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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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클라이드의 말에 대답했다.

    난 가진 게 돈밖에 없어.”

    클라이드는 대번에 날 경멸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눈빛에 약간 위축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미미한 수준의 노동력도 보유하고 있긴 해.”

    그러고 보니 이번에 네 마법 능력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았었지아까 사용한 마법도 꽤 쓸만해 보였고.”

    대체 뭘 시키려고 내 마법 능력을 들먹이는 거지?

    그때였다.

    따각따각따각따각!

    어디선가 매우 방정맞은 소리가 들려왔다.

    강아지가 저기로 간다!”

    거기 서까르르!”

    또 리비와 친구들이었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강아지 모형이 딱딱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모습을 주시했다.

    언니!”

    나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리비였다.

    리비는 내 곁에 있던 클라이드에게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선배님!”

    클라이드는 어쩌라고?’하는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러니까 친구가 없지…….’

    나는 혹시라도 클라이드가 자리를 떠나버릴까 봐 옷자락을 꽉 붙들고서 리비에게 말했다.

    클라이드가 그렇게 안 보여도 수줍음이 많아서 낯선 사람이랑 인사를 잘 안 해.”

    … 정말 그렇게 안 보이네요.”

    지금 무슨 헛소릴-”

    클라이드가 뭐라고 하기 전에 나는 반대편 손을 번쩍 들며 큰 소리로 영애들에게 인사했다.

    친구들 안녕다들 잘 지냈니?”

    리비의 친구들은 전에 도서관에서 본 멤버 그대로였다.

    안녕하세요선배님!”

    그들은 모종의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힐끔거렸다.

    오늘도 같이 계시네.”

    역시 착각이 아니었나 봐.”

    불쾌한 오해가 한층 더 깊어지고 있을 무렵클라이드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놔라이거.”

    나는 안 들리는 척하며 스쳐 지나가려는 강아지 인형을 주워 들었다.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졌으나 판매용으로는 보이지 않는 장난감이었다.

    이런 장난감을 만들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데미안이 벌써 장난감을 풀기 시작했나?’

    이거 어디서 났어?”

    혹시나 해서 리비에게 물어보자 예상하던 대답이 나왔다.

    데미안 선배님이 주셨어요요즘 유행하는 나무 강아지 장난감을 따라서 만드셨대요귀엽죠마력을 충전하면 알아서 돌아다녀요.”

    데미안이랑 친해?”

    친한 건 아니고 예술과 교양이라고같은 사교클럽 회원이에요.”

    데미안이 리비에게 접근하는 건 시나리오상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리비가 백마법사로 각성하기 전까진 위험한 전개로 흘러갈 여지가 없었기에 덜 신경 쓰고 있었을 뿐이다.

    실제로 이 장난감은 인간의 부정적인 생각을 증폭시키는 저주 인형인 마음 인형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장난감이 눈에 띈 게 좋은 신호는 아니야.’

    장난감을 확인하는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리비가 덩달아 심각해진 얼굴로 물었다.

    뭔가 문제 있는 거예요?”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데미안의 장난감은 악마 계약자 후보들에게 뿌려질 거고그들이 좋지 않은 마음을 먹는 순간 악마를 손쉽게 소환할 수 있게 만들어 버리니까.

    원래 첫 악마는 5월 학교 축제 때 나타나지.’

    하지만 나는 훨씬 일찍 악마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뒀다.

    지금까지 모든 시나리오가 원작보다 진행이 빠른 탓이었다.

    악마가 나타난다는 건 해일이 일어나는 것과 같았다.

    먼 거리에서 다가오는 듯하지만 발견한 이상 이미 악마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니까 최대한 대비할 수 있는 건 해둬야지.’

    나는 심각한 표정을 풀지 않고 리비에게 말했다.

    미모사 알지데미안한테 뭘 받거나 같이 사교클럽에 다니는 모습을 들키면 물어뜯길 거야비유가 아니라 걔는 진짜 이로 사람을 물 애라니까?”

    그래요아무리 그래도 공녀가 그런 행동을?”

    나도 해봤어.”

    ?”

    테레제라면 해봤겠지.

    논리적 추론에 근거한 말이었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데미안은 아주 위험한 선배야.”

    그때 어쩐 일로 얌전히 있던 클라이드가 픽 코웃음 쳤다.

    리비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부담스럽긴 했어요데미안 선배님이 말을 거실 때 어쩐지 좀 위협적인 시선들이 느껴졌거든요.”

    데미사는 어디든지 존재하니까조심해.”

    명심할게요.”

    놀고들 있네.”

    마지막 말은 클라이드였다.

    그때 리비의 친구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리비에게 팔짱을 끼며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리비를 꾸짖었다.

