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2/277)

  

14. 좋아하는 걸 하지 않으면 죽는 세계

♬♩♪♩♬♩♪~

선율이 아름다운 음악이 흘렀다.

빙그르르!

빙그르르!

열셋의 장난감 병정과 짝을 이룬 붉은 치맛자락을 휘날리는 소녀들이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하늘에는 귀여운 모양의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녔고 사방에 꽃잎이 흩날렸다.

또한 거리에선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광대들이 알록달록한 공을 던졌으며 천사처럼 고운 목소리의 소년이 노래 불렀다.

하하하호호호!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행복한 웃음이 넘치는 세상.

나는 그 속에서 춤추는 소녀 중 하나가 된 채 눈을 떴다.

던전 세계와 내가 완벽히 동기화되었을 때 시스템 창이 떴다.

띠링!

[던전 퀘스트좋아하는 걸 하지 않으면 죽는 세계]

보상: +1,000,000코인발할라로 복귀

실패사망

나는 장난감 병정의 움직임에 맞춰 빙그르르 턴 했다.

그러자 붉은 치맛자락이 화려하게 퍼졌다가 오므린 꽃봉오리처럼 뭉치기를 반복했다.

일단 무대에서 내려가야겠어.’

병정 녀석이 자꾸 턴을 시켜서 정신 사나웠다.

게임에서는 이때 두 가지 선택지가 뜬다.

[1. 지금 도망친다.]

[2. 춤추는 척하다가 도망친다.]

이때 골라야 할 선택지는 2춤추는 척하다가 도망친다였다.

나는 열셋의 장난감 병정들 사이를 빙글빙글 유려한 몸짓으로 피해 무대에서 내려와 치맛자락을 쥐고 꾸벅 인사했다.

[중급 댄싱]을 [댄싱 머신]으로 업그레이드하길 천만다행이었다.

시스템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휘익-! 짝짝짝짝!

화려한 춤 솜씨에 감명한 구경꾼들이 휘파람을 불고 박수쳤다.

일종의 쇼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광장 분수대에 털썩 앉았다.

띠링!

[성좌 물음표살인마’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질문 있어요! <신의 유희>에서는 악마가 던전을 생성하는 존재인가요?]

정확하게는 계약자의 소원을 현실 세계에서 직접 이뤄줄 수 없기에 던전이라는 가상 세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준 거지만요.”

던전혹은 백일몽신기루허상.

이를 표현할 말은 무수하다.

띠링!

[성좌 명탐정’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류 발견그렇게 되면 클라이드의 모친인 서큐버스는 현실에서 레녹스 윌로우의 소원을 이뤄줬다는 설정과 상충.]

그쪽은 그냥 악마가 아니라 몽마의 왕이라서요악마 사이에도 엄연히 힘의 우열에 따른 계급이 존재하거든요.”

악마는 인간과 계약하지 않으면 인간계에 나타날 수 없다.

또한인간계에 본체로 현신할 수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의 형태로 나타나는 거였다.

앞서 말했듯 물론 예외는 있었다.

대악마인 일리야나 몽마의 왕처럼 엄청난 힘을 지닌 고위 악마는 힘의 제약이 생기기는 하나본체로 존재할 수 있었다.

[성좌들이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할 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합니다.]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던전에 갇힌 인간은 모두 죽어요또한던전이 생성된 일대는 마기에 침식되어 마계화’ 진행이 가속되죠.”

그래서 던전 퀘스트 실패 페널티가 사망인 거였다.

[성좌들이 던전을 어떻게 클리어하는지 궁금해합니다.]

그거야 이곳 가상 세계에 숨은 악마를 죽이는 거죠더 자세한 건

!

묵직하고 규칙적인 소리에 나는 설명을 멈췄다.

정면에서 외다리 장난감 병정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외다리 병정이 내 앞에 서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아가씨저는 마을의 새로운 주민에게 꿈을 알려드리는 꿈의 전령입니다.”

이 세계의 핵심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였다.

다시 말해서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뭘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당신의 꿈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외다리 병정이 내게 직사각형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성좌들을 위해 설명했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스킬 숙련도플레이 방식 등을 분석해 꿈을 선정해요.”

그러자 무생물인 외다리 병정은 내 말을 인식하지 못한 AI처럼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아가씨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뒤 봉투를 열었다.

내 꿈이 뭐라고 나올지 궁금하네.”

어쩌면 낙원에 관련된 게 나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마법에 관련된 거라든가?

그리고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테레제의 꿈클라이드와 결혼]

……?”

내 꿈이 클라이드랑 결혼하는 거라고?

버그인가?”

