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8/277)

나는 어쩐지 애인에게 추궁당하는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친구라고 생각하지?”

아아친구……미모사처럼?”

친구라고 생각한다는데 미모사처럼이라니어이가 없었다.

너랑 미모사가 어떻게 친구야미모사는 널 남자로 보잖아.”

데미안은 내가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러더니 묘한 눈빛으로 물었다.

날 남자로 보는 게 아니라면 아까는 왜 숨었어꼭 바람피우다 걸린 것처럼.”

얘도 나랑 똑같이 느꼈구나.’

나는 민망해져서 입술을 대충 닦아 낸 손수건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야 미모사가 괜히 오해하면 학교가 시끄러워질 테니까.”

우리는 친구라면서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몰래 만나는 건가?”

무슨 친구가 계속 이렇게 만나냐……그런 건 친구 사이가 아니지.’

내가 이걸 어떻게 상식적인 흐름으로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따.

데미안은 !”하고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숨을 곳을 알려달라고 한 거였구나?”

나는 황당해져 입술을 힘없이 벌리고 말았다.

아니그건 네가 비품 창고 같은 곳에 숨지 말래서!”

데미안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뻗어왔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빠르고 유려한 동작이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내 입술을 훑었다감촉이 서늘했다.

기쁘네우리 사이가 드디어 좋아져서난 테레제 네가 좋거든늘 친구가 되고 싶었어.”

……그래근데 이 손은 좀…….”

입술에 아직 연지가 묻어 있어미모사한테 나랑 있었던 거 들키면 안 되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이건 너무 이상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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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갈겨!!!!!!!!!!!!!!!!!!]

그래꼭 키스할 것 같은 구도라고.

나는 미간을 좁히며 입술을 부드럽게 문지르던 데미안의 손을 잡아 아래로 떨어뜨렸다.

난 친구한테 이런 짓 안 시켜.”

데미안은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러면?”

……연인이 하는 행동이잖아이런 건.”

그래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연인이 아니지만 이런 걸 바라던데.”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건 널 남자로 좋아해서 그런 거지.”

나는 설명하면서도 대체 내가 왜 이런 걸 알려주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너 순진한 척하지 마라고 말했다가는 검은 하트가 늘어 자칫 잠든 사이 조용히 제거될 수도 있다.

장단 맞추자그래역할 놀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래야 귀족 영애들과 어울릴 때도 원하는 것만 얻고 불리한 건 눈치 없는 척하면서 너구리처럼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이게 다 개발자의 업보라고 생각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별수 없기도 했지만.

아무튼방금 네 행동은 나한테는 과하게 느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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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BJ는 왜 이렇게 보수적임?ㅋ 오빠가 남자 맘 후리는 법 쫌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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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내가 보수적이었나?’

갑자기 데미안의 행동이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때 데미안이 머쓱한 표정으로 제 엄지손가락에 묻은 붉은 화장기를 감추었다.

미안친해졌다는 생각에 내가 선을 넘은 모양이야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앞으로 조심할게.”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뭔가 내가 잘못한 것 같고 그렇잖아…….

난 미간을 찡그리며 곤란함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러다 툭 말했다.

지나치지만 않으면 돼남들이 보고 오해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그럴게.”

여기 계속 있다가는 더 혼란스럽기만 할 것 같았다.

나는 기껏 마신 커피가 아깝게도 활력을 방금의 사태로 다 써버린 기분을 느끼며 데미안에게 인사했다.

그럼 다음에 보자.”

그래잘 가테레제.”

데미안은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곧장 뒤따라 나오지 않았다.

그게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뭔가 할 일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결국 책을 다 못 읽었네.’

하아학교생활 참 쉽지 않다.

* * *

데미안은 테레제가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도수 없는 안경을 벗으며 눈가를 문질렀다.

이상하네왜 패턴이 읽어지지 않는 거지.”

사람에게는 저마다 경향성이라는 게 있었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을 관찰해온 대상이라면 행동이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기 마련이었다.

한데 어제오늘 본 테레제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행동 양식이 싹 다 뒤바뀌어 있었다.

데미안은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을 집어 쓰레기통에 떨어뜨렸다.

쨍그랑!

