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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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던전에 들어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술을 마셔제정신이 아닌 건 진작 알았지만 이젠 미치광이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야너에게는 세간의 상식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건가하긴말 타는 법도 잊는데 상식 따위야 툭하면 까먹겠군.”

    술을 마시긴 했지만 취하지는 않았는데.”

    주정뱅이는 입 다물어.”

    그의 부당한 요구에 무척 억울했지만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으며 순순히 응했다.

    그때 남의 속도 모르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기판을 벌이던 구경꾼들이 다가와 떠들어댔다.

    어이예쁜 아가씨이번에는 저기 새총은 어때저녁이 오기 전에 10연승 채우는 거야!”

    예끼이 사람아저 아가씨한테 그런 시시한 새총 대결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이번에는 무조건 야바위야야바위 가자고!”

    클라이드는 가세가 기우는데도 노름에 빠진 정신 나간 배우자를 추궁하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대체 그 짧은 시간에 뭘 하고 다녔길래 이렇게 유명 인사가 됐지?”

    억울하다억울해!

    내게 죄가 있다면 델브 던전의 미니 게임에 빠삭했고돈을 털 확실한 방법을 알았다는 것뿐이다.

    그냥 돈을 벌었을 뿐이야난 너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돈을 주겠다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 꿍얼거림을 들은 클라이드가 한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뭐 하는 거야?”

    따지고 싶으면 제대로 걷기라도 하던가.”

    나 똑바로 걸은 것 같은데?”

    자꾸 토 달면 평생 지그재그로 걷게 해주지.”

    이 녀석이라면 갑자기 수틀린다고 날 바닥에 내팽개칠 수도 있어.’

    나는 얼른 클라이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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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이구ㅎ 이러다 정분나겠어~?]

    그런 얼토당토않은 착각을 하기엔 클라이드의 호감도가 너무도 굳건하게 검은 하트 3개를 유지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이없네이만큼이나 엮였으면 검은 하트 하나 정도는 깎아줄 수도 있잖아?’

    황제와 더불어 초반 공략이 가장 어려운 캐릭터답게 클라이드의 마음을 얻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너무 생각에 몰두한 걸까?

    나도 모르게 클라이드를 너무 대놓고 빤히 쳐다보았는지그가 미간을 찡그리며 날 쳐다보았다.

    아주 대놓고 구경하는군넌 부끄러움을 모르나?”

    그의 외모를 감상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눈이 즐거웠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부끄러운 건 잘 모르겠지만… 네가 제복이 잘 어울리는 건 알겠어.”

    나는 더없이 진심으로 말했다.

    클라이드는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내 시선을 피했다.

    표정은 좀 무서웠지만 불쾌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움을 타는가 싶었다.

    그나저나 내 꿈 이야기는 언제 하지?’

    절대 숙취 때문이 아니라내일 이 녀석을 데리고 영주성에 가서 결혼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클라이드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여기 들어가자.”

    내가 가리킨 곳은 사랑의 휴식처라는 이름의 여관이었다.

    ……이름이 불쾌하군.”

    따지지 마밤이 되기 전에 숙소를 잡아야 하니까.”

    클라이드는 다행히 내 말을 음흉한 속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던전 규칙인가?”

    맞아낮 동안은 즐겁고 행복한 세상이지만 밤은 절망의 악령들이 쏟아져나오거든.”

    술만 퍼마신 줄 알았더니 용케도 유용한 정보를 알아냈군.”

    나는 창조주의 위엄을 담아 웃어 보였다.

    후후.”

    하나 내 웃음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머어떡하죠이미 만실인데.”

    날벼락 같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실이라니요?”

    넣은 적도 없는 만실이라는 설정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멍한 얼굴로 있으니 주인장이 안타깝단 투로 확인 사살해주었다.

    보통 4시쯤이면 숙소들이 꽉 찬답니다지금은 벌써 5시 30분이고 6시면 해가 떨어지니 어딜 가더라도 비슷할 거예요.”

    우리는 수확 없이 사랑의 휴식처에서 나왔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다른 여관으로 가보자.”

    여차하면 동굴이라도 찾아 들어가야 할 판국이었다.

    그때 중년의 사내가 우리에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방을 찾소?”

    클라이드가 대답했다.

    그렇다.”

    사내는 클라이드의 서늘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중저음에 흠칫하더니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내 여관에는 빈방 있으니 이리 오시오.”

    퉁명스러운 사내는 우리를 가장 구석에 처박힌 방으로 데려갔다.

    이 방 딱 하나 남았소지금 수락하지 않으면 다른 손님에게 내줄 것이오어떻게 하겠소?”

    방은 침대 하나만으로도 꽉 찰 정도로 작았다.

