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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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날이 밝자마자 내가 찾아간 곳은 일리야 교수의 연구실이었다.

    여기 있습니다교수님.”

    나는 다 읽은 책을 그에게 반납했다.

    일리야는 책을 물끄러미 보더니시선만 들어 올려 날 응시했다.

    궁금한 점은?”

    모르는 부분은 도서관의 다른 마법서를 찾아보며 공부했습니다.”

    알아서 해결했다는 내 대답에 일리야 교수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책장에서 새로운 책을 한 권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번에는 이걸 읽어라.”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매번 새로운 책을 읽어오라는 개인 과제를 주려는 건 아니겠지?’

    마법서를 읽는 건 좋지만 때마다 교수를 찾아와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별수 있나교수가 까라면 까야지.

    알겠습니다.”

    내가 책을 받아 가방에 넣고 있는데 일리야 교수가 지나가는 투로 툭 말했다.

    밤새지 말도록.”

    앞선 세 권의 책을 읽느라 밤을 지새웠던 일을 지적하는 말이었다.

    그의 표정은 무심했다말투도 다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자상하다고 느꼈다.

    교수님.”

    일리야 교수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왜 웃지?”

    내가 웃었나?’

    나는 입술을 감추듯 손으로 문질렀다.

    그의 말대로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설마 비웃는 걸로 보인 건 아니겠지?

    테레제의 인상이 워낙 오만방자한 탓에 미소가 좋은 의도로 보이지 않을 듯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어필했다.

    좋아서요?”

    뭐가 좋지?”

    이거 혹시 꼬투리 잡는 건가.

    나는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다가 느낀 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를 걱정해주신 게 좋아서요.”

    그러자 일리야 교수가 미간을 좁혔다.

    내가 언제 널 걱정했냐고 추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람 민망하게…….’

    그는 헛소리에 더 어울려주지 않겠다는 듯 화제를 전환했다.

    학생회 가입 신청서는 제출해두었으니 결과가 나올 거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더는 용건이 없었기에 연구실을 나왔다.

    이후 내가 들른 곳은 클럽 룸이었다.

    이건 자의가 아니다.

    지나가던 클예부 회원들에게 붙들려 반강제로 오게 된 것이다.

    클럽 룸에는 영애들이 삼삼오오 모여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다행히도 루미오는 보이지 않았다.

    영애들은 몹시 들떠 보였다.

    테레제 님사과문 보셨어요어쩜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데미사의 코를 납작 눌러주셨군요!”

    이들은 거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사처럼 즐거워하며 찻잔으로 축배를 들었다.

    어제 일 때문인지 클예부 입부 희망자가 엄청 늘었어요듣자 하니 데미사를 탈퇴한 애들이 꽤 된다던 걸요?”

    잘됐네요저희도 테레제 님을 본받아 5월 축제에서 데미사가 나설 자리 따위 하나도 없게 더 철저히 짓밟겠어요!”

    다들 진정해.”

    우리는 팬클럽 회원이지 전투 클럽 회원이 아니란다…….

    * * *

    이후 무난한 일주일이 흘렀다.

    나는 복도를 지나다가 교수들과 마주치면 꼬박꼬박 인사했다.

    안녕하세요교수님.”

    그래.”

    그럴 때마다 교수들은 공손해진 육식 동물과 마주친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다.

    교수님질문 있습니다.”

    ?!”

    내 성실한 수업 태도를 본 어떤 교수는 악령과 마주친 사람처럼 반응하기까지 했고.

    아무튼 무난했다고.

    나는 슬슬 학교생활에 적응을 마치고 나름의 패턴을 찾아갔다.

    여기서 새로운 루틴이 추가되더라도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학생회에서 왜 이렇게 연락이 안 오는 거지?”

    가입 결과는 바로 나올 텐데.

    클라이드의 검은 하트 수를 생각해보면 내 입부를 반대할 가능성이 농후해.’

    곧 있으면 클럽 가입이 끝날 시기였다.

    나는 차라리 학생회를 찾아가 결판을 내는 쪽을 선택했다.

    학생회실에는 당연하게도 클라이드가 있었다.

    요즘은 개나 소나 학생회실에 들락거릴 수 있는 모양인데.”

    내 새끼지만 말하는 본새가 참 예쁜 새끼였다…….

    참자참아원래 힘없는 사람이 참는 거야.’

    클라이드가 퍽 친절하게 웃었다.

    나랑 적당히 무시하는 사이가 되자더니자주 보네?”

    그럼 같은 학교에 같은 학년에 같은 전공인데 어떡하라는 거니?’

