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2/277)

  

이제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하죠슬슬 광고가 끝날 타이밍이기도 하니까요.”

가려고?”

내 물음에 오즈월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갔으면 좋겠습니까?”

당연하지.

아니당신은 보통 광고 중에만 방송에 있잖아아까 관리자가 방송에 개입하는 걸 보여주는 건 아마추어라고 하기도 했고.”

내 어설픈 변명은 오즈월드처럼 교활한 인간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

그러자 저번 인터뷰 때처럼 그의 옆에 화면이 하나 켜졌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간단한 인터뷰나 할까요?”

……그래.”

애꿎은 산책 시간이 연장되었다.

드디어 어제부로 모든 남자 주인공을 만났군요황제는 어땠습니까?”

나는 최악이었다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방송을 생각해 말을 골랐다.

엮이고 싶은 타입은 아니야.”

어째서죠?”

무자비하고 상식적이지 않아서 위험해검은 하트 수가 많으니 실제로 위협이 되기도 하고.”

본인을 가엽게 여기는 만큼 타인을 가엽게 여기지 않는 이기적인 성품이나.

오랜 시간 천하의 지배자로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몸에 밴 오만함은 나 같은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기질이 아니었다.

까다롭고 우아하고 포악한…….

나는 얼떨떨한 눈으로 오즈월드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닮았어.’

제멋대로 굴어도 어떤 누구보다도 타고난 지배자다운 기품이 느껴진다는 점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이런 건 흉내 내고 싶다고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체호프는 오즈월드를 따라 했지만껍데기조차 제대로 흉내 내지 못했어.’

물론 심각한 외모 격차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나는 갑자기 오즈월드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당신은 왜 염색한 거야원래는 무슨 색이었어?”

또 역질문하는 겁니까좋습니다원래는 금발입니다.”

금발에 진한 사파이어색 눈동자라.

오만한 외모와 지나치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당신을 따라 하는 관리자들이 종종 있나 봐.”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더군요껍데기를 흉내 낸다고 방송 실적이 좋아지는 건 아닐 텐데 말이죠.”

띠링!

[성좌 즈월드가 리얼월드’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나는 이유 알겠는데 ㅠ]

나도 알 거 같은데당신은 주인공 같아.”

장르가 로맨스는 아니지만.’

주인공이라는 건 주변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존재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즈월드는 너무도 뚜렷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 남자는 확실히 뭔가 달랐다.

어떤 점이 그를 달라 보이게 하는 걸까?

단순히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이건 살아온 세월이 만들어낸 안목과 분위기품격의 문제였다.

이 남자의 출신은 뭘까?

어쩌다가 채널 관리자가 된 거지?

묻고 싶은 건 많은데 섣불리 물어볼 만한 것들이 없었다.

왜냐면 우리는 파트너가 아니니까.

나는 그에게 장난감이니까.

밀려드는 궁금증에 완전히 휩쓸린 채 나도 모르게 오즈월드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오즈월드가 뺨을 맞붙이며 낮게 깔린 저음으로 속삭였다.

당신은 호기심이 생기면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테레제 양.”

흠칫!

그는 내 허리를 감싸 안으며 뒤로 못 물러나게 했다.

시선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모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가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오늘은 제대로 경계하는군요.”

?”

무슨 뜻이지?

내가 의아하게 눈을 깜빡거리는 사이 오즈월드가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그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찡그렸다.

예정된 시간보다 2분이나 지나버렸네요이제 가봐야겠습니다.”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시계 토끼 같네.’

포악한 시계 토끼 오즈월드가 내 뺨에 입 맞췄다.

이번 에피소드도 행운을 빕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벅벅!

오즈월드가 떠나자마자 나는 신경질적으로 뺨을 문질러 닦았다.

이러다간 언젠가 뺨이 닳아 없어질 것 같았다.

* * *

의뢰를 수행할 시간은 모든 강의가 끝난 늦은 오후였다.

그전까지는 평소처럼 원래 소화해야 할 스케줄대로 강의를 들었다.

오늘은 할 일이 하나 더 있었지만.

저 <마법의 생명체강의 들을게요.”

나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펠릭스 교수는 입을 떡 벌리고 있다가 자리에서 펄쩍 뛰듯 일어났다.

드디어 내 제자가 됐구나테레제그래넌 속성 마법에 전혀 재능이 없다니까?”

이 양반이 진짜.

전공을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강의만 듣는다는 거예요.”

히잉.”

펠릭스 교수는 시무룩해졌으나 금방 회복한 얼굴로 사근사근 말했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지금 말해도 좋고.”

시간표 주세요.”

으응요즘 애들답게 주관이 확고하구나.”