    그래도 먼지도 없고 깨끗해 보여서 나쁘지 않았다.

    괜찮은데여기서 묵자.”

    내 말에 클라이드가 하나밖에 없는 침대를 살벌하게 노려보더니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여전히 취한 나를 안아 들고 있는 클라이드를 물끄러미 보더니 넌지시 경고했다.

    보아하니 한창 뜨거울 때 같은데 소란은 자제하시오.”

    이 무엄한!”

    나는 다급히 클라이드의 입을 틀어막았다.

    오늘 하루 묵을게요얼마죠?”

    “5만 겔랑이오.”

    내가 오늘 번 돈은 총 30만 겔랑이었기에 방값은 충분했다.

    사내는 돈을 받자마자 열쇠를 넘겨주고 떠났다.

    나는 그제야 클라이드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풀었다.

    들어갈까?”

    클라이드는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나서야 나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

    …….”

    좁은 방에 둘만 남겨지니 순식간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허공에 반쯤 떠 있는 듯했던 정신도 매우 맑고 또렷해져 더욱 곤란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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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이 방송은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어 보호자의 시청지도가 필요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적절한 일은 없을 예정이었다영원히.

    오늘 짧은 시간 내에 워낙 많은 일을 겪은 터라 갑자기 졸음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흐아암.”

    내가 하품하자 클라이드가 침대를 가리켰다.

    네가 침대를 써.”

    그러면 넌?”

    난 이걸로 충분해.”

    클라이드는 의자를 끌어 방 끄트머리로 가서 앉았다.

    어떻게든 나와 가장 먼 거리에 있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클라이드는 불행한 서사와는 별개로 굉장히 귀하게 자란 도련님이었다.

    이런 곳이 성에 차지 않을 듯한데 표정만으로는 나와 함께 있어서 불쾌한 건지이 장소가 불쾌한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이런 곳 불편하지는 않아?”

    활화산 가까이서 쪽잠을 잘 때보단 편해.”

    이 여관이 활화산에 비견될 정도란 말이구나…….

    나는 내내 품에 안고 있던 고기파이 봉투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거 먹어여기음식을 팔지 않는 여관인 것 같으니까.”

    클라이드는 봉투를 잠깐 바라보더니 의외라는 듯 말했다.

    내가 알기로 네가 던전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일 텐데대비가 나쁘지 않군.”

    던전 속 세상이 가상 세계라지만 실제와 똑같으니까낯선 장소에 무일푼으로 떨어진 사람이 해야 할 행동은 어디든 비슷할 거 아냐.”

    내 말을 가만히 경청하던 클라이드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그렇다니까.”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 어느덧 6시가 되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조그마한 창으로 들어오던 거리의 불빛이 동시다발적으로 팍꺼진 탓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에 달린 조그마한 커튼을 쳤다.

    방에는 양초 하나와 성냥 한 개비가 전부였기에 그것으로 불을 밝혔다.

    더 환한 빛은 악령을 끌어들이기에 조심해야 했다.

    클라이드도 급작스럽게 변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바깥이 죽은 듯이 조용해졌군.”

    하지만 고요함은 아주 잠깐이었다.

    휘오오-! 덜컹덜컹덜컹!

    바람인지 방문자인지 모를 무언가가 창을 두드리며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흠.”

    나는 이불속에 들어가 몸을 바짝 끌어안았다.

    솔직히무섭다.

    분위기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으스스했다.

    바깥에 돌아다니는 악령들이 현실에서는 대체 얼마나 리얼한 모습으로 구현되었을지 자꾸만 상상하려는 멍청한 머리 때문에 더욱 무서웠다.

    나는 무서울 때 노래를 부르며 의식을 흩트리는 심정으로 지금껏 미뤄둔 숙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야기 좀 하자클라이드.”

    클라이드는 감고 있던 눈을 뜨더니 시선만 내게로 옮겼다.

    무슨 이야기?”

    너도 꿈 카드 받았어?”

    …….”

    클라이드는 평소의 거침없는 성격답지 않게 잠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클라이드의 꿈은 평범한 삶일 텐데그게 말하기 어려운 꿈인가?’

    그는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왜?”

    생존에 필요한 미션이니까 그렇지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와야 던전을 클리어하기 수월하잖아.”

    당연한 정론이었기에 클라이드는 수긍하는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말했다.

    나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게 내 꿈이라고 적혀있었다너는 뭐지?”

    클라이드의 꿈은 역시나 설정대로였다.

    이제 문제는 내 꿈이었다.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나는 최대한 사무적이고 객관적인 표정과 말투로 제안했다.

    나랑 결혼하자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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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브스 선정 최악의 청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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