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스 황제의 손에 쓸려나간 가문만 몇이던가?
황제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기만하는 것을 조금도 참지 못한다.
그러니 이 발언이 치기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앞으로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었다.
황제는 그런 자였으니까.
‘지금 그 앙심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가문이 바로 스콰이어라고.’
그런 가문 소생의 장녀가 한 말이니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으리라.
학생회실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도르노는 나를 향해 고개 숙이며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전부 실언이었습니다. 부디 제 어리석은 말을 귀담아듣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띠링!
[퀘스트: 도르노 기죽이기 완료]
▸보상: 500,000코인 획득
‘이제 쓸데없는 잡음 없이 순조롭게 회의할 수 있겠어.’
그때 문득 양쪽에서 날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왜 그러지?’
의아하게 양쪽을 보니 데미안은 묘한 미소를, 클라이드는 이상한 걸 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테레제답게 무맥락 무논리로 마구 우겨대며 패악 떨지 않은 게 인상적이기라도 한 건가?
그 순간 사용인이 다급한 표정으로 클라이드를 찾아왔다.
“클라이드 님. 방금 투베로사 마을에서 한차례 마수 습격이 벌어져 부상자만 열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사장님께서 학생회에서 직접 확인해보길 요청하셨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동시에 묘한 열기가 감돌았다.
이는 활약할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빼주라.’
각고의 노력에도 아직 내 지능은 A급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학생회 임원들은 전부 지능 A급 이상의 마법사라고.
피지컬이 다르단 말이었다.
나는 발표 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는 학생처럼 고개 숙이고 있었다.
클라이드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뱉었다.
“투베로사에는 나, 데미안, 테레제가 간다. 당장 말을 준비해라.”
개자식!
데미안이 내게 말했다.
“같이 가서 다행이다. 그렇지?”
“…….”
아까 말리는 시누이에게 당했던 녀석들의 심정이 뭐였는지 알 것 같았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말을 탈 줄 모른다.
내가 뚱한 얼굴로 말 앞에서 가만히 서 있자 데미안이 말을 걸어왔다.
“뭐해, 테레제?”
“기다리고 있어.”
“뭘?”
“내가 말을 탈 수 있게 되기를.”
“…??”
‘X슨은 다람쥐를 뿌려라!’
…라고 외치던 때의 심정으로 생각했다.
‘시스템은 상점템을 뿌려라!’
띠링!
[상점에 입고된 상품이 있습니다.]
역시나 금방 상점에 아이템이 입고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
[상점]
▹소원권 [1,000,000,000코인]
: 어떤 소원이든 1회 들어준다.
▹기마술 [499,000코인]
: 숙련된 기마술을 지니게 된다.
▲
‘쳇. 퀘스트로 번 돈 다 쓰네.’
이거 상술 아냐?
이래서 코인을 어떻게 모으라고?
[후원금: 3,616,400코인]
‘오.’
후원금은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쌓여 있었다.
‘확실히 골드 채널이 되고 나니까 후원금 쌓이는 속도가 다르네.’
그러고 보니 상점에 [댄싱 머신]이 보이지 않았다.
구매하지 않은 아이템은 자동으로 없어지는 모양이었다.
내가 기마술을 구매하는 동안 클라이드가 말을 탄 채 다가왔다.
“뭘 꾸물거리는 거지?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성질 더럽게 급하네…….”
“뭐라고?”
“어어, 미안. 갑자기 말을 어떻게 타는지 잊어버렸었어. 지금 생각났네.”
내가 아무 말이나 지껄이며 말에 오르자 클라이드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믿을 수 없는 지능이군.”
그는 테레제라면 능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는지 그게 말이 되느냐는 식의 트집을 잡지 않았다.
테레제가 놀라울 정도로 학습에 관련한 부분에 있어서 기대감 없는 존재라 다행이었다.
데미안은 말에 오르더니 내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알려줄 테니까.”
“…그래.”
왜 아까부터 이쪽이 더 얄밉지?
“잡담은 그만. 출발하자.”
“이랴!”
우리는 투베로사 마을로 출발했다.
* * *
서둘러 도착한 투베로사 마을은 음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태를 수습하고 있던 경비대장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초췌한 얼굴로 다가왔다.
“오셨군요, 소공자님.”
클라이드가 말에서 내리며 물었다.
“부상자는?”
“빈집을 빌려 치료 중입니다. 사망자는 없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비대장과 함께 임시 기지로 사용 중인 집에 들어갔다.
“이건 투베로사 마을의 지도입니다. 마수 총 다섯이 이곳으로 쳐들어왔고 늑대 종이었습니다.”
