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은 황금빛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상대가 마법 동물이라는 뜻.
내게 훨씬 더 나쁜 상황이었다.
테레제와 마법 생명체의 상성은 최악이니까.
그러니 살고자 한다면 피해야 했다. 도망쳐야 했다.
당장!
“크와아앙!”
눈앞이 번쩍거릴 정도로 수많은 마법 동물이 나를 향해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미처 마법을 쓸 새도 없는 속도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토록 허무하게 죽는 건가?
나는 곧 찾아올 끔찍한 격통을 기다렸다.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엉덩방아를 찧은 것 외에는 별다른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헥헥헥.”
이상함에 살며시 눈을 뜨자 동그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날 쳐다보는 재규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옆의 거대한 늑대도.
뽀얀 깃털의 조그마한 새들은 내 어깨부터 팔까지 알아서 자리 잡고 앉아 끼루루 노래를 불렀다.
머리 위도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걸 보니 뭔가가 둥지를 튼 마냥 앉아있는 게 분명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자꾸 혼자 집에 남아서 도둑을 물리치는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에 나오는 비둘기 아줌마가 된 기분이었다…….
‘혹시 교수님이 구해주신 건가?’
시선을 들어 펠릭스 교수를 보았다.
한데 그는 나보다 훨씬 놀랐는지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그가 도와준 게 아닌 모양이었다.
“교수님? 전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내 질문에 펠릭스 교수는 간신히 정신 차린 듯 펄쩍 뛰었다.
“엇! 미안, 미안! 잠깐 애들을 풀어놓은 걸 그만 깜빡해버렸네. 그래도 마법 동물은 지능이 매우 높아서 함부로 굴지 않는데…….”
“그 말씀은 지금 마법 동물들이 제게 매우 격식 차리고 있다는 뜻인가요?”
“아, 아니……. 그건 아니지…….”
펠릭스 교수는 초반의 당혹스러움 대신 점차 호기심이 짙게 어린 표정으로 나와 마법 동물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허어. 거참 희한하네. 마법 동물은 지능이 높고 독립적이라서 이렇게 인간을 따르지 않는데.”
뭐가 됐든지 간에 내게 비비적거리고 끼루끼루 노래하며 저들끼리 파티를 벌이는 마법 동물들이나 떼어 내줬으면 했다.
무겁다고.
“교수님, 얘들 좀… 윽! 그만해!”
“헥헥헥!”
재규어와 늑대는 뭐가 좋은지 내 얼굴을 마구 핥아댔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다.”
할짝할짝!
내가 아무리 엄하게 말해도 동물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반응할수록 놀아준다고 생각하는 건지 좋아서 미쳐 날뛸 뿐이었다.
더 엄하게 하지 말라고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솔직히 귀엽긴 귀여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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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내가 보고 싶었던 게 이런 거라고!]
펠릭스 교수는 정신 나간 소리를 내뱉었다.
“내 생각엔… 넌 마법 생명체 분야의 천재야!”
……갑자기요?
나는 일련의 사태로 인해 신뢰성이 매우 낮아진 펠릭스 교수를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그는 내 눈빛을 전혀 읽지 못한 것인지 계속 헛소리를 해댔다.
“당장 전공을 바꾸는 게 어때? 마법 생명체를 다룰 수 있는 마법사는 극소수란다. 타고난 마력의 질도 좋아야 하고 마법 동물과의 상성도 뛰어나야 하거든.”
“교수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지금 네 주변을 보렴. 마법 동물들이 너한테 환장하고 있잖아. 이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라고!”
으음. 이건 확실히 게임에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라 이례적인 일이 틀림없었다.
‘대체 왜 나를 따르는 거지?’
마법 동물은 테레제의 사악한 기질을 예민하게 파악했다.
거기다 스콰이어 혈통 특유의 마력 때문에 마법 동물과의 상성은 최악이라는 설정이었다.
그러니 얘들은 테레제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털을 세우며 살가죽을 잘 찢을 것 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야 정상인데.
‘이해가 안 되네.’
개발자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펠릭스 교수도 마찬가지일 듯했다.
펠릭스 교수는 벼락 맞은 듯 영감이 떠오른 예술가처럼 다급히 뭔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난생처음 봐. 어떤 논문에서도 등장한 적 없었지! 어쩌면 마기에 침식된 삵 같던 테레제가 시름 거리는 강아지가 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묘하게 불쾌할 정도로 정확한 통찰력이었다.