도자기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종잡을 수가 없네귀찮게.”

깨진 커피잔을 내려다보는 눈빛은 암살자 특유의 섬뜩함이 어려 있었다.

데미안은 여전히 열려있는 비품 창고 문을 닫다가 잠시 문에 머리를 삐딱하게 기대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몸을 능숙하게 쓰지 못하는 놈과 같이 이 안에 들어갔다면 틀림없이 미모사에게 들켰으리라.

실은 그냥 들키게 해버릴까잠깐 고민하긴 했었다.

테레제가 제 옷깃을 붙들며 엉뚱하게 굴기 전까지는.

저를 노려보는 눈빛은 평소와 다르게 독기가 하나도 없어 맹하게 보일 정도였다.

테레제가 원래 멍청하기는 했지만 그런 맹한 멍청함은 아니었는데.

성격이 유해졌다고 보기에는 뭔가 달랐다.

어설퍼졌어.’

그래어설프게 평범해졌다.

그래서 외려 더 튀어 보일 정도로.

톡톡톡.

그때 새가 부리로 창을 두드렸다전서구였다.

데미안은 전서구의 발목에 묶인 쪽지를 풀고 먹이와 물을 주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진짜 새로 전서구를 날리나 싶지만발할라에서 함부로 마법 전서구를 썼다가는 추적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번거롭더라도 이런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길드와의 연락망을 구축한 것이다.

마법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제국인들은 외려 전통적인 방식에 취약했으니까.

데미안은 쪽지를 펼쳐보았다.

리비 스콰이어의 마력 속성을 확인할 것그 밖의 확인 사항 보고 요망.

흐음.”

그는 어제 보았던 금발의 신입생을 떠올렸다.

테레제와는 썩 닮지 않은.

잠깐 봤을 뿐이지만 확실히 다른 귀족 영애와는 좀 다른 구석이 있었다.

빈민가에서 살았다고 했었나.

그에 비하면 테레제는 귀족 중의 귀족이었다.

때때로 미모사보다도 훨씬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양 거만하게 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본 테레제는 어떠했지.

……아직은 모르겠어.’

지금까지 알던 테레제와 오늘 본 테레제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불규칙하게 엉망으로 섞이며 모든 게 불확실해졌다.

그 와중에 웃기지도 않은 감상이 들었다.

자신을 적대시하지 않게 된 테레제가 꽤 나쁘지 않다고.

데미안은 작게 자른 종이에 보고 사항을 작성했다.

스콰이어 감시 강화할 필요가 있음약식으로 확인한 바로는 둘째 쪽에게 백마법 속성이 감지됨.

길드에서는 이미 사라졌다고 알려진 백마법사를 찾고 있었다.

이런 희귀한 속성은 보통 고귀한 혈통에서 타고날 가능성이 컸고아니나 다를까 리비에게서 백마법 속성이 감지되었다.

어제 테레제가 제게 동생을 맡기는 기행을 벌인 덕에 수월하게 확인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테레제가 미심쩍었다.

분명 내게 일부러 동생을 소개해주었지.’

이유가 뭘까설마 자신이 백마법사를 찾는다는 걸 알고서 미끼를 던진 것인가?

그럴 리가.’

테레제는 멍청하다.

인간 거죽을 뒤집어쓴 하급 마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설령 자신이 암살 길드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이렇게 저를 헷갈리게 할 정도의 심계를 냈을 리 없다.

분명그래야만 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테레제 스콰이어가 어떤 사람인지는 헷갈려.’

이 사실을 길드에 알려야 하나?

하지만 대체 뭐라고 쓴단 말인가?

항상 날이 바짝 서 있던 분위기가 묘하게 말랑해졌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듯하지만멍한 표정을 자주 짓는다.

아니표정이 많아졌다.

갑자기 웃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며 두려워하기도 해서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구체적인 관찰이 필요해 보임.

…….”

미치지 않고서야 보고에 그딴 내용을 쓸 수는 없었다.

확실한 변화는 맞지만대계에 고려할 일은 아니었다.

데미안은 테레제에 관한 내용을 빼고 전서구를 날렸다.

바뀐 테레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진 저 혼자만 지켜봐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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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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