문에 아공간을 사용하지 못할 뿐이지 성유물의 힘은 여전히 나를 보호하고 있어. 이깟 악령들은 내 상대가 못 돼.”
“맞아. 그랬지. 그랬었지.”
“네가 뭘 안다고 ‘그랬었지’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했다. 웃긴 말도 아니었는데 실없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문 너머의 클라이드는 침묵 중이었지만 왜인지 그도 웃고 있으리라는 묘한 직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