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7/277)

  

이게 뭔데?”

연구 성과예요일시적으로 총 마력량을 높여주는 물약이죠.”

벌써 이걸 개발했다고?’

내가 입을 떡 벌리며 놀라자 레이니는 조금 으스댔다.

기존의 일시적 마력 증진 물약은 부작용이 심해서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정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이건 한 달에 한 번은 사용할 수 있어요부작용도 훨씬 적고요.”

제대로 연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엄청 대단하잖아?”

레이니는 주요 조력 캐릭터 중 하나이기에 제대로 성장시키면 유용한 연금술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효과가 뛰어난 포션일수록 연구 기간이 길어지는데일시적 마력 증진 물약은 게임 중반에나 연구를 시작하는 물약이었다.

곧 정식으로 학회에 발표할 예정이에요.”

나는 대단한 일을 해낸 레이니가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다 지원해줄 테니까.”

레이니는 새초롬하게 연구 특허는 재단을 통해 등록하겠다고 말하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내가 원하는 물약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총 마력량을 영구적으로 올릴 수 있는 약을 만들 수 있어아주아주 극미량이라도 좋아.”

나는 딱 1마력이 필요하니까.

레이니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들 수 있죠벼락 맞은 버드나무 가지만년설파란 용암 정도만 있으면요.”

안 된다는 말을 참 길게도 하는구나.”

그건 갑자기 왜요?”

중간고사 준비해야 하잖아.”

필기시험은 자신 있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마법 실기시험이었다.

점수 비중도 실기가 훨씬 높아.’

레이니는 의아하게 눈을 깜빡였다.

선배님 성적이 어떤데요학교에서 선배님만큼 마법서 많이 읽는 사람은 딱히 본 적 없는데.”

그러니 당연히 성적이 나쁠 리가 없을 거라는 의문이 담긴 말이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3학년 때까지 학점이 개판이었거든.”

얼마나요?”

이번 중간고사에서 총점 A-를 넘기지 못하면 퇴학당할 정도로?”

네에에에?!”

바로 어제꽤 절망적인 내용을 담은 퀘스트가 떨어졌다.

띠링!

[퀘스트중간고사 총점 A- 이상 달성하기]

보상: +500,000코인

실패기준미달로 인한 퇴학

테레제는 형편없는 학점의 소유자였다.

얼추 D가 많았다는 것만 기억했던 나는 좀 더 제대로 테레제의 성적을 살펴보았다.

정말 가관이었다.

성적표 있는데 볼래?”

나는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주섬주섬 꺼내 경악한 레이니에게 보여주었다.

레이니는 떨리는 눈으로 내 성적표를 확인했다.

<속성 마법>: F

<멸악 활동>: C+

<연금술>: D+

<변환 마법>: C-

<사교댄스>: D

<마법의 기원과 역사>: D-

.

.

.

총점: D-

레이니는 속이 울렁거린다는 표정으로 힘겹게 말했다.

… 그만 봐도 될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사람이 우리 학교에라고 생각하는 표정인데.

선배님 보기보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다 마는 게 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거 알아?”

물론 나도 성적표를 보고 상당히 놀랐다.

지금까지 용케도 이 마법 명문 학교에 다닐 수 있었구나.’

하나하나 뜯어보면 더 참담한 성적이었다.

멍청하고 단순한 악역을 조형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개연성 붕괴였다.

왜 그랬을까똑똑하고 성적이 좋은 악역을 만들 수는 없었던 걸까?

수석 악역얼마나 좋냐고.

그래도 한가지 희망은 내 총 마법 등급이 올랐다는 점이었다.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있고.

하아아아.”

그런데 왜 이렇게 한숨이 나오지?

레이니는 어색한 동작으로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방법이 있을 거예요아마?”

무슨 방법?”

… 일단 벼락 맞은 버드나무 가지부터 찾을까요?”

됐어총점 A의 기만 같은 거 듣고 싶지 않아갈게.”

삐쳤어요삐친 거 아니죠?”

등 뒤로 레이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한시바삐 연구실을 나왔다.

* * *

시험 기간에 접어들자 확실히 학교 분위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 수가 증폭한 거였는데그 때문에 개인 열람실 자리를 잡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워졌다.