펠릭스 교수는 안광을 번뜩이며 내게 요구했다.
“네 말이라면 마법 동물들이 다 따를 것 같은데, 한번 해볼래?”
그런가? 나는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앉아.”
착!
“엎드려.”
착!
“손.”
착!
‘뭐야. 왜 이렇게 잘해?’
나는 헥헥 거리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재규어와 늑대를 무의식적으로 쓰다듬었다.
펠릭스 교수는 세기의 천재를 보듯 나를 쳐다보았다.
“역시! 마력을 먹이로 주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잘 따르다니. 너는 마법 동물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굉장히 부담스러운데…….’
그때 일리야 교수가 주저앉아있던 나를 번쩍 일으켜 세우더니 뒤로 숨겼다.
“크르르륵!”
“캬아악!”
“끼루루! 끼루루루!”
그러자 마법 동물들이 으르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마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마법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상대가 천적임을 느낀 듯했다.
일리야 교수는 잠시간 마법 동물을 응시하더니 이내 펠릭스 교수를 향해 말했다.
“테레제는 내 학생이다.”
나는 당황한 눈으로 일리야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붉은 하트 1개의 일리야 교수가 하는 최상의 호감 표현이었다.
하나 그것은 플레이어에게 하는 말이었지 다른 교수에게 선전포고하듯 내뱉는 말이 아니었다.
펠릭스 교수는 그게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어차피 속성 마법 성적이 엉망진창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럼 전과하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
이 교수, 상당히 무례했다.
어차피 난 전과할 생각이 없었다.
전공을 바꾸면 일리야의 호감도 수치는 0으로 떨어지거든.
일리야 교수가 고개 저었다.
“테레제는 이제 막 속성 마법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수님…!”
내 노력을 알아봐 주는 말에 조금 감동하고 있을 때, 펠릭스 교수가 냅다 초를 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속성 마법에 두각을 드러내는 가학적인 마법사는 자네랑 클라이드 학생밖에 없어. 테레제는 그냥 전공을 잘못 선택한 가엾은 마법사에 불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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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패네]
펠릭스 교수의 발언이 이상하게 살짝 열받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 좋기도 했다.
어쨌든 내가 특정 분야에 소질을 보인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전공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제가 벌써 4학년이라 전공을 바꾸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복수전공은 어때?”
차라리 죽으라고 하지 그러세요?
그때 아까부터 으르렁거리며 일리야 교수를 경계하던 마법 동물들은 몹시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내 주변을 서성였다.
“끼잉… 끼이잉…”
나는 얘들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데.
지켜줘야 하는데.
그 마음이 전해져와서 코끝이 조금 찡해졌다.
펠릭스 교수는 낑낑거리는 동물들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들이 오늘처럼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야. 전부 마기에 침식되었다가 얼마 전에야 원래대로 돌아왔거든.”
“아…….”
“오늘까지도 상태가 좋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널 보자마자 마법 동물들이 활기를 찾았구나. 마력도 제대로 뿜어내고 있고, 완전히 건강해졌어.”
나는 마법 동물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동물이라면 조금은 정을 줘도 괜찮지 않을까?’
마법 동물이 마기에 침식되면 새까만 그림자에 삼켜져 두 눈이 새빨갛게 번들거리는 사악한 모습으로 변한다.
그야말로 괴물이 되는 것이다.
‘미안해.’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너희를 이렇게 만든 게 난데 왜 날 좋아해 주는 거야?’
마법 동물들은 외려 나를 위로하듯 온기를 나눠주었다.
괜찮아. 고마워. 좋아해.
직관적이고 단편적인 감정들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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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닌데 본인이 만든 콘텐츠에 빙의한 BJ 중에 이런 현상 겪는 거 꽤 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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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이 예민하게 설정된 존재일수록 창작자의 순수성과 애정을 잘 느낌. 창작자가 세계에 애정이 클수록 세계도 창작자를 창조주로 인정하고 우호적으로 행동함. 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음.]
‘그런 거였구나.’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마법 동물들을 보았다.
서로의 감정이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뭔가 통하고 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게 진짜일 줄이야.
조금은 부끄럽고 쑥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