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황제에게는 약이었으나 일반인에 불과한 궁인에게는 극독이었다.
“폐, 폐하, 소인이 크나큰 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그는 짜증스럽게 궁인을 내동댕이쳤다.
궁인은 바로 눈앞에 얼음 가시 투구꽃이 보이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충성을 바치려 궁인이 된 자가 짐의 신경증을 치료할 꽃 한 송이 꺾어오지 못한단 말인가?”
“살려주십시오, 폐하!”
“네놈이 공녀의 앞에서 짐을 능멸하는구나.”
‘그냥 죽이고 싶은 거잖아.’
꽃으로 충성심을 시험하는 척하지만, 그냥 화풀이였다.
스콰이어 공녀인 내게 보란 듯이.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굳은 입술을 억지로 벌려 말했다.
“폐하, 제가 대신 꺾어와도 되겠습니까?”
유지스는 내내 덫처럼 쥐고 있던 내 손을 우그러뜨릴 듯이 잡았다.
꽈아악!
“읏…!”
그가 반대편 손으로 내 일그러진 얼굴을 감싸듯 쥐었다.
살의가 들끓는 눈빛이었다.
두렵다.
마수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낀 긴장감은 지금의 두려움에 비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두 눈이 충혈되어 눈물이 고일지언정, 절대로.
‘나는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아.’
유지스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꽉 쥐고 있던 손을 풀어주었다.
“공녀에게 이토록 측은지심이 많은 줄 몰랐는데.”
그가 한발 물러났다.
“좋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짐이 질문을 하나 할 텐데 답이 마음에 들면 궁인을 살려주겠다. 하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녀가 직접 죽여라. 내기를 받아들이겠느냐?”
황제는 내기를 좋아한다.
여기서 물러선다면 검은 하트가 늘어날 테니 사실상 선택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유지스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질문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짐을 기만한 자는 전부 화형에 처했다. 하나 이제는 그 벌이 시시해졌는지 오늘처럼 해이하게 구는 이들이 늘고 있노라.”
“…….”
“공녀가 생각하기에 이 궁인이 어떤 벌을 받아야 다들 기만에 대한 경각심이 새겨질 것 같은가?”
화형보다 효과적으로 경각심을 새길 수 있는 벌이라.
단순히 잔혹하기만 해서는 시시하고 뻔해 황제의 마음에 차는 대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시나리오에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고 질문이었다.
여기서는 내 판단으로 유지스의 특성을 고려해 대답해야 했다.
그는 내기, 술, 담배, 이야기를 좋아한다.
돌파구는 ‘이야기’였다.
“답을 말씀드리기 전에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려도 되겠습니까?”
유지스는 선심 쓰듯 허락했다.
“해보거라.”
내게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소질 같은 건 없었다.
대신 재밌어 보일 방법은 알았다.
‘어쨌든 <신의 유희>의 게임 시나리오를 작성해보기도 했고.’
오직 나 혼자만의 힘으로 만든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표현하는 경험치 정도는 있었다.
오늘은 마침 비가 내렸다.
나는 빗물을 끌어와 애니메이션처럼 과장된 형태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어느 장난을 좋아하는 신이 마법을 쓰지 못하는 자신의 아들에게 훔친 물건의 형태를 바꾸는 속임수를 쓸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이는 그리스 신화, 시시포스의 이야기였다.
“신의 아들은 그 능력으로 코린토스라는 지역의 왕, 시시포스의 소를 훔쳐 털빛은 더 밝게, 배는 더 뚱뚱하게 모습을 바꿨지요.”
유지스는 처음에는 심드렁하더니 내가 만들어낸 등장인물들에 서서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시포스는 자신의 소가 점점 줄어들고 신의 아들이 가진 출처 모를 소가 늘어나자 그를 의심했지만, 함부로 자신의 소라는 것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꾀를 내었죠.”
나는 소의 발굽에 ‘시시포스’라고 새겨주었다.
“시시포스는 신의 아들을 찾아가 미리 자신의 이름을 새겨둔 소 발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도둑질은 발각되었고 신의 아들은 물론, 신까지도 시시포스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필요한 것은 번개가 맺힌 구름을 타고 다니는 신, 제우스. 님프 아이기나, 강의 신이었다.