나는 개인 열람실을 이용하려다 미간을 좁혔다.

오늘도 이용자가 꽉 찼네.’

개인 열람실은 자리가 없지만 그래도 도서관 내에 비치된 열람 테이블에는 듬성듬성 빈자리가 있었다.

대충 가까운 빈자리로 가서 공부할 책을 꺼내는데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 오랜만이네.’

공간사람교복 등 내가 아는 대학교와는 모든 게 달랐지만 왠지 빙의 전 학교 다닐 때가 떠올랐다.

나는 2회차 대학생답게 테이블 위를 능숙하게 세팅한 후 노트필기에 돌입했다.

그러다 이 세계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형광펜이 없어.’

아니형광펜 없이 공부를 어떻게 해?

스스로 흥미를 느껴서 공부할 때는 조금도 필요하지 않았던 형광펜이시험공부를 시작하는 순간 절실해지는 기이한 증후군에 시달렸다.

어휴하기 싫어.”

그때 양옆과 맞은편 자리의 학생들이 나를 힐끗 보는 게 느껴졌다.

어라혹시 나 방금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었나?

머쓱함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학생들에게 눈짓으로 사과하자 그들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하아슬슬 집중해야지.’

공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성적이 망하겠지만 나는 사망하니까…….

그렇게 하루이틀사흘나흘.

치열한 개인 열람실 이용등록 싸움에서 번번이 지고 열람 테이블에서 공부한 지 닷새가 되던 날이었다.

?”

필요한 책이 있어서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내 자리에 쿠키 상자보석손수건 등을 놓아두었다.

의아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이곳을 응시하고 있던 남학생들이 화들짝 시선을 돌리는 게 보였다.

뭐지공물 같은 건가?’

띠링!

[성좌 하하버스’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으아아아아아아!!!!!!!!!!!!!!!!!]

하필 이 상황에 가장 격렬히 반응한 게 하하버스’ 성좌라니.

그렇다면 절대 공물 같은 게 아니었다.

혹시 이거… 그거인가?’

학교 도서관에서 잠깐 자리 비우고 왔을 때 포스트잇이 붙은 캔 커피가 놓여 있는 그런 상황.

부담스러운데.’

나는 선물들을 한구석에 쭉 밀어놓고 노트를 찢어 글씨를 휘갈긴 뒤 그 위에 놓았다.

분실물 찾아가세요.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아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제야 정신 차려이거 로맨스 방송이야 ㅠ]

띠링!

[성좌 철벽왕 테레제’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 닉넴 정함 ㄱㅅ]

내 행동을 은밀하게 관찰하던 남학생들은 낙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이러한 기현상은 도서관으로 끝나지 않았다.

레이니와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 날이면 주문하지 않은 디저트가 나오기 일쑤였다.

저쪽 테이블에서 보냈습니다.”

직원이 가리킨 방향을 보니 힘껏 멋을 부린 남학생이 느끼한 자태로 차를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봄바람이 살랑거리니 연애라도 하고 싶어진 건가?

그렇다고 겁도 없이 테레제한테 수작을 부려?’

시험공부를 하다가 돌아버린 게 틀림없었다.

나는 직원에게 말했다.

돌려보내.”

알겠습니다.”

레이니는 내 시큰둥한 반응을 보더니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다 선배를 추앙하는 사교클럽이 생기겠는데요?”

말도 안 돼.”

글쎄요전혀 말이 안 되는 건 아닐 거 같은데요요즘 스콰이어 자매의 인기가 엄청나거든요.”

리비는 이해되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상냥한 성격공녀라는 신분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테레제는 신분과 외모의 장점을 상쇄하는 치명적인 성격적 결함이 존재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악행이 고작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사이에 만회됐을 리가 없잖아.’

악행을 만회할만한 일을 한 적도 없었고.

레이니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요즘 학교에서 가장 매력적인 학생 1위로 꼽히는 게 누군지 아세요?”

리비데미안클라이드셋 중 하나겠지.”

썩 반박하기 어려운 의견이지만 틀렸어요선배예요.”

“?”

발할라에서 가장 매력적인 학생으로 거론되는 게 바로 테레제 선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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