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특이점에 운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겠어.’

제발 내 정화 능력이 고스트에게도 통해야 할 텐데.

“부담된다면 거절해도 괜찮다.”

“아니요! 무조건 하겠습니다.”

검은 하트 4개의 클라이드는 날 가차 없이 퇴학시킬 인간이었다.

이건 내 목숨이 걸린 일이었기에 사뭇 비장한 얼굴로 일리야에게 말했다.

“반드시 교수님 가문에 도움이 될게요. 꼭 고스트를 정화하겠어요.”

그러자 일리야가 무심한 얼굴에 희미한 온기를 담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무슨 대악마가 이렇게 다정할까?

나는 머쓱하게 그가 쓰다듬은 자리를 매만졌다.

* * *

고스트를 만나기 전, 내 상태를 점검해보기 위해 버려진 별관으로 향했다.

레이니가 연금술 연구실에 가 있는 걸 확인했으니 버려진 별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상태창.”

▼

[테레제 스콰이어]

설명: 스콰이어 공녀

나이: 22세

마법 등급: B+

지능: B

마력: A (12,034/12,034)

▲

아직도 지능은 B급이었다.

“마법서도 꾸준히 읽는데 어째서 지능이 오르지 않는 거지?”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띠링!

[성좌 ‘갬블러’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신의 유희>에서는 어떻게 해야 지능이 높아지는데?]

“도서관 방문 횟수 채우기, 강의 횟수 채우기…… 아.”

나는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나 1학년이 아니라 4학년이지.”

설정상 4학년이 듣는 강의 수는 1학년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테레제의 학점이 개판이라 다른 학생들보단 좀 더 많은 강의를 듣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1학년보다는 확실히 적었다.

“끄응.”

이거 아무래도 펠릭스 교수의 강의를 듣게 생겼네.

‘일단 넘어가자.’

다음으로 확인해볼 게 있었다.

“방송 설정.”

▼

[방송 설정]

채널명: BJ악역영애

채널 등급: 골드

채널 순위: 98위

후원금: 6,348,700코인

▲

어라.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분명히 채널 순위가 다시 100위 밖으로 밀려났었는데.

“언제 순위가 다시 올랐지?”

띠링!

[성좌 ‘성좌면 잭코 방송 보세요’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겨우 98위? ㅋㅋ 견제할 것도 없겠다 ㅋㅋ]

띠링!

[성좌 ‘차단각도기’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그게 견제하는 거란다 등신아 ㅋㅋ]

이제는 꽤 익숙한 분탕질이었다.

‘오즈월드가 차단하겠지.’

하지만 차단했다는 알림 대신 분탕질 치러 온 성좌가 후원을 띄웠다.

띠링!

[성좌 ‘성좌면 잭코 방송 보세요’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응~ 견제라고 믿고 싶은 거겠지~ 98위 따리는 80위 잭코 방송에 못 비벼~]

이상하네. 원래 이런 건 오즈월드가 칼같이 차단하는데?

하지만 오늘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바쁜가?’

이렇게 된 김에 평소 궁금했던 거나 물어봐야겠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이 방송을 싫어하면서 왜 굳이 만 코인이나 주는 거예요? 그냥 1코인 주고 욕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대답이 육성으로 돌아왔다.

“그야 최대 후원금이 아니면 알림이 뜨지 않게 설정해뒀을 테니까요. 그러지 않으면 방송이 지저분해지거든요.”

흠칫!

나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 돌렸다.

‘누구지?’

낯선 사람이었다.

한데 묘하게 오즈월드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노란색, 붉은색을 섞은 화려한 염색 머리나 전신에 두른 요란한 장신구도 그렇고.

어디서도 팔지 않을 것 같은 징 박힌 샛노란 슈트를 걸치고 있었다.

오즈월드도 대단히 양아치스러우나 이상한 품위는 있었다.

한데 이 남자는 그냥 덜떨어져 보였다.

남자가 내게 윙크했다.

“안녕하세요? 오즈월드의 새로운 귀염둥이 씨.”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누구세요?”

내가 잔뜩 경계하며 묻자 남자는 마치 첫 만남 때의 오즈월드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가슴에 손을 올리며 인사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현재 1위 채널의 관리자, 체호프입니다.”

‘다른 채널 관리자가 왜 날 찾아왔지?’

의아함에 미간을 찡그리고 있을 때 체호프가 멋대로 내 손을 가져가 키스하려 했으나 매섭게 뿌리쳤다.

“쯧, 귀족의 예법을 모르는 겁니까?”

“용건이나 말해.”

그는 나를 요리조리 관찰하더니 미적지근하게 반응했다.

