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5/277)

  

클라이드가 손을 내밀었다.

네 카드 내놔.”

나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꿈이 적힌 카드를 꺼내 그에게 내밀며 부족한 설명을 덧붙였다.

내 말은 진짜 결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잠시 협력하자는 뜻이야어쨌든 델브가 영주일 건 뻔하고 악마를 잡으려면 영주성으로 들어가야 하잖아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영주성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구실도 없어이게 다 내 덕인 거 알겠지?”

조용히 좀 해봐.”

으응.”

클라이드는 카드에 적힌 내 꿈을 보며 뭔가 고민에 잠긴 듯했다.

……처럼 평범한 삶이라…….”

그는 거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한숨처럼 중얼거리더니 이내 결정 내린 듯 날 쳐다보았다.

그래하자결혼.”

* * *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오와 열을 갖춘 책장과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가구들로 이루어진 공간.

숨 막히도록 강박적인 이곳은 다름 아닌 이사장실이었다.

이사장실에는 윌로우 공작 외에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이사장은 성적표를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계속해보시게.”

그러자 맞은편에 서서 보고 중이던 교수가 마저 입을 열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테레제 스콰이어 학생의 <마법 술식점수는 A+입니다.”

이사장은 눈썹을 치올리며 물었다.

기존의 것보다 위력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테레제 학생이 사용했을 때는 부족한 위력을 풍부한 마력으로 보완하기 때문에 사실상 본인에게는 훨씬 유리한 방식입니다.”

하긴이번에 마력 측정 결과가 꽤 인상적이었지.”

이사장이 보고 있는 것은 테레제의 성적표였다.

성적표에는 이번 테레제의 마법 능력 검사 결과가 쓰여 있었다.

지능마력마법 적성 모든 게 천재들이 보여주는 스테이터스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교수는 잠깐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단순히 괜찮은 발견 정도가 아닌지라 마법협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이는 전투 마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방식입니다.”

이사장은 잠시 침묵 속에서 생각을 가다듬은 뒤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테레제의 중간고사 예상 총점이 어떻게 되지?”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은 과목의 교수들 의견까지 취합해보았을 때, B+까지 가능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놀랍군만년 꼴등이 단숨에 총점 B+까지 오른다는 게 믿기지 않네학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되겠어.”

발할라가 그저 그런 마법 학교였다면 그냥 놀랍고 기특한 헤프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곳이 발할라이기에 이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멸악 활동 점수만 받쳐줬다면 더 좋은 성적을 받았을 겁니다.”

이 말까지 들으니 이사장은 문득 학생회 가입을 허락한 자신의 선택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호랑이 새끼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나…….”

하하호랑이 새끼라니.

테레제에게 이런 표현을 쓰게 될 날이 올 줄 상상이나 했으랴?

올해 들어 테레제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황후 후보라는 말까지 돌고 있으니허투루 볼 문제가 아니야.’

이러다 100년에 걸쳐 간신히 바닥까지 짓밟아놓은 스콰이어 공작가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게 생겼다.

좋지 않아.”

요즘은 늘 자신을 흐뭇하게 하던 정신 빠진 클예부 활동도 얌전하게 진행했다.

묘했다사람이 바뀌어버린 것처럼.

그 미친 망아지가 철이 들었나?’

하지만 철이 든다고 성적이 오르는 법은 없을 텐데.

아무튼 총점은 B+가 최대라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되었네.”

테레제의 퇴학은 확정이었다.

그때 사용인이 다급하게 들이닥쳤다.

이사장님교내에 던전이 나타났습니다!”

?! 어디에 말인가!”

“2층 교수 전용 도서관입니다그곳에 클라이드 님이 남겨놓은 표식이

잠깐클라이드라니?”

던전에 클라이드 님의 표식이 있습니다아마 던전에 빨려 들어가신 듯합니다.”

당장 그리로 가지교수 전원을 호출하고 경비대도 전부 불러라시험은 일시 중지한다.”

이사장님.”

이사장은 굳은 표정으로 2층 교수 전용 도서관으로 향했다.

공략자를 집어삼킨 던전은 사특한 마기를 뿜어내며 주위를 오염시키려 했으나 클라이드가 쳐놓은 강력한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이사장은 클라이드가 남긴 표식으로 정보를 얻었다.

클라이드와 테레제 두 사람이 던전에 빨려 들어갔군던전을 만들어낸 악마 계약자는 4학년 델브 오브리언이다오브리언 가문에 사람을 보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샅샅이 뒤져 정황을 알아내라.”

