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학생회
점심시간.
나는 여전히 책을 다 읽지 못했다.
고작 100페이지짜리 얇은 책이었음에도 앞선 책들보다 이해해야 할 난도가 훨씬 높았던 탓이다.
‘점심시간 끝나면 일리야 교수의 강의인데.’
한숨만 푹푹 나오는 상황이었다.
어디든 대충 앉아서 책을 읽으며 식사를 해결할 장소를 찾기 위해 1층 로비를 지나던 때였다.
“흐음.”
나는 게시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게시판에는 공지나 사교 클럽 가입 안내문 따위가 붙어있었다.
가장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단연 클예부와 데미사 사교 클럽 가입 안내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집중해서 보는 건 따로 있었다.
“학생회 가입 신청 안내문…….”
퀘스트를 진행해야 하니, 나도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할 터.
[성좌들이 학생회가 뭘 하는 곳인지 궁금해합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작게 소곤거렸다.
“학생회는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유한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을 필두로, 마수와 악마를 처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기사단 같은 거예요.”
학생회장과 부회장은 1학년에서 3학년까지의 모든 성적을 총결산하여 4학년에서 선발한다.
이들은 곧 기사단장과 부단장 같은 존재였다.
“학생회는 정기적으로 마수 토벌에 참가해야 하고 그게 곧 성적으로도 반영되죠. 악마가 나타나면 가장 먼저 차출되는 인력이기도 해요.”
클라이드와 데미안은 쭉 학생회 소속이었으니 누구보다 정통성 높은 출신의 학생회 임원이었다.
하나 테레제와 미모사는 학생회 임원이 아니다.
무조건 마수와 악마를 사냥해야 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학생회 임원은 면접을 통해서 합격을 결정해요.”
일단 학생회에 속한 마법사는 다른 학생들보다 사망 확률이 몇 배는 더 높았다.
심지어 임원으로서의 성과를 증명해내지 못하면 중도 퇴출당했다.
퇴출은 매우 심각한 불명예로 취급되어 사교계에 발도 디딜 수 없게 되는데, 이는 사실상 귀족으로서의 생은 끝장났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도 꾸준히 내로라하는 이들이 학생회에 지원하는 이유가 있었다.
발할라 학생회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벼락출세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었다.
학생회 출신은 졸업 후에도 윌로우 공작가의 비호를 받으며, 황실에 공식적으로 초청되어 황제의 훈장을 수여 받는다.
이는 작위가 필요하거나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경쟁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이점으로 작용하는 히든카드 같은 것이었다.
‘전부 나한텐 쓸모없다는 게 문제지만.’
윌로우 공작가는 스콰이어의 원수 가문이라서 기각.
작위도 필요 없으니 기각.
연금이 나오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것도 스콰이어 공녀인 내게는 메리트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난 전대 공작의 비자금을 갖고 있다고.
그런고로 사망 플래그나 꽂는 짓거리인 학생회 활동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지만, 별수 있나.
‘통학하는 것보단 차라리 마수랑 싸우는 게 낫지.’
나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쉰 뒤 옆으로 돌았다.
“…! 교, 교수님.”
일리야 교수가 고작 세 발짝 떨어진 곳에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와,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나는 당혹감을 내리누르며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일리야 교수는 고개를 까딱하더니 내 손에 들린 책을 힐끗 보았다.
이런, 하필 다 읽지 못했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책을 등 뒤로 슬그머니 옮기려는데 일리야 교수의 말이 더 빨랐다.
“그 책은 다른 두 권부터 읽고 마지막으로 보는 게 좋을 거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일리야 교수는 내가 당연히 이 마법서부터 읽고 있다고 생각하고 조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일리야 교수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읽는 게 좋겠지. 그걸 다 이해해야 올해 강의를 들을 수 있을 테니.”
‘혹시 강의 전까지 세 권 다 읽으라는 말이 아니었나?’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변명처럼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두 권부터 먼저 읽었습니다.”
“…다 읽었다고?”
“네! 그런데 이 책은 내용이 어려워서 빠르게 읽어지지 않더라고요.”
대학교에 다닐 때도 과제나 성적 때문에 메일 한 통 보낸 적 없던 내가 어쩌다 과제를 못 한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변명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상대는 대악마다.
