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가에 아슬아슬하게 차올라 있다가 눈꺼풀에 밀려 굴러떨어지는 눈물이 몹시 뜨겁고 축축했다.
눈물은 입맞춤 받은 뺨을 적셨다.
개새끼. 빌어먹을 새끼.
죽어버려. 제발 죽었으면 좋겠어, 너 같은 건!
격렬하게 끓어오른 증오의 감정은 사나운 파도처럼 내 안을 헤집었다.
불같은 분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허무였다.
내 분노와 눈물은 언제나 무력했다.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감정이 정리되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테이블에 차려져 있던 만찬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바닥을 나뒹구는 샌드위치만이 그가 다녀간 증거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것부터 치워야지.’
나는 봉투에 샌드위치를 주워 담고 물을 적신 천으로 더러워진 바닥을 닦았다.
소스가 있는 샌드위치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피로한 눈가를 문지르며 화장대에 아무렇게나 둔 마법서를 챙겨 들었다.
“아.”
그제야 뒤늦게 잔해물을 치우는 일을 마법으로 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조금 허탈한 기분이었다.
나는 등 뒤로 쿠션을 대고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책을 읽기 적당한 정도로만 램프를 밝혀놓고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첫날이란 말이지.”
이토록 다사다난했는데 고작 발할라에서의 첫날이었다.
아찔한 피로가 전신을 짓눌렀다.
이대로 누워 현실을 외면하듯 잠들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했다.
“그럴 리 없지.”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자신도 놀랄 정도로 냉소적이었다.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내면에 그득히 차오른 독을 뱉어내듯이.
이내 사락사락 종이 쓸리는 소리가 적막을 채웠다.
나를 현실에서 잠시 해방시켜주는 게 지구에서는 게임이었다.
이곳에서는 마법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
일리야 교수가 준 벌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지금은 정말 간절하게 현실을 잊고 싶었으니까.