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3/277)

…….”

…….”

마차 안은 고요했다.

클라이드는 한 마디의 떠듦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냉기가 뚝뚝 흐르는 눈빛으로 침묵했다.

아이스 브레이킹 따위를 시도했다가는 내가 브레이킹 될 것 같은 분위기에 괜스레 창밖만 보고 있을 때였다.

띠링!

[성좌 조용한 관종’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저기숨 막히니까 말 좀 해주시면 안 돼요?]

나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수신호를 보냈다.

‘X.’

띠링!

[성좌 조용한 관종’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예에… 그냥 제가 숨 참을게요]

차라리 마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이동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쳤을 때였다.

부우우우우우――!

섬뜩한 울음소리였다.

창밖을 보니 마기에 침식되어 새까만 안개 같은 기운을 흩뿌리는 고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거대한 비행선이 육지로 추락해 떨어지는 듯한 위압적인 광경이었다.

마차를 멈춰라!”

클라이드는 마차가 서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나는 저런 우월한 신체가 없었기에 마차가 멈추었을 때 열린 문으로 뛰어내렸다.

하나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마차에서 지면까지 높이가 상당했던 탓에 발목을 삐끗한 것이다.

마차가 왜 이렇게 높아?!”

띠링!

[성좌 문송합니다’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발 받침대 밟고 내려오겠지이과가 이것도 계산 못 함?]

이건 체육계의 문제라고!”

내가 성좌와 언쟁을 벌이는 사이 클라이드는 이미 마수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서도 고스트 마수를 상대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기에 경로를 차단하는 것 외에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고스트는 영체이기 때문에 물체를 통과한다.

그러면서도 생명체에는 영향을 끼치기에 마수가 된 고스트에 닿은 생명은 죽는다.

이 주변은 풀도 나무도 다 거멓게 죽어 있었다.

두렵고 기괴한 풍경이었다.

조심해!”

나는 절뚝거리는 발로 달려가 클라이드를 끌어안고 바닥을 굴렀다.

뭐 하는!”

그의 말이 끝나기 전.

쿠우우우웅!!

우리가 쓰러져 누운 자리 바로 위에서 20m에 육박하는 크기의 금빛 고래가 나타나 마수를 몸으로 막아냈다.

그야말로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난 고래였다.

나는 탄식하듯 말했다.

새끼 고래의 어미야마수가 된 새끼를 막고 있어.”

마수가 된 고스트는 어미 고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크기였다.

그걸 어떻게 알지?”

둘 다 혹등고래잖아.”

마수는 무자비했고 어미는 몸으로 방어만 했다.

차마 자식을 공격할 수는 없을 테니까.

어미 혹등고래의 영체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혹등고래는 모성애가 강해어미가 계속 새끼 고래가 민가로 침입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거겠지.”

영체는 상처들로 뒤덮여 금빛의 마력 입자를 수없이 흘리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게 괴로워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얼른 입술에 피가 맺히도록 꽉 깨물었다.

정화해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러니까 혹등고래가 무슨 고래… 됐다일어나고스트들이 움직인다.”

클라이드는 말을 하다 말고 몸을 일으켰다.

나 역시 뒤따라 일어났으나 발목이 시큰거려 비틀거리고 말았다.

이런 멍청이!”

그거 좀 뛰어내렸다고 발목이 삐냐?!

나는 오기 가득하게 발목이 어찌 되든 말든 달리려 했을 때였다.

!

클라이드가 나를 안아 들었다.

“?!”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클라이드가 으르렁거렸다.

뭘 보고 있어정화 마법 준비 안 해?”

네가 날 도와줄 줄 몰랐어.”

클라이드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마수를 향해 접근하며 말했다.

고스트 마수에게 내 정화는 통하지 않아기대를 걸 사람이 애석하게 너밖에 없군.”

평소라면 클라이드의 정화 마법은 대단한 효과를 냈겠지만고스트 마수를 정화하기에는 정순함이 부족했다.

성유물의 힘 대부분이 클라이드의 마기를 억누르는 데에 사용되고 있는 탓이었다.

그렇다고 성유물의 힘을 끌어와 마수를 정화하는 데 쓸 수 없었다.

그 순간 악마가 완전히 깨어나 버릴 테니까.’

몽마의 왕의 피가 흐르는 클라이드가 악마로 거듭나버리면 지상의 모든 존재는 죽음과 다름없는 잠에 빠져버린다.

영원한 꿈의 세계에 갇히는 것이다.

그게 클라이드의 배드엔딩이었다.

지금이야정화 마법은?”

클라이드는 어미 고래 아래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물었다.

준비됐어.”

나는 최대한 빠르게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부우우우우우――!

