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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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 안은 다소 휑했다.

    인기 있는 강의는 전공자가 아니어도 수업을 듣는 학생이 넘쳐나지만 일리야의 전공은 그렇지 못했다.

    일리야가 가르치는 강의 <마력의 속성>은 비전투 계열 전공이라 인기가 없었다.

    마법사는 전투 계열과 비전투 계열로 나뉘는데압도적인 차이로 전투 계열 마법사가 인기 있었다.

    전투 마법사로 이름을 날리면 구국의 영웅이요대스타였다.

    사랑받고자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욕구니까.’

    개인적으로 반대한 설정이었지만.

    어쨌든그런 이유로 비전투인데다가 어렵기까지 한 일리야의 전공은 굉장한 마이너 취급이었다.

    다만 어려운 만큼 확실한 장점도 존재했다.

    <마력의 속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마법사는 다루지 못하는 계열의 마력이 없으며대단히 빠른 속도로 고난도의 마법을 발현할 수 있었다.

    뛰어난 속성 마법 전공자는 전투 계열 전공 마법사보다 훨씬 강하다.

    일리야와 클라이드가 산증인이지.’

    나는 늦게 들어온 만큼 얼른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게 하필이면 클라이드의 옆자리인 건 참 불행한 일이었다.

    그래이건 그냥 우연한 사고 같은 거였다.

    클라이드는 매번 가장 앞자리에 앉았고 나는 교수보다 늦게 강의실에 들어왔기에 얼른 어디에라도 앉아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고른 자리가 클라이드의 옆이라는 건 솔직히 정상 참작해줘야 한다고 본다.

    대신에 나는 클라이드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인사도 안 했다.

    클라이드도 날 완전히 투명 인간 취급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인지 이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심지어 어제보다 한층 더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기까지 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클라이드를 힐끔 보며 재빨리 호감도를 확인했다.

    [호감도♥♥♥♡♡]

    ……갑자기요?

    내가 경악하기도 전클라이드가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슬쩍 돌리려는 게 보였다.

    나는 얼른 책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심장이 터질 듯했다.

    위험해.’

    검은 하트 3개는 단번에 죽음까지 이를 수치는 아니지만사망 루트의 가능성을 내포한 단계였다.

    학생회 가입은 어떡하지?’

    가입에 실패하면 공작저에서 통학해야 한다.

    그건 죽어도 싫었다.

    나는 잠깐 눈을 질끈 감았다.

    밖에서 클예부 회원들의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강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또 클라이드를 졸졸 쫓아다니려는 거겠지.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성가실 거 같네…….’

    클라이드의 검은 하트가 늘어난 게 충분히 이해되기는 했다.

    혹시 클예부를 해체하면 검은 하트가 좀 줄어들까?’

    하나 클예부를 해체하려면 반드시 데미사도 함께 없애야 했다.

    하나만 해체하면 데미안이나 클라이드 중 반드시 한 사람은 검은 하트 게이지가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배드엔딩을 향한 사건들이 배치되고 악마가 나타날 확률도 높아진다.

    더 최악인 셈이었다.

    모르겠다우선 강의나 듣자.’

    심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마자 일리야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날 쳐다보고 있었나?’

    그는 그제야 느릿하게 분필을 들어 올렸다마치 날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처럼.

    내 착각일 가능성이 무척 컸지만그래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이 세계에서 적어도 한 명은 내게 호의적인 것 같아서.

    내가 펜을 들자 일리야 교수가 담백하게 말했다.

    강의를 시작하지.”

    * * *

    우으으.”

    강의가 끝나고나는 앓는 소리를 흘리며 책상에 엎어졌다.

    눈은 빠질 거 같았고 익숙하지 않은 깃펜 사용에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아팠다.

    이게 고문인지 수업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심지어 일리야 교수는 가차 없이 진도를 나가는 부류였다.

    강의 내용을 따라오지 못하는 건 너희가 멍청하기 때문이라는 신념을 가진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노트를 한번 쭉 훑어본 다음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하필이면 클라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타이밍과 일치한 건 불행한 우연이었다.

    최대한 엮이지 말자투명 인간처럼 무시하는 거야.’

    나는 클라이드가 자신을 또 귀찮게 한다고 오해하기 전에 먼저 강의실을 나갔다.

    이건 이것대로 썩 괜찮은 선택은 아니었다.

    클예부 회원들로 강의실 앞이 북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나오셨군요테레제 님이런 고문 같은 강의를 들으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나는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일리야 교수가 들으면 낭패였으니까.

