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갑자기 말을 걸게 된 게 짐짓 쑥스럽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고 있었다.
어색하게 지은 미소가 절로 상대의 마음을 간지럽게 하는 구석이 있었지만, 내겐 아니었다.
저 미소가 가짜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의아하게 물었다.
“커피를 내려준다고? 어디서?”
“내 개인 연구실에 커피를 내리는 도구가 있어. 괜찮으면 같이 갈래?”
아무리 데미안을 적대시하는 테레제라도 이런 제안을 받으면 “흥, 평민이 끓이는 커피는 형편없겠지만 마셔주지.”라며 수락했을 말이었다.
나라고 딱히 거절할 마음이 드는 건 아니지만, 제안이 너무 미심쩍었다.
이건 데미안의 하트를 하나 채워야지만 나오는 이벤트였기 때문.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데미안의 호감도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호감도: ♥♥♡♡♡]
‘뭐야. 여전히 검은 하트잖아.’
검은 하트가 3개였다면 데미안의 제안을 살해 협박으로 해석했겠지만, 2개는 사망 루트로 이어지는 수치는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이 이벤트는 게임 진행상 꼭 필요했다.
그렇지만 테레제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벤트였다.
데미안이 테레제를 초대할 이유도, 테레제가 초대에 응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다른 꿍꿍이가 있나?’
데미안은 냉혹한 계산으로만 움직이는 암살자였기에 허투루 행동하지 않는다.
이 행동도 단순한 호의가 아닐 터였다.
‘어쩌면 리비에게 접근하려고 나를 이용하려는 걸 수도 있어.’
그러나 어쨌든 이건 기회였다.
‘데미안이 이렇게 여지를 주는 건 진행상 나쁘지 않은 신호니까.’
학생회에 가입하려면 기존 임원 혹은 교수의 추천이 필요했다.
그렇게 추천을 받는다고 해도 임원의 과반수가 반대하면 학생회에 가입할 수 없었다.
리비가 만장일치로 학생회에 가입하게 되는 특별한 사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넣은 설정이 내 발목을 잡은 격이었다.
‘검은 하트가 2개씩이나 되는데 알아서 연구실 초대 이벤트가 생겨주다니, 운이 좋네.’
“나야 고맙지만, 데미안 네가 너무 번거롭지 않겠어?”
데미안은 내 염려에 되레 놀란 표정으로 손사래 쳤다.
“아냐, 그럴 리가. 나도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그래.”
데미안은 테레제를 경멸한다.
검은 하트가 더없이 확실한 증거였다.
한데도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배려하는 말이 문득 참 듣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살자라는 추측조차 들지 못하게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익힌 거짓된 행동이라는 걸 안다.
명백한 위선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거짓된 행동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나 또한 그래봤으니까.
사실 나와 데미안은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다.
‘생존을 위해 착한 아이 가면을 쓴 것뿐이잖아.’
그래서일까? 마음의 경계가 조금 느슨해졌다.
모두가 꺼리고 싫어하는, 심지어 본인에게는 더없이 무례한 테레제에게까지 다정하게 행동하는 데미안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방금까진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매가 느슨하게 풀어졌다.
“그럼 기꺼이 초대에 응할게.”
내 대답에 데미안의 미소가 잠깐 묘하게 일그러졌다. 어딘가 놀란 것 같기도 했다.
데미안은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네가 그렇게 웃는 건 처음 보네.”
“…아.”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가를 쓸었다.
데미안은 다시 활기찬 미소를 지으며 나를 응시했다.
“첫 강의는 몇 시야?”
그는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게 이런 식의 잡담을 적절히 늘어놓았다.
나는 성실하게 대답했고 간간이 그에게 “너는?”하고 되묻기도 했다.
여느 친구들처럼 평온한 분위기가 우리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그의 연구실이 가까워질수록 오즈월드가 떠올라 불쾌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요리가 특기인 데미안이 내려줄 커피 맛이 기대되었다.
“여기가 내 연구실이야. 좀 어수선하지?”
데미안의 연구실은 어수선할 게 없었다. 차라리 황량한 쪽이었으니까.
“깔끔하고 좋은데.”
“아하하.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안심된다.”
데미안의 싱그러운 웃음과 달리 이곳은 정말이지 살풍경했다.
공간은 인물의 성향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연구실은 그가 가진 이중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이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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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억지로 갖춰 놓은 듯한 작위적인 도구들 몇 가지가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은밀한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추정.]
‘날카롭네.’
