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3/277)

  

?”

너 귀엽다고.”

데미안은 내 볼을 아프지 않게 살짝 꼬집으며 웃었다.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지금이야!! 키스해!!!!]

데미안의 의미 없는 스킨십에 그딴 짓을 했다가는 바로 암살 엔딩이었다.

애초에 키스하고 싶지도 않았고.

또 멍한 표정 짓잖아.”

이건 멍한 표정이 아니라 황당한 요구가 적힌 후원창을 보는 표정이란다.

그렇게 설명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러든가 말든가 하며 마법서로 시선을 내렸다.

그런데 데미안은 지겹지도 않은지 내 머리카락으로 장난치다가 간혹 말을 걸어왔다.

이번 주에 태양궁에 간다고 했지긴장되지 않아?”

당연히 긴장되지.”

죽을까 봐.

오늘은 벌써 금요일이었고 이틀 후에는 황제를 만나러 가야 했다.

정신 나간 기분파 폭군을 홀로 대면할 생각에 마법서를 읽을 집중력이 흩어졌다.

괜찮겠지괜찮을 거야.’

대악마 앞에서도 괜찮았는데 인간 황제쯤은…… 안 괜찮을 것 같은데끄응.

어차피 초대장을 받은 이상 알현은 피할 수 없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최대한 실전에 유용한 마법을 공부해두는 것으로 긴장을 풀었다.

내가 가방에 책을 집어넣고 있으니 데미안이 먼저 일어났다.

이제 슬슬 강의 시작할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갈까?”

그래야지.”

나도 뒤따라 일어나자데미안이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팔을 내밀었다.

제게 팔짱 껴주세요아가씨본관까지 에스코트하고 싶습니다.”

갑작스러운 장난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과연 미남은 뭘 해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유쾌한 기분과는 별개로 나는 그의 팔을 밀어내며 거절했다.

안 돼미모사가 보면 골치 아파져.”

가뜩이나 요즘 학생회나 호위 마법사 같은 일들로 인해 미모사가 나만 보면 성난 살쾡이처럼 하악질 해대고 있었다.

아아.”

데미안은 순간 미소를 지운 표정으로 뭔가를 고민하는 듯 시선을 사선으로 떨어뜨렸다.

저건 성가신 상대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보통 저런 표정을 지으면 항상 본인에게 편한 방향그러니까 성가신 걸 제거하는 쪽으로 선택이 기울었다.

이런.’

나는 미모사를 지키기 위해 얼른 데미안의 팔을 와락 끌어안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내 호위의 에스코트를 받는 걸 눈치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데미안은 내가 팔에 매달리자 진정제를 맞은 것처럼 음산하던 눈빛을 거두고 청량하게 미소 지었다.

황제만 문제가 아니야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문제구나.’

개발자의 원죄였다.

* * *

나는 멀리서부터 휘황찬란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올리브색 마차를 시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누가 보면 황족이라도 행차한 줄 알겠네.’

실제로 저 마차가 발할라의 명물 아닌 명물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 명물 앞에는 어느덧 어엿한 귀족 영애의 태가 나는 리비가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주말에 뭐해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을래?”

아냐나랑 호수로 놀러 가자날이 좋아서 피크닉 가기 좋아.”

이 꽃 받아널 닮아서 샀어.”

내 고백에 대한 답은 언제 줄 거야?”

개수작들이 판을 치는군.

나는 꼿꼿한 자세로 그들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그러자 상냥한 표정으로 곤란해하던 리비가 날 발견하고는 매우 반색했다.

언니!”

남학생들은 동시에 어깨를 움칠 떨더니 뻣뻣한 동작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누구 하나 리비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흐리멍덩한 인상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주인공이란 어마어마한 작업 비용이 소요되는 존재다.

물론작업 비용은 인건비 포함이었다.

당연하게도 내노동력이엄청나게들어가 있다고!

그런 여주한테 자동 생성된 이세계 원주민들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작업을 걸어?’

살기로 가득 찬 내 눈빛을 읽은 건지 남학생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뒷걸음질 쳤다.

언니분이 오셨구나난 이만 가볼게!”

그들이 우르르 떠나자 리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밝은 미소를 띠며 내게 다가왔다.

이렇게 같이 집에 가는 건 처음이네요!”

.”

나는 누가 리비에게 접근하려는 기색이 없는지 경계하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마차에 올랐다.

앞으로 시시껄렁한 녀석들이 접근하면 내 핑계를 대대부분 알아서 떨어져 나갈 테니까.”