“어느 날 시시포스는 번개의 신이 아름다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요정의 아버지는 강의 신이었고 시시포스는 도시에 물이 필요했기에 정보를 두고 거래했습니다.”
이야기에 집중한 것은 황제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내가 만든 물로 된 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시포스는 물을 얻었고 번개의 신은 납치가 실패하자 몹시 분노했습니다. 하여 그는 시시포스에게 죽음의 신을 보냈죠.”
그런데 시시포스는 되레 죽음의 신을 속여 가두었다.
그 때문에 세상은 잠시 죽음이 사라졌고 저승을 다스리는 하데스는 큰 피해를 입었다.
“시시포스는 벌로 저승에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승의 신마저 속이고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와 장수를 누렸습니다.”
잠자코 있던 유지스가 입을 열었다.
“네 이야기에서 신이 누구인지, 시시포스가 누구인지 알겠다. 한데 시시포스는 저승에서 살아 돌아와 장수까지 하였구나. 그렇다는 건 짐이 저 궁인을 살려주어야 한다는 뜻인가?”
나는 고개 저었다.
“시시포스는 결국 수명을 다해 죽었습니다. 신들은 자신들을 기만한 시시포스를 용서하지 않았고 그의 영혼에 벌을 주었습니다.”
빗물은 거대한 산을 만들었다.
그리고 산자락에는 조그마한 시시포스와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시시포스는 신을 기만한 죄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바위는 정상에 닿기 전에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져 형벌은 영원히 되풀이되었습니다.”
나는 마력을 흩트려 없앤 후, 유지스와 눈을 마주쳤다.
“이 궁인은 신을 기만하였으니 바위를 굴리는 벌을 받으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이 내 대답이었다.
“하… 하하하!”
황제는 소년처럼 웃었다.
“정말로 짐의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로구나.”
‘아… 다행이다.’
안도감에 전신의 힘이 풀릴 듯했다.
“저 궁인에게는 공녀의 말대로 바위를 굴리는 벌을 내리겠다.”
……뭐라고?
“폐하.”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불렀고, 살았다고 생각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바위를 굴리게 된 궁인 역시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공녀님의 대답이 마음에 들면 분명 저를 살려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유지스가 혀를 찼다.
“그래서 죽이라고 하지는 않았잖느냐.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시종장이 턱짓했고 궁인은 끌려 나갔다.
나는 창백하게 질린 채 전신을 미세하게 떨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는 태평스럽게도 직접 비까지 맞으며 화단에서 꽃을 꺾어왔다.
비를 맞은 꽃은 더욱 싱그럽게 빛과 향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꽃향기를 맡아보더니 느른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정말로 효과가 있구나. 공녀의 엉망진창인 예법도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확실히 기분이 좋아진 황제가 내게 얼음 가시 투구꽃을 내밀었다.
“받아라. 짐이 난생처음으로 여인에게 주는 꽃이니라.”
“…황공합니다, 폐하.”
나는 차갑게 식은 손으로 꽃을 받았다.
그리고 확인했다.
[호감도: ♥♥♥♡♡]
유지스의 호감도가 검은 하트 3개로 줄어있었다.
더불어 그는 궁인들에게 신발에 덧댄 천을 벗어도 좋다고 허락까지 내렸다.
정말로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정말로…….
몸이 덜덜 떨렸다.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비가 싸늘하게 내리는 날씨에 너무 오래 밖에 나와 있었다.
유지스가 뜨거운 손으로 내 손을 쥐었다.
“밖에 오래 있었더니 몸이 차가워졌군. 어서 만찬장으로 들어가 따뜻한 음식을 들도록 하지.”
나는 손길을 피하고 싶었으나 외려 그에게 의지해서 걸어야 했다.
유지스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거의 품에 안다시피 했으니.
어지러웠다.
미친 듯이 울리는 후원 알림이 끌려 나가던 궁인의 절규와 섞여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미친 새끼.’
황제는 진짜로 미친 새끼였다.
모든 남자 주인공 중 단연코 최악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성대한 만찬까지 들고 나서야 완전히 체한 상태로 공작저에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