나는 연구실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다가 커피 드리퍼를 꺼내고 있던 데미안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습관이 분명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여기에 온 건 처음이었던가?”
나는 어, 라고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데미안이 초대한 적은 없더라도 테레제가 멋대로 쳐들어왔을 수는 있어.’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나 대사를 넣은 적이 없었으니 적당히 얼버무리는 게 좋을 듯했다.
“글쎄. 그런 걸 일일이 기억하진 않아서.”
“그래?”
특별히 떠보려고 한 질문은 아니었는지 데미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연구실은 도저히 볼만한 게 없었다.
나는 억지로 구경거리를 찾으며 돌아다니기보단 차라리 데미안이 커피 내리는 모습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맞은편에 앉자 데미안이 또 말을 걸어왔다.
“참. 어제 네 동생이랑 같이 강당으로 가던 이유가 수석 입학을 축하해주려는 거 아니었어?”
말투만 놓고 보면 다정한 관심으로 느껴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테레제가 타인의 성취를 축하할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니 이건 일부러 테레제의 반응을 떠보는 것이었다.
‘내가 정확히 리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해보려는 거겠지.’
“그러려고 했지. 하지만 내가 지켜보지 않는다고 해서 리비의 수석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스콰이어 가문의 직계 혈족은 유독 많은 마력을 타고난다.
리비는 그 설정의 정점을 찍는 존재였다.
신입생은 물론, 재학생 중에도 리비보다 많은 마력을 가진 사람은 클라이드 외에는 없었으니까.
압도적인 마력량으로 수석을 차지한 의문의 신입생이라.
음. 정말 여주다운 설정이었다.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넌지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어제 동생이 조금 섭섭해 보이던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수석인 동생을 축하하는 것보다는 졸업이나 할지 의심스러운 내 앞날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 너도 알겠지만 나 전공 성적 엉망이잖아.”
“……아하하.”
데미안은 차마 긍정하지 못하고 곤란하게 웃었다.
발할라는 무척 매정한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우수한 마법사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퇴학.
지나치게 성적이 낮으면 퇴학.
부상으로 인해 악마를 상대하지 못하는 상태면 퇴학.
졸업 학점을 못 채우면 퇴학.
퇴학 사유가 너무 많았다.
‘테레제의 사망 루트처럼 말이지.’
데미안은 여전히 당혹스러운 기색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벌써 4학년이니까 슬슬 그런 점을 신경 쓸 때가 되기는 했지.”
‘네가 그런 걸 신경 쓸 줄은 몰랐지만, 까지 말해야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겠지.’
나는 뜨겁게 내려 그윽한 향기가 훅 풍겨오는 커피잔을 앞으로 당기며 기분 좋게 읊조렸다.
“향 좋다.”
뜨거운 커피는 향을 즐기기가 좋지만 역시 나는 아이스 커피가 더 좋았다.
쩌저적-
나는 마력을 일으켜 데미안이 사용하고 남은 물을 차갑게 얼렸다.
이어 허공에 둥둥 뜬 얼음을 잔 크기에 맞게 정육면체로 서걱서걱 썬 뒤 뜨거운 커피에 퐁당퐁당 빠뜨려 그대로 쭉 들이켰다.
“후아, 이거지.”
시원하게 한 잔 비운 후 잔을 내려놓으니 이상한 표정을 한 데미안이 보였다.
그는 이해하지 못할 괴식을 즐기는 인간을 목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커피를…… 차갑게 먹어?”
“응. 이렇게 마시면 더 맛있어.”
데미안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날 따라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 마셔보더니 미적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괜찮은 것 같아. 나는 잘 모르지만 이게 요즘 사교계의 유행인가 보네.”
“그건 아냐. 그냥 내가 이렇게 마시는 거지. 사교 모임에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면 아마 좋은 소리는 못 들을걸.”
아마 교양 없다고 대차게 돌려 까이지 않을까?
물론 테레제에게 대놓고 그럴 인간은 없겠지만.
‘……잠깐만.’
나는 커피를 한 잔 더 따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데미안이 한 말도 날 돌려 까는 거였나?’
데미안은 사교계 화법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녀석이라, 성격을 알고 있어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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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데미안은 예법에 어긋난 행동을 비꼬았던 것 같군요. 평민인데도 사교계식 화법을 구사하는 능력이 고단수네요.]
‘아. 역시 그런 거였구나.’
나는 커피에 또 얼음을 퐁당퐁당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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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더 돌려 까봐~ 못 알아들으면 그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