    얼른 이리로 와리비!”

    학생회장님도 너한테 시간 뺏지 말라고 눈치 주시잖아.”

    그런 거야?”

    나는 다급히 부정했다.

    그런 거 아니야!”

    클라이드가 맞받아쳤다.

    그런 거 맞는데?”

    ??”

    띠링!

    [성좌 과몰입오타쿠’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뭐야이러면 나 착각하는데?]

    리비의 친구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어머어머어떡해얼른 가자!”라며 온갖 호들갑을 떨더니 꾸벅 인사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선배님들!”

    그 와중에 리비는 다소 억울한 표정으로 친구들에게 질질 끌려갔다.

    나는 몹시 황당해졌다.

    쟤들이 또 이상한 소문 퍼뜨리게 생겼잖아!”

    클라이드가 눈을 살벌하게 번뜩였다.

    네가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던 일은 그 멍청한 머리가 알아서 지운 모양이지?”

    테레제이 죄 많은 여자 같으니.

    내가 사과해야 할 타이밍일까?”

    아니하지 마받아줄 생각 없어.”

    가뜩이나 그의 도움이 아쉬운 입장인데 불리한 처지까지 더해지니 우울해졌다.

    이대로 멸악 활동 점수 부족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은데.

    그때 머리끝까지 솜털이 쭈뼛 설 정도로 느닷없는 굉음이 들렸다.

    콰당탕탕!

    “-깜짝이야!”

    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굉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 돌렸다.

    뭔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였다.

    뭐지?”

    소음은 연이어졌다.

    쿠당탕콰앙!

    누군가가 한바탕 싸우고 있거나 내부를 허무는 중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소음공해였다.

    어떤 미친놈이 감히 학교 기물을 파손하고 있는 모양인데.”

    클라이드는 열 받은 표정으로 소음이 들려온 장소를 향해 다가갔다.

    잠깐나도 같이 가!”

    아직 내 용건에 대한 대답을 못 들었다고!

    소음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바로 교수 전용 도서관이었다.

    어라?’

    나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며칠 전부터 이 도서관을 이용했지만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클라이드가 벌컥 문을 열었다.

    꿀렁!

    !”

    우리는 동시에 흠칫하고 걸음을 멈췄다.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마치 젤리 푸딩에 휩싸이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숨이 갑갑해지고 물속처럼 저항감이 생겨 동작이 느려졌다.

    동시에 피식자의 공포감이 내면에서부터 솟구쳤다.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감각.

    한데 이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이 감각이 뭔지 알아챈 건 클라이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했다.

    악마의 영역이다.”

    빙의 후 처음으로 악마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으흑… 흐으윽.”

    엉망이 된 도서관 안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이 오싹해졌다.

    클라이드는 침착하게 주변에 방어 마법을 펼쳤다.

    이어 도서관 입구에 악마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표식을 띄웠다.

    악마를 발견했을 때 해야 하는 행동 강령 그대로였다.

    나는 여태껏 손에 들고 있던 나무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무 강아지는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향하더니 돌연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이런.”

    새까만 안개 같은 마기에 뒤덮인 도서관 내부는 검은 몸체로 된 나무가 책장을 죄다 밀어뜨린 채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와 뿌리는 꼭 비명 지르는 악령의 얼굴 같았다.

    검은 나무 한가운데에는 익히 아는 캐릭터가 육신이 갇힌 채 얼굴만 내놓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델브?”

    델브는 중간고사가 끝난 축제 기간에 악마를 소환하는 악마 계약자였다.

    클라이드가 물었다.

    아는 애야?”

    쟤도 4학년이야특기는 미술.”

    상당히 잘 아는 사이인가 봐?”

    그럴 리가인사 한번 안 해봤는데.”

    내 대답에 클라이드는 뭐라 지적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다가 화제를 전환했다.

    악마가 나타났을 때 행동 강령은 숙지하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략대가 갖춰지기 전까지 악마 계약자가 던전을 개방하는 일을 최대한 늦추는 거하지만 이번에는 좀 어렵겠는데.”

    내 시선은 나무뿌리 사이에 얽힌장난감 병정에 닿았다.

    장난감 병정은 혼란에 휩쓸려 다리 한 짝이 부러져 있었다.

    역시 데미안이 손을 쓴 것이다.

    어째서지?”

    클라이드의 질문에는 딱히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

    장난감 병정이 미친 듯이 작은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띠링!

    [악마 던전이 생성됩니다.]

    콰드득콰드득!

    나무는 순식간에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문을 만들어냈다.

    쿠구구구구구궁―――!!

    던전의 문이 열리고 검은빛이 우리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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