마수가 고통에 몸을 뒤트는 어미 고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서둘러 제발 정화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마법 주문을 외쳤다.

정화되어라!!”

그러자 마수가 돌진을 멈추고 허공을 빙글 돌았다.

마수의 몸이 반짝반짝 눈부신 은빛을 내뿜더니 다시금 검은 안개에 뒤덮였다.

정화에 실패한 것이다.

다만 아까보다 검은 안개의 밀집도가 확연히 떨어진 게 보였다.

통한다!”

클라이드가 물었다.

마력은 얼마나 남았지?”

[마력: A (6,017/12,034)]

나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절반.”

남은 절반의 마력으로 마수를 정화할 수 있을까?

내가 리비만큼 마력이 많았다면 한 번에 정화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였다.

저기에 마수가 있다!”

젠장이제 꽃이 거의 없으니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잖나!?”

일꾼들로 보이는 이들이 마수를 상대하는 일에 전혀 도움 되지 않을 듯한 장비를 끌고 오고 있었다.

나는 클라이드에게 상황을 추론한 것처럼 시나리오를 설명했다.

번스타인 가문에서 보낸 일꾼들일 거야불꽃 이파리 라벤더는 공작부인의 병을 치료하는 데 반드시 들어가는 약재라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 심으려 하는 거겠지.”

젠장공작가에서는 고스트 마수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건가대체 왜 지금 일꾼을 보내!”

그 사이 일꾼들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윌로우 가문의 소공자님이시죠살았다우린 살았어!”

클라이드는 평민들에게 대표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귀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워낙 외모가 출중해서 그의 초상화가 굿즈로 암암리에 무성히 팔리고 있거든.

그게 아니더라도 강력한 마법 능력으로 타 귀족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선행을 베풀었기에 유명했다.

난세의 영웅이지.’

일꾼들이 비명처럼 외쳤다.

마수가 이동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꽃들을 공작저로 옮겨 심었나?”

일꾼들이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그럴 줄 알았다.

이 이벤트는 하드 모드에서 진행했을 때 사냥이 절반 정도 진행되면 마수가 장소를 이동했다.

번스타인 공작저로 가고 있어불꽃 이파리 라벤더의 기운에 이끌려 가는 거야.”

반드시 우리가 먼저 가야 한다.

아니면 다 죽는다고!

말을 타고 달려도 저 속도는 못 따라잡아거리도 멀어서 말이 지칠 테고.”

애초에 마차를 타고 온 이유가 중간에 지친 말을 새로 바꿔 탈 경로가 없을 만큼 민가와 떨어져 있어서였다.

그때 구세주가 보였다.

저기 교수님이야!”

반대편에서 일리야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는 거대한 돔 형태의 마력 방어막을 펼쳐 마수를 가두었다.

하나 어미 고래가 새끼를 구하려고 방어막을 들이받자 빠르게 금가기 시작했다.

일리야는 성공을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붙들었다.

이동.”

상황에 대해 서로 설명할 겨를도 없이 시야가 뒤바뀌었다.

우리는 번스타인 공작저 로비 한가운데로 이동해 있었다.

도련님?”

이동 마법은 실존하기는 하나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손에 꼽을 정도의 고위 마법이었다.

심지어 이런 장거리 이동이라니.

쿨럭!”

일리야는 곧장 피를 토했다.

교수님!”

도련님이 피를 토하셨다당장 주치의를 불러!”

클라이드는 이곳으로 달려온 번스타인 가문의 집사에게 말했다.

현재 마수가 공작저로 오는 중이다고스트 마수에게 닿으면 바로 즉사하니 사람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라.”

예에?!”

일리야가 희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사실이다그러니 서둘러.”

클라이드는 나를 내려놓았다.

일리야에게 회복 시간이 필요하니 그동안 자신이 진두지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번스타인 공작님은 어디 계시지마법사들이 더 필요하다.”

나는 클라이드가 자리를 떠나기 전에 말했다.

난 마법 식물을 옮겨 심어둔 곳에 먼저 가 있을게.”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온실이겠지날이 저물어서 불씨를 내뿜는 불꽃 이파리 라벤더라면 금방 눈에 띄어.”

클라이드는 그대로 떠나려다가 갑자기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일리야에게서 받은 포션을 꺼냈다.

이걸 잊고 있었군.”

그는 가볍게 혀를 찬 후 내게 내밀었다.

교수님을 치료할 만큼 고급 포션은 아니니 네가 쓰는 게 나아.”

일리야의 내상을 치료할 포션은 다른 사용인이 가지러 간 상태였다.

고마워.”

나는 거절하지 않고 단숨에 마셨다.

당장 달려야 할 일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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