“흐으음. 신기록을 연달아 갱신하길래 얼마나 대단한가 했더니 생각보다 훨씬 평범하네요?”

띠링!

[성좌 ‘■즈월드가 리얼월드’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겨우 1위 한 번 해본 애송이가 뒈지려고 ㅡㅡ 안 꺼지냐? 그리고 제발 오즈월드 코스프레 그만 좀;]

어쩐지 묘하게 오즈월드의 하위호환 버전 같더라니.

그나저나 ■즈월드가 리얼월드? 어디서 본 적 있는 이름인데.

‘아, 전에 본 오즈월드가 리얼월드라는 성좌인가?’

굳이 앞 글자를 지우고 나타난 걸 보면 전에 추측했듯 닉네임에 오즈월드가 들어가면 자동 필터링되는 게 맞는 듯했다.

띠링!

[성좌 ‘설명충’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꼭 라이징 채널 관리자들이 오즈월드한테 열폭하더라; 얘야, 오즈월드 전성기 시절이나 보고 와라]

띠링!

[성좌 ‘팩트도 폭력이다’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계속 신기록 갈아치우고 있는데 여전히 전성기 아님? ㅋㅋ]

성좌들의 조롱에도 체호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공에 화면을 띄웠다.

“스토리도 뻔하고 인물 관계도 뻔하고, 악역 빙의? 제일 뻔하잖아! 오즈월드가 요즘 감을 잃었다더니 사실이었군요?”

그는 내 방송 기록을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오즈월드를 조롱하고 싶은 거면 당사자 앞에서 하라고.’

나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다른 채널 관리자면서 왜 내 방송 기록을 확인하는 거지? 여기는 개인정보 보호법 같은 것도 없나 봐.”

“하하! 보호요? 채널 기록은 아카식 레코드에 보관되기 때문에 관리자는 전부 열람할 수 있답니다.”

“…아카식 레코드?”

그건 나도 아는 개념이었다.

아카식 레코드는 우주의 모든 기록을 담은 초차원 도서관 같은 거였다.

“그런 게 진짜로 존재하는구나.”

체호프가 비웃음을 흘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오즈월드가 본인 BJ에게 불친절하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을 줄이야.”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좀 꺼져 쥐새끼야 ㅋㅋ 또 1위 들먹거리면서 남의 방송 인수하려고 왔냐?]

‘인수?’

나는 잠자코 체호프와 성좌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체호프는 짐짓 상처받았다는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성좌님. 이게 다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채널 1위 관리자로서 재능을 기부하는 건데요.”

띠링!

[성좌 ‘성좌면 잭코 방송 보세요’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 방송 떡락각임 ㅋㅋ 오즈월드가 전혀 관리를 안 하는데?]

“그렇습니까? 기록만 봐도 망한 방송 냄새가 나긴 납니다만.”

체호프가 낄낄 웃었다.

“채널 1위 관리자인 제가 솔루션을 주지 않을 수 없군요! 어디 보자. 스킬은 얼마나 괜찮은 걸 쌓았을까…… 응? 오류인가? 왜 이것밖에 안 뜨지?”

체호프는 화면을 마구 헤집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인물 확인], [중급 예법], [중급 댄싱], [기마술]? 정말로 익힌 스킬이 겨우 4개뿐입니까? ‘꽝’인 녀석들에게도 이렇게 각박하게 굴진 않을 텐데 말입니다.”

‘꽝? 뭔 소리야?’

내가 미간을 찡그리고 있으니 체호프가 설명했다.

“현재 99위 BJ구미호의 스킬이 82개입니다. 50위 이상의 BJ는 최소 300개가 넘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고요.”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건데?”

체호프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여기까지 말해줬으면 좀 이해해야 할 거 아닙니까? 당신은 버린 카드라는 겁니다!”

[성좌들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입니다.]

나도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체호프는 연신 혀를 차며 화면을 죽죽 넘겼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스토리 진행 속도가 가장 엉망입니다. 아직도 원작 여주를 처리하지 못했다니요? 지금쯤이면 불구로는 만들었어야죠.”

“미쳤어?”

역겹고 불쾌한 말에 내가 사나운 얼굴로 반응하자 체호프는 되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당연한 겁니다. 당신은 사이다 전개도 모르는 무지렁이인가요?”

나는 이 남자가 원하는 게 오즈월드의 방송을 망치거나 뺏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까 성좌가 ‘인수’라고 말했으니 후자일 가능성이 컸다.

‘오즈월드처럼 날 철저히 도구로 생각하는 녀석이야. 심지어 자의식도 굉장히 강한 타입이고.’

관찰한 결과, 오즈월드의 뒤통수를 칠 수 있을 만한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정보나 빼먹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