이럴 때 테레제의 악명을 써먹어야지 언제 쓰겠어.

리비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까르르 웃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리비는 꼭 남자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겠구나.’

솔직히 남자 주인공들은 게임에서나 정복하고 싶은 매력이 있지현실에서는 엮이는 순간 인생이 고달파지는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리비넌 이상형이 있어?”

이상형이요?”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리비가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하고 엉뚱하고 다정한 사람이 좋아요.”

남자 주인공 중에 그런 캐릭터는 없는데.’

다들 비밀로 꽁꽁 감춰진 음침하고 포악한 놈들이었다.

그래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을 텐데…….”

내가 곤란하게 중얼거리자 리비가 해맑게 대답했다.

있어요바로 언니잖아요저는 언니 같은 사람이 좋아요.”

그러고는 뭐가 좋은지 헤실헤실 웃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큰일이다리비 눈이 너무 낮아.’

테레제는 솔직한 게 아니라 무례한 거고엉뚱한 게 아니라 기상천외한 거였으며다정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걷는 인물이었다.

혹시 빙의된 날 보고 하는 말인가?’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리비와 있을 때 내가 한 행동을 돌이켜보면 테레제와 별다를 게 없었다.

아버지께 대들고 친구와 싸우는 모습밖에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심란한 마음에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을 때였다.

……주세페?”

우연히 본 창밖에 주세페가 저보다 덩치 큰 소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머리로 저게 무슨 상황일지 생각하기도 전에 마차를 두드려 멈춰 세웠다.

절대 좋은 상황으로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이에요언니?”

저기 주세페가 있어.”

더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분위기만 보면 당장이라도 집단 린치가 일어날 것 같았으니까.

소년들에게 다가가자 날카로운 고성으로 서로 말다툼하는 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주세페를 부르려 했다.

너 테레제 공녀님이랑 안 친하잖아.”

소년들이 나를 언급하기 전까지는.

친구들끼리 싸우는데 내 이야기를 할 일이 있나?’

의아한 기분으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말소리가 더 정확하게 들렸다.

네가 차기 공작이 될 거라고 하더니마수를 조종하는 네 누나를 어떻게 이기려고넌 마수 정화도 못 하잖아!”

닥쳐!”

우리 아빠가 그랬는데공녀님이 후계자가 되면 넌 쫓겨날 거래테레제 공녀님이 새 가족을 엄청나게 싫어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댔어!”

내가 닥치라고 했지!”

주세페는 급기야 마법을 사용하려 했고 소년들도 바라던 바였는지 기다렸다는 듯이 대응했다.

주위는 고급 상점들로 이루어진 부유한 거리였기에 이 사태를 구경하는 귀족들도 많았다.

만일 이 싸움에 휘말린 상점가나 귀족이 생기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될 터.

나는 검지를 입술에 댔다.

.”

이는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는 방식의 마법 주문이었다.

마법을 단축키 설정하듯 간단하게 사용하기 위해 약간의 동작과 짧은 언어를 통해 최대한 간략하게 개량했다.

으읍?!”

소년들은 갑자기 주문을 외치려던 입술이 딱 붙자 우왕좌왕했다.

다들 마법을 취소한다.”

그리고 이건 내가 개발 중인 두 번째 방식이었다.

바로 대화하듯 마법을 사용하는 것.

기존 마법은 최대한 정확한 언어를 통해 구체적인 명령을 내려야 했다.

기존의 방식으로 같은 마법을 사용하려면, ‘일대의 마력이여생성을 중단하여 사라져라!’라는 식의 주문이 필요했다.

실전에서도 이 방법이 통하네.’

나는 소년들 앞으로 다가가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였다.

차렷이제 말은 해도 돼.”

이제 말이 나와!”

내 마법에 통제되었던 건 주세페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날 발견하자마자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버럭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당장 풀어줘!”

소년들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차렷 자세로 서 있어야 했다.

안 돼풀어주면 마법으로 또 싸울지도 모르잖아.”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소년들을 향해 빙긋 웃어주었다.

안녕?”

소년들은 넋 나간 표정으로 날 보며 연신 감탄만 터뜨렸다.

…….”

우와…….”

그때 마침 리비도 내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소년들은 리비를 보더니 또 쭈뼛거리며 어어하는 소리만 냈다.

띠링!

[성좌 얼굴감별사’ 님이 1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난생처음 말도 안 되는 미인을 본 소년들의 반응]

꼭 너튜브 제목 같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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