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스레 술판이 벌어진 자리에 합류해 한 잔, 두 잔 받아마시기 시작했다.
원래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술자리에 참석해본 적도 없었다.
한데 오늘은 왜들 그렇게 술을 마시는지, 술자리를 갖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태어나서 이토록 많은 술을 마신 건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테레제가 주당이라고는 해도 얼마나 마실 수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자제하려 했지만, 아무리 마셔도 너무 멀쩡했다.
“저기, 나 안 취했어.”
“네에, 네에.”
“진짜야… 안 취했어. 왜 이렇게 멀쩡하지? 나 술 잘 마시나 봐…?”
“안 취하셨다는 말, 벌써 49번째예요. 한 번 더 하시면 50번째고요.”
“그러니까…. 이상하네? 나 하나도 안 취했어.”
“네. 기어이 50번째를 채우셨네요.”
띠링!
[성좌 ‘밍밍에 인생 베팅’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밍밍이 만큼은 아니지만 얘 귀엽네 ㅋㅋ 간잽이 해야겠다]
띠링!
[성좌 ‘마음으로 낳은 테레제’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유입이면 닥눈삼]
“성가셔.”
자꾸 후원으로 떠들어대는 성좌들 때문에 고개를 휘휘 내젓고 있을 때, 뭔가 주변이 어수선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느덧 해가 사위어가며 각 가문에서 영애들을 데리러 온 것이다.
“아휴, 아가씨! 술도 못하시면서 왜 이렇게 많이 드셨어요?”
어떤 영애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멀쩡한 얼굴로 취한 영애들을 하나둘씩 내보내며 사용인들에게 클럽 룸을 치우라고 명하기도 했다.
이렇게 술자리가 파하는 모양이었다.
“아쉽네…….”
딱 한 잔만 더 하고 가지. 나 아직 하나도 안 취했는데.
나는 익숙한 외로움을 느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는 상황은 어릴 적부터 늘 겪은 일이니까.
‘…기숙사로 돌아가야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클럽 룸을 나가려고 하자 패트리샤가 따라붙었다.
“바래다 드릴게요, 테레제 님!”
“됐어… 나 혼자 갈 수 있어.”
“네? 이렇게 비틀거리시는데요?”
“똑바로 걷고 있어…. 괜찮아….”
“지금 옆으로 걷고 계시거든요?”
그때, 이곳에서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귓전을 묵직하게 울렸다.
“테레제 스콰이어.”
나는 좀처럼 힘이 꾹 들어가지 않아 반개하듯 뜬 눈으로 상대를 확인했다.
“…아버지.”
라울은 그가 등장하자마자 분위기가 얼어붙은 클럽 룸을 한차례 훑더니 나를 직시했다.
그는 혀를 차더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따라와라.”
* * *
나는 분명 똑바로 걸었다.
‘여기 길이 이렇게 울퉁불퉁했었나?’
지형을 구성할 때 이 길은 직선으로 바르게 깔아두었던 것 같은데.
길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가장 이상한 건, 라울이 여기에 있다는 거였다.
라울은 발할라에 오지 않는다. 이것은 설정이었다.
‘근데 왜 왔지?’
그것도 날 찾아왔다. 짚이는 바도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찰나.
우뚝.
앞장서서 걷던 라울이 걸음을 멈추더니 날 매섭게 돌아보았다.
“뭘 잘했다고 웃느냐?”
나도 모르는 사이 바보처럼 푸스스 웃음을 흘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심장이 간질거렸다.
라울은 더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날 꾸짖었다.
“지금 상황에 웃음이 나오더냐?”
“아버지… 지금은 제 아버지잖아요…?”
나는 테레제고, 그러면 라울은 지금 내 아버지잖아?
“취했으면 얌전히 따라오기나 해라.”
몹시 언짢은 음색으로 다그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니까… 손잡고 걸어도 돼요…?”
나도 집까지 아빠랑 손잡고 걸어보고 싶었는데…….
뒷말은 소릴 내어 내뱉었는지, 속으로 삼켰는지 헷갈렸다.
이상하게 자꾸 길도, 라울도 가만히 있지를 않아서 정신이 없는 탓이었다.
그래도 난 참을성 있게 자꾸 왔다 갔다 거리는 라울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평소라면 결코 쉽게 하지 않았을 진심을 담은 말과 행동이 술기운을 빌려 거침없이 나왔다.
라울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내 손을 잡아주지 않고 등 돌렸다.
손 좀 잡아주지……. 소원인데.
작게 꿍얼거리고 있는데 라울이 돌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업혀라. 그래서는 기숙사까지 한세월이 걸리겠구나.”
“……헤헤.”
아빠한테 업히는 게 내 소원인 건 또 어떻게 알았지?
내가 어기적어기적 등에 업히자 라울이 힘들이지 않고 그대로 쑥 일어났다.
중년임에도 젊고 강인해 보이는 외모만큼 힘도 엄청났다.
하긴. 테레제도 힘은 장사였다.
나는 푸흐흐 웃으며 말했다.
“테레제는… 아버지를 닮았어요.”
“어처구니없는 소릴 하는구나. 내가 젊었을 때는 절대 너 같지 않았다.”
“아닌데… 똑같은데….”
“자라.”
어쩐지 라울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져 있는 것 같았다.
웃음기마저 스며있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평생 속으로 삭여온 비밀을 하나 털어놓을 용기가 생겼다.
“아버지… 그거 아세요?”
중요한 말을 해야 하는데 때마침 졸음이 쏟아져 눈이 가물가물 감겼다.
단단하게 나를 받쳐 든 팔과 따스한 온기, 걸음걸음마다 온화한 파도에 흔들리는 듯한 몸이 전부 자장가 같았다.
“저는 늘… 애들이 부러웠어요…. 부모님이 데리러 와주셔서요….”
“…….”
“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
“저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가 왔잖아요….”
가슴 깊이 박혀있던 수많은 가시 중 하나가 천천히 뽑혀 나왔다.
오늘 같은 일이 있지 않고서야 저 깊이, 새까만 무의식에 묻어두었을 외로운 기억이 부드럽게 덧칠되어갔다.
“그래서 오늘은… 덜 초라한 사람이… 된 거 같아요….”
나는 편안하게 눈꺼풀을 감았다.
꿈도 없이 다정한 잠이 찾아왔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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