알겠습니다!”

공략대가 한 번 들어간 이상 클리어하든다 죽어서 다시 문이 열리든 한가지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이사장은 클라이드가 진입한 던전인 이상 절대 클리어하지 못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 아이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었으니까.

타이밍이 공교롭군.”

마침 테레제에게 부족한 게 멸악 활동 점수였다.

한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오면 반드시 A+를 주어야 할 판이었다.

마수를 상대하는 것과 악마 던전을 클리어하는 건 궤를 달리하는 일이었기에 그만큼 활동 점수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운이 좋은 건가.”

그냥 우연에 불과한 일이겠지만이러니 마치 하늘이 테레제를 돕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사장은 이왕 이렇게 된 거차라리 테레제가 던전에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내가 손쓸 필요도 없이 그게 가장 깔끔하니까.’

어쨌든테레제가 악마 던전에 휩쓸렸으니 라울이 이곳으로 쳐들어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빌어먹을 망종이 제게 덤비지 못하도록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곳을 잘 감시토록 해라무슨 변화가 있으면 즉시 마법전서구로 상황을 알리고.”

명을 받듭니다!”

* * *

던전에 들어온 지 2일 차.

어서 오십시오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외다리 병정은 영주성 입구에 도착한 우리를 발견하더니 다가와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클라이드는 인사는 됐다는 듯 본론을 물었다.

영주님은 어디 계시지?”

영주님께서는 어젯밤부터 새로운 작품에 전념 중이시라 알현하실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니영주라는 사람이 뭐가 그래?

내가 황당해하자 외다리 병정이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물론그는 표정을 짓거나 음성에 감정을 담을 수 없는 무생물이었으므로 설명을 늘어놓는 것뿐이었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허락하셨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또한사과의 의미로 두 분을 축복하기 위한 결혼식을 열어주시기로 하셨습니다결혼식은 한 시간 뒤에 마을 성당에서 진행됩니다.”

결혼식이요?”

그때 영주성에서 일하는 시녀들로 보이는 이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다.

두 분께서는 정말 운이 좋으시군요이리로 오세요결혼식에 필요한 웨딩드레스와 장소는 전부 준비되어 있답니다.”

신부님은 저쪽으로신랑님은 이리로 오십시오결혼식 준비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당혹스럽게 손사래 쳤다.

절차는 생략해도 괜찮아요영주님께 너무 큰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염려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인데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게 말이 되나요사양 말고 즐기세요.”

시녀들은 매우 신난 표정으로 우리에게 척척척 다가왔다.

클라이드는 성가시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따라영주성에 좀 더 머물 기회기도 하니까.”

그건 그렇지알았어이따 봐.”

우리는 각각 다른 시녀 무리를 따라갔다.

결혼식이라니정말 오랜만이지 않아요제 가슴이 다 두근거려요.”

신랑님이 영주님의 그림 속 천사처럼 잘생기셨더라구요정말 행복하시겠어요신부님.”

예에.”

띠링!

[성좌 얼굴감별사’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제복 클라이드에 턱시도 클라이드까지 볼 수 있다니델브는 좋은 사람이야 ㅜ_]

당사자를 제외하고 모두가 행복한 결혼식인 것 같았다.

나는 스콰이어 공작저 만큼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규모의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아휴고작 한 시간 안에 어떻게 목욕이랑 화장이랑 머리 손질이랑 환복까지 다 한담모두 서둘러야겠어요!”

시녀들은 기합이 잔뜩 들어간 표정으로 나를 때 빼고 광냈다.

이윽고 예정된 시간을 살짝 지나쳐서야 준비가 끝났다.

시녀들은 부케를 든 내 모습에 황홀해 하는 표정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세상에신랑님이 보시면 틀림없이 신부님에게 또 한 번 반하실 거예요.”

전제부터 잘못된 이야기지만그들이 강력하게 확신할 만큼 지금의 내 모습은 나조차 놀랄 정도로 새롭고 신선한 매력이 풍겼다.

화려한 드레스들을 몇 번 입어봤지만확실히 웨딩드레스만이 주는 느낌과는 달랐다.

이래서 예쁘고 잘생기면 매번 새롭고 짜릿하다는 걸까?

띠링!

[성좌 얼굴감별사’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나도 또 한 번 반해버렸어]

감상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했다.

결혼식에 지각하게 생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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