“하필.”
늑대는 무리 짓는 동물이었고 고작 다섯 마리가 끝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마을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던 거였다.
“그래서 몇 마리를 죽였지?”
“한 마리는 죽였고 한 마리는 산 채로 정화에 성공했습니다. 죽은 늑대도 정화해두었고요.”
마수의 시체를 내버려 두면 땅이 오염된다.
그랬기에 죽인 후라도 반드시 정화 마법을 써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주어야 했다.
“다음 습격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지원 요청에 응답해온 마을이 없어서 급히 발할라에 연락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회는 어느 곳이든 무작정 출정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귀한 인력이었고 의뢰비도 만만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윌로우 가문에서 관리하는 마을이라면 아주 위급한 상황일 경우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도 최근 마수 습격이 늘고 있는 점을 가장 염려하고 계시지. 이는 우리 가문이 마땅히 나서서 해결할 일이야.”
경비대장과 대원들은 클라이드의 말에 매우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들이 떠들어댈 동안 골치 아픈 표정으로 지도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는 왜 경비를 비워뒀어?”
“거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입니다. 만일 그리로 마수가 침입해오더라도 경비대원들이 감시하는 구역과 겹치지요.”
예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나? 설정이 그러했으니까.
물론 마수를 상대할 인력도 부족한데 이런 곳에 낭비할 수는 없을 터다.
‘하지만 여기로 마수가 침입한단 말이지.’
플레이어가 이곳을 조사하지 않으면 최소 투베로사 마을의 우물과 풍차가 모조리 부서진다.
암만 돈을 들여 복구한다고 해도 재건할 때까지 평민들은 삶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기가 너무 취약하지 않아? 이쪽으로 늑대 무리가 쳐들어오면 피해가 클 텐데.”
“죄송하지만 민가를 보호할 인력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경비대장은 내가 트집 잡는다고 생각하는지 불쾌감이 서린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이쪽은 내가 정찰할게. 역시 비워두는 건 좀 그래서.”
그러자 데미안과 클라이드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테레제.”
“객기부리지 마라.”
나는 잠깐 가늠하듯 두 사람을 보았다.
하나는 검은 하트 셋. 다른 하나는 붉은 하트 하나.
두 사람 다 전투에 동원할 수 없는 호감도 수치였다.
‘최소 붉은 하트 2개를 채워야 내 제안을 먼저 따르게 할 수 있으니까.’
“객기가 아니야. 나도 정화 마법을 배웠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순식간에 마법 술식을 완성해 마력을 불어넣었다.
“침식된 생명이여, 정화되어라.”
정화할 대상이 없으니 마법은 잠시 허공에 맺혀있다 사라져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마법 생명체>를 공부했다면 내가 완성한 마법이 제대로 된 것임을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그래도 혼자는 위험하니까 내가 같이 갈게. 난 네 호위잖아.”
데미안의 말에 클라이드가 차갑게 일갈했다.
“피해당한 곳부터 살피고 수습하는 게 우선이다. 호위이기 전에 부학생회장이라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하는데.”
클라이드는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마수는 한 번 쳐들어온 곳으로 반복해 기습하는 습성이 있지. 그런데도 엉뚱한 곳을 정찰하겠다고 말하다니. 그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어떻게 받아들이기는. 이미 내가 마수를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친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잖아.
하지만 명분이 부족한 쪽은 나였기에 최대한 이성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하며 반박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 구역은 마법 식물을 재배하는 농가와 가까워. 마수는 마법 식물이 많은 장소에 자주 나타나는 경향성이 있지. 이미 학회에서는 정설로 굳어져 있어. 너도 알 텐데?”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팽팽한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나는 한발 물러서듯 말했다.
“데미안은 대동하지 않을 거야.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학생회 활동에서도 호위라는 명목으로 그를 휘두를 생각 없어.”
우리를 지켜보던 경비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인력이 모자라서 여기까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지만, 공녀님 말씀처럼 정찰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경비대장은 내가 무논리로 우기는 게 아니라 타당한 이유로 정찰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에 설득된 모양이었다.
클라이드는 그렇다고 해도 단독 행동을 하려는 내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이 생기면 즉시 마법 전서구를 보내.”
“알았어.”
당연하지. 마수의 그림자라도 보이면 그 즉시 전서구를 보낼 생각이었다.
나처럼 실전 경험 없는 B급 지능의 마법사가 어떻게 마수 떼를 상대하겠냐고.
“그럼 다녀올게.”
나는 말을 타고 마수가 나타날 예정인 장소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