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중간고사
번스타인 공작가에서 벌어진 마수 습격 사건은 비밀이 되지 못했다.
공작은 책임을 피하지 못했고 금년 생일파티를 취소했다.
공작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사람들은 두 마리의 고래에 대해 온갖 소문을 접한 뒤였다.
황홀한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고래는 못 본 척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크기였다.
「임무를 좀 가려 받거라. 만약 거절하지 못하게 협박하는 놈이 있다면 말하고. 폭력을 써도 상관없다.
네가 고래를 부리는 여명의 마법사라는 소식을 주세페가 몹시 궁금해하는구나. 시험 기간이 끝나면 고위 가문끼리 모임이 있을 예정이니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려무나.
-네 아버지 R.」
“고래를 부리는 여명의 마법사? 이 구린 작명 출처가 누구야?”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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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 한심하다. 그 광경을 목격하였다면 고작 여명 따위로 칭할 수 없을진대. 나였다면 ‘흑룡 학살자’라 명명했을 것이다.]
내가 상대한 것은 흑룡도 아니고 뭔가를 학살한 적도 없었다.
엘로이즈가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가씨께 날개 없는 천사라고…”
“그만!”
소름 끼치는 별명에 경악한 얼굴로 엘로이즈를 돌아보았다.
“누가 그딴 소릴 지껄였지? 암살자를 보내야겠어.”
데미안에게 의뢰해야 할까?
엘로이즈는 여명의 마법사보다 날개 없는 천사 쪽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열변을 토했다.
“어머, 썩 틀린 말도 아닌걸요? 아가씨가 마법 동물은 물론 고스트까지 길들이셨잖아요. 그건 천족밖에 하지 못하는 일이래요.”
어지럽다.
이 비정상적인 대화로 내 두뇌가 오염되게 둘 수 없는 노릇.
나는 서둘러 책가방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오늘 등굣길 독서 시간에는 흥미 있는 분야의 마법서 대신 전공 서적을 읽었다.
곧 중간고사 시즌이거든.
“성적을 생각하면 학생회에 가입한 게 잘한 일 같기도 하고…….”
두 번의 임무로 나는 가산점을 두둑하게 챙겼다.
이것만 해도 마음이 풍요로운데 번스타인 공작가에서 따로 선물을 왕창 보내준 덕에 사유재산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순조롭게 대부호의 길을 걷는 중이었다.
“쓸데없이 돈이 많아졌어.”
딱히 쓸 곳도 없는데 말이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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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가 복덩이네~ 우리 테레제 발목도 안 잡고~ 척척 돈 벌 구실 알아서 만들어 오고~ 내조의 신이야~]
“저기, 방송 보신 거 맞아요? 왜 나는 그런 거 못 느꼈지?”
이번 번스타인 공작의 의뢰 퀘스트를 수행하며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바로 클라이드의 지지층이 생긴 것이다.
‘대체 왜?’
한 일이라고는 날 열받게 하는 거 외에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취향은 다양한 법이죠. 그러라고 남자 주인공을 넷이나 넣었으니까.”
중요한 건 클라이드가 지지층이 생겼다는 시시한 일이 아니었다.
“후후. 어서 등급 테스트받고 싶군.”
최근 들어서 나는 다소 우쭐해진 상태였다.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
[테레제 스콰이어]
설명: 스콰이어 공녀
나이: 22세
마법 등급: A-
지능: B+
마력: A (99,999/99,999)
▲
자, 이것을 보라!
내 지능과 마력 총량이 늘어난 것을!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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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에그 개사기;]
“개발자 특혜죠.”
전설의 마력 증진 물약을 복용한 후 내 마력은 도로 A급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수치에 변화가 있었다.
원래 마력 총량은 12,034였는데 지금은 무려 99,999가 된 것이다.
후훗. 이런 효과가 나타날 줄은 나도 몰랐다.
딱 1만 더 늘었으면 A+급이었을 텐데, 그건 좀 아쉬웠지만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
나는 현재에 만족했다.
또한 펠릭스 교수의 강의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능은 금방 B+급에 도달했다.
순조롭다. 참으로 순조로워.
“후후. 후후후.”
“왜 이렇게 후후거려? 아침부터 짜증 나게.”
마침 로비에 들어오던 미모사가 신경질을 팍 냈다.
오늘따라 미모사의 목소리가 종달새의 지저귐처럼 들리는군.
“안녕? 좋은 아침이야, 미모사.”
“네 짜증 나는 웃음소리 때문에 좋은 기분 다 망쳤어.”
“넌 늘 그렇잖아. 힘내.”
“뭐야?!”
그때 등 뒤로 데미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사이가 좋네, 두 사람.”
