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나는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아침 식사를 해치우고 머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요즘 먹는 양이 느셨네요. 혈색도 더 좋아지셨고요!”
엘로이즈의 말대로 요즘 잘 먹고 잘 잤고 미약한 두통도 느끼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아지니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아 사람을 피해 다니는 행동도 그만두었고.
‘언제까지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 있을 순 없지.’
그도 그럴 것이, 며칠간 정적인 방송이 이어진 탓에 내 순위는 도로 100위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과연 순위권은 경쟁이 치열하구나.’
엘로이즈는 몸단장을 마친 날 보며 연신 감탄을 거듭했다.
“날이 흐를수록 미모에 부쩍 물이 오르시는 것 같아요. 원래도 아름다우셨지만, 요즘은 왠지 눈을 떼기 힘들다는 느낌이에요!”
나는 냉정한 진단을 내려주었다.
“그거 콩깍지야.”
“콩깍지라니, 억울해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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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나도 심한 모욕을 당한 기분이야!]
“응. 그건 그렇고 참, 엘로이즈. 해줄 일이 있어.”
본인의 안목을 매도당한 억울함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엘로이즈에게 책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3학년 중에 레이니 로즈라는 평민 학생이 있어. 후원이 원활하지 못한 모양이던데 확인해보고 우리 재단으로 데려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우는 확실하게 최상으로. 스콰이어 장학재단의 학생이니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게 신경 써줘.”
레이니는 가난한 집의 딸이며 원조하는 귀족은 장학생 관리가 형편없는 가문의 장남이었다.
내 눈에 띄지 않았다면 몰랐겠지만, 간신히 구해 입은 태가 역력한 교복 차림에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는 레이니를 보니 이를 바로 잡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웠다.
여긴 현실 세계니까.
‘뿌린 대로 거둔다는 거지 뭐.’
“완벽하게 처리해두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학교로 향했다.
컨디션이 매우 좋아진 것과는 별개로 발걸음은 무거웠다.
오늘 학생회 소집 날이거든.
“하아아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데 그래?”
꽤 오랜만에 보는 듯한 데미안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학생회 첫 소집일이잖아.”
“단순한 회의일 뿐이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글쎄. 윌로우 가문에 줄을 댄 녀석들로 득시글한 학생회에 스콰이어의 장녀가 혼자 들어가는데 무사할 수 있을까?
“여차하면 내가 도와줄게.”
“그래…. 말이라도 고마워.”
사실 윌로우 편에 선 녀석들이 날 물어뜯거나 하는 건 두렵지 않다.
그거야 늘 하던 대로 테레제답게 처리하면 그만이니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검은 하트가 3개인 클라이드가 할 행동이었다.
검은 하트 3개일 때의 클라이드는 전투 시 플레이어를 도와주지 않는다.
심지어 클라이드의 상태에 따라 전투 난이도가 달라진다.
원래는 마수가 3마리쯤 나오고 말 간단한 전투가 20마리의 마수를 상대하는 걸로 바뀐다는 식이었다.
‘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악역의 삶은 이다지도 고단했다.
* * *
강의가 끝나고, 나는 회의 시간에 맞춰 학생회실을 찾아갔다.
드륵.
문이 열리자 이미 회의 테이블이 꽉꽉 착석해있던 임원들이 동시에 날 쳐다보았다.
‘다 아는 얼굴들이군.’
학생회는 <신의 유희>를 플레이하는 유저가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활약이 미약한 엑스트라일지라도 전부 구현해두어야 했다.
다만 주인공과 비주인공의 차이는 확실히 구별해야 했으므로 엑스트라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특색 없는 외모의 향연이었다.
이 자리에 남자 주인공이 둘씩이나 있었으니, 엑스트라의 초라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금 미안하네.’
하지만 원래 현실은 미인이 소수인 법이지.
‘그렇게 됐다, 얘들아.’
나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빈자리를 찾았다.
한데 그게 하필 클라이드와 데미안 사이네…….
‘조작 아냐? 게임에서도 이런 식으로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고.’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자리에 앉으니 내 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고 개무시하던 클라이드가 입을 열었다.
“회의를 시작하지.”
발할라 학생회는 실질적인 군사력이 있는 무력 집단이다.
여러 가문의 자제들을 한꺼번에 통솔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위협적이었기에 대외적인 명분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바쁘신 황제 폐하를 도와 민생을 돌보는 집단이라고 포장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회의 내용과 활동은 보고서로 작성되어 윌로우 가문과 황실에 제출되기에 학생회에서의 활약은 곧 출세로 이어졌다.
하여 학생회 임원들은 매우 진지하게 회의에 임했다.