아무래도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딴 게 꿈으로 나올 리가 없잖아!

띠링!

[성좌 팩트도 폭력이다’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아 ㅋㅋ 테레제 꿈은 이게 맞지 ㅋㅋ]

말도 안 돼…….”

내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

…….”

…….”

…….”

갑자기 모든 소리가 뚝 멈췄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전부 섬뜩한 얼굴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이건 좋아하는 걸 하지 않으면 죽는 세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현상이었다.

게임에서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좋아하는 걸 하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했다면현실이 되어버린 지금은 내 부정적인 발언 따위도 판정에 영향을 주는 듯했다제기랄.

이 상황을 수습하지 않으면 주민들은 악마가 되어 나를 죽이려 달려들 것이다.

나는 활짝 웃으며 행복하게 외쳤다.

클라이드와 결혼하는 건 평생의 꿈이었어요!”

……♬♩♪♩♬♩♪~

다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며 섬뜩한 시선들이 거두어졌다.

외다리 병정이 내게 둥그런 팔찌를 내밀었다.

이건 좋아하는 일을 했는지 측정해주는 행복 팔찌입니다이걸 착용하지 않으면 주민으로 인정되지 않으니 지금 바로 착용해주시겠습니까?”

네에.”

내가 팔찌를 끼자 외다리 병정이 말했다.

신랑을 찾으면 영주님께 두 분의 결혼을 승낙받아야 하니 영주성으로 오시기 바랍니다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

임무를 마친 외다리 병정이 뒤돌아 떠났다.

나는 멍한 눈으로 그 모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멸악 활동 점수가 필요하긴 했지만 이렇게 채우게 될 줄 몰랐는데.”

원래 게임에서는 이렇게 기습적으로 던전에 휘말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라는 식으로 힌트가 떴다.

그나마 같이 던전에 들어온 사람이 클라이드라 다행이에요걔는 좋아하는 게 없어서 플레이 난이도가 낮거든요.”

그럼 이제 슬슬 클라이드를 만나러 가볼까?

나는 클라이드가 던전에 소환되는 위치인 영주성 외부로 향했다.

한데 주변을 둘러봐도 클라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니 클라이드가 자체적인 판단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우려했는데정말로 어디론가 떠나버린 듯했다.

띠링!

[성좌 물음표살인마’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마법으로 찾으면 안 되나요?]

이 세계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아요. ‘델브가 정한 규칙이거든요.”

꼬르륵.

설상가상 배도 고팠다.

하지만 여기도 엄연히 한 세계인 만큼 돈이 있어야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거라곤 입고 있는 옷이 전부였다.

돈을 벌려면 일해야 하는데.”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했다.

만일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던전 명 그대로 사망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

띠링!

[성좌 조용한 관종’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마법이요]

마법은 못 쓴다니까요.”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게임밖에 없는 내가 대체 뭘 해야…….

?”

* * *

온통 즐거운 일로 가득한 이 던전 세계에서 가장 성행하는 일이 무엇일까?

델브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이니 미술이나 조각혹은 음악이나 연극 같은 예술 계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 그렇지 않다.

비록 이곳 주민들이 가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사람이었다.

다수의 사람이 좋아하는 건 어느 차원이든 비슷한 법.

그건 바로 게임이었다.

저 아가씨가 또 이겼어!”

벌써 몇 번째야대단한데?”

[체스 대결이기면 3만 겔랑!]

[오목 대결이기면 1만 겔랑!]

[다트 대결이기면 5만 겔랑!]

등등델브 던전에는 여러 미니 게임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이길 수 있는 종목만 골라서 대결했고 벌써 6연승을 거두는 중이었다.

내가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잘하니까.

게다가 <신의 유희속 미니 게임들은 썩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띠링!

[성좌 갬블러’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던전 주민들의 피 같은 돈을 털어가는 야비한 솜씨가 일품이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내게 유리한 종목을 대결할 장소에 도착했다.

[주량 대결이기면 10만 겔랑!]

도전하러 왔습니다.”

거구의 몸집에 다소 작아 보이는 앞치마를 맨 주인이 정성스레 닦고 있던 잔을 비장하게 내려놓았다.

허어도전자라. 10년 만인가?”

우리는 가게 바로 앞 노상에 자리 잡고 각자 잔을 쥐었다.

세상에저렇게 조그마한 아가씨가 술 대결이라니절대 못 이길 거야.”

하지만 저 아가씨게임을 엄청나게 잘한다고나는 저 아가씨에게 걸겠어.”

나는 주인장에게 걸지!”

1시간 뒤.

크윽…… 졌다…….”

!

술집 주인은 그 한마디를 끝으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