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만든 게임에 빙의된 거라 아는 대로 진행하고 있을 뿐이야.”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스킬만 제대로 갖춰도 벌써 다 깼을 텐데요.”
“그렇다는 건 혹시 오즈월드가 날 죽이려고 하는 건가?”
내가 어두운 표정으로 묻자 체호프가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야 본인 처지를 이해했군요. 그렇습니다. 오즈월드는 당신을 죽이려고 궁지에 몰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직접 죽이면 되잖아. 뭐 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해?”
“그야 직접 죽이는 건…….”
체호프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 정보라는 게 역력히 느껴지는 기색이었다.
“아무튼, 당신이 지금 굉장히 불리한 상태로 방송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그렇구나.”
‘채널 관리자는 BJ를 직접적으로 죽일 수는 없는 모양이군.’
체호프는 이것도 잘못, 저것도 잘못이라며 신나게 지적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어느 대목에서 멈칫했다.
“……퀘스트 보상이 코인?”
그건 분명 허를 찔린 표정이었다.
“하! 아아… 이런 전략으로 가시겠다?”
아니, 초조해하는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이게 가장 문제네요. 퀘스트 보상제도는 BJ를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시스템인데 고작 코인으로 낭비하다니! 상점 아이템도 제대로 보급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코인을 모으면 소원권을 살 수 있잖아.”
“순위와 채널 등급을 올리는 게 우선이죠. 그러면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코인을 벌 수 있습니다. 이해되십니까?”
원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체호프의 말이 옳았다.
“그렇지만 난 지금까지 썩 불편한 건 없었는데?”
상급 예법이 입고되지 않아서 초조했던 것만 빼면 지금까지 적절한 때에 필요한 아이템이 나와주었다.
“하아아. 정말 어지러울 정도로 멍청하군요. 당신이 이 위치까지 올라온 건 순전히 오즈월드의 첫 로맨스 방송이기 때문입니다.”
체호프는 위쪽 세계는 진짜 별들의 전쟁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설명했다.
“당신처럼 경쟁력 없는 BJ는 절대 살아남지 못합니다. 곧 빠르게 도태되겠죠.”
내가 눈만 깜빡거리고 있으니 체호프는 꼭 유혹하려는 것 같은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제 BJ가 된다면 다르겠지만.”
과연.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저라면 당신을 최단기간 1위로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죠.”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를 만류하듯 손을 올렸다.
“잠깐만, 뒤에!”
“이전하겠다면 제가 당장,”
푸욱!
“커으윽!”
살을 꿰뚫는 소리라는 건 생각보다 투박하고 형편없었다.
그래서 더 속이 울렁거렸다.
오즈월드는 체호프의 등 뒤에서 홀연히 나타나 그대로 손을 내뻗었고, 꿰뚫었다.
분명 검은 장갑만 낀 맨손이었는데.
투두두둑!
바닥에 투명한 액체에 둘러싸인 별가루 같은 게 반짝반짝 빛나며 쏟아졌다.
섬뜩한 광경에 맞지 않게 아름다운 빛이었다.
체호프는 실핏줄이 터진 눈을 부릅뜬 채 뒤로 고개 돌렸다.
“크윽… 요즘 관리자 상해 규제 처벌이 강화된 건 아는 겁니까…?”
오즈월드는 여상스럽게 대꾸했다.
“네, 압니다.”
그리고 손을 비틀었다.
콰드득!
“크아악! 빌어먹을! 코어는 건드리지 말라고요! 감히 1위 채널 관리자에게 이딴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오즈월드의 곁에 시스템 창이 떴다.
나는 뻣뻣하게 얼어붙은 상태로 시선만 움직여 화면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배상 완료]라고 쓰여있었다.
오즈월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무사해졌군요.”
“그만! 그만-! 젠장할, 앞으로 이 BJ는 절대 안 건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오즈월드가 손을 거두었다.
검은 장갑에 작은 빛으로 된 입자가 가득 묻어 있는 게 보였다.
체호프는 수없이 욕설을 내뱉으며 비틀비틀 물러나더니 사라졌다.
띠링!
[채널 관리자-오즈월드가 성좌 ‘성좌면 잭코 방송 보세요’ 님을 차단했습니다.]
분탕질 치던 성좌도 차단되었고.
순식간에 모든 게 정리되었다.
나는 창백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포션으로 가라앉은 체기가 다시금 느껴지는 듯했다.
그가 무자비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알지만, 직접 보게 된 광경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절대 상식적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이야.’
그래도 이 남자가 날 죽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게 오늘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채널 관리자에게는 코어라는 게 존재하며 혈액이 특이하다는 사실도 기억해둬야지.’
“하아, 이런.”