    다행이다벌써 가버렸구나.’

    안도감도 잠시.

    이제는 황당한 마음이 차올랐다.

    얘들은 강의가 없나왜 계속 여기에 있는 거지?’

    그때 짙은 갈색 머리카락을 커다란 녹색 리본으로 질끈 동여맨 영애가 수줍게 말을 걸어왔다.

    테레제 님오늘은 클라이드 님이랑 같이 안 나오셨네요콜록.”

    꺼멓게 가라앉아 묘하게 번들거리는 눈빛과 신경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마른 몸에서 병색이 완연해 보이는 여자였다.

    루미오 양.”

    이 영애는 우리 팀에서 만든 [악마 계약자]였다.

    아직은 계약자가 아니지만.’

    남자 주인공들은 빼곡한 설정으로 이루어져 있어 루미오와 달리 비교적 맥락 있는 행동을 했다.

    하지만 일회성 악역에 불과한 악마 계약자는 달랐다.

    이 캐릭터는 아주 간단한 조건 하나만 충족되면 언제든 악마를 소환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시한폭탄이었다.

    루미오가 악마와 계약하게 되는 조건은 클라이드가 테레제와 이어지지 않는 것’.

    클라이드가 다른 이성과 가깝게 지내거나 테레제와 지나치게 거리감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악마가 나타난단 뜻이었다.

    왜 이딴 조건을 걸어둔 거야미치겠네.’

    나는 루미오의 기분이 틀어지지 않도록 그럴싸하게 변명했다.

    난 일리야 교수님께 상의드릴 게 있어서 빨리 나온 거야조금 급한 일이라.”

    곤란할 때 써먹을 변명으로 가장 만만한 게 지도 교수를 팔아먹는 일이었다.

    콜록그렇군요두 분께서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콜록.”

    그때 다른 영애가 루미오를 팍 밀치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테레제 님오늘 왜 클럽 룸에 오지 않으셨어요오전에 귀한 찻잎으로 우린 홍차로 클예부 회원들끼리 티타임을 가졌었다고요!”

    나는 재빨리 루미오를 살폈다.

    루미오는 섬뜩한 눈빛으로 자신을 밀친 영애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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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큭달콤한 살기가 느껴지는구나]

    그때 하필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클라이드가 강의실을 나왔다.

    비켜.”

    클예부는 당연하게도 비명과 탄성을 섞어 지르며 그의 외모에 압도된 듯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아악잘생겼어요!”

    세상에오늘도 눈부셔요내 두 눈이 다 멀어버릴 것 같아!”

    결혼해주세요!”

    저리 안 꺼져?”

    진짜 부끄럽다클예부…….

    나는 클라이드 분노가 내게 향하기 전에 서둘러 시계를 꺼냈다.

    과제 제출이 오늘까지인데 곧 일리야 교수님이 퇴근하실 시간이잖아나 먼저 가볼게!”

    이미 다들 클라이드에게 정신이 팔려있어서 내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루미오만 제외하고.

    어엇.”

    루미오는 몹시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나와 클라이드를 번갈아 보더니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표정에서 섬뜩한 기색이 없는 걸 보니 지도 교수를 찾아가야 하는 내 상황을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하아다행이다.’

    그렇게 자리를 뜨기 직전고개를 돌리다 물빛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클라이드가 날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도망칠 유일한 타이밍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시선에 붙들렸다.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클라이드는 캄캄한 밤하늘에 뜬 창백한 별 같았다.

    아무리 어둠에 휩싸여 있어도 또렷하게 반짝거리는 별빛 같은 존재감을 지니고 있어 무심코라도 쳐다보게 되었다.

    서큐버스가 낳은 아이라는 설정이 이렇게나 위험한 거였구나.’

    나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러다 클라이드가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르니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클라이드는 투명 인간이다절대로 반짝거리지 않는다우리 팀에서 만들었어도 내 새끼는 아니다…….’

    거의 자기 세뇌에 가까운 문장들을 되뇌며 도망치듯 이곳을 떠났다.

    클라이드의 시선이 여전히 날 향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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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사랑은 혐오에서 시작하지… 참고로 난 데미안이 좋아]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람.

    혐오에서 시작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사망이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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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합은 클라이드가 최고]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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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볼 땐 무조건 일리야임 ㅋㅋ 떡상 가보자고]

    띠링!

    [성좌 마이너 장인’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내 심장은 오즈×테레에 반응한다]

    이 성좌가 제일 정신 나갔군.

    반응할 가치도 없어 알림창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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