<마법의 생명체수강 등록을 마치고 나서는 개인 열람실에서 마법 개량 방식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

와르르!

으악내 종이!”

연구 중 탑처럼 쌓아둔 종이 뭉치를 건드리는 바람에 개인 열람실 바닥이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도서관 열람실은 사용한 후에 내 물건을 전부 치워야 했기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나도 개인 연구실 있으면 좋겠다그럼 연구하기도 편할 텐데.”

이렇게 바닥에 흩뿌려진 종이 같은 거그냥 놔둬도 되잖아.

정말딱 연구만 하고 싶다.”

띠링!

[성좌 조용한 관종’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저 아직 닥눈삼 중인 뉴비인데요… 혹시 이 BJ 마법 오타쿠인가요계속 마법 연구만 하는데]

띠링!

[성좌 과몰입오타쿠’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어이어이테레제는 마법 오타쿠가 아냐이건 진심이다.]

뭐라는 건지…….”

쾅쾅쾅!

그때 누군가가 문을 부술 듯이 두들겼다.

뭐야어떤 미친 녀석이야?”

하마터면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이 시간에 누구지도서관에 오는 학생은 거의 없는데.’

달칵.

벌렁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문을 열자 지옥의 사신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클라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

딸꾹질이 나왔다.

도서관 혼자 쓰냐?”

시끄러웠니?”

.”

네 문 두드리는 소리가 훨씬 시끄러웠겠다.

미안.”

나는 사과 후 조용히 문을 닫으려 했으나 클라이드가 닫지 못하게 잡아버렸다.

누가 닫으래?”

용건 끝났잖아나 공부해야 해.”

끄으응이 자식열 받을 정도로 평온해 보이는데 왜 문이 꿈쩍도 안 해?

내가 낑낑거리며 문을 닫으려 애쓰는 사이 클라이드는 열람실 내부를 보며 혀를 찼다.

아주 개판으로 쓰고 있군이런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잘도 공부가 되겠어.”

수석의 말은 타격감이 있었다.

날 싫어하는 애가 대체 왜 간섭하는 거야혹시 꼬투리라도 잡아서 날 퇴학시키려고?’

안 되겠다얼른 쫓아내자.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우리 이러면 안 되는 사이잖아클라이드제발 널 놓아줄 수 있게 해줘!”

썩 꺼지라고!

얼씨구.”

언니?”

……?”

리비가 왜 여기에 왔지?

심지어 주변에는 친구들로 보이는 영애들이 바글거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아무래도 이 상황을 단단히 오해한 듯했다.

영애들이 수군거렸다.

지금 테레제 선배님이 학생회장님을 찬 거야?”

두 분 만나는 사이셨나 봐.”

가문의 반대로 헤어지시는 중이구나아아마음 아파.”

오해는 실시간으로 완성되어갔다.

일이 이렇게도 꼬이네…….’

리비도 뭔가 번뜩 생각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쩐지 저번에 이상형 이야기를 물었던 게!”

그거 아니야.

리비오해야거기 친구들이상한 생각하지 마오해라니까?”

저희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절대로 말하지 않을게요!”

방해하지 말고 나가자.”

띠링!

[성좌 음모론자’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건 무조건 소문 퍼진다]

리비와 영애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얘들아오해라니까!

그때 서슬 퍼런 목소리가 나를 옥죄듯 들려왔다.

그래서뭐가 안 되는 사이고 뭘 놓아준다는 거지?”

아차바로 앞에 흉포한 맹수를 놔두고 다른 곳에 정신 팔려있었구나.

… 전에 내가 말했던 각오의 연장선이랄까아무래도 넌 잊기 힘든 외모니까좀 덜 마주치는 쪽이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군강의 다 끝났으면 임무 하러 가야 하니까 당장 나와.”

그런 용건이었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마법으로 흩어진 종이를 차곡차곡 모았다.

도서관 입구에는 발할라 사용인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기에 내 짐을 기숙사로 보내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다.

클라이드는 내가 종이를 모으는 속도를 보더니 말했다.

모여라.”

그러자 흩어진 종이가 1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차곡차곡 탑을 쌓아 정리되었다.

나는 부러움에 입술을 힘없이 벌리며 종이 탑을 보았다.

이게 지능 S급의 경지구나.’

꾸물거리지 마.”

그의 재촉에 나는 서둘러 종이들을 사용인에게 맡기고 마차를 타러 갔다.

일리야 교수는 먼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화원으로 갔다고 했다.

클라이드가 마차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너와 난 이 마차를 타고 간다.”

어째서?”

너 마차 있어?”

있어……집에.”

클라이드는 경멸의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다.

.”

나는 얌전히 마차를 빌려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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