오즈월드는 더러운 게 묻었다는 듯이 찌푸린 얼굴로 장갑을 벗어 던졌다.
검은 장갑은 바닥에 닿기도 전, 허공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오랜만에 보는 건데 좋지 않은 일을 겪게 했군요.”
그가 어깨를 툭툭 털며 약간 신경질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좌님들은 잠시 광고를 보고 계실 겁니다. 채널 관리자가 방송에 개입한 모습을 보이다니. 아마추어적인 행동이었어요.”
오늘의 오즈월드는 평소처럼 화려하게 잘 꾸민 양아치 모습 그대로였으나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설마 눈인가?’
오즈월드의 화려한 염색모와 빨간 슈트가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다.
전혀 계절과 맞지 않는 모습이었기에 그가 다른 데서 급하게 이리로 왔음이 실감 났다.
‘아무리 그래도 봄날에 눈이라니.’
나도 모르게 그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손에 닿은 눈송이가 차가웠다.
“…진짜 눈이네.”
“눈을 좋아합니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으니 솔직하게 말했다.
“좋아해.”
오즈월드가 내 뺨에 키스했다.
내가 놀라서 굳어있으니 그가 빙긋 웃었다.
“잘 지냈습니까?”
아. 인사였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뺨을 닦으려다가 행동을 억제했다.
이제는 오즈월드가 제멋대로 구는 게 꽤 익숙해졌지만, 이 행동만큼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은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입맞춤을 받아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즈월드는 강아지처럼 머리에 쌓인 눈을 털었다.
“…차가워.”
나한테 다 튄다고.
“튀었습니까?”
그가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물기가 묻은 내 뺨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낯간지러울 정도로 다정하게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됐어, 내가…”
“호의를 거절당하는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닙니다, 테레제 양.”
마음대로 하시든가요.
나는 언제나 그랬듯 오즈월드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다가 문득 의문이 생겨 입을 열었다.
“오늘 같은 일이 흔해?”
“다른 채널 관리자가 찾아오는 것 말입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니.”
오즈월드는 내 뺨에서 손을 떨어뜨리며 잠시 시선을 들었다.
뭔가를 떠올리는 건지 허공을 응시하는 짙푸른 눈동자에 희미한 짜증이 느껴졌다.
“하나 간혹 수작 부리는 관리자들이 있기는 합니다. 특히 제가 관리하는 방송은 표적이 되기 쉽죠.”
잘나가는 사람의 고충이라는 건가.
“아까 그 관리자가 나한테 스킬이 별로 없다고 하던데 그건 괜찮은 거야?”
“헌터물도, 무한 루프물도 아닌데 과도한 스킬 투여는 방송의 재미를 반감시킬 뿐입니다. 로맨스 방송의 본질을 흐리기도 하죠.”
‘사랑 전문가 납셨군.’
체호프는 내 퀘스트 보상이 성장 스킬이 아닌 코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오즈월드가 스킬보다 코인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후원 최단 기록을 노리는 건가.”
그러면 신기록 알림이 전 서버에 뜰 테고 성좌들이 대거로 유입될 테니까.
내 중얼거림에 오즈월드가 피식 웃었다.
“저는 당신이 영 멍청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에 미간을 좁히고 있을 때 오즈월드가 팔을 내밀었다.
이젠 이런 행동도 익숙하다.
나는 잘 훈련된 강아지처럼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오즈월드는 내 행동을 칭찬하듯 작게 미소 짓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버려진 별관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어제 비가 내린 덕에 흙과 풀 내음이 싱그럽게 풍기고 있었다.
방금의 섬뜩한 일들이 빠르게 과거로 흘러가 버리는 기분이었다.
오즈월드가 입을 열었다.
“실은 이 전략에 대한 아이디어는 당신의 플레이 방식에서 얻은 겁니다.”
“내 플레이 방식?”
“요즘 방송들은 전부 지나치게 자극적이기만 하고 한 사람의 고뇌와 인생을 들여다보게 하질 않죠. 하긴, 그딴 걸 누가 보겠습니까? 지루하고 시시하잖아요.”
그건 모든 콘텐츠 산업에서 보이는 경향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깊고 섬세한 것을 점점 느리고 답답하다고 느끼니까.
“그러던 중 다른 방송과 비교했을 때 보잘것없이 평범한 세계관의 BJ가 나타난 거죠.”
온갖 종족과 마법이 판치는 <신의 유희>가 평범한 세계관이라고?
성좌들 기준이 너무 비틀려있는 거 아냐?
“요즘 워낙 자극적인 콘텐츠로 가득해서 성좌님들도 염증을 느끼던 차였을 겁니다. 그래서 레트로한 감성의 ‘악역영애’가 흥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
평범한 지구인 출신인 나로서는 대화 내용을 전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