“최근 수도 인근에서 마법 생명체가 마기에 침식되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조치가 시급합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민가의 두려움이 날로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귀족 가문의 보호 구역에 속하지 못한 민가에도 관심이 필요합니다.”
“물론 소속이 불분명한 마을도 마찬가지겠죠.”
“윌로우 공작가에서 보호하는 마을의 주변까지 경비를 늘려 평민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의 논점이 묘하게 팬지 마을에 기사단을 보낸 내 행보를 의식한 것 같다면 자의식 과잉일까?
그때 침묵하고 있던 데미안이 발언했다.
“그런 식으로라면 보호 구역이 끝도 없이 늘어날 뿐입니다. 수도 인근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도 전부 관리해야겠죠. 제국 전역에 황금을 퍼부을 만큼 예산이 무한정이지 않습니다.”
친절하게 말하긴 했지만 결국 현실성 없는 개소리 좀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방금까지는 신나게 여기도 경비대 늘리자, 저기도 경비대 늘리자 떠들어대던 녀석들은 날카로운 지적에 부끄러워하며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평민이라지만 데미안에게 반박할 엄두는 나지 않는지 대체로 금방 수긍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사람은 전부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면 테레제 님께서 도와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를 비롯해 모두가 방금 발언을 지껄인 녀석을 쳐다보았다.
“이번에 사비를 들여 마을 하나에 기사단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만. 무려 한 달 간이나요.”
거푸집으로 찍어낸 듯 개성 없는 얼굴에 느끼한 포마드 머리.
‘이름이 도르노였나?’
도르노의 말은 시발점이 되었다.
“그렇네요! 윌로우 가문의 일이라면 테레제 선배님께서 두 발 벗고 나서주시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보호 구역을 두 배 이상 늘리실지도 모르죠. 클라이드 회장님의 이름으로 말이에요.”
‘호오. 이것들 봐라?’
테레제라면 자신과 클라이드를 한데 묶어 말하는 것에 흡족해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개강 이후로 계속 얌전하게 지내긴 했지?’
그래서 이것들이 감히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리는 건가?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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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했는데 잘 걸렸다 요놈들]
그때 클라이드가 싸늘한 표정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키득키득 웃으며 저들끼리 쑥덕거리던 놈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방금 말한 임원들부터 사비로 보호 구역을 확대하면 되겠군. 수준은 스콰이어 장학재단에서 한 만큼이면 되겠지.”
“예? 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사비를 대라면 기꺼이 하겠습니다만 스콰이어 장학재단만큼이라니, 그건 너무 부당한…!”
“닥쳐라. 그러면 방금까지 네놈들이 떠든 말은 온당하단 뜻인가?”
“그, 그건…….”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클라이드를 쳐다보았다.
‘뭐야. 쟤가 왜 내 편을 들어주지?’
비단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지 임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배신당한 얼굴로 나와 클라이드를 번갈아 보았다.
윌로우 후계자가 스콰이어의 장녀를 역성들고 있으니 황당하겠지.
나도 그렇다.
띠링!
[퀘스트: 도르노 기죽이기]
▸보상: +500,000코인
▸실패: 스콰이어 가문을 싫어하는 영식들의 계략으로 인한 퇴학
‘고작 이 일이 퇴학으로 이어진다고? 진짜 너무하네.’
뭐. 아무래도 좋다.
어이가 없었으나 어쨌든 퇴학을 면하기 위해선 활약해야겠지.
나는 클라이드의 말이 백번 천번 옳다는 표정으로 걱정스럽게 미간을 좁혔다.
내 눈썹은 아주 그럴듯한 모양으로 팔자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맞아. 방금 발언들은 위험했어. 우리 회장님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더 곤란해졌을 거야. 황제 폐하께 보고드릴만한 내용은 아니었잖아?”
살살 약 올리는 말의 효과는 뛰어났다.
“이익…!”
임원들은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사실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지 양 주먹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로 멘탈이 흔들리면 곤란하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두려움에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듯이 가슴께를 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스콰이어 가문만큼이라니. 누가 들으면 윌로우 가문과 우리 가문이 경쟁이라도 하는 줄 알겠어.”
여기까지 말했을 때는 다들 ‘두 가문이 원수지간인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는 웃음기 거둔 표정으로 차갑게 일갈했다.
“감히 천하의 주인이신 황제 폐하께서 다스리시는 땅을 두고 말이지.”
내 시선은 정확히 도르노에게 날아가 꽂혔다.
그는 안색이 창백해져 감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자칫 반역으로 간주 되어 가문이 쑥대밭이 될 수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