내 입술은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움직여 열심히 자기변호를 꺼내놓았다.
나는 손에 샌드위치가 든 종이봉투도 번쩍 들어 보였다.
“점심시간 동안 다 읽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샌드위치도 샀거든요!”
일리야 교수는 그래서 어쩌란 거냐는 무심한 눈빛으로 날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의 침묵이 나를 더 초조하게 했다.
결국 난 이실직고해버렸다.
“강의 전까지는 다 못 읽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조그마해졌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느냐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하니 무서워….’
부디 내가 일리야 교수의 뜻을 곡해해서 강의 전까지 읽어야 하는 걸로 착각한 거길 간절히 바랐다.
차라리 잠도 못 자고 열심히 책을 읽은 게 헛고생인 쪽이 나았으니까.
내가 책을 쥔 손을 꼼지락거리며 눈치만 살피고 있을 때였다.
일리야 교수는 엉뚱한 질문을 해왔다.
“잠은?”
“…네?”
“잠은 잤냐고 물었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네, 잤습니다.”
잠깐 선잠을 자기는 했으니까.
일리야 교수는 말없이 내 눈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혹시 다크써클이 내려와 있나? 거울을 봤을 때는 심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손등으로 눈가를 비볐다.
양손에 책과 종이봉투를 쥐고 있어서 꼭 눈물을 닦는 듯한 동작이 되고 말았다. 혹은 고양이 세수거나.
어쨌든 어느 쪽도 예법에는 맞지 않았다.
테레제가 예법에 딱히 얽매이지 않는 개망나니 캐릭터라 상관없기는 했지만, 빤히 쳐다보는 일리야 교수 때문에 괜히 의식되었다.
그의 침묵이 좀 길다고 느껴졌을 때, 일리야 교수가 입을 열었다.
“따라와라.”
“…? 아, 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리야 교수를 따라갔다.
한데 가는 길이 묘하게 익숙했다.
우뚝.
어쩐지 길이 익숙하더라니, 일리야 교수가 멈춰선 장소는 그의 집무실이었다.
“들어와라.”
어제는 그렇다 쳐도 오늘은 왜 집무실로 부른 거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일리야 교수의 생각이 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은 채로 그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일리야 교수가 내게 턱짓으로 소파를 가리켰고 나는 착실히 그의 지시를 따라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이제 뭘 하려는 걸까?’
내가 품에 책과 샌드위치를 끌어안은 채 가뜩이나 나란히 서 있어도 고개를 꺾어 봐야 하는 교수를 한참 올려다보았다.
시선의 높이가 주는 위압감 때문일까?
아니면 창을 타고 들어온 햇살이 천사상의 것처럼 수려한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깎아지른 탓일까.
일리야 교수는 더없이 성스럽고 고귀해 보였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누구보다도 대천사에 어울리는 기품이 느껴져서 절로 입술이 벌어졌다.
그에게서 타락의 흔적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초월적인 분위기가 압도감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내가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리고 있을 때, 순간 일리야 교수의 입가가 살짝 가로로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미소……였나?’
확신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했던 표정은 금방 사라지고, 그의 입술이 열렸다.
“학생회에 가입할 생각인가?”
“네. 그걸 어떻게…”
“게시판을 보고 있기에.”
학생회 가입 안내문이 게시판에서 클예부, 데미사 가입 안내문 다음으로 가장 크게 붙어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보통은 테레제를 보며 학생회 가입을 연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참 편견이 없다고 해야 할지.’
일리야 교수는 저번처럼 소파에 앉지 않고 도로 나가려는 듯 문으로 향하며 내게 말했다.
“난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돌아올 거다. 그때까지 여기에 있어라.”
“네? 저 혼자요?”
“그래. 혼자.”
띠링!
[성좌 ‘썩은 취향’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헉 감금?]
‘일리야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는 없지.’
일리야 교수가 말을 덧붙였다.
“점심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렇습니다.”
“여기서 읽도록.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표시해두고.”
나는 그의 기이한 친절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끄덕였다.
“그럴게요. 다녀오세요, 교수님.”
“……그래.”
일리야 교수는 느릿하게 대답하며 시선을 천천히 돌리더니 이내 집무실을 나갔다.
띠링!
[성좌 ‘미식가’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젊고 잘생긴 천재 교수와의 사랑… 이건 귀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