    그렇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못 들은 척용건을 꺼냈다.

    학생회 입부 신청서를 냈는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아아그거?”

    클라이드는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린 사람처럼 서랍을 뒤적여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삐뚜름하게 웃었다.

    마침 잘됐네방금 네 입부 결과가 정해졌거든.”

    ?”

    그 순간 클라이드에게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불의 기운에 두 눈을 부릅떴다.

    저 자식내 입부 신청서를 태우려고!’

    학생회장의 권한으로 테레제 스콰이어의 학생회 입부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나 역시 손을 활짝 펼치며 마력을 일으켰다.

    나의 이름이 새겨진 종이여이곳으로 소환되어라!”

    <신의 유희>는 다른 콘텐츠에서도 흔히 그러하듯 인간이 가장 약한 종족이었다.

    그에 반해 악마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클라이드가 아무리 방심하고 있다고 해도 테레제가 그의 마법을 파훼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손아귀에 붙들린 신청서에는 강력한 마력이 뒤덮여있었다.

    거기에 내 마력이 더해지며 극심한 반발이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하나 나는 완벽히 집중한 상태로 필요한 룬을 소환해냈다.

    룬은 힘을 가진 글자로그 자체로 거대한 에너지 배터리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배터리는 배터리일 뿐회로를 이어 결과를 도출해야 했다.

    내가 운용하는 마력이 바로 룬과 룬을 잇는 회로의 역할을 하는 거다.

    타켓을 지정하고 위치를 이동시킨다.’

    순식간에 끌어올린 마력 입자가 시야를 장악했다.

    그의 마력을 인지하고 룬을 소환해 마법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

    내 손에 서류가 소환되었다.

    해냈어!”

    나는 아기 심바를 들어 올린 라피키처럼 신청서를 위로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내가 해냈어!”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그간 자잘한 마법은 몇 번 사용한 적 있었지만상대의 마력을 뚫어내면서까지 능력을 발휘해본 적은 없었다.

    AOS 게임에서 늘 약한 AI하고만 싸우다가 진짜 유저와 싸워 첫 승리를 거머쥔 기분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클라이드라고!’

    나는 흠뻑 미소 지은 얼굴로 클라이드에게 신청서를 들이밀었다.

    이거 봐내가 네 마력을 뚫고 소환해냈어맞지그렇지?”

    클라이드가 썩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미쳤어?”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ㅋㅋㅋㅋ 조롱하는 거 보소]

    나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서류를 등 뒤로 감췄다그러자 클라이드가 대놓고 비웃었다.

    그런다고 내가 그깟 서류 하나 못 가져갈 것 같아?”

    내가 학생회 가입한다고 너랑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어차피 마수 사냥에 투입할 인력도 부족하지 않아?”

    내 반박에 클라이드는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학생회는 클예부나 데미사에 비하면 보유한 회원 수가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더 밀어붙였다.

    내가 학생회에 가입한다고 하면 마수 사냥에 용병으로 지원하는 사람도 늘어날걸?”

    학생회 회원 수가 적은 이유에는 나와 미모사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무려 공녀가 둘씩이나 몸을 사리니 다들 마수와 악마를 상대하는 일에 더 소극적으로 구는 것이다.

    원래는 리비가 학생회에 가입하는 최초의 공녀로 학생들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데.’

    미안하지만 내 퀘스트가 더 급했다.

    그때였다.

    짝짝짝!

    뜬금없이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와 뒤를 돌아보니새하얀 옷차림을 한 백발의 노신사가 보였다.

    노신사는 주름진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피우며 나를 칭찬했다.

    훌륭하군.”

    나는 얼른 예를 갖췄다.

    안녕하세요이사장님.”

    이 백발의 노신사가 바로 발할라의 이사장이자 윌로우 공작노엘 윌로우였다.

    이사장은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무려 클라이드에게서 뭔가를 뺏다니테레제 양의 마법 등급이 학생기록부에 적힌 것보다 더 높을 듯하구나.”

    이사장의 말대로였다.

    상태창.’

    [테레제 스콰이어]

    설명스콰이어 공녀

    나이: 22

    마법 등급: B+

    지능: B

    마력: A (12,034/12,034)

    일주일 사이 테레제의 지능은 한 단계 더 상승해 B급이 되었다.

    그간 일리야 교수가 엄선한 마법서를 몇 권 더 읽은 게 주효했던 듯했다.

    이런 인재가 학생회에 들어와 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겠지이사장의 권한으로 테레제 양의 입부를 허락하겠네.”

    띠링!

    [퀘스트학생회 가입 완료]

    보상: 100,000코인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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