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아아!! 아가씨가 이겼어!”
“자자, 주인장에게 돈 건 녀석들 어서 내놓으라고~”
사람들은 내가 이기자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떠들썩하게 즐거워했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돈을 챙겼다.
“훗… 어리석긴. 내가 지능은 낮아도 알코올 분해 능력은 S급이라고…. 지금도 전혀 안 취했는걸…?”
띠링!
[성좌 ‘프로훈수러’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취했으면 발 닦고 자라]
“하나도 안 취했는데 무슨 소리죠…? 아, 나도 취해보고 싶다…!”
그때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기판을 벌이던 남자가 껄껄 웃으며 커다란 종이봉투를 툭 내밀었다.
“아가씨, 아까 맛있는 식당이 어디냐고 물었었지? 여기 고기파이가 아주 꿀맛일세. 선물이야!”
이걸 왜 나한테 주지?
의문이 들었지만, 음식이 필요했기에 일단 받았다.
그러자 남자는 또 껄껄 웃으며 말했다.
“오늘 아가씨에게 판돈을 죄다 걸었더니 내기 돈을 두둑하게 땄거든!”
아아, 그런 거였군.
나는 고기파이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며 슬슬 클라이드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우물우물. 그런데 클라이드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지…?”
하지만 여정은 그리 길지 않았다.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제발 당신을 그리게 해주십시오!”
“오오, 신이시여. 내 생에 이토록 완벽한 피조물을 본 적이 없어!”
“나의 뮤즈!”
“……?”
어느 순간 화가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구역이 소란스러워졌다.
뭔가 이상함을 느껴 그리로 가보니 익숙한 미남이 보였다.
짙푸른 장난감 병정 제복 차림의 클라이드였다.
‘누구는 돈 버느라 개고생했는데 누구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돈을 바치는구나.’
세상의 부조리함에 입맛이 뚝 떨어졌다.
“…잘생기긴 확실히 잘생겼네.”
장난감 병정 옷을 입고 있으니 왕자님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때 클라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 * *
두 사람이 마주치기 몇 시간 전.
클라이드는 장난감 병정 옷을 입은 모습으로 영주성 외부에서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의 옷차림과 주변 경관을 살피며 상황을 파악했다.
“문지기 같은 건가?”
성을 지키는 외부 경비병이라기에는 차림새가 과하게 화려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던전은 악마 계약자의 허무맹랑한 꿈과 희망을 토대로 지어진 허상에 불과했으므로.
꿈은 언젠가 깰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모르고 이깟 별것도 아닌 환상을 보기 위해 악마와 계약하는 나약한 정신머리가 역겹고 불쾌했다.
마치 어리석은 제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서.
클라이드는 마법을 이용해 영주성의 담벼락을 넘어보려 했으나 마력이 일으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법이 없는 세계인가 보군.”
던전은 악마 계약자가 원하는 규칙이 적용된 세상이니 이런 것도 가능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던전은 위험도가 낮은 대신 규칙이 황당하고 까다로울 확률이 농후했다.
하여 클라이드처럼 강력한 마법사들은 보통 이런 퍼즐 게임 같은 던전을 선호하지 않았다.
‘델브라고 했나? 미술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그와 관련된 던전일 확률이 높겠어.’
자신이 제복 차림인 것과 미술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딱! 딱! 딱! 딱!
그때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외다리 장난감 병정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마을의 새로운 주민에게 꿈을 알려드리는 꿈의 전령입니다. 당신의 꿈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꿈?”
“예. 이곳은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주민들은 전부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며 꿈을 이루어야 합니다.”
꿈이라. 제게 꿈이랄 게 있나?
클라이드는 꽤 묘한 던전이라고 생각하며 봉투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카드에 적힌 자신의 꿈을 보고 얼굴을 구겼다.
[클라이드의 꿈: 테레제처럼 평범한 삶]
“뭐 이런…….”
클라이드는 규칙이 어떻게 적용될지 알 수 없었기에 목 끝까지 치민 욕설을 삼켰다.
자신의 꿈이 평범한 삶인 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지만, 어째서 단서에 ‘테레제처럼’이 붙는 거지?
내가 테레제를 부러워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바보를?
어처구니가 없었다.
외다리 병정은 둥그런 흰색 팔찌를 내밀었다.
“여기 행복 팔찌를 착용하십시오. 경께서는 좋아하는 것이 없는 관계로 매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측정할 예정입니다.”
“그건 어떻게 알 수 있지?”
“흰색은 수치로 ‘0’을 뜻하는 상태입니다. 즐거운 일을 하면 팔찌가 녹색으로 변하지요. 반대로 팔찌가 검은색으로 변하면 이 세계의 일원이 되기 부적절한 주민으로 판단되어 처형당합니다.”