머리에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내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미모사는 샤랄라 소리가 날 듯한 동작으로 뒤돌았다.
“데미안~!”
데미안은 오늘도 여전히 상큼했다.
냉기가 감도는 얼굴 위에 걸친 은빛의 동그란 안경, 느슨하게 풀어둔 타이, 교복 따위로 감춰지지 않는 미끈한 몸매까지.
과연 학원물에 걸맞게 싱그러운 하이틴 스타 같은 이미지였다.
“안녕.”
그런 남자가 친절하게 인사해오다니.
“아, 안녕…!”
미모사는 황홀함에 졸도하려 했다.
나는 껍데기에 속아 본질을 보지 못하는 미모사가 안타까웠다.
쯧쯧. 남자 보는 눈이 저렇게 없어서야.
하지만 데미안은 미모사 같은 타입에게만 인기 있는 게 아니었다.
“데미안! 점심시간에 체육관 올 거지? 오늘은 내기니까 빼지마!”
“야, 전략부터 짜야지! 데미안, 지금 바로 가자!”
데미안은 우리와 함께 이동하려다가 자꾸만 자신을 찾는 친구들의 부름에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봐.”
이렇듯 그는 동성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매우 좋았다.
모두와 척지고 사는 클라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군상이었다.
미모사도 그 점을 콕 집었다.
“우리 데미안은 정말 다정하고 멋있고 친절해. 누구네랑은 다르게 말이야.”
“그러게.”
“…반응이 왜 그래? 왜 평소처럼 클라이드가 더 멋지다는 헛소리를 안 하는 거야?”
“취향 존중이지.”
“…?? 그거 욕이야?”
미모사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어려운 수수께끼는 초장에 때려치우는 과감성이 있는 미모사답게 본인이 궁금한 걸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언제까지 데미안을 네 장학재단에 데리고 있을 거야?”
나는 3초간 심사숙고 후 대답해주었다.
“일단 올해까지만.”
내 말에 미모사가 반색했다.
“어, 정말? …올해면 졸업인데 그냥 끝까지 데리고 있겠다는 뜻이잖아! 감히 날 능멸하는 거니?!”
생각보다 빨리 이해했네.
나는 길길이 날뛰는 미모사를 내버려 둔 채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굉장히 묘한 공간에 다다랐는데, 자연히 걸음을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긴 뭔데 클라이드로 도배되어 있지?”
발할라에 이런 대단히 사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장소를 만든 적이 없는데?
그러나 로비는 매우 넓었고 어느 한 곳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기 충분했다.
아이돌 앨범 콘셉트 사진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그림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공간 속에서 나는 입술을 떡 벌렸다.
벽면에는 작지만 옹골찬 팻말이 수줍게 붙어 있었다.
「클라이드 작품전」
“테레제 님.”
그때 앞치마와 토시, 화가 모자 등 미술학도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아이템을 착용한 영애들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클예부 오리엔테이션에서 본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들이 전부 클예부라는 거겠지.
영애들은 폐관 수련을 하며 큰 깨달음을 얻은 무협지 검객 같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테레제 님이 옳았어요. 결핍에서 오는 우울은 창조의 영혼을 탄생시키는 법. 저희는 클라이드 님을 뵙지 못하게 되어 그분의 모습을 계속 상상하다가 참을 수 없는 예술혼을 불태우고 말았어요.”
그게 뭔데.
“이 공간은 저희의 창작 활동을 공식 클럽 활동으로 인정받아 이사장님께서 마련해주셨어요. 작품전은 일주일 내내 진행될 거예요.”
“…그래. 너희가 행복하면 됐지.”
나도 모르겠다, 이제.
학교는 점점 굴레를 벗어나 알 수 없는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연금술 공동 연구실에 도착해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실 안은 레이니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아침부터 누가 칙칙하게 냄비 앞에서 마법 식물을 자르고 넣고 끓이고 있겠냐고.
레이니는 퀭한 눈으로 시약을 조제하고 있었다.
그 옆에 엘로이즈가 따로 챙겨준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여기, 아침.”
레이니는 훌륭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될 자질을 풍기며 시약을 내려놓았다.
여기서 흰 가운에 미러리스 효과가 들어간 듯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안경만 씌우면 제2의 펠릭스 교수가 될 것 같은데.
“저도 이제 아침 사 먹을 돈 정도는 있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챙겨온 도시락을 후다닥 까서 먹기 시작했다.
“돈은 있어도 연구하느라 사 먹질 않으니까 챙겨오는 거잖아. 언제까지 재단 이사한테 식사 심부름을 시킬 셈이야?”
레이니는 음식물을 우걱우걱 씹으며 무심한 손길로 내게 약병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