클라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 가 봐.”
“예. 그럼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용건이 끝난 외다리 병정은 순순히 뒤돌아 멀리 사라졌다.
그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테레제부터 찾아야겠군.”
‘테레제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녀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나더러 개망나니가 되란 뜻인가?”
물론 요즘의 테레제는 개망나니라기보단 어딘가 약간 미친 사람 같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그런 미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돌겠군.”
그는 우선 사람이 많은 장소를 찾아 이동했다.
테레제라면 틀림없이 눈에 띄는 짓을 하고 다니리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한적한 빨래터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던 백발노인이 저를 불렀다.
“이보시오, 잘생긴 군인 나리. 혹시 누군가를 찾고 있소?”
클라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런 거면 광장으로 가보시오. 이곳으로 더 들어가봤자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만 줄줄이 나올 거요.”
가난한 이들이라니.
여기는 즐거운 일만 하고 꿈을 좇는 동화 속 세상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노인과 대화를 이어갔다.
“여기도 가난한 이들이 있나? 영주성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민가인데 이상하군.”
“허허, 여기는 대기자들이 사는 마을이라오.”
“…대기자?”
노인이 자신의 팔찌를 보여주었다.
팔찌는 아직 완전하게 새까맣지는 않지만 거의 거무튀튀하게 물들어있었다.
“꿈을 이루지 못했거나 꿈을 잃었거나 꿈이 싫어진 이들은 이렇게 팔찌의 색이 점점 검게 변하오. 그러다 마침내 팔찌가 완전히 검어지면 영주성으로 끌려가거든.”
“처형당하러 말인가?”
“그렇소.”
노인은 곧 죽을 사람임에도 딱히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클라이드가 의아해하는 것을 느낀 노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영주님은 꿈을 꾸는 노인이 잘 없다는 사실을 모르시오. 그분은 젊고 하고 싶은 일이 많거든.”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꿈을 꾸는 건 아니지 않나.”
“그 또한 맞는 말이오. 저기 저 아이를 보시오.”
클라이드는 노인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나뭇가지로 흙바닥을 파고 있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손목에 걸린 팔찌는 노인과 비슷한 색이었다.
“아이라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이 무궁무진하진 않다오. 상상력이나 꿈, 희망이라는 건 꽤나 사치스러운 거거든.”
노인은 언제나 맑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영주님은 이런 세상을 바라셨다오. 모두가 꿈꿀 수 있는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을.”
클라이드는 대단히 역겨운 발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는 꿈꾸기에 불행한 사람이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음에도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꿈.
인간.
그건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말 그대로 ‘꿈’이었다.
타협하고 싶어도 타협할 수조차 없었다.
“…알려줘서 고맙군. 광장은 저쪽으로 가야 하는 건가?”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분수대가 보일 거요. 그곳을 기점으로 환상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될 테니 기대하시오.”
글쎄. 제국의 수도 출신인 자신이 아름답다고 감탄할 게 있을까?
클라이드는 어깨를 으쓱한 뒤 광장으로 향했다.
확실히 광장으로 갈수록 인파가 쏟아지더니 축제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과도하게 즐거워하는 모습들에서 기괴한 강박이 느껴졌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세계로군.’
차라리 메마르고 건조한 현실이 훨씬 나은 것 같은데.
분수대에 다다르자 자신을 향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클라이드는 미간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녀노소 누구든 클라이드를 발견하면 멍한 얼굴로 넋을 놓았다.
“천사다…….”
현실에서도 종종 겪는 일이지만 던전 주민들의 반응도 만만치 않게 유난스러웠다.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제발 당신을 그리게 해주십시오!”
“오오, 신이시여. 내 생에 이토록 완벽한 피조물을 본 적이 없어!”
“나의 뮤즈!”
다 죽여버리고 싶은데.
그는 헛소리들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어느 한 지점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람에 물결치듯 휘날리는 붉은 치맛자락이었다.
눈이 부시도록 뽀얀 어깨를 드러낸 블라우스와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돋보이도록 두른 흰 머리띠.
주위의 풍경과 전혀 융화되지 않는 독보적인 분위기의 어딘가 아슬아슬해 보이는 여자.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분수대가 보일 거요. 그곳을 기점으로 환상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될 테니 기대하시오.”
클라이드는 미간을 와락 구겼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환상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게 말이 되는 모양인지, 때를 노리는 승냥이처럼 근처를 서성거리는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하여간 거슬리는군.’
클라이드는 저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테레제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멈칫.
“…너 술 마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